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화 〉 124화 불쾌한 만남 (2)
* * *
미친년을피하고있다가다른미친년과마주했다.
리체르카는수업도중지긋이아서를바라보았다.그것도바로뒤에 바짝 서서.
“...”
아서는할수없이조퇴를결정했다.곧바로베로니카에게말을건넨후,예술학원에서밖으로걸어나왔다.
“아서님~.”
하지만정작리체르카를피하기위해조퇴했음에도,리체르카는아서의뒤를졸졸쫓아왔다.
오히려다른사람들의시선이사라져서일까.리체르카는한층더상쾌하고밝은목소리를냈다.
“하···.”
아서는리체르카의목소리를듣는순간,평소자신을얕잡아봤던소년의표정이떠올랐다.
‘크윽!’
눈을치켜뜨고이를꽉깨문그표정.복수의칼날을갈고있는눈빛이었다.
스무살도안된어린애인만큼단순히귀엽다는생각이들뿐이었지만,가만히내버려두면분명귀찮은짓을저지를게분명했다.
모두에게투명인간취급받는평화로운삶이었는데그렇게되면곤란했다.
그리고이모든건.
“같이가요아서님~.”
이미친년때문이었다.
“대체언제까지따라오실겁니까?”
빠른걸음으로걸어봤자결국어린아이의보폭일뿐이었다.이내리체르카에게금세따라잡혀둘은나란히걷고있었다.
“아서님이멈출때까지?”
아서는그말을들을순간부터걸어서세계일주를고민했다.
문득아서는그녀에게묻고싶은게떠올랐다.그리고그것에대해직접적으로물어봐도괜찮은지생각할찰나.
“제가어떻게찾았는지부터왜찾아왔는지모두알고싶으세요?”
리체르카는입가를올리며말했다.마치너의생각을다읽고있으니솔직하게말하라는것처럼.
실제로리체르카는아서가궁금했던부분들을정확히집어내는데성공했다.
‘이래서지나치게머리좋은여자는싫다니까.’
아서는한치도방심해서는안된다고상기하며인상을찡그렸다.
“그다지알고싶지않습니다.”
“후훗.”
리체르카는아서가불쾌하다는듯이입을삐죽내밀자더밝게웃었다.
아니,사실리체르카는그저아서의곁에있는것만으로도행복해했다.
따듯한바람이불고꽃잎이흩날리는오전.좋아하는사람과함께걷는것은평생염원하던일중하나였으니까.
자신들의모습은분명연인같은모습일거라고리체르카는착각하고있었다.
“저거오르시니님아니야···?”
“맞네,맞네.그런데왜옆에어린애가있는거지?”
“무슨특별한능력을가진애인가봐.그렇지않으면저렇게못생긴꼬마애가오르시니영애님과같이다닐수있을리없잖아.”
다른학생들눈에는오르시니가의영애가인재를영입하는과정으로보이고있었는데도.
“솔직하게질문해주시면전부말씀드릴수있는데.”
“솔직히고뭐고지금당신이랑말을섞는것자체가언짢습니다.”
“후훗,농담도.”
“농담아닙니다.”
티격태격학원도시번화가를걷는두사람.
미인과어린애가보폭을맞추고걸어가는그모습은,누구하나시기질투하지않고훈훈하게웃으면서바라봤다.
“그런데요아서님.”
리체르카가왼손으로옆머리를귀뒤로쓸어넘기면서말했다.
“저희지금어디로가는건가요?”
“한번맞춰보시겠습니까?”
아서는리체르카의질문에능글맞게웃으면서질문으로답했다.하지만.
“음···결혼식장?”
“카페입니다.”
“그렇군요!”
리체르카는짜증내지않고웃으면서맞장구쳤다.과거였으면날카롭게눈을치켜떴을터인데,지금은아서가어떤말을해도기쁘게받아들였다.
아서는온몸에소름이끼쳤다.자신의가시돋친말에상대가계속진심으로좋아라반응했으니까.
단죄자로활동했을무렵,미친놈을발견했을시주먹으로으깨버리면그만이었는데이곳은학원도시였다.
그리고옛말에는즐기는자를이길수없다는말이있었고,지금리체르카의상태가딱즐기는자였다.
“흐음~.”
어느순간부터아서가대화를포기하고걷자,리체르카는조용히아서의옆모습을바라봤다.
지금까지자신이주도적으로앞으로나아가본적만있던리체르카였지만, 이렇게상냥하게리드해주는남자라면그렇게나쁘지않을지도,라고생각했다.
*
점심시간이되기두시간전이었다.대부분의학생들은오전에수업을들었다.그래서카페의2층에는테이블들이텅비어있었다.
아서가찾은카페는테이블마다가림막이있는카페였다.사적인얘기를하기에는이카페만큼좋은곳이얼마없었다.
“다즐링두잔으로부탁드립니다.”
“어머,아서님.”
아서가카운터알바생에게말을걸었을때였다.리체르카가실눈이었던눈을크게뜨며물었다.
“제것도사주시는건가요?”
“아뇨.누굴만나버린나머지목이타서,제가두잔다마셔버릴생각입니다.”
“...”
기대를배신할아서가아니었다.홍차가나왔을때는자그마한두손으로홍차잔을붙잡고,자기자리로먼저쌩먼저가버렸다.
리체르카는그모습또한사랑스럽다고느껴져서옅게미소를띠고바라보았다.지금이라면나쁜남자가왜인기있는지조금알것같았다.
그렇게리체르카도자신의커피도주문해서자리에앉았을때였다.
“아가씨,이아이는···.”
딸랑거리는소리와함께카페로메이드가들어왔다.그녀는바로밀레나였다.밀레나는아서를보자마자깜짝놀라어깨를떨었다.
“왜그런가요밀레나.”
밀레나의평소같지않은반응에리체르카가질문했다.순간밀레나는아닙니다,라고대답하려했으나,어느새두눈을차갑게뜨고있던리체르카가눈에들어왔다.
‘언제봐도적응이안된다니까···.’
그눈빛은심장을꿰뚫리는기분이었다.어떤거짓말을하더라도간파할것같은푸른눈동자.들통날거라면솔직하게진실을털어놓기로마음먹게된다.
“그,이분께서···.”
“계속말씀하세요.”
밀레나는쭈뼛쭈뼛대다가이내몸을숙여리체르카의귀에속삭였다.이야기가거의다끝나자리체르카의두눈이크게뜨여져있었다.
“팬티요···?”
밀레나는리체르카의반문에고개를푹수그렸다.치욕스러운나머지고개를제대로들수가없었던탓이다.무슨유명한헌터도아니고고작어린애한테협박당해치마를들추었다는사실이.
“지금제가들은게맞나요?”
리체르카는얼굴이새빨개진밀레나를본다음아서에게물었다.
“그렇습니다.”
아서는어깨를으쓱거린다음대답했다.한치의부끄러움도없이당당한모습이었다.
왜냐하면팬티를보여달라고부탁하는정도는그리나쁜일이아니라고생각했기때문이다.
사실어느나라에서나성범죄에해당하는행위인데도!
‘고통이느껴지지도,생명에위협적인것도아닌그저수치심을조금주는정도인데,그게뭐그리대단하다고.’
마인드가살짝글러먹은아서였다.
“아···.”
리체르카는놀라움을감추지못했다.이어서아서와밀레나를번갈아보았다.뒤이어두주먹을꽉쥐며생각했다.
‘나라면이자리에서당장보여드릴수있는데···!’
하지만리체르카는그말을굳이입밖으로꺼내지않았다.쉬운여자와착한여자는별로매력이없다고생각했으니까.
‘크으···.’
리체르카는부들부들몸을떨었다.저번에도그렇고이번에도그렇고,아서의취향이말잘듣는순종적인여자인것같았기에.
그러나결국,마지막에이기는것은지혜롭고매력있는여자였라고자신을타일렀다.
“오르시니양.”
리체르카가방금있었던일을머릿속으로정리하며말이없자,아서가먼저입을열었다.
“저는당신을싫어합니다.”
평소에는‘싫어한다’를‘좋아하지않는다’로빙둘러서표현하는아서였지만,지금은직설적으로말을꽂아넣었다.
하지만.
“괜찮아요.제가그만큼아서님을좋아하니까요.”
말한마디에질리체르카가아니었다.아서의말이당연하다는듯이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를뗬다.
아서는한숨을내쉰후말을이었다.
“무슨낯짝으로뻔뻔하게제앞으로다시나타나신겁니까?”
이번에는목소리에낮고음산한어조가깔려있었다.방금까지노곤했던표정도싸늘하게굳어리체르카를노려봤다.
‘왔다,왔어요!’
리체르카는그눈빛에심장충격기를맞은사람처럼심장이두근댔다.아서의질타는오히려리체르카에게포상이었다.
“제가아서님의심기를건드렸었기는했지만.”
미리구상했던궤변을꺼내는리체르카.
“결과적으로누군가피해보는일은없지않았나요?”
“그건무슨헛소리입니까?”
리체르카는계속말을이었다.
“인질로잡혔었던사람들은단지수면마법에걸려있는상태였고,저또한인질분들에게무엇인가더할생각은없었습니다.그때했던인질들을죽여버리겠다고말한건단순히거짓말이었답니다.”
리체르카는입가에는여유로운미소가뗘져있었다.
“인질들이아니라저를죽이려고사람들을보냈던건.”
아서는그미소가마음에들지않아입을열었으나.
“정확히는포획이었습니다.그리고그것또한아서님께서저와차분히대화를나눠주셨으면일어나지도않았겠죠.”
리체르카가곧바로입을열어아서의말을막았다.
“...”
아서는리체르카스스로가궤변이라는걸알고있음에도저런헛소리를하고있다는사실이짜증났다.
“그러니,아서님.”
리체르카는커피를한잔마신다음말을이었다.
“인질로붙잡혔던사람들은하루의시간을낭비하게된만큼의보상을받았고,이사장님은눈엣가시였던교수들과학생들을치워버리는데성공하셨으니.”
리체르카는고개를갸웃거렸다.하얀이가드러날정도로웃음을지으면서.
“결국그사건에서피해를본건,쌓아올린탑이무너진저와지금까지나쁜일을행했던사람들이아닐까요?”
“미친년.”
“후훗.”
아서의짤막한욕설에리체르카가웃음을흘렸다.
리체르카는결과의이해득실로만얘기를맺었다.그리고그건오르시니가의사람들뿐만이아니라,대부분의권력자나장사치들이가진평범한가치관이었다.
어떠한일이있든결과만이전부라고생각하는또라이들.과정의아름다움이나중요성보다그저마지막결과만을눈크게뜨고바라보는정신병자들.
지금와서그녀가저질렀던과거의악행들을들추어도,이미다능수능란하게넘겨준비를하고왔을터다.
이여자는그런여자였으니까.
그래서아서는대화내용을바꿨다.
“제취향은당신같이혼자서아무것도못할가녀린여자보다,옆에있는메이드분같이씩씩한여성쪽입니다.”
담담한커밍아웃작전이었다.
“그렇다고말씀하시기에는현장학습여객선위에서저처럼여성스러운수인분과잘어울리시던걸요?”
작전이실패하자아서의눈썹이찌그러졌다.
“제일에대해서왜그렇게까지자세히아시는겁니까.”
“그야,아까말했듯아서님을좋아해서?”
리체르카는당연한걸질문하지말라는듯말했다.
“너무날세우지말아주세요아서님.”
이어서목소리를낮추고소곤거렸다.위협할생각이전혀없다고알리는것마냥.또한아서에게그윽한눈길을보냈다.
“저,아서님의행동에따라순종적인암고양이가 되어드릴수도 있으니까요.”
말과동시에두손을말아주먹으로고양이포즈를취하는리체르카였다.굉장히앙증맞고귀여운모습이었으나아서는시큰둥하게반응했다.
“어디콘크리트에머리를쌔게박으신겁니까?정신과의사라면바로연락해드릴수있는데.”
“아아,저를위해의사까지···.”
리체르카는황홀하게말을흘렸다.아서는말이통하지않는걸다시금깨달았다.
결국입씨름할가치가없다는것을상기하고한숨을내쉬었다.그리고먼저자리에서뜨려는찰나였다.
“아서님은지금.”
뒤이어리체르카가한말은지금아서가흘려들을수있는말이아니었다.
“성녀님과껄끄러운관계이신것같은데···.”
“···!”
이번에도정확히아서의일을끄집어내는데성공한것이다.
아서는지금까지리체르카가말했던그어떤얘기보다방금얘기가더크게들렸다. 동공 또한 살짝 흔들렸다.
“그일,저에게맡겨보시지않을래요?”
리체르카는그말과함께요염하고관능적인미소를아서에게보냈다.달콤하기짝이없는.그저곁에있는것만으로도자신을파멸에이르게만들것같은.
전형적인팜므파탈의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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