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화 〉 97화 푸른 연기와 함께
* * *
“앗,차가!”
“정신이드셨습니까?”
나연은깨어나는것과동시에깜짝놀라외쳤다.차가운물이자신의몸에닿고있었으니말이다.이내상황을파악하기위해눈알을열심히굴렸다.
“에···.”
나연은자신의옷이다벗겨져있는것을깨달았다.
그것도대낮부터!
순식간에얼굴이화끈거리고머리위로수증기가피어올랐다.
“교수님···아무리그래도아침부터는···.”
“무슨생각을하시는겁니까.어제솜으로닦은걸로는부족해서계곡물로씻기는건데.”
아서는어처구니없다는표정으로단호하게말했다.이어서한숨을짧게내쉰다음물었다.
“어젯밤의일이기억나지않습니까?”
“나긴나는데···.”
“그럼마지막으로무엇이떠오르십니까.”
질문을들은나연의귓가가순식간에빨개졌다.필름이끊기기전의야릇한기억이생생하게떠오른것이다.
“그,그걸굳이제입으로 얘기해야하나요?”
“씻기나하세요.”
짝!
“흐햣!”
아서는나연의엉덩이를찰싹때렸다.그것도어제스팽킹했던곳과정확히같은위치였다.
“헤헤···.”
나연은자신의엉덩이를오른손으로쓰다듬으면서헤프게웃었다.그리고몸전체적으로깨끗한것을확인하고는아서가피워놓은모닥불로호다닥뛰쳐나갔다.
타닥타닥.
차가운물에있다가따듯한모닥불의열기를받으니굉장히개운했다.머릿속에얼마없던잡념마저깨끗하게정화되는기분이었다.
“오늘로써우리는마법진을사용해이곳을떠날겁니다.”
“오늘요?”
아서가대뜸앞으로의일정에대해말하니나연이머리를갸웃거렸다.
“네,마법진이완성된만큼더시간을지체할수는없습니다.계속있다가는또어떤시련이닥쳐올지도모르고요.무엇보다학생분들이걱정됩니다.”
아서는진지하게말하면서나연에게옷을건넸다.나연은옷을받아들이면서이것저것떠올렸다.
무인도에오기전에있었던일들과무인도에서있었던일들.그리고그사이에미처말하지못한게있었다.
‘지금말하는게좋으려나···?’
몇분동안곰곰이생각한끝에나연은결심을다졌다.두주먹을꾹쥐고목에힘을주어아서를불렀다.
“교수님,드릴말씀이있는데괜찮을까요?”
“말씀하세요.”
“그, 사실은···.”
하지만막상말을꺼내려니주저하게됐다.진실을얘기하는순간아서가어떻게변할지걱정이되기시작한것이다.
사랑을나눴던여자가사실이주동안같이지냈던남자였다니!
“그게···.”
그리고이얘기를하는순간,민철이라는인물은결국허상의인물이며자신은전세계사람들을속이고있다고자백하는꼴이었다.
지금까지올곧은모습만보여준교수님께서이걸그대로받아들여주실까.그리고어젯밤처럼달콤했던관계가유지될수있을까?
눈동자가흔들렸다.식은땀이흘러나오며입에침이바싹바싹말랐다.이내눈을질끈감고어찌할줄모르는찰나였다.
“힘드시면굳이말씀해주시지않으셔도괜찮습니다.”
아서가너그러운미소를지으며말했다.
“네···?”
“말하기곤란한건그냥비밀로두어도괜찮다는말입니다.저는나연씨가어떠한비밀을숨기고있든그냥믿어줄생각이거든요.”
“교수님···.”
아서의따듯한말에나연은가슴이뭉클했다.내면에서는뜨거운감정이솟구쳐오르고눈시울이뜨거워지는것을느꼈다.
“무엇보다비밀은여자의매력이라는말이있지않습니까.”
가벼운농담까지건네는아서.나연은무슨표정을지어야할지몰라고개를푹숙이고속으로생각했다.
‘언젠가,그래언젠가말씀드리자.’
“그리고.”
아서는얘기가끝나지않았다는듯이재차입을열었다.나연은귀를쫑긋세웠다.
“저도비밀이꽤많습니다.”
“어떤것들이있는데요?”
“음···나연씨의비밀을알고있다는정도?”
“어···?”
*
이후에는별일없었다.
아서가구체적으로무엇을알고있는지얘기하지않은탓이다.나연은설마하는생각이잠깐들었지만,역시그럴리없다는의견쪽으로생각이기울었다.
이내둘은무인도에서의마지막식사를든든히마쳤다.뒤이어마법에쓸재료들을챙겨대나무집을나섰다.
“잘있어대나무집아.건강해야해···.”
나연이대나무집을집떠나는자식처럼쓰다듬는것을보며아서는옅게웃음을흘렸다.그리고같이마법진이그려진곳으로이동하는도중나연에게물었다.
“그러고보니저번에말씀하셨던헌터로써활동하신과거에대해궁금하게있는데,여쭤봐도될까요?”
“왜요···?”
아서가과거의얘기를꺼내자나연이미심쩍은눈초리를보냈다.
“제친구중헌터업계에서꽤영향력있는친구가있어서요.그친구에게이억울한얘기좀전해주면어떨까생각중이었습니다.”
“별로대단한사건은아니에요교수님.그리고전부끝난일이라···.”
나연은아서를만류했다.하지만그녀의얼굴에순간약간의기대가차올랐다.곧바로소용없다는확신이머릿속에들어와금세사라졌지만.
그사건이그렇게처리되는과정에서헌터협회동쪽지부의의견이가장컸다.또한국가에서도개입했었던일이다.
즉,이사건을제대로파헤치려면국가를상대해야했다.아무리작은나라여도나라의어두운면을마음대로들출수있는사람은얼마없었다.
아서는나연의반응을보면서어깨를으쓱이고말을이었다.
“무엇보다당하기만하면굉장히기분나쁘지않습니까.지부장이라든지그일에관련된방송사라든지아시는대로알려주시면됩니다.나연씨에게피해가가지않게조용히처리할테니.”
아서는그말을끝으로짙게웃었다.안그래도사나웠던얼굴을진정한악당으로보이게만드는흉악한미소였다.
“그럼···.”
처음에는머뭇거리던나연은어느새불이붙어자세하게말하기시작했다.그야,원한이라는건아무리착한사람이라도쉽게잊지않는법이다.
대화가끝난후,아서는나연에게훗날결과를알려준다고말하며같이마법진까지걸음을옮겼다.
*
무인도에서가장하늘과맞닿는높은지역.푸른꽃이가득자리잡고있는꽃밭이었다.
아서는꽃밭위에다돌을쌓거나,땅을일정하게파는등꽤나입체적으로마법진을그려놓았다.
나연은자신이알고있는마법진과는다르다는생각이들었다.그래도자신보다는아서가더잘알거라생각하며굳이간섭하지않았다.
구름한점없이메마른하늘.아서가대나무를들고선을몇개덧그린다음입을열었다.
“준비되셨습니까?”
“네!”
나연은밝은미소를지으며활기차게대답했다.곧무인도에서떠날수있었으니까.
물론아쉬운점도있었다.놀습격이후로서의생활은그야말로힐링캠프와같았기에.
다양한식재료를구해오셔서맛있는요리를해주시던교수님.이세계에서벗어나도몸에스며들어맑아지는그음식들만큼은잊지못할것같았다.
모닥불앞에앉아둘이오붓하게대화를나누기도하고,마지막에는여자로서의행복까지느껴보았다.
교수님과더긴밀한관계가될수있었던무인도.시원섭섭한마음이자리잡았다.
“제가첫날밤에이그리스라고발음시켰던것에대해서기억하십니까?”
아서는대나무를주변에던져놓으며물었다.두눈으로는이미나연을바라보고있었다.
“음···네.그대나무통에서나오는연기를마시면서발음해보라고···.”
“맞습니다.저는나연씨께서그때보여주셨던모습을토대로마법진을그렸습니다.”
“저를토대로요?”
“그렇습니다.그래서이마법진은나연씨가발현시켜야합니다.저는어찌된영문인지마력이없는것은물론,마법자체에도간섭할수없더군요.”
아서는입맛을한번다신다음말을계속했다.
“하지만나연씨는달랐습니다.몸내부에마력이없어도마력이닿는순간의지가짧게전달되는순간이있었습니다.”
“자,잠시만요교수님.이환상속에도마력이있었다고요?!”
나연의질문에아서가고개를끄덕였다.
“지금우리밑에있는이꽃들은연청초라고부릅니다.대지에있는마력을흡수하며성장하는꽃이죠.이밖에도마력이있어야만일어날수있는자연현상이나동식물들을저는수없이많이봤습니다.”
아서는발끝으로꽃밭을쿵쿵내려찍었다.
“그리고우리는이연청초를태우면나오는마력을이용하여마법을발현시킬예정입니다.정확히는나연씨가요.”
“저혼자서.”
나연은스스로를손가락으로가리켰다.갑자기책임감이막중해졌으니어리둥절한것이다.
“할수있을까요?”
목소리가살짝떨리는게느껴졌다.아서는그런나연에게다가가손을마주잡아주며입을열었다.
“네,할수있습니다.지금부터제말을따라해주세요.”
아서가흠흠헛기침을하며주문을생각했다.나연은아서의입에시선을집중했다.
[거짓과거짓으로이루어진세계에]
“이,이문다멘다···치,잇멘다치.”
[비틀린시간축,떠있지않은태양을깨달았노니.]
“악시스···뎀푸스···솔름논오리.”
어설프게따라서발음하는나연. 조금쑥스러웠다.제대로발음하기는커녕더듬기도하고중간중간놓치기도했으니까.
아서는괜찮다는듯이웃음을지었다.이어서다시주문을읊었다.나연이익숙해질때까지.
어느덧나연이똑바로발음할수있게되자아서는가져온불씨를연청초위에떨어트렸다.
이미불을계속유지시켜줄가연성연료를주변에뿌려놓았기에,연청초들은순식간에불이붙어타들어가기시작했다.
연기가나는것을보며아서는마음을다졌다.나연또한연기가피어오르는것을보며제발마법이일어나기를빌었다.
손을꼬옥잡아주는아서.나연은흠칫몸을떨었다.이어서손의온기의도움을받아침착함을유지했다.
뒤이어아서가입을때는것과동시에나연이같이주문을읊었다.
거짓과거짓으로이루어진세계에비틀린시간축.떠있지않은태양을깨달았노니.이곳에서벗어나고자하는내가.푸른연기와함께종말을고한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마법은발현되지않았다.
“...”
“...”
주문이끝난뒤에는연청초가타들어가는소리만들릴뿐이었다.
그에아서는목소리를좀더높여주문을읊었다.나연또한아서를따라감정을조금더담아주문을외웠다.
하지만.
“어째서···.”
마법은또발현되지않았다.
‘설마.’
불길한예감이떠올랐다.그래서급히입을열어나연에게물었다.
“나연씨,이곳에대한미련을아직버리지못하셨습니까?"
“그,그게···.”
나연은고개를푹수그렸다.
왜냐하면살면서걱정없이행복했던기억은여기가처음이었기때문이었다.위험한순간이잠깐있었으나,아서가혼자서해결해버려자신은가만히있으면되었고.
“아.”
아서는탄식을내뱉었다.순식간에주문에대한셀수없을정도로많은문제점들이머릿속에자리잡았다.이래서는무용지물이었다.급히불을꺼야하나생각이들었다.
타닥타닥.
그러나이미수많은연청초가타들어 갔다. 또 다른 연청초들을찾을수있을지없을지는모르는상태였다.
‘대체어떻게해야!’
아서는자신의머리를쥐어뜯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