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의 제자-126화 (126/154)

〈 126화 〉 125화 ­ 불쾌한 만남 (3)

* * *

“아서님.”

눈앞에있는건악녀였다.

본래라면찢어죽여도시원찮은여자였다.

“아서님?”

자신이마지막에온정을왜베풀었는지이해하지못할정도로말이다.

“...”

혼란스러웠다.오르시니가의영애에게서악의가느껴지지않기때문이다.대체왜일까.이유를쉽게떠올릴수없었다.

분명역겹고,거만하고,소름끼치는여자였을터다.조악하고불쾌한가면을쓰고있었을터란말이다.

“아서니이임···?”

리체르카는호기심에가득찬아이와같은눈으로아서를쳐다보았다.이내아서가대답하지않자걱정된다는듯이고개를살짝들이밀었다.

그과정에서귀뒤로넘겼던은색머리카락이앞으로스르륵흘러나왔다.달빛처럼푸른빛을머금은청아한머리카락이었다.

아서를쳐다보는눈동자도티없이맑았다.마치자신의말에순수함을증명하는듯했다.진실을상징하는푸른보석사파이어처럼빛이났다.

“어디아프신곳이있으시면.”

“아뇨괜찮습니다.”

아서가걱정하지말라는듯손바닥을내밀었다.리체르카는다행이라고생각하며다시허리를세웠다.

차갑고세련된외모로희미하게미소짓는리체르카.그미소는계산된냉정함보다따듯함이담겨있었다.

그리고계속되는리체르카의따듯한행동은아서를헷갈리게했다.정말 과거의 리체르카와 지금의 리체르카가 같은인물이맞는걸까하고.

‘설마이것도연기인건가.’

아서는짧게나마그런의문을가졌다.이내그럴리없다는판단을머릿속으로내렸다.지금까지수많은악인들과대면하는데있어,그악의를분간해내는데실패한적이없었으니까.

그저눈앞에있는이영애가바뀌었을뿐이었다.그녀스스로조차자신이바뀌었는지의식하지못하는듯했지만.

‘침착하자.’

아서는리체르카가왜이렇게바뀌었을까생각하기보다,그녀의과거를애써머릿속으로 되뇌었다.리체르카의현재모습에현혹되지않도록.

리체르카가강간한여학생들.리체르카가무너트린사람들의꿈.리체르카밑에있던사람들이했던악행.떠오르는모든것들을머릿속으로번복하고나서야아서는하나의결론을도출시킨다.

결국리체르카가저지른악행들때문에피해본사람들의과거는다시돌아오지않는다고.

생각이정리되자어깨를으쓱였다.하지만답답한마음이가라앉은건아니었다.그래서입에파이프를물고싶었다.아쉽게도어린아이의모습으로관심끌릴만한짓을하고싶지않았기에참아냈지만.

“어디서알아냈는지,어떻게알아냈는지같은건묻지않겠습니다.현명한오르시니가의영애가이미한번뜨거운맛을보고도선을넘을거라는생각은하지않으니까요.”

“그럼.”

“하지만이건 저의일입니다.전혀관계되어있지않은외부인이끼어들면안되는일이기도하고요.”

아서는명백하게거절의의사를밝혔다.그래도방금전보다는 태도가 훨씬누그러져 있었다.

“쓸데없는걱정을해주셔서감사합니다만.”

그렇게아서가말을맺으려하는순간이었다.

우우웅

주머니에서핸드폰이강하게진동하는것이느껴졌다.

‘이번호를알고있는사람은아직이사장님과요나밖에없는데.’

아서는잠시머릿속을정리했다.저둘이먼저연락할정도라면반드시 확인해야 할 내용일터다.

“잠시실례하겠습니다.”

아서는형식적인말을내뱉으며주머니에서핸드폰을꺼냈다.재빨리시선을화면쪽으로옮겼다.

[비상!비상이에요!]

메시지를보낸사람은요나였다.언제나 재빨리 정보를물어다주는디텍토맨서말이다.

‘대체얼마나급한일이길래.’

평소와는다르게이모티콘이없었다.단순히글자만으로메시지가구성되어있었다.

[?]

조급한마음이든아서도단한글자로답변했다.그러자요나의답변이일초도되지않아도착했다.

[성녀님께서아서님이계신곳으로가고있어요!]

[???]

[성녀님이그쪽으로가고있다고요!카페!!!]

[네?]

[심지어얼마안남았어요!곧도착해요!]

‘대체왜.’

깜짝놀라입이벌어지는아서.왼손으로체인안경을잠시내려놓고눈을비볐다.

언제?

오늘성녀의일정을검토한결과평소와같은일과를보낸다고적혀있었다.

어디서?

오늘누군가감시하는시선을특별히느껴졌던적은없었다.

잠시멍했던아서의머릿속이급속도로회전했다.

하지만아무리생각해도흔적을남긴일이떠오르지않자,아서는자신의머리털을쥐어뜯고싶어졌다.

핸드폰을붙잡고있던손에서땀이차올랐다.침이절로꿀꺽삼켜지면서목젖이움직인다.

부릅떠진눈과쿵쾅거리는심장.얼마안가눈에서는충혈된듯이핏대가돋아났고,몸은달달떨리기시작했다.

파이프,파이프가필요했다.

‘아니대체어떻게.’

“후훗.”

그때였다.

바로앞에서여유로운웃음소리가들렸다.

아서는그웃음소리에홀린듯이정면을바라보았다.그러자해맑게웃음짓고있는리체르카의얼굴이눈에들어왔다.

“아.”

아서의머릿속에서끈이탁하고끊어졌다.잘못한건자신이아니라는사실을깨달았기때문이다.

바로눈앞에.범인이자신이했다는걸노골적으로티내고있었으니까.

“아서님.어떻게하실래요?”

맹수가발톱과이빨을감춘다고해서맹수가아니게되는건아니었다.

리체르카가하얀이를드러내면서입꼬리를올리자,아서는그모습이애교부리는호랑이처럼보였다.

리체르카가지금하는행동이자신을위해서그러는것임을알고있었다.하지만단지그시발점과일어나고있는과정속에서 자신의 의견따위묻지않았을뿐이다.처음부터일방적으로휘두르겠다는것마냥.

결국리체르카에게발각된순간부터아서에게선택권따위는없었다.리체르카는처음부터아서를만나자마자문제를 강제로 해결해주려고했으니까.

현재일어나고있는일은모두리체르카의계획대로였다.

전부 다!

“성녀님에게서벗어나려고발버둥치는것과제게도움을받는것.어느게더좋으신가요?”

리체르카는왼손으로옆머리를귀뒤로상쾌하게넘기며물었다.얄미운 목소리. 그럼에도 악의가느껴지지않았다.

애교라고치기에는너무거창한일을진행중인데도.

‘어쩌면좋지?’

이미포위망이좁혀지고있었다.나가면이단심문관이나성기사와확실하게마주친다.

그럼분명싸움이날거고일이 커진다.책임지는건이사장님이한다쳐도, 질서의교단과 맞부딪히면평화로운학원도시에서의생활이단번에무너질터다.

스승님과의약속을지키게되지못한단말이다!

싸움이안날리는없었다.

예카테리나가처음부터좆같은말과행동을할거고,참을수없게된내가주먹을뻗는건기정사실이다.

“씨발.”

두가지이외의선택지가없다는것을판단한아서가욕지거리를내뱉었다.뒤이어바로앞에있는리체르카를 번뜩 노려봤다.

이래서,이래서과하게머리좋은년이싫었다.

그런년들은대부분미쳐있었으니까.

“사랑해요.아서님.”

달그락.

아서가분노하거나말거나리체르카는여유롭게웃으며커피를들어올렸다.자신이원하는대로일이진행됐기에 한없이행복한미소를짓고있었다.기품있게커피를한모금목으로넘긴후잔을다시테이블위에올려놓는다.

그리고아서가결론을내리기전에가볍게스트레칭하면서아서의말을기다린다.

어떠한결론을 나오든 자신의손바닥안인것을확신하면서.

“...”

옆에서조용히있던밀레나도심상치않은일이일어날것임을직감하고침을꿀꺽삼켰다.

*

“할아버지.카페안까지들어올셈이에요?”

“혹시모르지않느냐.이모든게단죄자의함정일지.”

“아니,아서는그딴치졸한짓안한다니까요?주책부리지말고밖에서기다려요좀!”

다섯명의일행이었다.그들의옷에는전부같은문양이그려져있었다.

가장앞장선것은질서의교단에서가장아름답다고정평이난성녀였다.그리고그녀와대화를나누는건질서의교단성기사단장중한명이었고.

성기사단장은관리하지않은것같은하얀수염이덥수룩나있었다.

그는웨인라이트와같은세대로웨인라이트가구국의영웅이라는칭호를받았다면,그는질서의단두대라는칭호를받았다.

등에매고있는커다랗고신성한대검.딱그하나의대검만이그의무기였다.

“애초에대화만,대화만할건데왜부담스럽게따라온거예요!”

“네가다치면교단으로서의명성이.”

“할아버지.”

그때였다.

성녀인예카테리나가싸늘하게입을열었다.

“내가약해보여?”

“크흠.”

성녀의 차가운말에헛기침을하는성기사단장.경어를사용하던방금까지와는달리낮춤말로바뀌어있었다.

성기사단장은살포시한발자국뒤로물러나며오동나무처럼우뚝섰다.곧이어대검을꺼내바닥에쿵내려찍고여기서기다리겠다는의사를말없이밝혔다.그것이성기사단장으로서양보할수있는마지막선이었다.

“쯧.”

성녀는짧게혀를찬다음카페안으로들어갔다.성기사단장은성녀가사라지자마자같이온일행들에게카페를애워싸라고지시했다.

딸랑.

“어,어서오세요···?”

갑자기들어온성녀에의해아르바이트생이놀란나머지목소리를떨었다.예카테리나는부담가지지말라는듯살포시미소지었다. 허나.

"히익!"

그미소를본아르바이트생은더욱겁을먹었다.

질서의교단성녀가미친도살자라는걸세상에서모르는사람은없었다.요새는순해졌다고소문이났지만그녀등에있는커다란샷건은여전히압도적인위용을자랑했다.

저벅저벅.

음료도주문하지않은채로2층으로향하는예카테리나.2층홀에도착하자마자아서를찾기위해열심히눈알을굴렸다.

하지만.

“여기에요!”

보이는것은아서가아니라젊은처녀였다.이일을 일으킨당사자이자성녀를부른여자.리체르카가예카테리나를보며미소지었다.

“이리로 오시면 돼요.”

그리고그말과함께예카테리나에게 손짓했다. 미소는 더욱 짙어져 있었다.

“...”

예카테리나는아서가바로보이지않자표정을굳히고는리체르카를향해걸음을옮겼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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