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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화 〉 199화. 오거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 (199/281)

〈 199화 〉 199화. 오거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

* * *

문명의 손길이 닿은 흔적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빽빽하게 우거진 숲속에서 종류도 다양한 산새 소리와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으지직~ 쿵~

갑자기 나무가 부러지거나 쓰러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새들의 지저귐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뚝 하니 멈추었고, 숲속 생태계의 구성원들은 갑자기 찾아온 이방인들을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뿌오오~! (덥다. 벌레들이 많다. 길도 없다. 짜증 난다!)]

숲에 난 빼곡한 나무와 수풀로 인해 일일이 헤치고 다녀야 하던 뿌옥은 연신 짜증을 내었고, 뒤에서 편안하게 뒤따르던 고르카와 대원들은 연신 녀석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굽신거렸다.

뿌옥이 만든 길을 뒤돌아본 고르카는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이 녀석 이름을 불도저(bulldozer)라고 지어야 했어. 포엘이 뿌옥이라고 이름 짓지만 않았어도. 신성 제국에서 시작해 여기까지 이런 길을 내다니. 이건 나도 해내지 못할 업적이야. 정말 대단해.

나중에 이 녀석을 잘 꼬드겨 내가 살던 영역에도 이런 길을 만드는 게 좋겠어.“

졸지에 불도저 신세가 된 뿌옥은 고르카의 흉악한 내심을 알지 못한 채, 짜증을 부리면서도 열심히 길을 만들어 내었다.

“그런데 스승님 언제까지 이렇게 가야 합니까? 자제분들이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을 수도 있잖습니까?”

운카스의 물음에 고개를 한번 끄덕이더니, 이곳에서 제일 높은 곳이라 할 수 있는 뿌옥의 등 위로 훌쩍 뛰어올라, 주변을 돌아보고는 눈을 감았다.

대기의 흐름에 담긴 수없이 많은 생명체의 기운을 파악하던 고르카는 그중에서 그립고 익숙한 기운을 포착하고는 눈을 번쩍 떴다.

“래터!”

“예, 고르카 스승님.”

고르카의 부름에 래터가 곧장 뿌옥의 등 위로 올라왔는데, 래터의 잘려 나간 한쪽 손에는 강철로 만들어진 검은 의수가 끼워져 있었다.

신성 제국의 수도 아카논에는 다른 왕국과 비교에 진일보된 기술을 가진 공방들이 존재했고, 용병들의 총본산답게 의수와 의족 같은 뛰어난 품질의 물품을 만들어 내는 공방과 기술자들도 있었다.

그곳에서 래터는 자신의 체형에 맞는 의수를 제작해 착용하였고, 새롭게 생긴 강철 의수를 움직여 보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자, 대원들은 그것을 보고는 ‘강철 주먹 래터’라는 새로운 별명을 지어주었다.

고르카는 래터에게 한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느낄 수 있겠나?”

래터는 고르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며, 렙티언족을 추적술의 달인으로 불리게 한 고유 생체기관의 능력을 정령력을 사용해 극대화했다.

잠시 후, 생체기관에 모여진 정보를 분석하던 그는 특이한 기운이 포함되어 있음을 발견했고, 그것이 고르카의 기운과 비슷한 성질임을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과 비슷한 기운이 느껴집니다. 쉬익~ 하나가 아니라 둘이군요.”

래터가 정령력을 사용하는 것을 유심히 살펴보던 고르카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많이 발전했군, 정확하게 판단했어. 아들을 찾자 심적으로 안정이 되어 그런지, 자네의 기운이 한층 더 깊어졌군그래.”

래터는 고개를 깊숙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스승님 덕분입니다.”

“아니야, 다 자네의 노력 때문이지. 그런데 아직 자네의 내면에 존재 된 살기의 흐름이 불안정해. 전에도 말했듯 돌아가면 나와 함께 당분간 빨간 무 농사를 지으며 방법을 모색해 보세나.”

“예, 스승님.”

말을 마친 고르카는 아이들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바라보았고,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리움 감정을 곱씹으며 생각했다.

‘칠정(七?) 육욕(?)에서 멀어지고자 애썼지만, 아직 부족하구나. 하긴 깨달음을 얻었다는 부처조차 살아서는 이것으로부터 쉬이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였다지.

인간의 굴레를 벗어났다 생각했지만, 생사윤회(?死?)의 뿌리인 칠정 육욕에 아직 얽매여 있구나. 아직 멀었다, 멀었어.’

++

삐리릭~

휘리릭~

한 쌍의 산새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멀리서부터 주고받기 시작하더니, 자리를 옮겨가며 계속 이어졌다.

그 울음소리 사이에서 겁에 질린 커다란 수컷 순록 한 마리가 거친 숨을 내뿜으며 달리고 있었는데, 산새 소리가 들릴 때마다 방향을 바꾸어 달리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순록은 자신이 원을 그리며 한곳에서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겁에 질려있었다.

얼마 뒤, 이 순록을 몰이하는 자의 정체가 드러났으니, 한 쌍의 숲 거인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바로 킹 과 콩 남매, 아니 이제는 부부였다.

킹이 거대한 몸짓에 어울리지 않게 나무를 타면서 나무 사이를 건네는 신기를 발휘했고, 잔뜩 겁에 질린 순록의 앞에 뛰어내리고는 숲 거인 특유의 광포하고도 거친 기운을 담은 고함을 외쳤다.

[크아아~]

순록은 그 자리에서 멈춘 채, 부들부들 떨리는 네 다리로 몸을 돌렸으나, 그 방향에는 어느새 이미 콩이 자리하고 있었다.

순록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고, 그것이 순록이 이 세상에서 느낄 수 있는 마지막 감정이었다.

철제 단검으로 순록의 목을 그은 킹은 한쪽 무릎을 꿇었다.

킹과 콩이 고르카와 꼬마의 품에서 독립하여 떠날 때, 고르카가 만들어준 단검이었고, 그 단검은 어느샌가 날이 반쯤 부러져 있었다.

킹은 쓰러져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눈물이 맺힌 순록의 눈을 감겨주고는 나직하게 낮은 휘파람을 불었다.

이 역시, 고르카가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으로 고마움과 미안함, 내세에서는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것이었고, 처음에 아이들은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이것이 무슨 행위인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고, 지금에 와서는 내세를 기원하는 것까지는 깨닫지 못하였으나, 나머지는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킹이 이렇게 나직하게 휘파람을 부르자, 콩 역시 다가와 쓰러진 순록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휘파람을 불었고, 잠시 뒤 순록은 움직임을 완전히 멈추었다.

순록의 생명이 다했음을 본 킹이 자리에서 일어나 콩을 바라보고는 작게 웃으며 수화로 수고했다는 뜻을 전하자, 콩 역시 일어나며 그런 킹에게 수화로 너 역시 수고했다며 웃음을 지었다.

이때 갑자기 킹이 웃음을 지우고는 몸을 홱 하니 돌려 한 곳을 뚫어지게 바라보았고, 콩 또한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킹이 바라보는 곳을 보았다.

그곳으로부터 둘이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강대한 기운이 흘러 자신들에게 닿고 있었다.

킹과 콩은 누가 쌍둥이가 아니랄까 봐, 똑같이 흠칫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고, 이내 이 거칠고 흉포하며 강대한 기운에서 오래전 헤어진 누군가가 떠올랐다.

“@%&? (설마?)”

“$%$? (아빠?)”

++

[크아아~]

아주 멀리서 희미하게 들리는 괴성에 고르카 일행은 흠칫하며 걸음을 멈추었고, 고르카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소리 한번 우렁차기도 하다. 사냥을 하나 보군. 역시 제대로 찾았어. 내 아들 녀석이니 다들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가자고.”

고르카는 일행을 재촉하며 앞장서서 걸음을 옮겼고, 대원들은 그런 고르카의 뒤를 쫓으며 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은근히 자식 자랑하는 노인네 같은데?”

“그래, 고르카님에게 저런 면이 있을 줄이야. 신선한 충격이야.”

“듣는 것만으로도 살 떨리는 소리를 우렁차다고 하시다니.”

“어허, 자네가 아직 자식을 낳아보지 못해서 그래. 부모가 되면 자식 똥도 황금으로 보인다고.”

“그런 거야?”

“그래, 그게 바로 자연의 순리라고.”

++

쿵 쿵 쿵~

멀리서부터 지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이윽고 킹과 콩의 시야에 고르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감정 표현이 좀처럼 얼굴에 드러나지 않는 숲 거인으로서는 드물게 엄청나게 놀란 표정을 지어야 했으니, 킹과 콩은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분홍색 마수와 그 위에 올라탄 채, 위풍당당한 표정을 짓는 아비를 보며 할 말을 잊고 멍하니 바라보았다.

고르카 역시 둘의 그런 표정을 확인하고는 아비의 위용을 보였다고 생각하며 흐뭇한 웃음을 흘렸다.

“어떠냐? 내가 바로 너희들의 아비다. 존경심이 절로 생기지?”

운카스를 비롯한 대원들은 자식들에게 장난치는 아비를 떠 올리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후, 고르카는 아이들과 어느 정도 가까워지자, 뿌옥을 멈춰 세우고는 훌쩍 뛰어내렸다. 그리고 양팔을 활짝 펴고는 외쳤다.

“하하~ 애들아~ 아빠다!”

킹과 콩은 서로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것이 신호였는지 둘은 동시에 고르카를 향해 달렸다.

고르카와 킹과 콩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졌고, 둘은 속도를 줄이기는커녕 더욱 속도를 높였는데, 고르카를 향해 아이스하키에서 바디 체크하듯 어깨빵을 동시에 날렸다.

“하하... 하... 엉? 억!”

킹과 콩의 어깨빵에 일격을 당한 고르카는 뒤로 나뒹굴었고, 둘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맹렬하게 고르카를 향해 돌진했다.

벌떡 일어난 고르카는 입고 있던 로브를 벗어 던지고는 이를 갈며 외쳤다.

“이 새끼들이 애비도 몰라봐? 오냐, 오랜만에 참교육이 뭔지 알려주마!”

자연스럽게 양손으로 가드를 올린 고르카는 킹이 날린 주먹을 왼쪽으로 허리가 회전함과 동시에 상체를 숙여 피하고는 킹의 몸통에 강하게 주먹을 꼽았다.

“컥”

복부로부터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숨을 토하며 저절로 몸을 숙인 킹의 얼굴로 고르카의 회심에 찬 어퍼컷이 작렬했고, 킹의 거구가 바닥에서 떠오르며 뒤로 넘어가더니 부르르 몸을 떨고는 바로 기절했다.

순식간에 킹을 해치운 고르카는 공격을 해오는 콩을 노려보았고, 콩은 주먹을 멈추고는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 (아빠)”

이에 고르카는 콧방귀를 끼며 주먹을 날렸고, 콩 역시 킹 옆에 나란히 누워 기절하자, 고르카는 주먹을 탈탈 털며 말했다.

“딸이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것을 잊었니? 이게 바로 공정한 교육이다!”

대원들은 하나같이 아연한 표정으로 과격한 가족 상봉의 장(?)을 지켜보았고, 운카스가 그들의 심경을 대변했다.

“오거가 강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이거였군.”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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