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198화. 고르카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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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는 두 개의 반달이 사이좋게 떠올라 있었다.
울창한 숲속의 나뭇잎 틈을 비집고 들어 온 달빛의 축복이 숲속을 포근히 감싸 안았고, 그 축복은 길을 나선 고단한 여행자들에게도 주어졌다.
커다란 모닥불 주위에 있던 여행자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중, 키가 아주 작은 제자가 키가 아주 큰 스승에게 물었다.
“스승님, 그런데 지금 이렇게 동쪽으로 가는 까닭은 무엇이옵니까?”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반개한 눈으로 제자를 바라보며 답했다.
“운카스여, 나는 이제 늙어서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몸이다.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나의 몸도 가죽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간다고 여겨진다.”
제자를 비롯한 다른 이들은 모두 그를 바라보며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어디가 늙었다고?’
‘당장에라도 아누크 한 마리는 그냥 통째로 씹어 드실 것 같은데?’
스승은 그런 표정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슬퍼하지 말라, 탄식하지 말라,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운카스여,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니, 그런 것을 두고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한다면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슬퍼하다니요? 누가요? 부서지지 말라고 한 적도 없는대요?’
키 작은 제자는 입 밖으로 나오는 말을 겨우 삼켰고, 이를 보다 못한 다른 이가 대신해서 물었다.
“스승님, 동쪽으로 가시는 까닭을 물었사옵니다만, 스승님께서 하신 말씀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우둔한 제자들은 모르겠습니다.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알티여, 성급하구나. 어련히 말하지 않을까? 곧, 한 줌 흙으로 돌아갈 나에게 한가지 근심이 있으니, 바로 나의 아이들이다.
비록 그 아이들이 장성하여 내 품을 떠났지만, 그래도 아비인 나로서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이것이 천륜의 무거움이다. 이 보이지 않는 무거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자가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스승이 탄식하자, 부모 자식을 둔 이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했다. 하지만 이 문제에서만큼은 자유로운 키 작은 제자가 불퉁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쳇, 그럼 아이를 낳지 말던가, 장가도 못가 서러운 판에...”
귀 밝은 스승에게 그런 제자의 중얼거림이 들렸지만, 애써 모른 척 무시하며 말했다.
“그 아이들을 동쪽 숲에서 보았다고 하더구나.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그 아이들을 다시 한번 보고 싶어 이렇게 동쪽으로 가는 까닭이로다.”
“아니, 그냥 애들 보러 간다고 하면 되지, 그렇게 거창하게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리고 당장 죽을 것은 늙은이 흉내 좀 그만 내십시오.
스승님이 늙다니요? 아무리 봐도 저보다 더 오래 사실 것 같은데요?”
장가도 못가 서러운 키 작은 제자인 운카스가 결국 이렇게 폭발하자, 키 큰 스승인 고르카 역시 폭발했다.
“이 녀석아, 이런 야밤에 이 정도의 운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니 네가 장가를 못 가는 것이야!”
스승과 수제자가 이렇게 옥신각신하며 다투자, 대원들은 고개를 절레 저으며 각자 자기 할 일을 찾아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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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르카와 일행들은 ‘앨리스 상단’으로 이름을 바꾼 상단과 헤어지고 난 후에도 계속 북동쪽으로 움직였고, 결국 북부의 대수림과 연결된 초입부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들은 앨리스 상단과 헤어지고 나서도 여러 가지 일들을 겪었으니, 먼 훗날 동부지역에 전설로 남게 되었다.
시골에서 늙은 노모를 모시며 살던 어느 한 효자가 노모가 갑자기 쓰러지자, 좀 더 큰 마을에 있는 의원을 모시기 위해 길을 나섰다.
겨우 의원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던 중, 폭우로 인해 마을 사이에 있던 큰 개천이 불어나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고, 효자는 노모를 걱정하는 마음에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았다.
이때, 탈라의 보살핌이었는지, 불쑥 나타난 고르카와 일행은 그의 딱한 사정을 듣고는 그와 의원을 뿌옥에 태워 물이 불어난 개천을 건너게 해주었다.
고르카는 이에 그치지 않고 언제라도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음을 생각해, 근처에서 쉽게 썩지 않고 튼튼한 나무를 찾아내어, 그 개천에 크고 튼튼한 아치형 나무다리를 너무나 간단하게 뚝딱 만들어 내었다.
그 아치형 다리는 바로 고르카의 전생에 최고의 천재 중 하나라고 불리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아치형 다리’였다.
그 다리는 못 같은 것이 없어도 만들 수 있었는데, 나무를 아치 구조로 겹쳐 놓으면 힘이 분산되어, 이 힘이 접착력과 지지력으로 작용해 다리를 안정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연결부위에는 못 대신 홈을 파놓아 안정성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얼마나 튼튼했는지, 수백 년이 지나서도 안정적으로 다리 위를 무거운 짐마차가 오갈 수 있을 정도였고, 이 다리 덕분에 시골 마을이 점차 발달하여 나중에는 아주 큰 마을로 규모가 커졌다.
마을 사람들은 효심에 감동한 탈라께서 고르카를 효자에게 보내어 주신 거라 여기며, 이 다리를 고르카 다리, 또는 효자 다리라 이름 붙였고, 매년 다리가 만들어진 날에 맞추어 이곳에서 탈라와 고르카를 위한 기도가 열렸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점차 고르카의 이름은 잊힌 채, 효자 다리라는 이름만이 남게 되었다.
이 밖에도 토지를 개간하던 중 땅에서 거대한 바위가 튀어나와 촌부들이 애를 먹고 있자, 지나가다가 이를 목격한 고르카는 뿌옥을 꼬드겨 단번에 집채만 한 바위를 뽑아내었고, 촌부들은 일제히 환호하며 고르카를 칭송하였다.
그것도 모자라 그들은 그 바위에 고르카와 뿌옥의 이름을 새겨 넣어, 매년 그 경작지에서 생산된 농작물로 그들의 공덕을 기렸다.
가난한 나무꾼에게 있어, 전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도끼를 깊은 연못에 실수로 빠트리고는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발견한 고르카는 직접 연못으로 들어가, 나무꾼의 녹슨 쇠도끼를 내밀며 말했다.
“이 도끼가 네 것이더냐?”
고르카의 모습에 겁이 난 나무꾼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예, 제 것이옵니다. 감사합니다.”
고르카는 도끼를 건네주며 이번에는 은화가 든 주머니를 보이며 말했다.
“이 은화도 네 것이냐?”
나무꾼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며 간신히 대답했다.
“... 예, 제 은화입니다.”
고르카는 은화 주머니를 나무꾼에 건네주며, 이번에는 금화가 든 주머니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 금화도 네 것이냐?”
나무꾼의 얼굴에 탐욕과 일말의 양심이 싸우는 것이 보였고, 곧 나무꾼은 결심한 표정이 지었다.
“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것입니다.”
고르카는 껄껄 웃더니, 곧 웃음을 멈추고는 버럭 호통쳤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운카스, 저놈의 한쪽 팔을 잘라서 연못에 던져넣거라.”
나무꾼의 행태를 못마땅하게 지켜보던 운카스는 히죽 웃음을 짓고는 스승의 명을 따랐다.
울며불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나무꾼을 바라보던 고르카는 혀를 차며 알티에게 치료해줄 것을 명령했다.
“그냥 머리를 베어버릴까도 생각했으나, 너를 시험에 들게 한 내 잘못도 있기에 이 정도로 끝내겠다. 네 수중에 들어간 은화 정도면 충분히 한쪽 팔이 없어도 먹고 사는 데 있어 지장이 없을 것이야.
네놈의 처지가 딱해 보여 적당히 도와주려고 했건만, 네놈의 욕심이 일을 그르치는구나. 은화를 얻은 것만으로도 만족했으면 금화까지 네놈의 것이었어. 쯧쯧.”
이 말을 끝으로 고르카와 일행은 홀연히 사라졌고, 나무꾼은 남은 한쪽 팔로 땅을 치며 후회했다.
이런 이야기가 마을로 내려간 나무꾼에 의해 퍼지기 시작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근처의 나무꾼들이란 나무꾼들과 소기의 목적을 가진 자들은 모두 비장한 표정을 지은 채, 쇠도끼를 들고 그 연못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 이유인즉, 팔 하나만 남은 나무꾼이 받은 은화만 해도 일을 하지 않고 평생을 놀고먹어도 될 정도로, 일확천금(一??)은 아니지만, 일확천은(一???) 정도는 되었다.
그는 고르카에게 받은 은화로 집을 사고, 가정도 꾸려 나름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나무꾼들을 비롯한 가난한 자들은 자신의 한쪽 팔 정도는 내어줄 각오를 한 채, 연못에 쇠도끼를 던져 넣으며 고르카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으나, 산신령이 아닌 이상 고르카가 나타날 리가 만무했다.
이에 그들은 낙담하여 욕을 하고는 떠났지만, 오랫동안 꾸준하게 소문을 들은 이들이 찾아와 연못에 도끼를 던져넣었다.
그리 크지 않은 연못이었기에 연못이 도끼로 가득 차는 것이 아닌가 우려하였지만,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의아해했는데, 어느 날 그 이유가 밝혀졌다.
무거운 도끼를 들고 먼 길을 나설 수는 없었기에, 나무꾼이 살던 마을의 대장간에서 가장 싼 도끼를 구매하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졸지에 대장간은 호황을 맞이하여 하루 내내 끊임없이 쇠를 두드리는 망치질 소리로 요란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끼는 불티나듯 팔려나갔다.
이곳에서 도끼를 구매한 한 나무꾼이 혹시나 짠~하고 나타날 고르카에게 자신의 도끼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도끼의 자루 부분에 작은 표식을 남겼다.
하지만 고르카가 나타나지 않자, 몇 번이나 다시 그 대장간에서 도끼를 사 던져넣었으나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쯤 되면 낙담하고 물러서는 것이 정상이었으나, 오기가 생긴 이자는 ‘한 번 더!’를 외치고는 도끼를 구매했다.
이번에도 도끼의 자루에 표식을 남기려던 그는 이미 자신의 표식이 새겨진 것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리고 이게 무엇을 뜻하는지 깨달은 그는 증거를 잡기 위해 대장간을 주시하였고, 늦은 밤을 틈타 연못으로 향하는 대장장이를 발견하고는 뒤를 쫓았다.
그의 예상대로 대장장이는 연못 주변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연못으로 들어가 뛰어난 자맥질 실력을 보이며 연못 안에 있는 도끼들을 건져내기 시작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나무꾼은 범죄의 현장(?)을 덮쳤고, 현행범이 된 대장장이는 그와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벌어들인 금액 대부분을 나무꾼에게 토해내고는 함구할 것을 다짐받았고, 나무꾼은 두둑한 금액에 만족하며 사라졌다.
대장장이는 이번 일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머리를 굴렸고, 얼마 후 머릿속에 번쩍하고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며칠 뒤, 연못 주위에 작은 상점이 하나가 생겼고, 팻말이 걸렸다.
소원을 이루어 주는 연못
[쇠도끼를 던지지 마시오.
연못이 오염되어 소원을 이루어 줄 오거가 나타나지 않소.
대신 여기 이 작은 손도끼를 던지며 소원을 비시오.
싸다, 싸! 동전으로 단돈 10 가메오!
환경을 생각하는 당신에게 행운이 따르기를!]
친환경을 주장하며 연못을 관광 상품화 시킨 대장장이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고, 얼마 후 영주에 의해 목이 베어졌다.
감히 영주의 토지를 허락받지 않고 함부로 사유화(??化)하였다는 죄목이었다.
하지만 영주와 가신들은 대장장이의 장사 수법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머리를 맞댄 그들은 규모를 더욱 크게 벌려 보기로 작정하고는 연못을 중심으로 아예 공원화를 추진했다.
이것은 또다시 큰 성공을 거두어들이게 되는데, 왕국 전체에 소문이 퍼져 연인이나 상인, 학문을 공부하는 이들이 찾아와 소원을 비는 유명 관광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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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쟁이 나무꾼을 벌한 고르카와 일행은 나무꾼의 어리석음을 낄낄거리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런데 그 주머니에 얼마나 들어 있었을까?”
“흠, 주머니의 크기를 보건대, 꽤 많은 은화가 들었겠지?”
“이야~ 역시 고르카님은 통이 크셔!”
대원들의 이야기를 듣던 고르카는 머리를 긁적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필 은화가 가장 많이 든 주머니가 품에서 나올 줄이야. 좀 아까운데...’
알고 보면 은근히 자린고비 오거인 고르카의 발걸음은 계속 이어졌고, 그가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전설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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