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23화 〉123화. 고르카 vs 매머드. (123/281)



〈 123화 〉123화. 고르카 vs 매머드.

-에이론 왕국과 헤실론 왕국 사이의 접경(接境)지역.

고르카와 용병대원들은 바이른 후작의 안내로 쿤차라고 불리는 마수의 자취를 쫓고 있었다.

고르카는 인적이 드문 지역에 들어서자, 숲에서는 입고 있는 로브가 거추장스럽다며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입고 있던 검은 로브를 벗고 반바지만 입은 채,  거인 특유의 청 녹색 피부에 꿈틀거리는 거대한 근육과 그 위에 새겨진 벼락흔(痕)이 조화를 이루어 강렬한 야성미를 드러내었다.

이제,  모습에 익숙한 용병대원들이야 그러려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바이른 후작과 그의 수행원들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가 어떤 존재인지 새삼스레 깨달을 수 있었다.

숲의 제왕이자 폭군이며 지상 최강의 사냥꾼 종족인 숲 거인에게 거대 매머드로 추정되는 마수의 흔적을 찾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거기에다가 사냥의 신을 믿고 따르며 축복을 받았다는 태생이 천부적 사냥꾼인 라비족과 추적술의 대가 렙티언족이 더해진 일행들이었기에 쉽게 마수의 자취를 찾을 수 있었다.

“발자국만 해도 엄청난 크기입니다.
운카스 같은 난쟁이 정도는 한 발로 다 밟고도 남겠군요.”

“흥, 누가 밟혀 준대? 어이쿠, 이놈 똥을 엄청나게 싸질러 놨군요. 마치, 도마뱀 놈의 얼굴색과 같습니다. 어디 보자...”

운카스는 래터의 말에 콧방귀를 끼며,  손으로 코를 막고는 자신보다   엄청난 크기의  무더기를 나무 막대기로 휘적거렸다.

“어이쿠~ 냄새야. 도마뱀 녀석의 똥 냄새보다  지독하군.
이놈은 주로 풀과 나뭇잎을 먹는군요. 그런데 소화가  안 되나 봅니다. 거의  정도는 그대로입니다.”

성체 코끼리가 하루 200kg 정도를 먹는다는 것과 소화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것을 이미 아는 고르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화가 안 된다는 것은 그만큼 더 많이 먹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야 생명을 유지 할 수 있으니까. 하루 중 대부분을 먹는 것에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지.
놈이 어디에 있는지 대충 알겠다.”

그는  방향을 보며 말했고, 그의 눈에는 푸른 빛이 일렁이고 있었다.

++

고르카 일행은 어느 야산의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아래에는 작은 천이 흐르고 있었고, 그곳에서 한가롭게 물을 마시며 물장난을 치는 하얀 털로 뒤덮인 거대한 매머드가 있었다.
정작, 고르카는 놈을 보지 않고 맞은편 산 중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말고도 다른 관객이 있군.”

그의 말에 운카스는 망원경을 꺼내어 그가 보는 방향을 살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스승님. 바이른 후작은 저들이 누군지 아시겠소?”

운카스가 망원경을 바이른 후작에게 전달했고, 후작은 라비족의 체형에 맞춘 앙증맞은 크기의 망원경 사용 방법을 몰랐기에 알티의 도움을 받았다.

“저놈들은 헤실론 왕국의 국경수비대요. 음, 사카트 후작이 직접 나왔군.
저 작자는 나처럼 헤실론 왕국의 5단계 포스 각성자로 국경 수비를 책임진 자요.
그들도 쿤차의 행방을 유심히 관찰하는 모양이오.
하긴, 저들도 엄청난 피해를 보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저들이 지금 국경을 침범한 것이 아닙니까?”

알티의물음에 후작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네. 이곳은 두 나라 국경의 완충지대이지.
처음 우리 왕국이 세워질 때, 국경이라고 정확하게 선을 그은 것이 아니라서 그렇네.
우리 왕국이 개척을 거듭하다가 이곳까지영토를 넓히자 헤실론 왕국과 가까워졌고, 결국 이 일대를 국경을 삼기로 암묵적인 합의를 하였지.
그래서 소규모의 정찰대끼리  지역에서 서로 부딪혀 다툰 일도 많았고.”

“그랬군요.”

“그런데 이것 참, 대단히 유용한 물건이야.
망원경이라는 이름답게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이렇게 눈앞에서 보듯이 볼 수 있다니.
군부나 용병에게 필수품이 될 것 같군. 어디서 구할  있나?”

알티는 후작의 물음에 고르카를 바라보았고, 후작은 망원경의 출처가 고르카임을 알아차리고는 속으로 깜짝 놀랐다.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돌아가서  특별히 자네에게 하나 선물해주지.
그런데 헤실론 왕국 오르크들은 상당히 눈이 좋은 모양이야.
망원경 없이도 우리를 맨눈으로 보고 있어.”

“감사합니다. 하하. 저들 대부분이 바다의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살기에 우리보다 몇 배나 시력이 좋다고 하더군요.”

“그렇군. 하여간  되었어. 관객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자, 이제 본격적으로 저놈을 잡아 볼까?”

고르카의 말에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쿤차로 향했다.

“조심성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놈이군요.”

고르카 용병대의 바지 대장 알티의 말에 모두 수긍했고, 고르카가 덧붙여 말했다.

“정확히는 조심할 필요가 없었지.  누가 저 녀석에게 위협이 되었을까?
하지만 오늘 제대로 임자를 만난 것이지.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고르카의 확신에 찬 말에 용병대원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일찍이 거대 뱀 마수의 엄청난 모습을 보았었고,  마수가 어떻게 고르카의 손에 한낱 튼튼한 뱀 가죽으로 전락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 가죽은 지금, 하룬성의 공방에서 가죽세공 장인들에 의해 고르카의 가죽 갑옷으로 탈바꿈되고 있었다.

그런 거대 뱀 마수에 비하면 저 쿤차라는 마수는 손쉬운 상대로 보였다.

그런 그들을 바이른 후작은 묘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는데, 마치 ‘과연, 글쎄올시다’라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렇습니다. 제깟 놈이 아무리 대단해봤자, 저놈의 두개골에 정확하게 스승님의 창이 박힌다면 그냥 끝나는 것이죠. 하하.”

운카스의 아부성 발언에 고르카는 고개를 저었다.

“음? 무슨 소리야, 죽이다니? 생포해야지. 녀석을 길들여 내가 타고 다닐 것이다.
옛날에 거인족의 왕이 쿤차를 타고 다녔다 했으니, 나라고 못  이유가 있겠느냐?
저 녀석을 길들여 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저절로 거인족의 왕이 되는 것이지.
어떤가? 내 생각이. 하하.”

고르카의 말에 다들 깜짝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고, 운카스는 재빨리 손을 비비며 맞장구쳤다.

“역시, 스승님다우신 배포이십니다. 스승님이 저 녀석을 타고 다니시면 그 위엄에 다들 고개 숙일 것입니다.”

고르카는 다들 뭐라도 타고 다니는  반해, 자신의 체격을 버텨 줄 마땅한 탈 것이 없어 자신 혼자만 뛰어다니니, 모양새가 빠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도 전생에서는 멋진 스포츠카나 고급 세단에 관심이 많은 남자였고, 쿤차라는 저 백색의 매머드가 그의 눈에는 그저, 멋진 탈것으로만 보였다.

환생을 각성한 후, 처음으로 그의 두 눈에 욕심으로 불타올랐다.

‘운카스도 탈것이 있는데, 이놈을 놓친다면 언제  나에게 맞는 탈것이 생길지 모른다. 이번이 기회야. 꼭 성공해야 해!’

고르카는 각오를 다지며, 그렇다고 실패하리라고는 눈곱만치도 의심치 않고, 한 손에 창을 들고는 앞으로 성큼성큼 나서며 말했다.

“너희들은 자칫 크게 다칠 수도 있으니, 혹여나 나서지 말아라.
만약, 놈이 내 손에서 달아날 기미가 보이면 어디로 향하는지 신호만 보내면 된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고르카는 빠르게 산등성이를 타고 내려가, 여전히 물놀이에 정신이 없는 쿤차에게 다가갔다.

가까이에서 보니, 자신을 태우고도 너끈히 달릴 수 있는 큼지막한 체구와 하얀 털이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녀석, 멋진 놈이구나. 전생의  고향 근처에서 태어났으면 신의 화신이라 여기며 떠받들어지듯 살았을 것인데. 하지만 나도 잘 대해... 엇!”

쿤차의 긴 코에서 강한 물줄기가 벼락처럼 발사되었고, 가까이 다가가다 미처 피하지 못한 고르카는 그깟 물줄기쯤이야라고 생각하고는 숲 거인의 육체를 믿고 버티려 하였다.
하지만 가슴에 정통으로 물대포를 얻어맞고는 강한 바람에 가랑잎 날리듯 뒤로 나뒹굴었다.

엄청난 수압으로 인해 가슴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고통과 함께, 땅을 짚고 벌떡 일어난 고르카는 두 눈을 끔벅거리며 중얼거렸다.

“이게 아닌데...”

그의 눈앞에 땅을 힘껏 박차며 두 개의 길게 뻗은 엄니를 앞세워 빠르게 돌진해오는 군차가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이른 후작이 말했다.

“어이쿠, 우리 병사들은 저 물벼락을 맞고 제대로 일어서지 못한 자가 부지기수였는데, 역시 대단하군.”

뭔가 살짝 놀리는 듯한 바이른 후작의 말투에 알티는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흠, 스승님께서 잠깐 방심하셨나 보군요. 이제 제대로 하실 모양입... 어라? 뭐 하시는 거지?”

운카스가 알티의 의문에 답했다.

“로데오라는 거야. 쯧쯧. 스승님께서 작정하셨군. 오래 걸리겠어.
애들아, 자리 깔아라. 밥 먹자.”

++

쿤차라 불리는 매머드는 보기와는 다르게 조심성이 많은 놈이었다.
녀석은 물장난을 치면서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상대가 두 무리나 있다는 것을 알고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한쪽 무리는 얼마 전부터 자신을 집요하게 뒤쫓는 자들이었다.
 무리  하나가 그나마 자신에게 위협적인 자라는 것을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진동으로 구분하였는데, 그 인물이 바로 사카트 후작이었다.

역설적으로 녀석의 엄청나게 두꺼운 발바닥, 그중에서 발뒤꿈치가 가장 예민한 감각 기관이었다.
긴 코로 인해 많은 이들이 냄새를 맡아 정보를 분석할  같다는 착각을 했다.

다른 한쪽은 새로운 자들이었다.
그중에 익숙한 자가 포함되어 있었으나, 유독 하나의 진동이 녀석의 마음을 무겁게 하였고,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녀석은 물장난을 치는 척하면서 힐끗 상대를 보았다.
크기는 자신보다 못했으나, 여태 봐왔던 어느 놈들보다 크고 흉악하게 생긴 모습에 심장이 철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엄청난 위기감에 코로 물을 잔뜩 흡입하였고, 뭐라고 중얼거리며 다가오는 놈을 향해 강하게 내뿜었다.
그리고는 도망을 칠까 하다가 의외로 상대가 땅바닥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고는 자신감을 얻었고, 엄니를 앞세워 단번에 꿰뚫어 버리겠다는 각오로 땅을 박찼다.

++

“으랏챠~”

고르카는 바로 앞까지 다가온 녀석의 엄니를 양손으로 붙잡고 힘을 주어 버티었다.
조금씩 뒤로 밀렸으나, 그의 근육과 양팔의 근육이 잔뜩 부풀어 올랐고, 결국 녀석의 돌진이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녀석의 커다란 네 개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자, 고르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속았지? 이놈아!”

그리고는 뛰어올라 오른쪽 주먹으로 녀석의 이마를 강하게 후려쳤다.

[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그 충격으로 녀석은 골이 울렸는지, 입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한쪽 앞발을 털썩 꿇었고, 고르카는  발을 밟고 녀석의 등위로 올라탔다.

“하하. 어떠냐? 이 몸의  주먹맛.. 억!”

쿤차라 불리는 놈도 만만찮은 놈이었다.
 잠깐의 시간에 빠르게 회복한 녀석은 자신의 위에 올라탄 고르카에게 강한 분노를 느꼈고,  코로 재빨리 그를 휘어 감아, 엄청난 괴력으로 공중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분노에 찬 소리를 질렀다.

[뿌오오오오~]

고르카는 공중을 날며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고, 용병대원들이 경악에 차, 입을 벌리고 자신을 보는 것까지  수 있었다.
그중에서 운카스의 쌤통이라는 듯 헤벌쭉 웃고 있는 모습을 보며 이를 부드득 갈았다.
하지만 지금 빠르게 땅으로 낙하하는 자신부터 어떻게 해야 했다.

그는 지면이 가까이 다가오자, 턱을 가슴에 당겨 머리를 보호하고는 손, 팔뚝, 어깨,  순으로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지면을 굴렀다.
상처 하나 없이 말짱한 모습으로 벌떡 일어나자, 녀석은 깜짝 놀란 눈이었고, 지켜보던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바이른 후작과 멀리 떨어져 있던 사카트 후작이 입을 맞춘 듯 동시에 중얼거렸다.

“완벽한 전방 회전 낙법이다.”

고르카는 재빨리 양팔에 감긴, 수많은 목숨을 거둔 야마(yama)를 풀어 하나로 연결하고는 올가미로 만들었고, 곧장 녀석에게 달려들며 야마를 돌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야마가 돌기 시작하는군요.”

“그렇지. 정말 무서운 무기야.”

알티의 중얼거림에 운카스가 맞장구치자, 알티는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방금 스승님이 날아가며 사형을 보고 뭐라고 외치시는  같던데 말입니다.”

“그래?  못 들었는데? 뭐, 나중에 물어보지. 어이쿠, 다시 날아간다!”

운카스의 말대로 고르카는 또 한번 공중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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