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화 〉 93화 무인도에서 사랑을 속삭인다 (1)
* * *
“교수님저,야한짓하고싶어요.”
“네?”
탁.
순간놀란아서는나무젓가락을손에서떨어트렸다.이어서잘못들은건가싶어나연의표정을지긋이쳐다보았다.
“지금뭐라고···.”
“야한짓하고싶다고요···.”
나연은결의를다진기사처럼꿋꿋이아서를지켜보았다.
“아···.”
마법진을완성하고대나무집으로돌아와같이식사하던도중,아서에게나연이문뜩내뱉은말이었다.
*
놀들의습격이후로생활은다시평화로워졌다.대나무집도언제습격이있었냐는듯화살몇개박힌거빼고깔끔했다.놀들의발자국이야다시비한번내리면사라질터였고.
식량은충분히많이비축한상태였기에걱정하지않아도되었다.얼마남지않은마법진을완성할때까지말이다.
“교수님괜찮으세요···?”
“적당합니다.”
나연은응급처치를하는아서를보며말했다.아서는어깨를으쓱이며상처부위에천을계속둘둘말았다.
아서가사용하고있는천의재료는나연의셔츠였다.그리고이렇게말하면나연은지금무엇을입고있는지의문을가질수도있는데,그녀가현재입고있는셔츠는아서의셔츠였다.
놀을모두격퇴하고동굴에서쓰러진날.아서가눈을떴을때,불씨를살리다가잠든나연이보였다.
스스로의셔츠를쭉찢어자신을지혈해준후에나체로잠든나연이.
그이후에는별일없었다.
나연을업고대나무집으로돌아와평소와같이무인도를탈출하기위한마법진을계속만들었다.이따금씩자신의셔츠를킁킁냄새맡은다음행복해하는나연의모습을지켜보기도했다.
그런데어쩌다가이렇게고백을받게된거지?
*
“잘못들었습니다?”
아서는군인친구에게들었던‘후임에게듣고싶지않은말베스트3’를사용하여잡아땠다.나연이홧김에말한것일수도있었으니까.
그왜흔들다리효과라고있지않은가.위급한상황에서도움을받았을시호감도가훨씬많이오른다는.
차분히생각한다음이성을되찾으면답이달라질수도있을터.
“교수님이랑교미하고싶어요.”
“...”
결과는변하지않았다.
나연은손가락을꼼지락꼼지락거리더니이내일어서가지고아서에게다가왔다.
“교미하고싶어요 교수님···.”
그리고아서의귓가에입을가져다대고조그맣게속삭였다.입김이귀에흘러들어온나머지아서는짧게몸을소스라쳤다.
“...”
말을끝나자마자얼굴이새빨개지는나연.자신이어떤행동을했는지깨달은것인가.
그런데오히려그수줍은모습때문에아서는동공이순간크게확장되었다.동시에바지안쪽이점차부풀어올랐다.
그래도재빨리정신차리고는엄한표정을지으며말했다.
“어디서그런못된말을배웠습니까.”
“···네?”
“처녀는그런상스러운말을입에담으면안됩니다.”
“처녀아니라니까요!”
나연은인상을찡그리며소리쳤다.화를내는나연.현장학습도중처음보는모습이었다.
‘그반응이누가봐도처녀라는건데···.’
아서는깜짝튀어나온나연의소리에별로놀라지않고말을계속했다.
“그런말은나중에배우자한테하시길바랍니다.알겠습니까?”
“아니···.”
나연은속으로한숨을내쉬었다.진지하게훈계하는모습이자기나라의늙은할배보다더유교적이었으니까.분명외국인일텐데도.
“교수님은제가싫으세요?”
“그럴리있겠습니까?”
“그럼게이라서···.”
딱!
“꺄흣!”
아서는게이라는말이나오자마자나연에게딱밤을때렸다.
“저는성소수자를좋아하지않습니다.”
"그치만···."
나연은온천에서있었던일에대해꺼내려했으나이내입을다물었다.그상황또한민철의모습이었을때일어난상황이었으니.
“정나연씨.”
“네.”
“나연씨는매력적인여자입니다.”
“···네?”
아서의입에서갑작스러운칭찬이나왔다.나연의귀와꼬리가순간움찔거렸다.
“능력도있으시고심성도올바르며학원도시의조교라는직위도가지고계시죠.”
손을들어올리는아서.나연의머리를조용히쓰다듬으며달래주었다.나연은그손길을거부하지않고귀를쫑긋되며받아들였다.
“저는저번에말씀드렸다시피나이든아저씨에불과합니다.겉모습이젊긴하나뛰어난외모를가지고있는것도아니고,머릿속에는마법에대해서만꽉차있는.”
탁!
나연은변명같이쏟아져나오는아서의말을끊듯이쓰다듬는손을거칠게쳐냈다.
“그런건다 중요하지 않아요!”
그리고주변이울릴정도로날카롭게외쳤다.아서는그런나연의난데없는반응에입을다물었다.나연은귀가축늘어지더니겨우들릴듯조그마한목소리로말했다.
“교수님···제가,제가교수님을좋아하는데···이유가필요한가요?”
아서는그말을듣고수염을쓰다듬었다.무인도에서지내면서자르지못한작은수염이었다.
“저는···.”
나연의눈을제대로마주치고입을때는아서.
“나연씨를사랑하지않습니다.”
진심을내뱉었다.
나연이받아들이기힘든진심을.
“아···.”
나연은탄식을내뱉었다.이어서얼굴을급하게돌리고벌떡일어나그자리에서도망쳤다.
“...”
아서는멀어져가는나연을보며가만히생각했다.확실히나연씨같은여자가고백해오는것을거절하는건남자쪽이이상한상황이라고.
본인스스로도조마조마한마음을가지고꺼낸말이겠지만,내심성공을확신하고있었을터다.
그만큼아름다운여자니까.또능력도있었고.마력을쓰지못하는이무인도에서야무능해보일수있어도그녀는엄연히S급헌터였다.세계에영향력을행세할수있는몇안되는존재말이다.
물론한두번적당히관계를가져준다음조금씩거리를벌려줄수도있었다.그저옛첫사랑을떠올리는여자로만들어줄수도있었다.
하지만그러고싶지않았다.나연의선한성품이,올곧은눈빛이마음에들었으니까.
과거좋지않은환경속에서도그녀는더럽혀지지않았다.오히려그환경속에서숨죽이고살아가다가이내도망치고사회와연락을단절했다.
이건착하다고말할수있는수준이아니다.거의호구에가까웠다.
나였으면분명복수부터계획했을터인데.협회든,나라든.
언제부터.
대체언제부터그녀가나를좋아하게된걸까.
그런생각을한참동안이나계속했다.
이미내가거절한순간그녀의첫사랑은실연으로끝날터다.그럼이제부터나는어떻게하는게좋을까.
그생각을끝마쳤을때는아서는나연을찾기위해다리를움직였다.
*
사랑이뭘까.
구태여입으로주저리주저리떠드는놈들은많았어도주의깊게들어본적은없었다.애초에그런걸입에담을정도로한가한사람을만난적이얼마없었다.
사랑하는사람들끼리만해야한다는성경험은많이해보았다.그렇다고그성경험을통해마음을준여성은지금까지없었다.
처음성행위를알려주신쾌락주의자선생님께서는쉽게사랑에빠지셨다.그리고쉽게사랑이식었고.마치불과같이.
여자는장미와도같다며가벼운태도로접근하다문전박대당하는게수차례였던쾌락주의자선생님.
헌데,시간이지나면어떤여자든지꼬셔냈다.그리고그때마다하신말씀이있었다.
‘아서.저는저와섹스했던여자들을전부사랑해요.’
지금다시생각해도이해못할헛소리.
나에게성경험들은그저성욕구를푸는일환이었다.감정마법을사용할때분노와같이크게튀어나오는게성욕이었으니까.
아마과거목숨이간당간당한일이많았던만큼,성욕에대한욕구도컸기때문이리라생각했다.
감정제어반지를낀이후로분노를제외한감정을평소에크게느껴본적이없었다.그래서결혼하자면서계속혼인신고서류를들고추격해오는성녀님을공감할수없었다.
감정제어반지를벗은이후긴밀하게감정을교류한여성이래봤자,그저친근한관계에서그쳤다.
네네와피네에게는애정을줄수있는부모같은역할을.벨라에게는기댈수있는스승님의역할을.
미츠키를바라볼때는가슴이일시적으로두근거리기는했지만그것조차한순간이었다.
아,그감정이사랑일까.
“...”
그렇다면나는다시한번말할수있었다.
나연씨를사랑하지않는다고.단순히귀엽고예쁘다고생각만할뿐사랑과는거리가멀다고.
그래,역시마지막으로해야하는것은진실을말해주는것뿐이다.
가보자.
첫사랑에빠진소녀의마지막을아름답게끝맺어주기위하여.
*
“여기계셨군요.”
아서는나연을찾아냈다.발자국과풀을밟은자국같은것들로.
나연이있는곳은계곡의물이모여작은호수를이르는곳이었다.고요하고한적하기없는그곳에가끔씩물고기들이수면위로나와산소를내뱉는게보였다.
“한참동안찾았습니다.이제날도서서히어두워지고있는데밥이나먹으러가죠.”
아서는태연하게평소와같이말했다.이어서대답하지않는나연에게손을내밀었다.
“...”
나연은그손을내미는기척을느꼈다.하지만그손길에어떠한반응도취해주지않았다.그저가만히무릎을안고고개를푹수그리고있을뿐.
슬슬갈곳없는손을빼내야겠다고아서가생각했을때였다.
탁!
“하앗!”
“아.”
나연이몸을돌리고무릎을확펴며아서를덮쳐들었다.
털썩.
둘은몸을포갠채풀숲에넘어졌다.저번온천에서와는다르게나연은바닥을손바닥으로짚지않고아서의몸을꽉끌어안았다.
“···지금뭐하시는겁니까.”
“저못참겠어요.”
나연은아서가질문하고서야몸을일으켰다.점점멀어지는나연의얼굴에는정열적인눈동자가있었다.
“교수님의볼때마다가슴이두근거리고,교수님을떠올릴때마다온몸이찌릿찌릿하고,교수님이잔뜩상처를받았을때는심장이멈추는줄알았어요!”
“지금도마찬가지예요!잊고싶어도···아무리머리를비우려해도교수님생각밖에나지않아요!제머릿속에는이제교수님밖에없다고요!”
나연은울분을토해냈다.그리고작은두손을뻗어아서의얼굴을어루만지며말했다.
“그러니책임져주세요···어차피환상세계잖아요.”
말을끝까지들은아서는머리를긁적였다.이어서그녀를떼어내지않고누운채로입을열었다.그목소리는건조하기그지없었다.
“환상세계여도이미누군가와한번교제하는순간다시처녀로돌아갈수없습니다.”
“처녀를너무신격화하지마세요!단순히성교한번못해본미통녀일뿐인데!”
“아니.”
직설적인나연의말에아서는처음으로당황했다.
“게다가처녀는처녀막이찢어지면서피가나오잖아요!그잔인한모습에분위기가다깨지잖아요!친구들에게처녀는성행위를할때오히려밝은분위기를망친다고들었다고요!!”
“그건선물이자하나의포상.”
조그맣게말을꺼내려는아서를나연이기세로닥치게했다.
“그리고교수님어차피아내도여자친구도없잖아요.”
“그건맞습니다.”
“그럼저에게사랑에빠질가능성도있다는거잖아요.”
“그건···잘모르겠습니다.”
“그래요.결국잘모르는일이잖아요.저에게사랑이빠질지아닐지는.”
“음.”
단호하게말하면금방포기할거라고생각했던그녀가,지금까지보여준모습으로는소심하기짝이없던겁쟁이인그녀가,울분을토하면서계속진심으로자신과맞부딪히고있었다.
“제가멋대로교수님을좋아할게요.제가교수님옆에서사랑을갈구할게요.교수님께힘든일이있으면제가옆에서도와드릴게요.교수님이저를포기해도제가포기하지않고계속옆에있을게요!”
그리고일방적으로사랑할것임을선고한다.처음으로본용기있는모습이었다.
“그러니···그러니이번단한번뿐이라도좋으니까···저에게사랑을주세요.저를교수님의색으로물들여주세요···.”
마지막으로간절하게말한후아서의가슴에얼굴을기댔다.그래서직접적으로표정을볼수없었다.어떤표정을짓고있을지는계속상상이갔지만말이다.
그렇게몇분동안풀숲에누워서떨어지는태양을쳐다보고있을때였다.
“저는.”
생각을끝마친아서가드디어입을열었다.
“누군가가저의자유를구속하는걸싫어합니다.그리고나연씨말고다른사람에게사랑이빠지게될경우,그사람을우선으로둘수도있는나쁜사람입니다.”
“또저에게진심이라면서관계를맺었던사람이다른남성과자는것이싫습니다.지독한이기심을가지고있다는말입니다.”
“사랑을경험해본적은아직없지만관계를맺어본적이없는건아닙니다.그리고그관계를맺었던여성들이좆같은짓거리를하면분노가몸을지배할정도로차올랐습니다.”
“추악한욕망이어떤식으로휩싸일지모릅니다.그런한심한제가이성을잃고나연씨에게무슨행동을할지모릅니다.”
“이런···이런번거로운것들을전부감당가능하시겠습니까?”
아서는자신의진심을그대로꺼냈다.일절거짓이라고는없는진심을.그리고말하는동안나연이한순간이라도흔들릴경우이야기는없던걸로할생각이었다.
하지만.
“괜찮아요그정도쯤은.제가이십몇년을살면서그런더러운사람들을못본것도아니니까요.”
“오히려자신의한심한모습까지그대로말씀해주시는아서교수님정도면천사나다름없어요.분명,분명여기서놓치면남은인생에서도찾아볼수없겠죠.”
나연은흔들림없이대답했다.
“다시한번물을게요.”
그올곧음이몇년이갈지모른다.다른일에개입에쉽게변하게될수도있었다.그리고그런게너무무서웠지만.
“제가싫으신가요?”
나연은사슴같은눈망울로오직자신에게만사랑을갈구하고있었다.충직한늑대처럼자신에게만충성을맹세하고있다.
그리고그모습은상처받는게두려워서남을깊게사귀지않고있던나에게까지닿았다.
“아···.”
심장이쿵쾅쿵쾅뛰기시작했다.나연이한층더사랑스럽게느껴졌다.말을끝맺으며어슴푸레웃는그녀의입가가더매혹적으로느껴졌다.
그래서이번에도진심이자연스럽게흘러나왔다.
“지금은꽤좋아진거같습니다.”
아서의말에나연은성공했다는듯이배시시웃었다.
“그럼제가죽을때까지다른남자와교제하지않는 맹세를조건으로,저에게사랑을나눠주실수있으신가요?”
“···그건.”
“대답하시지않아도이미답은정해져있지만요.”
나연은말을꺼내려는아서의입술을강제로포갰다.이어서잡아먹듯이혀를내밀어아서의혀와석었다.그게상당히서툴렀지만.
“읍···!”
그래서아서가대신해서혀를능숙하게섞어주었다.그녀의혀에서는달콤한맛이났다.거짓말이아니라진심으로.입술에몰래꿀을덧바르고있었던것이다.
늑대인줄알았는데알고보니여우였다.그래도이정도의 귀여운속임수는웃으며지나가줄수있었다.
“흐으읍···.”
아서는나연의혀를구석구석핥아주었다.치아를건드리기도하고나연의혀를감싸당기기도했다.
“으읍♡”
나연은처음과는달리차원이다른쾌감을느꼈다.이어서입술을살짝빨아드리는식으로입술을빼냈을때는
“흐아앙···.”
작은콧소리와함께길쭉이실이늘어졌다.
“...”
나연은무엇인가기대하는눈치를보냈다.심장의고동소리가딱붙어있으니다들릴정도였다.때마침밤은어두워져오고있었고.
“앗!”
아서는나연을번쩍들어올렸다.그리고오두막으로걸음을옮겼다.
“교수님···.”
나연은아서의품에안겨가슴팍에조심히머리를가져다댔다.그모습은마치침대위로옮겨지는새색시같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