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3화 〉 1부 끝. 고양이와 함께 텔레비전을

* * *

“민철씨.”

“...”

“민~철~씨.”

“네,네에!”

잡티하나없는새하얀방.한쪽벽면을차지하고있는유리벽에서따스한햇볕이들어왔다.그리고그햇볕을등진이사장은깎지를낀채의자에앉아있었다.

완벽에가까운세련된금발.잘다려진셔츠를입은이사장은무엇을하든조각처럼보이게만드는잘생긴외모의소유자였다.

나연은그이질적인외모를보면서잠시딴생각을한자신을질책했다.동시에기합을잔뜩머금은채똑바로섰다.

“무슨생각을그리하고계셨어요.”

이사장은별로신경쓰지않는다는듯이부드럽게질문했다.

“별일아닙니다···!”

“그럼다행이네요.보고서는다확인했으니이만돌아가봐도좋아요.2주동안수고했어요.”

이사장은하얀이빨을드러내면서밝게웃었다.나연은그것을본다음허리를깊게숙여인사했다.뒤이어나가기위해문고리를잡았다.

“아,민철씨.”

이사장이갑작스레나연을불렀다.나연은무엇이잘못된건가싶어고개만서서히돌려이사장을바라보았다.

“어째더예뻐지신것같은데혹시연인이라도생기셨나요?”

잘못하면성희롱이될법한발언이었다.잘생긴이사장에게는소용이없겠지만.

“···예뻐졌다고요?저,저는남자인데요?!”

나연은화들짝놀라목소리를높였다.이사장은그사실을깜빡했다는듯이자신의이마를탁쳤다.

애초에나연이스스로남자로자각하게끔연기를할수있도록도와준사람은이사장이었다.일상에서부터진실을알고있는사람에게까지자연스레행동하는것은훌륭한태도라볼수있었다.

“···됐습니다.다음일이생기면연락드리죠.그때까지휴식을취해주세요.”

이사장이말을마치자나연은다시고개를꾸벅숙이고재빨리문밖으로나갔다.이사장은다른장난감을찾는어린애처럼엘레나를향해고개를돌렸다.

“엘레나,누가봐도사귀고있는것같죠?”

“이사장님.”

엘레나는단호하게째려보며말했다.이사장은몸을움찔떨었다.

“네네···.일이나하죠.”

뒤이어이사장은깊게한숨을내뱉으며옛날에는저러지않았는데,라고중얼거렸다.

시무룩한표정을지으며재미없는서류에고개를처박는다.엘레나는힐끗이사장을바라보았다가,이사장이다시열심히일하는것같자신경을끄고키보드를두들겼다.

점점선배비서를닮아가는엘레나였다.오르시니가의영애가관련되어있는대사건을처리하게되면서그녀는백전무패의장군이되어있었다.

타닥타닥.

몇초가 흘러,이사장실은또다시키보드를두들기는소리와웅웅대는가습기소리만으로방이채워졌다.

*

시간이지나,1학년학생들의머릿속에서인생에커다란전환점이되어준현장학습의기억이점점잊혀가고있었다.

평소와같은일상으로돌아와그들은배우고,받아들이고,느끼며점점성장해나갔다.

누구에게는평온하고,누구에게는바쁜일상이었다.

나연은루미너스관을나와주변을둘러보며과거를회상했다.

주변에서들리는소문에의하면케이든고프교수는정교수에서부교수자리로강등됐다고한다.

그과정속에서이사장과의어떤대화가이루어졌었는데,원래라면학원도시를떠나야하는상황에서그대화를통해많이호전됐다고들었다.

그래봤자이제그에게는그가원하던권력이없었다.돈도이사장이많은돈을몰수해갔다하고,여전히남아있는거라고는마법실력과가르치는능력뿐이었다.

이정도면불만을가지고사퇴할법도하지만, 고프는 자신의그처지에만족한다고들었다.

예전에보여주던그자신감을넘어선자만감이 사라지고,날카롭게아이들의솎아냈던모습은친절한교수처럼변했다하니,이사장님에게는호재이리라.

‘대체어떤대화가오고갔는지알고싶지는않지만.’

맥과한붕은여전히잘어울리고다녔다.속해있는교화부부서는달랐으나오전에있는수업과오후에있는수업이끝나면,같이웨이트트레이닝을진행한다고들었다.

마땅히친한친구가없던둘에게는서로딱맞는친구가생긴셈이다.참으로잘된일이다.

메리와벨라는각각배정받은교수에게혹독한훈련을받는다고들었다.

그래도메리는훈련에목매서미친듯이몸을혹사시켰던과거와는달리,간간히릴리와점심도먹기도하고,쇼핑도같이한다들었다.

벨라는리페이교수님한테대들었다가호되게두들겨맞았다고하는데,그럼에도리페이교수는벨라를포기하지않았다고한다.

오히려난동부리는아이를교육시키는맛이있다나뭐라나.강제적으로예절을주입당하는모양이었다.

아,예상했다면예상했던것이고놀라운일이면놀라운일도있었다.

그것은바로릴리와한스가서로사귀게된것이다.

처음에는한스쪽에서계속거절했다고한다.그야,하플링소녀는같은하플링이아닌이상,좋아하는순간특이성취향으로낙인찍히니까.

하지만아무리단단한나무여도도끼로몇번이고,아니몇십번이고찍히면결국넘어가는법.

각종기상천외한방법으로고백해오는릴리를결국한스쪽에서포기하고받아주었다고한다.

수업도중에하트가든도시락을들고구석에계속서있다가수업이끝나자마자달려든다든가,사람들이많은곳을지나가고있을때둘의이름사이하트가그려져있는폭죽을쏘아올린다든가.

이정도면거의폭력에가까웠다.

고백이라는이름의폭력.

뭐,그래도릴리가나름예쁘게생긴축이여서 한스가넘어간것도있겠지.

탁.

“...”

나연은핸드폰을잠시들여다보았다가닫았다.오늘도아서에게서연락이오지않은탓이다.

‘분명사건이잘해결되면먼저연락을주기로약속했으면서···.’

나연은씁쓸하게한숨을내쉬었다.한번인간의체온을느껴버린그녀는느껴버린그체온이사라지자더욱추위를강하게탔다.

계속손꼽아연락을기다리고있었지만,오늘로며칠이지났는지도몰랐다.

그렇게오늘도변함없는기다림과함께하루를보내려는찰나였다.

띠링!

주머니에핸드폰을넣자마자난데없이벨소리가울렸다.

허나,기대는기대하기에배신당하는것이었으니,일단최대한마음을가라앉히고휴대폰을꺼내화면을쳐다보았다.

“어···?”

연락이왔다.

“어!!!”

심지어곧장만나자는연락이!

그순간부터나연의심장이두근두근펌프질하기시작했다.주변에사람이없었으면기쁨을표현하기위해쾌재를지르면서높게뛰었을터였다.

‘지,진정하자. 후우, 하아.’

나연은심호흡을반복했다.이기분을계속가지고있다가는심장마비로죽을것같았으니까.

따분했던회색빛깔의일상이갑자기분홍색으로보이기시작했다.그래도서두르다가는어떤사고가일어날지모르니최대한마음을진정시켰다.

아무리그래도다리가멋대로 움직였지만 말이다.

순식간에아서를만날준비를끝낸나연.약속장소로가기위해곧바로 차를 운전했다.

며칠간눈이내렸던나연의마음속에다시봄이찾아왔다.그녀의입가는자연스레올라가있었다.

*

아무것도보이지않는어둠이었다.

아니,아무것도없는어둠이라고해야할까.

고즈넉한분위기를풍기는어둠이었다.하지만어디로가야할지고민되지는않았다.발이자신의의지와는무관하게멋대로움직이고있었으니까.마치길을알고있다는것처럼.

아서는걸으면서손을들어올렸다.이어서시선을그곳으로옮겼다.평소와다름없는손이보였다.빛이없음에도불구하고뚜렷하게.자신의양복도그대로보였고.

‘꿈풍선인가.’

이런기묘한배경은이를테면자신의내면세계에서자주보았다. 꿈 속에서 자각하는일이가끔있었기에아서는스스로를납득시키며고개를가볍게끄덕였다.

터벅터벅.

그후얼마나걸었을까.

치지직.

희미한잡음이귀에들려왔다.전자음이섞인듣기싫은잡음이었다.그소리의발신지를찾기위해고개를돌렸을때였다.

“스승님!”

아서의눈에검은고양이한마리와텔레비전이들어왔다.아무것도없는어둠속에서덩그러니말이다.

아서는헐레벌떡고양이에게뛰어가그녀를끌어안았다.

“보고싶었습니다스승님.정말···정말로요.”

“...”

하지만아서가자신의몸을건드리고있음에도,고양이는멀뚱히텔레비전만지켜보고있었다.미동도하지않고.마치인형으로착각될정도였다.

아서는불현듯위화감을느꼈다.살짝미간을찌푸리며꿈이어서그런건가,하고머릿속에되새겼다.

그러나꿈속에서라도스승님을만났다는건기쁜일이었다.아서는재차고양이에게말을걸었다.

“그런데스승님,무엇을보고계셨습니까?”

탁탁.

질문을듣고서야불쑥움직이는고양이.고개도돌리지않고시선을텔레비전에고정한채,자신의옆자리를발바닥으로툭툭내려쳤다.옆에앉으라는뜻이다.

아서는놀라지않고그녀의행동에따랐다.스승님의말이라면듣는게당연했으니까.그것이꿈속에서의스승님이라할지라도.

그렇게아서가스승님의옆에나란히앉아서티비를바라보았을때였다.

삑!

“···이건.”

망가진줄알았던텔레비전은노이즈가흘러나오는모자이크화면에서다양한색감을가진영상으로바뀌었다.그리고계속같은한사람을주인공인것마냥비쳐주었다.

“아.”

텔레비전속에사람은과거의아서였다.

아서는탄식을내뱉으며계속텔레비전을지켜보았다.고양이도오른손을들어몇번을핥은다음다시텔레비전을바라보았다.

허기를견디지못하고독초를씹다가기절한아서의모습이흘러나왔다.부들부들떨며초점조차잡히지않는눈에서는눈물만이뚝뚝떨어지고있었다.그대로죽어버리는게아닐까하는정도로위급한상황이었다.

“...”

여러아이들에게괴롭힘당하는모습도보였다.몸을웅크린채두들겨맞아도이빨이나가고코뼈가부러졌다.뒤이어아이들이떠났을때는바닥에엉금엉금대는모습이보였다.참으로가엾고한심스러운모습이었다.

영상은그걸로끝나지않았다.

물에빠져허우적대다가상어에게먹힐뻔한기억.야만인들에게쫓기다가뒤통수에돌멩이를맞고정신이띵했던기억.마법사헌터가쏘아낸윈드커터에팔이잘려나가고통에울부짖는기억까지.

이모든것은원래대로라면이번현장학습동안에봉인된자물쇠에서해금되었어야할기억들이었다.

그것을하워드가꿈풍선이라는마법도구로흡수하며억제하고있던것이고.

물론그꿈풍선을 만들고자신의형상을넣은건프리실라였다.프리실라는이렇게될것을예견한것이다.

“···스승님.”

넋놓고바라보고있던아서가먼저입을열었다.

“저는······그···.”

잠시뜸을들이고.

말해야할까말까망설인다.

“···잘하고있는걸까요?”

“...”

처음으로아서의입에서나약한소리가흘러나왔다.육성으로.모두에게감춰온한심한속마음이었다.

“솔직히잘모르겠어요.스승님이떠난이후로최선을다하고있지만제가하는행동이,제가하는말들이옳은건지는잘모르겠어요···.”

한번나오기시작한감정은끊임없이흘러나왔다.봇물이터지듯이말이다.단둘뿐인상황이라는것을자각했기때문이다.

“그저과거에제가했던행동이나말들을머릿속으로떠올리며유사하게흉내내고있기는한데···너무나도,너무나도어색해요.저같지가않다고요!”

역정을내듯이크게소리치는아서.순간자신의입에서나온소리에당황하다가다시마음을가라앉히고말을이어나갔다.

“감정을쏟아낼때마다,그리고자신이알지못했던스스로의일면을알게될때마다,점점무서워져요.두려워지고계속울음이터질것만같아요.또잘되지않은일들도수두룩했고요.”

아서의두눈에서는눈물이뚝뚝떨어지기시작했다.

겉으로는강한척하고있어도속은아이와같이여렸다.과거의일들이잘마무리지어지면서정신적으로성장한게아니라,그저사고의도피로끝났으니 말이다.

평소에 어떤 일이든 어른스럽게대처할수있었던이유는그렇게행동할 수 있도록훈련받았던것하고,감정제어반지가있었기때문이다.

아서는두손바닥을땅에기댄채얼굴을수그리고나지막이고백했다.

“힘들어요···스승님.”

“...”

프리실라는아무말도하지않았다.시선도텔레비전에서때지않고있었고.

“저···잘하고있는거겠죠?”

아서는간절하게프리실라에게물었다.더할나위없이추하고어두운부정적인감정을꺼내며.

“알려줘요···제발.”

아무리말을꺼내도대답이없는프리실라.

“······부탁이에요.”

몇분이흘러도아무반응이없자아서가포기하고주먹을꽉쥐었을찰나였다.

“아서.”

“!!!”

누군가가목소리를냈다.아서는처음들어보는목소리였다.

“스,스승님!”

고양이가있던자리에는어느순간부터검은드레스의여인이앉아있었다.칠흑으로빛나며윤기있는머릭카락과그와대비될정도로새하얀피부.그모습은과거핸드폰너머로보았던모습하고똑같았다.

눈하고피부를제외하면모든것이검은색이었다.그렇기에그녀의호박색눈이더빛을발했다.목소리도외모와같이기품이흘러나왔다.

프리실라는서서히아서쪽으로고개를돌렸다.동시에입가를올리며미소지었다.

그미소는슬퍼보이기도,안타까워보이기도,연민에젖은것같기도,가엾게여기는것같기도한미소였다.

“불안하니?”

그러나그런모습조차아서가지금까지본어떤여성보다아름다웠다.추악한자신이손으로만져서는안된다는생각이들정도로.

아서는그저울먹이며고개를끄덕였다.끅끅대는울음소리가허공에울려퍼졌다.

“괜찮아.잘하고있으니까.내제자답게.”

프리실라는자신을만지는것을두려워하는아서대신에,먼저아서를어루만져주었다.머리부터얼굴을거쳐어깨까지.그것이몇번이고반복되었을때,프리실라는다시입을열었다.

“지금까지보았을때는큰문제없이잘나아가고있단다.네가내게서원하는마법을배울수있도록말이야.”

프리실라는그말과함께아서의이마에자신의이마를대었다.

“그러니까걱정하지않아도돼.”

“그럼···.”

아서는다시돌아와주실수있는건가요,라고말하려했다.

“그것은안돼.”

하지만그것을알아챈듯프리실라가고개를저었다.

“나는네곁에있으면네가상처받는걸그냥지켜볼수없더라고.”

프리실라는씁쓸하게웃으며말을이어갔다.

“네가아파하면나도아파.”

“네가분노하면나도화났지.”

“네가누군가에게무시받으면내가멋도모르게힘을휘두르게됐고.”

“나는이제네가힘들어하는걸두눈뜨고바라볼수가없어.”

프리실라가다양한표정을보여주자아서가멍하니입을벌렸다.

“다른네선생들도마찬가지야.그래서그들에게제약을줄수밖에없었고.그들이네성장을방해할수없도록.”

“그렇지만···.스승님이라면,그래요스승님이라면이렇게까지멀리떨어지지않아도저를잘가르쳐주실수있잖아요.스승님은그만큼위대한마법사니까···!”

아서는떼쓰듯이말했다.프리실라는그런아서의모습까지사랑스럽다는듯이쓰다듬었다.

“아니,그래서는안돼.네가원하는마법은겨우그정도로배울수없어.그리고그마법들은조금이라도내가개입해서 너의성장을 방해하는순간,네가 배울기회는영영사라지고말아.”

더없이 안타까운 미소를 짓는 프리실라.

“아서.”

프리실라는아서의두눈을바라보고말했다.

“정말···정말그렇게되고싶니?”

아서또한프리실라의두눈을마주본다음고개를세차게흔들었다.

아무리힘들어도아서에게마법은중요했다.지금이순간에도인생을걸고있을정도였다.

프리실라는아서가자신의의사를뚜렷하게표하자칭찬하듯이아서의얼굴을어루만졌다.

“앞으로힘든일이아직많이남아있단다.그리고너는그것들로하여금하나하나네힘으로해결해나가야하지.”

프리실라는짧게한숨을내쉬었다.

“정말힘든일이될거야···응,도중에몇번이고포기하고싶을정도로.그래도···그래도잘해낼수있지?”

“······네.”

아서는프리실라의말에마지못해답했다.커피로아무리스승님을떠올리며하루를시작해도,스승님의빈공간은채워지지않았다.

그래도이것또한자신이구현하려는마법에도달해야하는과정이라면참아야했다.

“고마워아서···사랑해···.”

프리실라는아서를꼬옥끌어안았다.자신보다덩치가커다란자식을끌어안는어머니와같은모습이었다.

“네가더멋진남자로성장하는날을기다리고있을게.난언제나너의편이니까.”

“스,스승님?”

프리실라가이별에가까운말을꺼내자아서는당황했다.

“잘있어.아프지말고건강해야해.”

“좀더저와같이···!”

아서가안타까움에소리치고눈을한번깜박였을때,프리실라는다시고양이의모습으로변해저멀리유유자적히떠나고있었다.

“크흑.”

이어서아서의불안정한기억들이정리되면서마음속에차곡차곡쌓이기시작했다.수많은봉인된자물쇠들이풀리면서겪어야하는성장통이었다.

자칫하면망가질수도있는상황이었지만그것을프리실라가도와준것이었다.

시간이지날수록더욱정순해진마력이아서의몸속에스며들었다.과거와는비교할수없을정도로정순한마력이말이다.

“···스승님.”

모든마력이자신의것으로변한순간,아서는프리실라를떠올리며나지막이말을내뱉었다.

그리고그말은꿈에서깨어나기전까지메아리처럼허공에울려퍼졌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