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89화 〉 88. 설득 (89/136)

〈 89화 〉 88. 설득

* * *

“그럼 다시 침대로 돌아가보도록 할까요?”

“잠깐... 그런데 굳이 침대에 누워서 묶어놓을 필요가 있어?”

“누워있는게 가장 편하지 않으세요? 설마 앉아서 묶여있는 걸 좋아하시는 편인가요?”

“그럴 리가 없잖아. 애초에 묶여있는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화장실을 갔다오자 강서연은 나를 다시 침대에 묶을 생각에 들뜬 것 같았다.

왜 그딴 짓거리에 들뜨고 있는 건지 원...

한소리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일단 그런 것보단 나를 더 이상 묶지 못하게 하는게 중요했다.

“하지만 그렇게 묶어놓지 않으면 태양씨... 도망갈거잖아요?”

“......”

솔직히 아니라고 부정할 수는 없었다.

의외로 그 방은 침입이고 탈출이고 쉬웠으니까.

어제 채아의 방문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보안이 그렇게까지 철저히 되어있는 상태는 아니라는 이야기지.

하지만 여기서 그런 마음을 그냥 드러내버린 순간 끝장난다.

“그렇지 않아..”

“거짓말하지 마세요. 정말 도망갈 생각이 없었더라면 어째서 방금 고민한거죠?”

“큭...”

내가 잠깐 주저했던 반응을 읽어낸 강서연이 그 행동을 지적한다.

“아니야... 지금까지 감금되어 있으면서 깨달았다고.. 더 이상... 너한테 반항해선 안 될 것 같다고 말이지.”

패배 선언을 하며 나는 최대한 의심하고 있는 강서연을 달래보려 했다.

“아뇨. 그런 것치고는 태양씨의 눈이 별로 죽지 않았는데요?”

“?”

이건 또 무슨...

여기가 무슨 판타지 액션 세계도 아니고 그딴 눈이 죽지 않았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냐.

“저한테 완전히 굴복하셨다면, 태양씨의 그 간간히 드러나는 반항적인 눈빛이 없겠죠. 하지만, 태양씨. 지금 속으로 저를 무진장 욕하고 계시잖아요?”

“......”

속으로 욕하는 것조차 안된단 말인가.

애초에 이딴 짓거리를 서슴치않고 하는데 어떻게 속으로 욕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런 짓을 당하며 기뻐하는 녀석이 있따면 그 새끼가 이상한 녀석인거지.

나는 지극히 평범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소, 속으로 욕한다고 한들 진짜로 내 패배라는 말은 거짓말이 아니야. 내가 완전히 너한테 반항할 거였다면 속으로 욕하고 있었겠어?”

“하지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겠죠.”

“.......”

“저는 변수를 남겨놓는건 조금 별로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니야. 진짜 그냥 굴복할게. 네가 이렇게 내 속마음까지 읽을 정도면... 진짜 이제 더 이상은 나도 뭔가 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아.”

반쯤은 진심이었다.

내가 나중에 채아와 계획을 세워 실행을 하려 했을 때.

강서연과 이야기를 나누다 혹여 계획이 들켜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머릿속을 스쳐갔다.

완전한 내 계획을 모른다고 한들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것 정도야 눈치챌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됐을 때, 나는 강서연을 제대로 속여넘길 수 있을 것인가?

여러모로 지금 풀려난다고 한들 나중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흐음... 확실히 지금은 좀 반항심이 죽어버린 느낌이 드네요.”

이것봐...

나는 딱히 별다른 짓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강서연의 이야기를 듣고 강서연에게 다시 패배선언을 했을 뿐.

그럼에도 분명 아까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말일텐데...

어째선지 강서연은 같은 말을 해도 내 속안에 있는 마음을 어느정도 읽어내는 능력을 보여준다.

시발... 이거 진짜 위험한 거 아니야?

솔직히 얀데레라는 게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어느정도인지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

애초에 내가 만나게 될 상대가 얀데레라는 생각조차 한 적이 없지.

그런데 실제로 이렇게 눈앞에서 만나게 되니 진짜 어마 무시한 녀석이라는 걸 아주 잘 알겠다.

“흐음... 뭐, 솔직히 태양씨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저도 그렇게까지 보고싶은 건 아니에요.”

“그, 그렇지?”

“하지만 그렇다고 또 태양씨의 행동 때문에 제가 괴로워지고 싶은 마음도 없는걸요?”

“........”

뭐 어쩌자는 것인가.

그럼 그냥 사이좋게 지내자고.

서로가 서로의 행동으로 괴로워지지 않게 그냥 사이좋게 지낸다던가..

아니면 그냥 서로 신경조차 쓰지 않는 손절이 답이다.

손절.. 이거 참 좋아보이는 방법인데.

“.......”

문제는 강서연이 나를 손절할 생각이 전혀 없다는게 가장 큰 문제겠지.

후....

솔직히 손절을 가장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강서연은 할 생각이 전혀 없다.

그렇다고 정말 진심으로 강서연을 사랑할 자신감 또한 없었다.

결국 계속해서 감금당하는 신세인건가..

그건 또 싫어.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돌아오는 질문들과 대답.

하지만 끝끝내 결론은 나오려하지 않았다.

대체 뭘 어떻게해야...

“아참. 그러고 보니 태양씨. 채아에게서 연락이 왔더라고요.”

“채아한테?”

“네. 뭐, 어제부터 사라졌으니까요. 태양씨의 여친이라고 생각하는 저한테 채아가 연락이 오는 것도 당연하죠.”

“.....”

뭐 실상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게 아니지만 말이지.

그러고 보니 채아는 용케도 강서연에게 속마음을 제대로 들키지 않는다.

역시 그 언제나의 무표정과 감정없는 말투때문인걸까..

아무튼, 대단하네. 채아녀석도.

“뭐, 일단은 저도 모른다고 했죠. 과연 채아는 실종신고를 할까요?”

“......”

아마 안 하겠지.

채아는 이미 내가 강서연 너에게 납치당해 있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녀석이 괜히 실종신고를 해서 일을 크게 만들까 보냐.

“흐음... 채아 이야기를 꺼내니 뭔가 고민이 있으신 모양이네요.”

“그, 그래. 아무래도 혼자 있는 채아는 역시 걱정이 되니까.”

다행히 채아에 대한 생각의 의중을 완벽히 파악하지 못한 강서연에게 나는 채아 핑계를 대기로 했다.

“걱정하지 마시라니까요. 전에도 말했지만 제가 아가씨를 내버려둘 리 없잖아요.”

“그런게 문제가 아니잖아.”

“태양씨. 채아를 지극히 아끼시나 보네요.”

“아무리 사촌동생이라도 가족이라고. 아끼지 않을 리가 없잖아.”

실제로는 그냥 길에서 고양이에게 집사간택 당하듯 걸려버린 것 뿐이지만 말이지..

“채아를 생각하는 만큼 저도 그렇게 사랑해주시면 참 고맙겠는데 말이죠.”

“......해, 볼게.”

“네?”

채아를 부러워하는 듯 말하는 강서연의 모습에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해 바로 강서연에게 말하였다.

“갑자기 또 무슨 소리시죠?”

이런 나의 말에 강서연이 내 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채아를 생각하는 만큼 너도 좋아해보도록 노력해본다고.”

“흠.....”

마침 타이밍이 잡힌 이 순간 다시 한 번 강서연에게 말하자 무언가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뭘 고민하고 있는 거지?

“그러니까 저보고 지금 풀어달라고 말하시는거죠?”

“그런거....”

“아니라고.. 말할 수 있으세요?”

“큭....”

무표정인 얼굴을 들이대며 진지하게 묻는 강서연의 모습에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확실히 그게 사실이었으니까..

그래도 이런 식으로 말하면, 강서연의 머리가 나빠지는 특성을 좀 이용해먹으려고 했는데..

이번엔 그게 제대로 먹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뭐, 태양씨가 노력해주신다는 점은 고맙게 생각하지만 말이에요.”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 대놓고 말할게. 풀어줘.”

“우와~ 완전 대놓고 말하시네요~”

작전이 제대로 먹히지 않은 강서연에게 대놓고 풀어달라는 말을 하자 강서연이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본다.

“어차피 이미 들통난 거 상관 없잖아. 그래도 노력한다고 하잖아. 너도 내가 풀려나서 같이 밖에 나가는 게.. 뭔가 데이트같은 느낌도 들고 좋지 않겠어?”

살살 돌려 말하는 작전은 실패 했으니 다른 접근법으로 회유를 시도해본다.

어차피 강서연의 목적은 나와 연인이.. 부부가 되는 게 목적이다.

그런거라면 이렇게 그냥 갇혀있는 모습보다야 차라리 데이트를 한 번 하자고 말하는게 낫겠지.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강서연이 나를 풀어줬을 때의 장점을 어필하기로 하였다.

“음... 확실히, 이렇게 감금되어 있는 것보단 밖에서 같이 데이트도 하고 서로 알콩달콩한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있죠.”

“그래. 그러니까...”

“하지만, 태양씨가 그런 타이밍에 도망가지 않는다는 보장이 어디있죠?”

“.......”

역시나 전혀 신뢰하지 않는 건가..

전혀 나를 믿고 있지 않은 강서연의 모습에 확실히 이번 최면건으로 신뢰가 날아가버렸다는 게 느껴졌다.

젠장... 왜 하필이면 최면의 효과가 다 해버려서...

“도망 못가.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잖아. 어차피 내가 도망가봐야 너는 결국 날 잡으러 올 거잖아?”

“그건 그렇죠.”

“그럼 된 거 아냐? 어차피 내가 도망가봐야 너는 날 어떻게든 잡을 자신이 있잖아. 나 역시 네가 날 놓칠 것 같지 않아.”

“제가 어떻게든 태양씨를 잡는다고 신뢰하고 계시네요? 기뻐요♥”

그딴 신뢰에 기뻐하지 마라.

이런 내용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그런 쪽에서 신뢰한다는걸 기뻐하는 강서연의 모습에 나는 치가 떨렸다.

대체 이 녀석의 사고구조는 어떻게 되어먹은거냐고.

“그러니까.. 어차피 도망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냥 풀어줘. 아니면 협상을 하자. 내가 도망간다면, 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음... 애초에. 도망을 친다는 것 자체가 문제 아닌가요?”

“네가 지금 나를 전혀 신뢰하고 있지 않잖아. 내가 지금 도망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도.”

“그거야 태양씨가 저를 그렇게까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지금 생각하고 있으니 그런거죠.”

“후... 그럼. 이건 어때?”

“어떤 거요?”

“3개월.. 3개월의 시간을 줘. 그 시간안에 내가 널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그땐 그냥 다시 날 잡아 감금해. 어때?”

지금 상황에서 강서연에게 낼 수 있는 내 최선의 방법이었다.

왜 3개월인가는...

그냥 3개월 정도면 어느 정도 기간이 긴 것 같아서 그렇게 정했다.

반년이나 일 년은 절대로 받아줄 것 같지 않고 말이지.

딱 적당한 일수가 3개월이라고 생각했다.

“3개월씩이나 말인가요. 3주나 3일도 아니고?”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데 그 정도 시간은 걸려야하지 않겠어?”

“흠... 사랑이란건 원래 팍 큐피트의 화살에 맞듯 꽂혀버리는거 아닌가요?”

“그건 서로 모를 때 상황이고. 너랑 나는 지금 서로 아는 사이잖아. 어떤 성격을 가졌는지, 어떤 녀석인지 다 안다고.”

“그런가요....”

최대한 강서연을 설득하기 위해 나는 열정적으로 내 논리를 펼치며 강서연에게 어필하였다.

제발... 제발 제발!!

“어디.....”

이런 내 설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민을 시작하는 강서연..

제발.. 부탁이니까 제발 한 번만 그냥 좀 해달라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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