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의 제자-130화 (130/154)

〈 130화 〉 129화 ­ 불쾌한 만남 (7)

* * *

리체르카오르시니.

처음에는그저성가신귀족영애일뿐이라생각했다.끈덕지게달라붙어서단죄자에대해캐내려고했을때는짜증이스물스물기어올랐을정도다.

결국사건과연관없는사람들을단체로납치해서협박했을때는분노가치솟아올랐다.눈에핏대가튀어나오고그녀를망가트려야겠다는생각만이머릿속을지배했다.어떻게든대가를치르게해주겠다는일념하에.

하지만사건의마지막에영애가눈물을뚝뚝흘리면서울고있던모습은말로쉽게형연할수없었다.

‘흐윽···.’

가증스러웠다.그런데한편으로는제또래의소녀처럼목놓아울고있는그모습에심란하기도했다.

이윽고시간이흘러도그모습은기억에서쉽사리잊히지않았다.

애초에그녀는그녀의손에서얼마나많은사람들이비참한눈물을흘렸을지알고있을터였다.그때의자신처럼.

그런데정작그녀의끝을장식해주려던내손이마음대로움직여지지않았다.

목을졸라죽이든,마법으로날붙이를만들어몸을난도질하든,어떻게든하려고마음먹었는데결국건넨건쓸데없는배려였다.

후회했다. 단죄자와는어울리지않는그행동에그자리를떠나고잠에빠져들기전까지,스스로한심한새끼라고되뇌었다.

그렇게기억의한편으로끝났으면적당했던일이다.

허나현장학습을다녀오고나서그녀는다시나에게얽혀왔다.지겹지도않게.

‘아서님.저랑대화좀나눠주실래요?’

신기한건과거의일에대한원한이나복수심따위가없었다는것이다.오히려밝게웃어보이며친근하게달라붙으니놀라울따름이었다.

한순간연기인가생각해봤다.그러나몰래감정마법을사용해본결과단순히연기가아님을알수있었다.

심지어그녀는내가단죄자라는사실마저알고있었다.누가알려주었는지는불보듯뻔했지만.

다시접근했던건내가단죄자라는사실을알게되었기때문일까판단했다.헌데그녀에게서이제그런사실은별로중요하지않은걸찾아낼수있었다.

그녀,그러니까리체르카오르시니는나만을보고있었다.단죄자라는미지의인물이아닌아서라는나자신을.

그리고그렇게적극적으로사랑스러운행동을해오면어떤멍청이라도 알 수있을터다.

아,이여자가나를좋아하는구나하고.

하지만왜좋아하게되었는지까지는알수없었기에불안한감정이피어올랐다.

역시마지막에건네주었던배려때문일까?

겨우몸을정화해주고양복상의를건네준것때문에?

“...”

아무리생각해봐야알수없는노릇이다.애초에정신세계가일반인들과많이다른여자아이이기도했고.알아내려고노력한다한들,결국도중에포기했을게분명했다.

여하튼그런이상한영애임에도그녀가방금해주었던일은굉장히도움되는일이었다.진심으로감사하는감정이우러러나올정도다.

예카테리나와의문제는도저히혼자해결할수없는문제였으니까.

자신보다강하지않으면티끌만큼의존중도보이지않는예카테리나였다.만약지금의내가그녀보다압도적으로강하지않다는걸보여주었다면어떠한횡포를부릴지.

‘쯧.’

상상만해도절로혀를차게된다.

예카테리나는그저자신을이겼던남성에게모든걸바치러온것뿐이었다.그게예카테리나가자신의마음속에가지고있었던질서였던 만큼.

정확히는자신의순결을가져간남성에게모든것을바치려는것이었다.그상대가자신을강간한남성임에도불구하고.

별로유쾌하지않은상황인건매한가지다.

“아서님.저를옆에두고무슨생각을그렇게열심히하시나요?”

그말과함께고개를들이미는리체르카.

“별일아닙니다.”

아서는상념을깨고무덤덤하게답했다.얼굴을저리치우라고손짓도했다.

“흐음.”

리체르카는고개를들더니침음을흘렸다.입가는서서히올라갔다.또무슨계획을짜는걸까.정체모를웃음을흘린다.

불길하게느껴지지는않았다.바로곁에있음에도악의가전해져오지않았으니까.

그녀의경호메이드 밀레나는카페에배상을치르고있었다.이어서리체르카가자신이연락하기전까지찾아오지말라고일러두었고.

과거에는액세서리처럼다양한사람들을대롱대롱데리고다녔으면서,지금은혼자인게훨씬편하다는듯이행동했다.

그녀의너무많은변화에적응이안되었다. 어떻게대해야할지감이잘안잡힐 정도다.

“아서님!저기소프트아이스크림가게가있어요!”

“네···?”

“아이스크림가게요.우리같이하나씩먹을까요?”

리체르카는천진난만하게웃으며아이스크림가게를가리켰다.

“···아.”

방금전까지발걸음을어딘가로유도하듯이걷고있었는데.설마저아이스크림가게로이동하기위해서그랬던건가.

슬며시웃으며머릿속으로짜고있던계획도이거였고?

“...”

어처구니가없었다.너무하찮아서저도모르게귀엽다는생각이들었다.그녀의과거를알면절대그래서는안된다는걸알면서도.

아서는리체르카의어설픈연기에속아주며아이스크림가게에다가가주문했다.

“초코하고딸기로하나씩주세요.”

아서의말에여자점원이대답했다.

“어머.저누나에게아이스크림을사주려는거니?”

저멀리있는리체르카와아서를번갈아보는점원.

“네?”

“우리친구너무기특하다.이누나가특별히한층더높이쌓아줄게.맛있게먹어!”

점원은웃으면서간판에그려져있는견본보다더길쭉하게아이스크림을쌓아올려주었다.아서는얼떨결에고개를끄덕인다음아이스크림을들고리체르카에게다가갔다.

“아서님.아이스크림을두개다드시면배탈나지않을까요?”

리체르카가능청스럽게웃으며물었다.아서가어떻게행동할지전부알면서도넌지시.

“하나드리겠습니다.”

아서는쓴웃음을지으며아이스크림을두개다내밀었다.마치마음에드는걸가져가라는것처럼.

“정말요···?”

정말로줄줄은몰랐던걸까.

리체르카가떨리는목소리로되물었다.감격에젖은눈동자와함께화색을띄며아서의눈치를봤다.

“그럼거짓말이겠습니까.”

아서는얼른가져가라는듯이살짝인상을찡그렸다.

“고마워요아서님···.”

리체르카는초코아이스크림을받아들이며수줍게웃었다.고작아이스크림일뿐인데너무과한반응이아닌가싶을정도로.

그때였다.

“하암.”

덮석.

자신의아이스크림이있음에도불구하고아서의아이스크림을한입크게깨문리체르카.그녀가고개를때자입주변에딸기아이스크림이수염처럼묻어있었다.

“···지금뭐하시는겁니까?”

아서는리체르카의예상치못한행동에몸을움찔떨었다.방금전까지보여주었던기품있던모습은어디가고웬이상한행동을하고있었으니까.

“딸기아이스크림의맛도궁금해가지고한입먹어봤어요.아서님도초코아이스크림의맛이궁금하시다면제걸드셔봐도좋아요.자,아···.”

“됐습니다.”

아서는한숨을내쉬고남아있는자신의 딸기아이스크림을먹기시작했다.리체르카는아서가자신의아이스크림을먹을때마다야릇한눈길로계속아서를바라봤다.

*

둘은아이스크림을다먹은후에도근처의공원을계속걸어다녔다.공원에서는울창한나무들의나뭇잎들이살랑살랑흔들리고파릇한새싹들이돋아나고있었다.

날씨는산책하기에더할나위없이좋았다.몸을노곤하게만들어줄정도로따듯했으며걸을때마다상쾌한공기가몸안으로흘러들어왔다.

이에아서는별생각없이리체르카와시답잖은얘기를주고받았다.

학원도시에대한관한얘기도하고,신문에서흔히볼수있는이슈에관한얘기도했다.

리체르카는아서가무슨말을하든말을재밌게받아주었다.뛰어난말솜씨덕분에아서는재미나게 대화를나눌수있었다.

불과며칠전에 대치했던 여자가 정말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든다.

어느때나악의가가득차있고냉혹하다못해주변을얼어붙게만들정도로차가운여자였는데.

과거에저질렀던얘기들을모아봤을때는치가떨릴정도로.

그런데지금은순진무구한웃음을흘리기도하고,밝고화사한목소리를내기도한다.행동에는배려가가득담겨있었다.

아서는귀족에대한편견을가지고있었다.특히여자라면더더욱.

하지만리체르카는그편견을계속깨부수는듯한모습을계속보여주고있었다.

그렇다고그녀에게치밀한두뇌와냉정한사고력이없어진게아님을알고있었다.방금전의상황에서도그녀는날카로운발톱과이빨을가진맹수였으니까.

어찌되었든간에아서는리체르카에게똑바로해줄말이있었다.슬슬헤어져야할시간이온만큼아서는마음을다잡고입을연다.

“오르시니양.”

“네.”

아서가부르자리체르카가얼굴을마주보았다.아서가작은어린아이의모습을하고있었기에고개를살짝숙일수밖에없었지만,리체르카는별로개의치않는듯했다.

“저를좋아하십니까?”

“···네.”

방금까지활기차게말을이어가던소녀가맞나싶었다.얼굴을확붉히는것과동시에고개를푹숙였으니까.

아서는잠시말을계속해야하나고민했다.이내스스로결정한만큼말을계속이어나갔다.그말이그녀에게냉혹할지언정.

“하지만저에게는연인이있습니다.서로에게사랑을약속한사이지요.”

“알고있어요.”

“그러니···네?”

불쑥치고들어오는리체르카의말이아서의말을끊었다.아서는눈을크게뜨고리체르카를바라본다.

“여객선위에서의영상만봐도그수인여성분과아서님이서로좋아하는관계라는걸단번에알수있었거든요.굳이언급하지않으셔도괜찮아요.”

리체르카는차분하게말을이어나갔다.한치도흔들림없는미소를유지하며.

“그럼왜저에게계속다가오시는겁니까.그걸알면서도.”

아서는심상치않은이야기가진행될것같아파이프를꺼내들었다.이어서틱틱손가락으로연소통에불을붙이고파이프를입에물었다.

“아서님을좋아하니까요.”

“그건대답이되지않습니다.”

“아뇨,대답이될수있어요.”

아서의말에리체르카가단호하게반응했다.흔들림이라고는일절없는당당함이었다.

“제행동에대해아서님께서어떻게받아들여주시든지별로상관없거든요.”

리체르카는그말과함께왼손으로자신의옆머리를귀뒤로넘겼다.

“지금은말이에요.”

리체르카의미소가점차짙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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