〈 92화 〉 91화 무인도에서 마력 없이 마법을 (4)
* * *
심상치않은날이었다.하늘을뒤덮어가는먹구름.아서는긴장했다.무슨사건이터지기에는더할나위없이좋은날이었으니까.
하워드선생님께서는세계수의이야기꾼이라는이명이붙은만큼,특별히좋아하는이야기가있었다.
바로역경과고난을뚫고주인공들이성장하는이야기였다.그리고이이야기의난이도는나에게맞혀져있을터다.분명쉽지않은사건들이기다리고있겠지.
우르릉.쾅!
“꺄악!”
갑작스레번개가내려칠때마다나연은몸을움찔거리며새된비명을내질렀다.그리고그것만으로는버틸수없었는지,두손을머리위로올려번개소리가자신의귀에안들리도록꾹눌렀다.
쏴아아.
곧이어대나무집밖으로쏟아지는폭우.다행히대나무집안에물이새는일은일어나지않았다.그저지붕끝으로거의폭포처럼물이떨어질뿐이었다.
“...”
아서는나연에게다가갔다.그리고나연이겁먹지않기를바라며양복을덮어씌어주었다.
“고마워요···.”
나연은낯선감촉에고개를들고상황을파악한후,조그마한목소리로말했다.이어서두손으로양복끝단을잡고몸을말았다.
아서가자신의얼굴을볼수없다고생각되었을때,코를킁킁거리며양복에베인냄새를맡기도했다.아서의냄새로마음을진정시키려는것이리라.
“꼬리조심하세요.잘못하다타겠습니다.”
아서는넌지시말했다.밖에서호우가쏟아지고바람이세차게부는만큼모닥불에가까이앉아있었던탓이다.
그말전까지꼬리에무관심이었던나연.아서가말하고나서야조심히꼬리를잡아당겼다.
“음···.”
그러고보니아서는나연이꼬리를관리하는것을전혀본적이없었다.대부분의수인은꼬리에지나칠정도로관심이많았는데말이다.
그때였다.
“···차라리수인이아니었으면좋았을텐데.”
옆에서터무니없을정도로어둠에얼룩진목소리가흘러나왔다.나연의목소리였다.그목소리는나연에게서지금까지들어본적이없을정도로부정적이고비관적인감정이담겨있었다.
“그런가요?”
“···교수님은순수인간이시니까그런반응을할수있는거예요."
“그렇군요.”
이후찾아온정적.나연은자신의입에서멋대로나온말을깨닫고는당황했다.너무버릇없고예민하게반응한게아닌가생각하며아서의눈치를슬쩍보았다.
변함없이모닥불을바라보고있는아서.나연은곧바로사과할까했지만,아서가별로대화하고싶어하는것같지않아서조용히입을다물었다.
우르릉!쾅쾅!
“꺄악!”
커다란천둥소리가들릴때마다나연의몸이들썩였다.아서는이대로는안되겠다싶어나연에게말을붙였다.
“나연씨얘기좀들려주실레요.”
“제···얘기요?”
“말하는것에집중하면밖의소리에신경쓰지않게될겁니다.”
아서는모닥불에손을뻗었다.그손은그대로불길위에있던대나무통을잡았다.대나무통안에는야생의약초로끓인뜨거운차가담겨있었다.
나연은고민했다.
민철로서가아닌,나연으로서의얘기는끝이좋지않았기때문이다.나라를위해열심히일하다가결국내쳐진이야기.
무엇보다아서가알고있던게많은만큼,자신의얘기도아서가알고있지않을까생각한것이다.
세계적으로이슈가됐던얘기는아니어도동쪽에서귀가밝은헌터라면알만한얘기였으니까말이다.
후루룩.
나연은대나무통에입을대고차를한모금마셨다.깊은생각을하고있으니마음은금세진정되었다.
이어서아서가자신의얘기를알고있으면어떨까하는생각보다,자신의얘기를알아도별로달라질것없이행동할것같았다.
그래서조심스레자신의얘기를꺼내기시작했다.
“그럼···재미없는얘기여도들어주실래요?”
“태어났을때부터말씀해주시면됩니다.시간은많으니까요.”
어디서부터해야할까고민하던그녀에게아서가말했다.그대답과함께나연은얘기를시작했다.
얼마전에꿈으로회상했던만큼이야기는입밖으로술술흘러나왔다.
가끔씩거짓말을섞을까말까고민하기도했으나,교수님은그런걸다눈치채실것같았다.그래서나연은꾸밈없이얘기를계속했다.
가문에서무시당했던일.
고아원에서살아남기위해치열하게눈치봤던일.
헌터협회에서A급헌터가되기위해노력했던것부터좋은사람들을만나면서들었던감정들.
그리고.
그좋은사람들에게연락이끊기며협회에서내쫓겨나고,언론인들에게정치당하면서수많은사람들에게감시당한것까지.
“그러셨군요.”
아서는그녀의말이끊기지않도록적당히추임새를넣었다.나연이말하는도중에물을마시거나깊게생각해도차분히기다려주었다.
그래서나연은이사장을만날때까지의이야기를전부풀어낼수있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나연의얘기를다들은후아서는별말하지않았다.나연에게다가가끌어안고쓰다듬어주었을뿐.
나연은그런아서의반응이좋았다.흐름을끊고무엇인가캐묻거나취조하듯이행동하는게아니라,자신의말을그대로믿어주는것처럼행동하는것이.
“저···교수님.”
“네,말씀하세요.”
“오늘은···같이자주실수있으신가요···?”
나연은꼬리를살랑이며말했다.눈동자는조금젖어있었는데인간의온기를갈구하는강아지같아보였다.
“흠···.”
더없이따듯해보이는꼬리.아서는나연을곧바로끌어안고싶은마음이굴뚝같이생겨났다.열대라고는하지만밤은정말추웠으니까.
지금까지는나연이부담스러워할까봐생존보다그녀의기분을위로두고있었는데,지금은유혹하듯이꼬리를흔들고있었다.요망한구미호도지금그녀처럼흔들지는못하리라.
“좋습니다.”
아서는그렇게말하며먼저바닥에누웠다.이후나연이아서의품으로들어와둘은같이끌어안으며잠에 빠졌다.
“...”
하지만나연이생각했던그런로맨틱한일은일어나지않았다.
아서는지금이환상속세계에서어떠한일이일어날지몰라긴장한상태였으니까.
그대로눈을감고의식을찾을때까지아무일도없자,나연은아서가게이라는사실을상기하며한숨을내쉬었다.
조금. 아니,많이아쉬울따름이었다.
*
한번내리기시작한비는쉽게그치지않았다.삼일이상지났을까.아서는함정들을점검하고대나무집으로돌아와물기를털어냈다.
“오늘도고생많으셨어요···.”
나연은아서가마실수있게곧바로뜨거운차를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아서는차를받아들이며옅게웃어보였다.나연은헤헤하며웃음을흘렸다.
그렇게오늘도별일없이하루가지나가나하고아서가생각할찰나였다.
드르륵.
크아아아아엉!
“...!”
갑자기저멀리서함정이작동한소리와함께짐승의비명소리가들렸다.
드르륵!드르륵!
심지어함정이작동한것은한개가아닌여러개였다.
“교수님···.”
근처에서소리가들릴정도였으니식량확보를 위해만든함정이아니었다. 대나무집 근처에목책과더불어방어하기위해만든함정들이었다.지금그것들이연달아무너지고있는것이다.
아서는급하게몸을움직였다.미리만들어둔석궁을집어들고망루위로올라갔다.
해는이미사라진지오래였다.먹구름이잔뜩끼어있는만큼앞이제대로보이지도않았다.
하지만.
그륵.그르륵.
크허엉!
점차선명해지는울음소리로알수있었다.지금놀들이임시거점으로다가오고있다는사실을.
놀은하이에나의얼굴을가지고인간이상의신체능력을가진몬스터였다.
‘몇마리지?’
아서는눈을잠시감고귀를기울였다.떨어지는빗소리와발자국소리를구분해서몇마리인지대략적으로감을잡으려했다.
‘많다···!’
그러나숫자는셀수없을정도로많았다.거리가떨어져있었는데도점차땅이울리는게느껴졌다.게다가들개의울음소리까지섞여들렸다.
이렇게된이상목책은의미가없었다.무인도에있는야생놀이여도원시인정도의지능은될테니까.
이상한점이있다면목적을가지고있는것처럼함정들을밟으며동료가죽고있는데도다가오고있다는것이다.
‘왜지?놀은자기영역으로들어오지않으면먼저공격하지않는몬스터들인데?’
무인도에서생활하면서놀의발자국을보지못했던것은아니었다.그래도거리는신경쓰지않아도될정도로굉장히멀었다.
무엇보다이렇게단체활동을할때는동료가당했을때밖에없었다.
결론은단순히···.
단순히이야기를위해주인공들에게들이닥쳐오는위험일뿐이다.
“씨발.”
아서는욕지거리를내뱉었다.하워드선생님은변하지않았다고생각하며.
곧이어석궁을발자국소리가나는곳으로겨눴다.들리는울음소리로 판단하면 대충쏴도물반 고기 반으로아무나맞을터다.
팅!
슈우우욱!
팽팽했던줄이단번에수축되면서날아가는대나무화살.
크아아악!!
박히는소리는들리지않았지만대신놀의비명소리가들렸다.
“교수님!!”
“망루아래로빨리오세요!!”
아서는말과동시에재빨리다음화살을장전했다.그리고화살이떨어질때까지석궁을연달아발사했다.
크아아악!!
크허어엉!
그치지않는울음소리와함께발걸음소리도끊이질않았다.
이윽고.
스륵.
케게엑.
풀숲에서모습을드러내며웃음을짓는놀이보였다.그놀은자신이대장이라고말하는것처럼어설프지만가죽으로만든갑옷을입고있었다.
스무마리정도되는놀.그리고그들이길들인들개들.
아서는첫날에늑대들이왜사방팔방으로돌아다녔는지알수있었다.이도시에주민들이그들과적대적이었기때문이었다.
스윽.
놀의대장은아서와나연을보고비릿하게웃었다.
“으으···.”
순간 나연은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기가죽은 나머지 꼬리가추욱늘어졌다.이어서조금씩뒷걸음질쳤다.
“도망쳐요!!”
아서는나연에게기죽을시간조차없다는듯이소리쳤다.화들짝공포에서벗어난나연은그제서야눈앞에서거칠게손짓하는아서가보였다.
타닥타닥!
나연은발을재빨리내뻗었다.아서는그녀가자신의뒤로붙는것을확인하고서같이다리를움직였다.
크어어어엉!!
놀의대장이도망가는그들을보고크게울부짖었다.이어서수십마리의들개와놀들이아서와나연을추적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