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고양이의 제자-131화 (131/154)

〈 131화 〉 130화 ­ 불쾌한 만남 (8)

* * *

의미심장한리체르카의고백이후둘은계속서로를마주보았다.

아서는무덤덤하게리체르카를바라봤다.리체르카는잔잔한호수와같은푸른눈동자와함께미소짓고있었다.

“제가바람피울사람으로보입니까?”

아서는냉정하게말했다.살짝화가난것처럼보이기도했다.

지금은말이에요,라는말때문이었다.그말은나연과의관계가잘되지않아마치자신에게푹빠질거라는듯암시하는것같았으니까.

그래서여기서리체르카의마음을딱잘라버리겠다는듯이말한것이다.

리체르카가그런아서의태도에아랑곳하지않았다. 오히려 여유롭게대답했다.

“오해하지말아주세요아서님.저는아서님하고수인인그녀가관계를영원히이어나가도상관없다생각하니까요.”

“그럼.”

“아서님께서단한명의여자로만족할리없다는걸알고있어요.”

“...”

“솔직하게말씀해주세요.지금제모습을 보고 심장이두근대지않나요···?”

리체르카가요염하게미소를흘렸다.그모습은묘하게자신감이흘러넘쳤다.

이어서뒷짐을진몸을앞으로살짝숙이는리체르카.흔들리는그녀의푸른빛머리카락처럼아서의마음도흔들리기시작했다.

“그건···.”

아서는일직선으로자신에게사랑을고백해오는여자에게약했다.더불어자신의내면을바라봐주는여자에게는더더욱약했고. 자신의사나운외모에컴플렉스가있기때문이다.

강한힘.S급헌터라는명성.과거에해낸업적들.그런것들에이끌려자신을찾아오는사람은많았으나,아서라는사람그자체를좋아해서다가오는사람이얼마없던탓도있었다.정나연씨처럼.

아서는뭐라할말이쉽게떠오르지않아침묵을유지했다.그러자리체르카가먼저입을열었다.

“저는아서님께서저를끝까지바라봐주시지않아도괜찮아요.만일 그렇게된다면그건제 능력이부족한탓이니까.”

입을다물고있는아서에게리체르카는말을계속했다.거의일방적으로몰아붙이는기세였다.

“아서님.저는카멜레온같은여자랍니다.”

“···카멜레온말인가요?”

“네.”

난데없는비유에아서가되묻자리체르카가배시시웃으며말을이었다.

“저는좋아하는사람에따라제자신을마음대로바꿀수있는여자거든요.”

가만히서있는아서에게한발자국씩다가오는리체르카.가볍고경쾌한발걸음에망설임따위없었다.

“과거에는그저단죄자에게패배하는여자가되고싶었죠.강렬한쾌감을느끼기위해서말이에요.뭐,돌이켜보면노력한 결과가이루어지기도했네요.”

리체르카가나긋나긋하게목소리를냈다.아서가차분하게자신의말에집중할수있도록.

아서는그제야알수있었다.

리체르카에게서왜악의가사라졌는지에대해.

그저···나쁜짓을할필요가사라졌기때문이라니.단순한답을듣고나니너무나도허무했다.

“하지만지금은아서님에게만사랑받는여자가되고싶어요.그래서이번에도,저번과같이 목표를 이뤄내기 위해노력하는중이랍니다.”

탁.

리체르카는사랑이가득담긴눈빛을띈채아서의바로앞에멈춰섰다.아서는그런리체르카의적극적인모습에당황하여그자리에얼어붙었다.뒷걸음질을칠생각마저떠오르지않았다.

“그러니아서님.”

아서의바로앞에서쭈그려앉는리체르카.고개를슬쩍돌리며수줍어하는미소와함께오른손을들어올린다.

“저에게도기회를주실래요?아서님께서좋아하는여자가될수있도록 최선을 다해볼테니.”

이어서들어올린검지손가락으로아서의가슴을부드럽게쓸어내렸다.뒤이어원을그리듯이살랑살랑아서를간질인다.

아서는요망한그모습에침을꿀꺽삼켰다.그리고자신보다얼굴이낮아진리체르카를내려다보았다.분명자신에게애정을갈구하는사랑스러운모습이었다.

“제가과거처럼돌이킬수없는일을저지를까봐불안하신가요···?”

젖은목소리로말하는리체르카.아서는떨리는눈과함께조금씩고개를끄덕였다.

너무나도호의적인태도에거부감이든 나머지, 무의식적으로리체르카의감정을훑어봤는데도위험한낌새가느껴지지않았다.

이여자가지금상황에진심이라는것이더정확하게전달되었을뿐이다.

“그럼저에게목줄을걸어주세요.”

리체르카는아서의귀에고개를들이밀고조그맣게속삭였다.끈적거리는농후한목소리였다.

“사랑이라는.”

귓가가간질간질거려몸이부르르떨렸다.심장이녹아내릴정도로충격적이었다.동공이크게확대되고 뭐라말이튀어나오지않았다.

‘···이이상은위험해.’

리체르카가지금어떤말을꺼내는순간돌이킬수없는일을저질러버릴것만같았다.그렇게해서는안된다는걸알고있음에도.

머릿속에서붉은사이렌이울린다.어떻게든하지않으면안된다는사이렌이.

당황하는아서에게시간도주지않고리체르카가서서히입을열려는순간이었다.

“아서.점심먹을시간이다.”

멀리서누군가가아서를불렀다.힘겹게리체르카가쌓아올린분위기는단번에무너져 내렸다.

늠름한대장부와같은목소리.팔짱을끼고있는미츠키였다.

“미츠키!”

아서는미츠키의말에퍼뜩정신을차리고미츠키에게한달음에달려나갔다.마치미아가됐던아이가엄마에게달려가는듯한모습이었다.

“흐음.”

리체르카는다잡은토끼를바라보듯아쉬워했다.그걸노골적으로드러내지는않았지만.

자리에서일어나며 푸른빛눈동자가보이게눈을게슴츠레 떴다. 그리고 미츠키를마주봤다.

“...”

“...”

두시선이허공에서부딪혔다.미츠키는무심하게대꾸했고, 리체르카는어깨를으쓱거렸다.서로평소와 같이 행동했다.

물론미츠키가과거납치사건의주범이리체르카라는사실을모르는건아니었다.그저 리체르카가 아서에게 무엇인가하지않은모습에 손을쓰지않는 것뿐이었다.

“아서,오늘은무엇을먹을거지?”

“가면서생각하죠.”

아서는미츠키의말에곧장대답하며완전히정신차렸다.이어서고개를슬쩍뒤로돌려리체르카를쳐다보았다.

“...”

리체르카가웃으며손바닥을흔들고있는게눈에들어왔다.입모양으로메시지를건네며.

‘다시만나요.’

마지막까지방심할수없는여자였다.물흐르는듯막힘없이유혹해올줄은.다음에대책을세워두는게좋겠다는생각이들었다.

“스시가좋겠군.”

미츠키의짤막한헛소리와함께그생각이점차잊혀갔지만.

*

“아가씨.마중나왔습니다.”

아서가떠난후에도가만히서있던리체르카에게밀레나가다가왔다.

“말씀하신건잘처리했나요?”

“그렇습니다.”

리체르카의물음에밀레나가고개를끄덕이며대답했다.리체르카는그런밀레나의모습을훑어보고앞으로먼저걸어나갔다.

방금전까지보았던아서에대해생각하며.

조금전까지만해도꿈을꾸고있는듯한느낌이었다.아서님의모습이너무나도사랑스러웠으니말이다.

아무렇지도않은듯굳은표정을짓고있었으나간간히떨리는다리.파들파들흔들리는눈썹.불이붙은파이프를들고있음에도연기를마시고있지않는 어색함까지.

“후훗.”

어떠한모습을하고있든사랑스러워견딜수가없었다.그자리에서꽉끌어안고싶은걸참는게곤혹스러웠다.

그가당황하는모습은성녀가절망에휩싸인채낙담한표정을짓는것보다더한쾌감을주었다.비교가불가능할정도다.

그리고그런그에게서아이스크림을받아내는순간에는지금까지받았던그어떤선물보다더값지게느껴졌다.다시금자신이깊게사랑에빠진것을자각하게됐다.

‘아아,얼마쯤시간이지나야다시만나도어색하지않을까.’

리체르카는다시만날날을또기대했다.입맛을다신후저도모르게흥얼거렸다.

첫고백시도는완벽에가까웠다.몇날며칠밤새워가며준비한보람이있었다.

어떤여자아이의처녀를뺏어도이만큼기쁘지는않았을터다.

‘그리고그런아서님께서내처녀를가져가주시는날에는···후훗.’

자신을사랑스럽게안아주며계속‘리체르카’라고귀에속삭여주어도좋았다.하지만자신을경멸하고질시하며거칠게범해주어도좋겠다는생각도 들었다.

상황이어떻게흘러가든그저,그저아서님과엮이는것만으로도너무행복했으니까.

자신을처음으로굴복시켰던남성이라는것부터 마지막에보여주었던상냥함까지.

마음에들지않은부분을찾으려해도 그부분이오히려더허술한매력포인트로다가오는 신기한 남자다.

심지어방금전분위기를잡기위해애써차분한척하고있었지만 그의말한마디한마디에기분이들쭉날쭉변하여 아찔할 정도였다.

‘들키지않았겠지···?’

리체르카는잠깐전에있었던일들을계속돌이켜보며점검했다.그리고다음에는더완벽한계획을 구상하기 위해머리를굴렸다.

오늘아서님의반응으로보아추측건대,확실한사실하나는변하지않았다.

역시.

아서님에게는순종적이고착해빠진여자보다지혜롭고 현명한 여자가더어울린다는사실 말이다.

“아서님···♡”

리체르카는사랑하는사람의이름을 달콤하게 불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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