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3화 〉23화. 출산. (23/281)



〈 23화 〉23화. 출산.

영역 순찰을 하는 도중, 날씨가 갑자기 변덕을 부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사방에서 돌개바람이 불어닥치며 우박과 눈이 쏟아졌다.

“이런, 날씨가 왜 이렇지?”

하늘이 깜깜해지더니 폭우가 쏟아졌고, 폭우는 금방 홍수가 되어 그를 덮쳤다.

“어어..”

홍수에 떠내려가던 그에게 하늘에서 무지개색의 동그란 구름이 다가오더니, 눈부신 한 줄기 빛과 함께 두 줄의 크고 튼튼한 동아줄이 내려왔다.
그는 동아줄을  손에 하나씩 움켜쥐고 구름 위로 기어올라, 세상을 삼킬 것 같은 거친 물살을 피했다.

겨우 살았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후, 무지개색 구름의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근처에 반가운 인물이  있는 것을 보았다.

그의 전생에 영국군 사관학교 동기이자, 친구였던 마사이족 출신의 자칭, 위대한 전사 마우단이 백색의 옷을 입고 백색의 지팡이를 든 채, 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고 있었다.
그의 주위로 신성한 아우라가 넘실거렸다.

“어? 마우단이잖아! 다시 만나서 반가워.
그런데 마사이 부족의 신(神)이 된 거야?”

그는 친구인 마우단을 보자 반가웠다.

마우단은 카르첼에게 다가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카르첼도 웃으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이는 마사이족 특유의 인사법이었다.

마사이족이 사는 지역은 가뭄이 극심한 지역이라 항상 수분이 부족했다.
그래서 정말 친한 사이에는 상대방의 얼굴에 침을 뱉어 수분을 공급하는 것이 인사였다.

“친구, 축하하네. 이제 나보다 크고 아름다운 물건을 가지게 되었군. 하하.
자네 말처럼 드디어 내가 마사이의 신 ‘은가이’가 되었어.
이게 다 자네 덕분이야.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것이 있네. 자~ 이것을 받게.“

마우단은 그에게 커다란 콩, 두 알을 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마우단은 사라졌고, 그는 이게 꿈임을 깨닫고는 깨어났다.

”이게, 뭐야...“

간밤의 뒤숭숭한 꿈을 뒤로하고, 식탁에 앉아 꼬마와 식사를 하였다.

꼬마는 고기를 한입 먹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헛구역질을 했고, 그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꼬마를 보았다.

'... 망했다.'

내면의 녀석이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며 입을 떡하니 벌린 채, 석상이 되어버린 게 느껴졌다.

++

꼬마가 임신했다.

그는 등에  지게에 과일을 한가득 담고는 동굴로 향하며 투덜거렸다.

'전생의 아내에게도 이런 건 못 해줬는데.
아이고, 이게 다  때문이야, 이 녀석아.'

내면의 녀석은 할 말이 없는지, 엉덩이를 긁적이면서 휘파람을 부는 흉내를 내며 딴청을 피웠다.

꼬마는 임신을 하자, 입맛이 바뀌었다.

과일이나 채소는 잘 먹지 않더니, 이제는 고기보다 더 많이 먹었다.
고기도 화식은 하지 않고, 훈제 고기만 얼마 정도 먹을 뿐, 피가 뚝뚝 흐르는 생고기를 주로 먹었다.
역시,  종족은 야생의 삶이 맞는 것 같았다.

 덕에 매일 사냥하러 다녀야 했고, 태어날 아이는 어떻게든 화식을 시킬 생각이었다.

'화식은 음식의 보관 기간을 늘려주고, 음식의 보관 기간이 길어지면 그만큼 생존확률도 높아지는 법이지.
좋아.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아이의 식습관을 올바로 만들어야겠어.'

++

꼬마의 출산이 가까워졌다.

통증은 자주, 그리고 길게 이어졌다.
통증을 잘 못 느끼는 숲 거인이 표정을 찌푸리며 낮은 신음을 흘리는 걸 보니, 숲 거인에게도 출산은 매우 고통스러운  같았다.


그는 부랴부랴 출산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전생에 전쟁터에서 구르느라 아내 곁에 있어 주지 못했고, 딸이 태어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항상 아내와 딸에게 미안해하던 그였다.

출산에 대한 제반 지식은 백과사전에 간단하게 나온 정도의 지식이 다였다.

자신의 신체에 배꼽이 있는 걸 보아, 뱃속의 태아는 인간처럼 탯줄로 호흡하고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 같았다.
탯줄을 자르기 위해 단검의 날을 불로 소독하였고, 태아를 감쌀 깨끗하게 삶은 부드러운 가죽을 준비했다.

뜨거운 물을 준비한 건 기본이었다.

그는 얼떨떨한 심정으로 팔자에도 없는 산파 노릇을 할 준비를 마쳤다.

녀석도 내면에서 안절부절못하였고, 소용없는 짓임을 알지만, 한마디 할 수밖에 없었다.

'정신없으니 가만 좀 있어. 이 녀석아!'

꼬마의 표정이 한순간 확 바뀌며 엄청나게 고통스러워했고, 하체에서 양수가 흘러나왔다.

그는 재빨리 손을 뜨거운 물로 소독하고는 꼬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꼬마가 으르렁거리며 살기 띤 눈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출산 시, 고통에 겨워 아내들이 남편의 머리채를 부여잡고 흔들면서 '이게 다  때문이야. 이 새끼야.' 하면서 난리를 친다는 전생의 이야기가 생각난 그는 움찔거리며 뒤로 조금 물러났다.

그러나 꼬마의 눈빛은 그런 뜻이 아니라, 아예 그가 가까이 다가오지 않게 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아마, 외부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인  같았다.

'역시 숲 거인은 인간보다는 짐승에 가까운 종이군.'

씁쓸한 심정과는 달리, 양손을 들고 뒤로 물러나며 꼬마를 안심시켰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꼬마는 안심한 듯 다시금 뱃속의 태아를 밀어내는 데 신경을 집중했다.

얼마 후, 꼬마는 결연한 표정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더니 배에 힘을 줬고, 피와 양수가 뒤범벅된 태아가 태반과 함께 탯줄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그는 탯줄을 자르기 위해 준비된 단검을 들고 다가가려 했으나, 꼬마는 냉큼 탯줄을 자신의 이로 끊어버렸다.
그리고는 태아의 입과 코 주위를 혀로 핥아 주었는데, 숨을 틔워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의도는 성공했다.

태아가 숨을 내뱉으며 울음을 토했고,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였다.

그는 한순간에 이루어진 상황에 준비된 것은 사용하지 못하고, 그저 세균 감염을 걱정했다.

이렇게 끝난 건가 하고 생각할 무렵, 꼬마의 인상이 찌푸려지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꼬마의 당황한 표정은 처음 만났을 때 빼고는 두 번째 보는 표정이었다.
그는 뭔가 일이 벌어졌다는 걸 직감하고는 재빨리 꼬마에게 다가갔다.

꼬마도 이번에는 그를 막지 않았다.
꼬마는 품에 품고 있는 태아를 그에게 넘겨주고는 자신의 배를 만져 보았다.

그리고는 당황한 표정으로 배에 힘을 주었다.

그러자 태아 하나가 쑤욱 하고 밖으로 나왔다.

결국, 둘은 쌍둥이였다.

두 번째 나온 태아의 상황이 좋지 않았는데, 탯줄이 태아의 목을 감고 있었다.

꼬마는 재빨리 이로 탯줄을 끊고는 혀로 전과 같이 태아의 코와 입을 핥아 주었다.
그러나 태아는 숨을 쉬지 않았다.

당황한 표정의 꼬마는 계속 입으로 핥아 주었으나 태아의 반응은 없었다.
이에 꼬마는 눈물을 흘리며 비통에 젖은 소리를 토해냈다.

심각한 상황을 인지한 그는 꼬마로부터 온전한 태아를 넘기고는 숨을 쉬지 않는 태아를 빼앗다시피 했다.

곧바로 태아의 가슴을 조심스럽게 힘을 조절하여 압박하고는 태아의 입에 자신의 입으로 숨을 강제로 주입했다.
CPR. 군에서 배운 인공호흡이었다.

이렇게 몇 번이 지속하자, 꼬마는 그의 이해 할  없는 행동에 분노를 표할 무렵, 기적이 찾아왔다.
미동도 없던 태아가 숨을 길게 뱉으며 몸을 꿈틀거렸고, 곧 울음을 터트렸다.

”휴우~ 큰일  뻔했군. 그런데 꿈에 마우단이 준, 콩 두 알이  뜻이었나?”

그는 생명의 탄생이라는 숭고한 장면을 지켜보며 내면의 녀석에게 축하해주었다.

“축하한다. 이제 너도... 아니, 우리는 아빠가 되었구나. 음, 근데 너 우냐?”

녀석은 내면에서 작게 훌쩍이고 있다가, 그의 지적에 흠칫거리며 아닌척하였다.

'아니다. 난 울지 않는다.'

“됐어, 인마. 괜찮아. 그럴  있지.”

다시 소생한 태아를 품에 안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양쪽 품에 태어난 아기들에게 모유를 수유하는 꼬마를 보며 생각했다.

'종을 뛰어넘어 모성애라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

전생의 인간 어머니와 현생에 기억 속에 남아 있는  거인의 어머니 양쪽이 동시에 떠올랐다.
전생의 어머니는 이제 만날 수는 없지만, 현생의 숲 거인 어머니는 만날 수는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비도 만났는데 어미도 한번 만나봐?'

++

그가 아기를 처음으로 자세히 봤을 때, 큰 충격을 받았다.

손가락 숫자와 발가락 숫자가 5개씩이었다.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거의 붙어 있다시피 했지만, 엄연히 따지면 5개가 맞았다.

발가락도 마찬가지였다.

몸에 털이 없었고, 머리카락만 태아답게 조금씩  있었다.

태아의 크기도 인간의 아기에 비해 2배 정도의 크기였으나,  거인의 체격을 생각건대 오히려 아주 작은 편이었다.
얼굴과 골격이 인간이랑은 조금 달랐지만, 숲 거인과는 확연히 달랐다.

'이 아기가 인간의 아기일까요? 숲 거인의 아기일까요?'라고 문제를 내면 백이면 백, 모두 인간의 아기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꼬마가 인간과 붙어먹었나 하고 의심할 정도였다.

“이렇게 생긴 아기가 커가면서 급격하게 바뀐다는 말인가? 탐구할 가치가 있어.
역시, 이 행성은 놀랍고 신비한 세계군.”

그의 탐구욕이 불사 올랐다가 시간이 지나며 빠르게 사그라들었는데, 그 이유는 바로 힘든 육아생활 때문이었다.

남아와 여아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들은 무럭무럭 자라기 시작했다.

아기들이 꼬물대면서 움직이는 걸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녀석도 내면에서 아기들을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귀엽고 사랑스러울 때는 그때뿐이라는 것을 생초보 아빠와 사실상의 초보 아빠는 몰랐다.

“잘 먹는군. 진짜  먹어.”

누가 숲 거인의 아기가 아니랄까 봐, 아기들의 식탐은 엄청났다.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배고프다고 울어 젖혀 댔다.

 덕에 그와 꼬마는 수면 부족에 시달리며 낮에는 좀비처럼 움직였다.
내면의 녀석도 잠을 자지 못해 어기적거리는  느껴졌다.
특히, 임신으로 통통해졌던 꼬마가 나날이 말라갔다.

“숲 거인에게서 쌍둥이가 태어난 게, 아주 드문 일인 건가?
출산 시, 꼬마는 둘째가 태어날 줄 몰랐다는 듯이 당황한 것을 보면 그럴 만도 하고.
저렇게 먹어대는 걸 보니, 하나 키우는 것도 힘들겠는데, 둘이라니.”

덩달아 바빠진 그는 부랴부랴 음식을 마련해 바치기 바빴다.
그런데도 꼬마는 나날이 수척해져 갔다.
그 모습을  후, 그는 특단(特段)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제부터 이유식이다!”

꼬마가 임신했을 무렵부터 혹시나 해서, 산양들을 대거 포획해 축사의 크기를 키웠다.
그렇게 양젖을 많이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양젖을 아기들에게 모유 대신 소량을 먹여보았다.
혹시 모를 불상사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걱정은 기우라더니 아기들은 아무 탈 없이 양젖을 소화했다.
그와 꼬마는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사실상의 초보 아빠인 그는 아기들을 자주 목욕시켰다.
고양이도 아닌데 아기들을 그루밍 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꼬마가  반발 없이 목욕하는  수긍하는 것을 보니,  거인도 아기는  번씩 목욕시키는 모양이었다.
털이 아직 자라지 않아 외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으니, 목욕을 자주 시키는 게 당연했다.

아기들의 얼굴을 씻기면서 입술을 열어보니 하얀 치아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이제 고기 같은 것도 조금씩 먹을 수 있겠구나.”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는데, 다행히도 고기는 많았기 때문이다.

우유보다 고기를 구하는 게, 더 쉬운 세상이었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아기들에게 조금씩 불에 익힌 음식과 과일을 먹여보았다.

아기 때부터 익숙해진다면 커서도 식량으로 인한 어려움은 많이 줄어들 것이기에 어떻게든 성공시켜야 했다.

이번에도 그의 걱정은 기우였다.

양젖에 익힌 고기를 잘게 찢어 아기에게 먹였더니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었다.

채식도 가리기는 했으나, 어미인 꼬마에 비하면 그럭저럭 먹는 편이었다.

아직, 다른 채소류를 찾지 못해서 그렇지, 숲 거인도 먹을 수 있는 종류가 더 있을 터임이 분명했다.

뭐, 어쨌거나 육아는 숲 거인에게도 정말 힘든 일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