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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화 〉11화. -Nuclear flower(핵꽃)- (11/281)



〈 11화 〉11화. -Nuclear flower(핵꽃)-

카르첼은 육포를 씹으면서  세계에도 지구의 인간과 같은 종이 있을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았다.

'녀석의 기억 속에는 인간 같은 종의 생물체는  기억이 없었어.
그렇다고 인간이 없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
나 같은 이족보행으로 다니는 인간 형태의 생명체가 있으니, 지구의 인간과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진화해 왔을지 모르지.
만약, 인간이 존재한다면 그들은 어느 정도의 문명을 이루었을까?
이런 야생의 환경을 이겨내고 문명을 이루었다면 적어도 석기 문명은 넘었을 거야.
혹시, 철기를 뛰어넘어 지구의 인류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발전했을까?'

그는 이곳에 존재할지 모를 인류의 문명이 지구의 문명을 넘었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만약, 지구의 인간과 같은 인류와 문명이라면 이런 오지에도 분명 그들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 있어야 한다.
이 지역도 지구로 치면 캐나다의 북부나 알래스카, 시베리아 같은 북방수림(北方樹林)과 비슷한 환경이라 할 수 있지.
내가 봐온 바로는 사람의 손길이 닿은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어.
이곳 인류가 지구의 인류에 비해 욕심이 없는 종일까?
그러면 발전이 더딜 수밖에 없지.
지구의 인류가 발전한 것은 욕망의 산물이라고 학자들이 정의한 바 있으니.'

그는 이 행성에서 문명을 이룬 종족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도 해보았다.

'다른 종과의 만남은 별로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던 것이 지구의 역사에서 증명이 되었었지.
분명, 적대하는 종이 있을 게 뻔한데 말이지.
어찌한다? 물이라도 확 끼얹을까?'

기나긴 겨울만큼 카르첼의 잡생각도 길어졌다.


++


동장군(冬將軍)은 자신의 위엄을 오랫동안 세상에 각인시키고는 조용히 물러났다.
동장군의 횡포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세상의 만물들은 해방감을 느끼며 일제히 기지개를 켰다.



파릇한 새싹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동장군의 위엄을 뚫고 얼굴을 내밀었고, 겨우내 허기에 굶주린 초식 동물들은  새싹을 먹으며 삶을 이어가기에 열중했다.
 초식 동물을 먹이로 하는 먹이사슬의 상위 동물들도 활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요했던 대수림은 오묘한 자연의 섭리로 인해 생태계가 다시 활기를 되찾았고, 온갖 생물들의 활발한 움직임과 울음소리로 시끄러워졌다.

카르첼은 벌써 두꺼운 회색곰 가죽을 벗어 던지고, 타잔 팬티만 입은 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허~ 시원하다.
숲 거인은 원래 추위를 잘 안 타는 종이었나?
아니면 이 몸이 추위에 강한 건가?
야! 더위는  견디냐?”

카르첼의 물음에 내면의 녀석은 강한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더위? 더위가 뭐지? 사냥할 수 있는 거냐? 더위 사냥?‘

“... 됐다. 물어본 내가 잘못이지.
그나저나 이제 본격적으로 이곳을 살펴봐야겠다.
저번에는 그저 경계선과 크기만을 확인하느라, 내 영역에 어떤 녀석들이 살아가는지, 어떤 특이한 지형이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어.
뭐가, 어떤 식으로,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네.
영역 표시도 할 겸, 어때? 좋지?”

내면의 녀석은 다른 말에는 시큰둥한 표정이었다가, 영역 표시란 말에 얼른 수긍하며 반색하였다.

'좋아, 하자. 영역 표시!'

카르첼은 그동안 겪어본 이 녀석의 정신연령이 무척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는 그저 어린아이처럼 맹목적인 것처럼 보였다.
이때에는 아무리 많이 쳐줘도 5세 미만의 아이 같았다.


하지만 아주 가끔, 녀석은 평소의 모습과는 다르게 아주 신중하고도 노회(老獪)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었다.
처음 그가 깨어났을 때,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어리석은 행동을 하자, 이 녀석은 자신을 꾸짖었었다.
결코, 지금처럼 단순한 녀석만은 아니었다.


카르첼은 이 녀석에게도 무슨 비밀이 있지 않을까 싶어, 툭하면 녀석을 도발도 해보고, 말을 걸어보았다.
하지만 녀석은 그의 수작에 넘어가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니야.  녀석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진면목(眞面目)을 드러낼 때가 오겠지.‘

++

한 몸에  영혼을 가진 숲 거인은 자신의 영역을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카르첼은 이 행성에서 지구와 다른 신기한 것들을 상상했으나, 반은 맞고, 반은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전생에 고국인 네팔 왕국의 면적에 비해 0.7배 수준인 자신의 영역을 일일이 구석구석 살펴보지는 못했으나, 대수림의 향연(饗宴)이었다.
마치, 지구의 시베리아 대수림이 연상될 정도로 거대한 침엽수림이 끝없이 펼쳐졌고, 지구상의 생물체와 비슷한 혹은, 진화가  많이 되었거나, 덜 된 생물들이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다.


한 가지 공통점은 모두 크기가 컸다는 점이었다.


그중에 그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식물과 곤충이 있었다.


먼저, 식물로는 인간 성인 남성의 키만 한 크기의 꽃이었다.

카르첼은 영역을 탐사하다가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위기감에 걸음을 멈추고는 몸을 숙이며 주변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짐승은 보이지 않았으나, 본능은 계속 위험하다는 경종을 울리고 있었다.


그도 조금 전부터 무엇인가 자신을 계속 감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러다 발견한 것이 바로, 평범하게 생긴 꽃들이었다.

'아무리 봐도 그냥 꽃인데... 야! 저 꽃 알아?'


그의 물음에 내면의 녀석은 고개만 저었다.


본능은 꽃이 위험하다고 말해주었지만, 그는 자신보다 작은 꽃이 위험해 봐야 얼마나 위험할까 생각했다.

'설마, 식인(食人)식물?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처럼 커다란 체격을 가진 존재에게 피해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야.
지구의 해바라기 비슷한 종인 것 같군.'


그래도 무지개색 벌에게 호되게 당한 기억이 있어, 본능이 알려주는 위험을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하고, 천천히  꽃에 다가갔다.

지구상의 해바라기와 비슷하게 생긴 이 꽃들은 특이하게 해를 바라보는 게 아니었다.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는지, 스르륵거리는 아주 미약한 소리와 함께 일제히 꽃 머리를 카르첼에게 향했고, 그 모습을  그는 움찔거리며 멈추었다.

'뭐야? 날  거야?'


설마 하는 심정으로 옆으로 움직여 보았고, 꽃 머리는 그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신기하네. 어떻게 아는 거지? 체열로 아는 건가? 어디 한번...'

자신이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꽃들에 강한 호기심을 느낀 그는 가까운 꽃에 다가갔고, 본능은 위험을 강하게 알려왔다.
하지만, 된장인지 똥인지 찍어서 먹어봐야 직성이 풀리는 호기심이 강한 그는 결국 똥은 똥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 꽃들은 카르첼이 생각하는 그런 식인식물이 아니었다.

해바라기를 닮은 꽃들은 가까이 다가온 그를 향해, 일제히 주황색 포자를 터트렸다.

그 꽃들은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존재가 주변 가까이 다가오면 포자를 주변으로 터트리는데, 그 터진 포자 가루는 물체에 접촉하면 화학반응을 일으켜 뜨거운 열과 함께, 엄청난 악취를 내뿜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카르첼은 포자가 너무 가까이에서 터져버려 피할 생각도 못 한 채,  포자를 덮어썼고, 포자 가루가 눈과 콧속으로 스며 들어왔다.
곧,  눈은 따가움을 넘어 불타는 듯했고, 코로 맡아지는 말도  할 정도의 악취가 뇌를 때리는 것 같았다.
몸에 묻은 포자 가루는 고통에 대해 거의 무감각하다시피 한 숲 거인에게도 따갑다 못해 엄청나게 쓰라린 고통을 느끼게 해주었다.

카르첼의 이성은 사라졌고, 내면의 녀석이 육신을 장악했다.
그리고 녀석은 괴성을 지르며 눈물과 콧물, 침을 줄줄 흘리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그곳에서 가까운 물가를 찾아, 직선거리로 앞에 무엇이 있든 말든  때려 부수며 전속력으로 달렸다.


그가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모여 형성된 작은 호수의 물속에 몸을 처박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기가 막혔다.

'무슨 이런 꽃이 다 있지? 꽃이냐? 살인 병기냐?'

그는 한참 동안을 꽃의 흉악함에 대해 갖은 욕을 내뱉었고, 자신의 본능을 믿지 않아 일어난 참사에 반성했다.
그리고, 내면의 녀석이 마구 화를 내는 게 느껴졌다.

'미안. 어휴~, 설마 꽃이 저렇게 흉악할 줄 누가 알았냐고. 젠장.'


카르첼은 전생에 전쟁에서 쓰였던 화학탄도 이보다는 약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눈의 고통과 몸에서 느껴지는 쓰라림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 호수를 나왔다.
그러자 몸에 배어 버린 꽃의 악취가 다시 강하게 느껴졌고, 몸에서 다시 한번 따가운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앗! 뜨거워라!' 하는 심정으로 물속으로 다시 뛰어들어야 했다.
녀석은 내면에서 다시 한번, 지랄 발광을 하는 게 느껴졌다.


그는 호수의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조금씩 거품 방울을 보글보글 뿜어내며 생각에 빠져들었다.


'산소에 반응하는 화학 가스 같은 건 아니건 같군,
그랬으면 물에도 반응을 일으킬 터이니, 이렇게 물속에 있지 못하지.
피부가 따가운  보면, 아주 농도가 짙은 캡사이신 같은 것일지도 몰라.
캡사이신이라... 음, 저 포자를 채집해서 농도를 희석하면 좋은 소스를 얻을  있을지 모르겠는데. 강력한 살균제로도 쓸 수 있고, 여차하면 화학 무기로 써도 되고 말이야.
그런데 저걸 무슨 수로 채집하나?'

그는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장장 사흘 동안, 호수 속에서 몸을 담그고 있어야 했다.
호수 속에서 물방울을 보글거리면서 이를 갈았다.


그 꽃을 상대할 방법을 찾아보았으나, 다가가서 뽑아버리거나 아니면 불태워 버리는 방법밖에 생각이 나지 않았다.
변변한 방호복 없이 다가가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고, 불태우자니 숲이 불바다가 될  같았다.
배보다 배꼽이 크다고 생각한 그는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더럽다. 더러워. 내가 피하고 말지...'

카르첼의 마음속 지도에 ’나중에 가만 안 둬야   2호점‘이 생겨났다.

뉴클리어 플라워(Nuclear flower), 일명 '핵 꽃'이라는 불리는 꽃들이 그 일대 곳곳에서 발견되었고, 표기되었다.
그리고 카르첼은 다시는 그곳에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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