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의 제자-106화 (106/154)

〈 106화 〉 105화 ­ 세계수의 이야기꾼 (1)

* * *

아서는눈을떴다.정확하게는무너져가는세계에서눈을한번감았다뜨면서다른곳으로온것을인지한것이다.

‘또환상세계인가.’

이로서몇번째일까.무슨걸리버여행기도아니고.아서는그렇게생각하고는한숨을내쉬며주변을둘러보았다.

“마력!마력이돌아왔어!”

“살았어···흐윽,결국죽지않고합격한거야.”

서로를부둥켜안고 울먹이는사람들이잔뜩보였다.그들은 전부 학원도시사람들이었다.조교나교수그리고학생들말이다.간간히머릿속에있었던사람들도보였다.

물론환희에젖은사람만있는것도아니었다.

“···.”

“흐흐···흐···.”

눈에다크서클이짙고수심이들어찬얼굴을 한 사람이 있는가하면,광기에젖어실소를흘리고있는자도있었다.

아서는이곳은어디일까확인하기위해계속눈알을굴렸다.

바닥에는이끼가이따금씩껴져있는돌바닥이정사각형으로깔려있었다.고개를옆으로돌렸을때는의자가잔뜩널려있는관중석이보였다.

그에아서는눈치챌수있었다.이곳은콜로세움.그것도경기장한복판이라고.

곧이어하워드선생님은무엇때문에이런콜로세움으로자신들을이동시킨걸까생각하고있을때,귀에낯익은목소리가들려왔다.

“교수님!”

나연이었다.그녀는주인을만난강아지처럼쫄래쫄래달려왔다.아서는간파마법을작동시키지않고있었기에순간홍조를띤남성이자신에게달려와구역질을할뻔했다.

아서는재빨리간파마법을작동시키고고개를들었다.

“아민철씨,역시무사하셨군요.”

이어서웃음을입에머금고그녀를바라보았다.변함없이건강하게쫑긋거리는귀와살랑이는꼬리가보였다.

찰랑이는단발과함께싱그러운미소가아서의마음에다시불을지폈다.하지만지금은주변에다른사람들이잔뜩있었으니,아서는욕구를잠재웠다.

“교수님께서는별일없으셨나요···?”

나연은아서가걱정됐는지만나자마자그것부터물어보았다.왜냐하면아서가학생들을도와주러가야한다며이변을일으켰기때문이다.

나연이이곳에도착한이후몇분이채안돼서아서가도착한것이었지만,걱정되는것은마찬가지였다.물론아서가실패했으리라고생각하지는않았다.

“별일없었습니다.굉장히협조적이고아름다운여성분과함께시험을순조롭게통과했거든요.”

“아,아름다운여성분이요?”

“그분도저와함께합격했을텐데보이지않네요.분명학원도시사람이라고말씀해주셨는데.”

나연은아서의말을듣던도중고개를푹수그렸다.

‘아,아름다운여성이라니···!’

과거에는시도때도없이들어본말이었지만,누구에게듣느냐에따라천차만별의소리였다.

하물며좋아하게된남성에게,그것도직접적으로가아니라간접적으로진심을듣게되니심장이더쿵쿵뛰기시작했다.

하지만뒤에있는아서의걱정과도같은말에양심이찔리기도했다.그에나연은대체언제말씀드릴까,하고타이밍을한번더고민하기시작했다.

그렇게 잠시 아서와나연의대화가끊긴다음,아서가재차말을이어잡담을나누고있던도중이었다.

멀리서교화부학생들이빛무리에휩싸이며나타나는것이보였다.눈이좋은아서는그들을단번에찾아냈지만그들은아서를찾아내지못했다.

그들은 그저자신들끼리오손도손얘기를나누며신기한지방방 뛰고있었다.아직까지감회에젖어있기도했고.

“자네도무사했군.”

아서의귀에낮고연륜이담겨있는목소리가들려왔다.웨인라이트교수가말을걸어온것이다.

웨인라이트교수는혼자가아니었다.그와함께시험을쳤을조교와교수들이그의등뒤로잔뜩포진해있었다.

그들의얼굴에서 느껴지는 고생의 흔적은 이만저만이아니었다.몸은멀쩡한데하나같이 피로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분명웨인라이트교수가껴있었던만큼체험했을환상도무시무시했겠지.’

구국의영웅이라고추대받는제럴드웨인라이트교수다.나이가들었어도그에걸맞은시련이주어졌을터인데···역시그것을돌파한건가.

아서는조금존경심을가지게되었다.

“웨인라이트교수님도별탈없어보이셔서다행입니다.”

“별탈이라···흠.”

웨인라이트교수는짧게고개를숙이고진중해진분위기를풍겼다.지난날을상기하고있는모습이었다.

“이곳은시험에서합격한자들만온것같네만.신비에뜻이깊은마법사로서어떻게생각하고있는가.”

웨인라이트교수는겸허하게낮은자세로질문했다.아서의나이는굉장히어려보이는데도불구하고.요즘에는흔치않은예의바른사람이었다.

“그이유는곧알게되실겁니다.”

이미전체적으로상황을파악한아서는웃으며답했다.웨인라이트교수가마음에들었기에장난치지않고.

“자네는,조금예의를차리는게.”

하지만그의밑에있는교수나조교들은아닌모양이었다.웨인라이트교수의등뒤에서있던교수중한명이눈꼬리를올리며목소리를높였으니까.

슥!

그찰나,웨인라이트교수는조용히하라는듯이오른손을들어올렸다.그에말을꺼낸교수는각잡힌차렷자세가되었다.

전군인출신들다운규율이었다.

아서는계속해서빛무리에휩싸여나오는사람들을바라보았다.

붉은치파오를입고다니면서교화부학생들을한번돌봐주었던리페이교수부터,이번현장학습의마무리이벤트를함께펼칠케이든고프교수까지 보였다.

“...”

어째서인지케이든고프교수일행은모두얼굴에먹구름이가득차있었다.시험에서합격했음에도.

그렇다고케이든고프교수까지먹구름이들이차있지는않았다.그는미소라는가면을철저하게쓰고있었으니까.

시험에서통과한교수들과조교,그리고학생들이전부모였을때였다.콜로세움으로보이는이곳에서나가기위해발버둥쳤지만이내탈출할수없는것을깨닫고혼란한상황이도래하기직전.

저벅저벅.

“허억.”

“흡!”

모든사람이콜로세움입구쪽에서강대한기운을느꼈다.조금씩커지는발소리.사람들은자신의심장소리와그발걸음소리밖에들리지않았다.

어두운입구에서서서히모습을드러내는사람.그사람은다름아닌백발의노인이었다.심지어귀가뾰족한엘프였고.

“...”

노인이잠시발걸음을멈추자장내는숨소리조차들리지않았다.교수들과학생들은위압감에짓눌려정신을유지하는것도버거웠다.

차림새를보면대단할것없는늙은엘프임에도.

흔히볼수있는낡은회색로브.마법사의지팡이처럼보였지만보석이라고는박혀있지않은지팡이.

가슴팍까지내려온기다란수염과미처정리하지못한머리카락이희끗희끗튀어나와있었다.수많은주름은그가살아온세월을보여주고있었고.

늙은엘프는온화한표정을짓고있었다.그러나보는사람들로하여금경건해지는분위기를풍겼다.

그리고미지는공포로변질되기마련이었다.

“다,당신누구야!”

그공포를분노로이겨내려는사람이있기마련이었고.

“당신이우리들에게좆같은경험을안겨준!”

공포에휩싸인채소리를지르던조교를멈춰새운건케이든고프교수였다.

“닥치세요!”

그는지금까지한번도보여주지않은분노의표정을짓는것과더불어날카롭게소리쳤다.

“누구앞인줄알고큰소리를내시는겁니까!”

“!!!”

놀란사람들이몸을움찔거리며고프교수를바라보는사이,고프교수는순식간에무릎한쪽을바닥에대며꿇어앉고고개를숙였다.

“고귀하신전설의현자이자세계수의이야기꾼앞입니다.모두예의를갖춰주시길바랍니다.”

이현장학습에서가장말에무게가있는교수중한명이그런말을하자,모두그와똑같은자세를취하기시작했다.

웨인라이트교수를필두로수많은교수들또조교와학생들까지.누구는어떻게될지몰라눈을질끈감기도했고,누구는호기심에의해귀를기울이기도했다.

터벅터벅.

조용해지기를기다리고있었다는듯이그제야백발의엘프가걷기시작했다.조용히,또조용히그들사이를걷고있다.

하지만그걸음에는망설임이없었다.웨인라이트교수는불현듯이상한느낌을받았다.

그발자국소리가자신에게가까워지고있는탓이다.이어서눈을살짝추켜올렸을때는.

“···!”

다른모든사람들과달리아서혼자서꿋꿋이서있는것을발견했다!

지금와서목소리를내기도힘든상황이었다.눈치를주고싶어도,신호를주고싶어도발걸음소리가계속가까워지자몸이움직이지않았다.

이어서자신의바로앞까지온것을느꼈다.

‘···망했군.’

웨인라이트는체념했다.그저결과를받아들이기로결심한것이다.하지만웨인라이트교수가예상했던것과는다른소리가엘프노인의입에서흘러나왔다.

“오랜만이구나아서.”

“오랜만입니다.하워드선생님.”

“오랜만이에요.할아버지.”

“···할아버지.”

아서의말에정정하듯백발의엘프가다시말하자,웨인라이트는자신이잘못들은건가싶어고개를들고두눈으로확인했다.

와락!

곧이어웨인라이트의눈에들어온것은오랫동안만나지못한손주를끌어안는노인의행복한얼굴이었다.

“···할아버지숨막혀요.”

또상대가누구든지당당하고여유를보여주었던젊은교수가쩔쩔매는모습도볼수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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