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9화 〉 128화 ­ 불쾌한 만남 (6）

* * *

씁쓸한커피향이맴도는카페2층.혐오감이담긴아서의욕설이울려퍼졌다.예카테리나의돌발행동으로인해뜨겁게달아올랐던상황은점차싸늘하게식어갔다.창문에서도세찬바람이아닌고요하고잔잔한바람이흘러들어온다.

리체르카는최대한소리를죽이고호흡을고르게했다.밀레나는그런주인에게다가가등을토닥토닥거리며예카테리나를주시했다.

[너는예전부터그랬어.스스로틀렸다는걸알면서도계속자신이맞다며박박우겼지.결국억지가통하지않는순간힘으로밀어붙여지랄했고.］

“아,아니.그게아니라···.”

예카테리나는주변을신경쓰지않고오직아서의말에만귀를기울이고있었다.아서의말이계속될때마다동공이세차게흔들린고입이바짝말라갔다.

애절한목소리로의견을내려해도그말에아서가더큰화를낼까봐선뜻입을열지도못했다.마치주인앞에서꼼짝못하는애완동물처럼낑낑됐다.

[내가그것때문에얼마나좆같았는줄알아?하.씨발생각하기만해도열받네.떠오르는것만해도좆같은게한두개가아니야.］

“아서···.”

[그냥좀꺼지라고.배신한다음날죽이려고개지랄떨어놓고왜이제와서눈앞에처나타나는데.］

“윽···.”

날카로운말에예카테리나가왼손으로자신의심장부근을부여잡았다.호흡은한층더거칠어지고이마에서는땀이흐르기시작했다. 흐르는 그땀은눈가를지나쳐눈물처럼보이기도했다.

[네가오르시니후작을죽이지않은이유가교황할배가말려서라고?그럼내가널찢어죽이지않은이유는단지스승님때문이야.이머저리년아.］

“......”

[그래,스승님이말렸으니까.네가지금살아있는이유는다스승님덕분이라이말이야.이씨발애미뒤진년.］

아서는예카테리나가곧죽을것같이울상지어도욕설을계속내뱉었다.감정마법을섞지않았는데도,속에깊숙이처박혀있던응어리가자연스럽게터져나오는것이다.

[그때그냥목을콱분지르고몸통은돼지먹이로던져줬어야했는데계속후회하게만드네개걸레년이.내좆맛이그렇게좋디?응?한번강간해주니까그맛을잊지못하고끝까지쫓아올정도로?］

“아서···.”

[말섞어줬으니제발내인생에서꺼져!살아날때마다뒤지기싫으면학원도시에서좀꺼지라고!!!］

아서가윽박지르자예카테리나울먹울먹거렸다.

“나그래도···.네마음이변할수있으니까···그···당분간은학원도시에있을게···그러니까···.”

애걸복걸힘겹게말을이어붙였다.

[좆까쓰레기년아.］

하지만아서는듣기싫다는듯이말을딱잘랐다.

“미안···!다음에꼭찾아와줘.부탁해.신성학원에서강의를해주는대가로채류중이니까!”

가까스로밝게목소리를쥐어짜냈으나.

[입더뻥긋되는순간이질서의교단해체되는날이다.네가그리좋아하는교황부터 끓는 기름에바짝튀겨줄게!］

더험악한으름장이돌아올뿐이었다.또한예카테리나가억지로쥐어짜낸밝은목소리를비아냥거리듯이,아서의목소리가활기차게바뀌었다.마치CM송에서항상등장하는어린애처럼.

[고마워예카테리나!덕분에그날저녁은바삭바삭교황튀김으로걱정안해도되겠어!성수를톡톡뿌리고밥한공기를뚝딱!음료로는포도주대신추기경의피를마셔야지!］

“···잘있어.아서.”

예카테리나는아련한눈빛으로핸드폰을짧게쳐다본다음등을돌렸다.낙담한예카테리나의발걸음은한없이무거워보였다.걸음을내디딜때마다상처받은새끼사슴마냥몸을오들오들떨었다.

[그래잘가!다음에볼때는장례식장에서보자!꼭뒤져서뼛가루가된채로나타나줘!화이팅!］

하지만아서는끝나지않았다는듯이예카테리나의마음을미친듯이난도질했다.그목소리에예카테리나는몸을움찔떨고고개를슬쩍돌려다시한번핸드폰을바라봤다.면사포사이로는처량한눈빛이띄어져있었다.

이내예카테리나가계단을내려가면서그녀의귀에욕이들리지않게될때까지,아서는욕을계속내뱉었다.

*

카페에서신성력느껴지지않을정도로성녀일행이멀어졌을무렵이었다.

끼이익.

2층에있던창고의문이서서히열렸다.그사이로새하얀연기가연막탄처럼터져나왔다.밖은창고안과같이순식간에뿌예졌다.

터벅.

연기속에서흐릿한인영이걸어나왔다.시간이지날수록인영은점차뚜렷해지고형체를갖추어갔다.

“후···.”

사나운인상의어린아이.아서였다.방금전까지악귀나찰같은표정으로윽박지르던아서는평소와같이돌아와있었다.찝찝하고좋지않은기분을연기와함께털어낸덕분이다.

슥슥.

파이프를입에문채,연기에의해보이지않게된체인안경을안경닦이로닦았다.주머니에다시안경닦이를집어넣고리체르카에게다가갔다.

“괜찮습니까?”

태연하게리체르카에게말을건네는아서.밀레나는방금까지의상황때문에순간당황하여어이없어하는표정을지었다.이윽고하고싶은말은많지만참겠다는것처럼입술을꽉깨물었다.

“아서님덕분에요.”

정작리체르카본인은아무렇지도않다는듯방긋웃어보였다.명량한목소리까지들으니방금까지목을졸려질식사할뻔한사람이맞나싶었다.

성녀의살기가그녀의폐부를강하게짓누르고있었을터였다.분명버티기힘들었겠지.지금그녀의눈동자에공포심이새겨지지않은것만으로도,그녀가어마무시한강심장이라는걸증명했다.

“아.”

“왜그러십니까?”

“이제욕안하세요?”

“네?”

“거친 매력이 있었는데 아쉬워서요.”

리체르카는요염한눈빛과함께 입맛을다셨다.아서는인상을찡그리며속으로한숨을내쉬었다.

‘이상황속에서도그런말이나오는건가?’

동시에멀쩡해보이는리체르카를바라보니궁금한것이생겨났다.그래서곧바로입을열었다.

“···질문하나만해도되겠습니까?”

아서는연소통안의불빛을꺼버렸다.동시에품에서지퍼백을꺼내재를탁탁털어냈다.도저히어린아이처럼보이지않을정도로군더더기없는행동이었다.

“하나가아니어도좋아요.제가오늘무슨속옷을입었는지나쓰리사이즈가어떻게되는지,또요새밤에는누구꿈을꾸는지전부.”

“왜예카테리나에게그런말을하셨습니까.”

“···무슨말씀이신가요?”

황홀한표정을지으며말을늘여놓던리체르카가아서의말에고개를갸웃거렸다.이어서능청스럽게물었다.

아서는조금날카로웠나싶어어깨에힘을빼고상냥하게물었다.

“오르시니양이대화를질질끌면서예카테리나를관찰하고있었던건알고있었습니다.분명자신이어떤말을꺼내면예카테리나가어떻게반응할거다,같은생각을하나하나계산해두었겠죠.”

“흐음.”

“그런데왜하필수많은방안중에서죽을뻔한위기를자초하는방안을선택하셨냐는겁니다.”

아서는시선을잠깐피하고있던리체르카에게말했다.목소리에는간절함이섞여있었다.

“아서님.”

나직이아서를부르는리체르카.

“절걱정해주신건가요?”

피하고있던시선을아서에게탁맞춰주며입꼬리를올리는리체르카.눈매는반달을그리고있었다.

“···무슨.”

평소라면아니라고딱잘라부정했을터였다.하지만리체르카의흐트러진옷매무새와목에남은손자국이아서의마음을흔들었다.

“후훗.방금말은잊어주세요.”

리체르카는실수했다는듯이옅게웃으며손으로입을가렸다.사실실수라고는전혀없었고전부의도대로였지만.

리체르카는검은장갑을벗어 고운 손으로 옷매무새를정리한뒤차분하게말을이었다.

“아서님의말씀대로저에게는다양한방안이있었습니다.그중에서는성녀님이아서님을한동안찾지못하게할방법은수도없이많았죠.”

리체르카는왼손으로자신의옆머리를자연스럽게넘기며말을이었다.

“그런데제입으로성녀님에게어떠한말을전한다한들,성녀님께서는아서님을찾는걸포기하지않았을거예요.필요한건아서님에게진심어린거부를당하는상황이었으니까.”

“...”

“그래서저는아서님이자연스레말씀을꺼내시게되는긴박한상황을만들어내야했으며, 성녀님께서아서님의말씀을듣게되시자마자단념하게되는상황도 만들어야했습니다.”

리체르카는치밀하게자신이어떠한생각을하고있었는지늘어놓았다.아서는말하는걸잊어버리고듣고있었다.숨을쉬는것마저잊은채리체르카의말에집중했다.

“성녀님이처음부터강요했던말,기억하시나요?”

입꼬리를올리며아서에게묻는리체르카.

‘나많이변했으니까.이번에는끝까지믿을테니까.’

아서는예카테리나가계속언급했던내용들을떠올리며고개를살짝끄덕였다.그러자리체르카가다시말을이었다.

“여자라는생물은좋아하는남성에게보여주고싶은모습만보여주려고노력하는생물이에요.성녀님께서는그부분이좀더두드러지게행동하시고계셨죠.절대로아서님을실망시키지않겠다는속내가훤히보일정도로요.”

“폭력적이었던 성녀님께서는 손이근질거리는걸참기위해주먹을꽉쥐고 계셨습니다. 욕설을내뱉고싶었던부분은어색하지만경어를계속꺼내는걸로대처하셨죠. 믿겠다고말씀하셨을때는평소보다훨씬간절함과절박함이담겨있었고요.”

“하지만제가유도한방향으로분노하며자신이변하지않은모습을,보여주고싶지않았던부끄러운모습을결국좋아하는남성에게보여졌을때는···.아아,얼마나마음이찢겨나갔을지.후훗.”

말을전부꺼냈을때는자신의생각을입에올리며천진난만하게웃었다.목을졸리고권총에죽을뻔한상황까지당했음에도전부의도대로였다고말하는것이었다.

“···만약제가도와주지않았으면어쩔뻔했습니까.”

아서는진심을그대로입밖으로꺼냈다.말그대로아서가도와주지않았으면죽음을겪게되는상황이었다.성역의결계가있는만큼다시살아날수있다고는해도,그충격과트라우마가생기지않는건아니었다.

절대로겪고싶지않을죽음의기억.피가튀고서서히의식이사라지는것에대한공포.

“아서님.”

리체르카가아서를불렀다.청아한목소리였으나두눈은냉정하게똑바로떠져있었다.

“저는아서님을믿고있어요.제가본아서님은자신을도와주는사람을절대버리지않는사람이니까.”

리체르카는단호하게말했다.날카롭게떠진눈매와진중한목소리에의해살짝화난듯이보이기도했다.의심하지말라는그태도에서아서에대한확고한믿음이보였다.

“...”

“그러니제가도와준보답으로.”

다시실눈을뜨며끈적한 목소리를내는리체르카.아서에게조금씩다가왔다.그리고바로앞에서멈춰선이후한쪽무릎을꿇어앉았다.작은아서와눈높이를맞추기위해서였다.뒤이어서로의숨결이닿을정도로얼굴을붙였을때, 달콤하게입을연다.

“저와조금만더대화를나눠주실래요?”

매혹적인한마디였다.

원래같았으면곧바로거절했을아서가 고개를천천히끄덕였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