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3화 〉 243화. 기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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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바다의 수평선에 걸린 두 번째 만월(?月)을 등진 채, 로라가 만든 얼음길 위를 뿌옥을 탄 고르카와 앨리스가 어슬렁거리듯 앞장섰고, 그 뒤를 일곱 숲 거인이 뒤따랐다.
바다 한가운데를 도로처럼 얼음길로 만든 것도 신기했지만, 그 길이 뿌옥과 고르카 등의 육중한 무게에도 용케 부서지지 않고 감당하는 것이 더 대단했다.
쿵~ 쿵~
뿌옥의 육중한 걸음걸이로 인한 소리가 고요한 밤바다를 깨우듯 울려 퍼졌다.
탈라의 정원에서 자신들을 지켜보던 아비가 보낸 선물이라 여기며 잘생긴 왕자님을 둘러싸고 호들갑을 떨던 네 자매의 시선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바다로 향했고, 두 번째 만월을 등진 채 바다에서 다가오는 존재들을 보고야 말았다.
“... 대. 마. 신.”
네 자매 중 맏이가 경악에 찬 표정으로 한 자 한 자 끊어 말하자, 나머지 자매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크게 부릅뜨고는 벼락을 맞은 듯 몸을 부르르 떨어야 했다.
“아이고~ 살았네.”
“흥~ 그 아쉬운 표정은 지우고 말하지?”
“하하...”
그녀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아슬란은 이제야 살았다는 표정이 되어 재빨리 로라에게 돌아갔고, 그제야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로라는 머쓱한 표정을 짓는 동생을 바라보고는 콧방귀를 뀌었다.
이곳이 아무리 촌구석이라지만, 이십여 년 전, 가온 북 대륙을 넘어 서로 간에 왕래가 힘든 남 대륙까지 떠들썩하게 만든 일명 ‘대마신의 강림’ 사건은 당연히 여기까지 알려질 정도로 유명했다.
신마 대전을 그저 신화 속 이야기라 치부하던 대부분의 가온 대륙인들은 모든 짐승의 왕 쿤차와 거인족의 왕에 관한 전설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역설적으로 신마 대전을 끝낸 탈라에 대한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계기가 되어, 태양교의 교세(?)가 전보다 더욱 탄탄해졌다.
그런 대마신이 세상에 종적을 감춘 지 이십여 년 만에 가온 북 대륙 남동부의 시골 어촌에 모습을 드러내었고, 대륙의 살아있는 전설이라 불리는 대마신을 직접 보게 된 네 자매는 전율을 금치 못했다.
사실 헤실론 왕국에 처음 모습을 드러내었지만, 아직 그 소식은 이곳 시골 어촌까지 전해지지는 않았고, 거대한 빙산이자 난공불락의 성이며 불침의 항모인 캐슬 로라를 타고 내려온 고르카 일행이 소문보다 더 빨랐던 탓도 있었다.
해변에 도착한 고르카는 주변을 한번 훑어보고는 앨리스의 조끼 주머니에서 여러 도구를 이용해 이리저리 주변을 관찰하면서 지도를 작성하는 올먼에게 말했다.
“어떤가? 기존의 2차원적 지도와는 다르게 3차원 지도가 더 정확하지 않은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 각도기(???)와 등고선(?高?)이라는 개념은 과히 지도계의 혁명입니다! 고르카님께서 설명하신 대로 경사율은 수평 길이 분의 수직 길이에 백을 곱하면 되는군요!”
“그렇지, 그게 바로 올바른 지도작성의 첫걸음이야. 좀 더 깊게 파고든다면 말이야...”
신이 난 고르카와 올먼이 이렇게 지도작성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고, 이를 바라보는 주변의 모두는 무슨 귀신이 씻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아야 했다.
그런 그들을 대신해 로라가 고개를 저으며 가볍게 한숨을 쉬고는 그들을 불렀다.
“아빠들~ 이제, 그만 하세요.”
이에 고르카와 올먼은 둘만의 대화에서 벗어나 로라를 보며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런~ 오랜만에 육지에서 저녁을 먹기로 해놓고 그만 깜빡했구나. 허허.”
“그러게요, 이곳 경치가 그럭저럭 괜찮으니 여기서 먹도록 하지요. 하하.”
백사장에 자리를 편 올먼은 저녁 식사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고, 고르카는 로라의 눈치를 피해 눈을 데굴데굴 굴리다가 얼어붙은 듯 서 있는 네 자매를 발견하고는 잘되었다는 듯이 빠르게 다가가 말했다.
“오~ 처자들. 만나서 반갑네. 여기 주민인 모양인데 이곳의 이름은 어떻게 되나?”
대마신답게 그의 박진감 넘치는 모습과 지옥의 울부짖음 같은 목소리에 극도의 공포심을 느낀 네 자매는 서로를 껴안으며 당장이라도 비명을 지를 듯 입을 벌리고 그를 쳐다보았다.
고르카는 이를 보고는 민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
“음, 넷 다 말을 못 하는 모양이군. 수화는 알고 있으려나?”
고르카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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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닥타닥 불타오르는 집채만 한 크기의 커다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은 고르카 일행은 네 자매의 자기소개와 그동안 그녀들에게 일어났던 일에 대해 처음부터 자세하게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아니, 왕이 백성들의 안위를 돌보기는커녕 착취를 일삼다니. 이런 참담한 일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비분강개(????)한 표정으로 한탄하듯 말하는 아슬란이였고, 그런 모습에 올먼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왕자님. 에이론 왕국 백성들은 여왕님과 왕자님 같은 훌륭한 분을 모시는 것을 정말 감사히 여기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왕자님, 가온 북 대륙만 하더라도 신성 제국을 비롯한 여러 개의 제국과 정통적인 왕국만 해도 서른 개가 넘습니다.
그리고 이곳의 공국 같은 나라까지 합치면 무수히 많은 나라가 있지요. 게다가 아직 나라의 규모를 갖추지 못한 채, 광범위하게 흩어져 있는 큰 부족까지 합치면 그 수는 정말이지 엄청납니다.
그곳의 지도자가 모두 포엘 여왕님과 왕자님 같지는 않습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오히려 두 분 같은 훌륭한 지도자는 소수이고, 대부분은 그 정도만 다를 뿐, 이곳처럼 착취를 일삼고 있는 것이 실정입니다.”
고르카 역시 올먼의 말에 속으로 동감하였다.
‘전생에 지구에서도 마찬가지였지. 20세기가 되었어도 제대로 국민을 위해 정치를 하는 나라는 드물었다. 차라리 이 행성이 좀 더 나을지도 몰라.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되는 신성력이 존재하는 세상이고, 대부분 그 신을 믿고 따르며 사후세계를 두려워하니 말이야.’
아슬란은 한숨을 길게 내쉬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압니다. 하지만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왕이라니... 저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다시 자리에 앉은 아슬란의 어깨를 로라가 말없이 토닥여 주었다.
네 자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자매들의 아비가 오거 일가에 상처를 입고 은퇴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에 고르카가 뜨끔한 표정을 짓자, 그 사연에 대해 들은 적 있는 올먼이 옆에서 작게 속삭였다.
“혹시, 동부 지역에서 만난 오거 일가라면...”
“그래, 우리 애들이 맞아. 그리고 저 자매들의 아비가 가온 불패, 그 친구의 수하였었군. 허~ 이런 인연이 다 있나. 그냥 모른 척할 수도 없는 노릇이로군.”
자매들의 이야기가 모두 끝나자, 잠시 뭔가를 생각하던 고르카가 그녀들에게 말했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인연이라는 실이 자네들과 우리 사이에 한 가닥 이어져 있는 것 같군. 자네들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겠으니 말해보게나.
예를 들자면 자네들이 이곳에서 무사히 빠져나가 다른 곳에서 평생을 풍족한 생활을 하며 지낼 수 있게 해줄 수 있네.”
고르카의 이 말에 네 자매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희만 살아남아서 평생을 호의호식(????)하며 살아 무얼 하겠습니까? 신의 정원에서 내려다 보고 계실 아버지께서 한탄하실 것입니다.”
“자식 교육을 잘했군. 좋아, 그렇다면 이곳의 망나니 왕을 손봐줄까?”
고르카가 주먹을 쥐고는 으드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태연하게 말하자, 네 자매는 질린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이런 조그마한 공국의 왕을 처리해봤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이 일의 발단은 세 왕국에서 비롯된 것이에요. 그들이 무리한 전쟁을 벌였기에 백성들이 이렇게 수탈을 당하는 것입니다.
염치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부디 이 세 왕국을 처단하여 주시옵소서. 대마신이시여.”
네 자매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고르카를 향해 경배(??)하자, 고르카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좋아, 그게 자네들의 소원이라면 들어주지. 하지만 말이야, 그 후의 일에 대해서는 내가 책임져 줄 수 없네.
이곳 남동부에서 세 왕국이 그나마 큰 소리를 내기에 삼성(三?)이라 불린다지?
그들이 사라지면 남동부는 어떻게 될 것 같나? 빈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남은 자들이 아귀다툼을 벌이거나, 멀리서 지켜보던 포식자들이 덤벼들걸세. 그런 그들을 막을 수 있겠나?”
그녀들은 미처 그 이후까지는 생각 못 한 듯,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심정이 되었다.
이 모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르카는 혀를 차며 말했다.
“한 가지 방법밖에 없어. 자네들이 빈자리를 메우거나, 괜찮은 자에게 넘겨야지. 나름 귀족으로 기본적인 교육은 배운 것 같고, 지금 보아하니 주변에서도 자네들을 잘 따르는 것 같군.
좋아, 모자라는 부분은 여기 현직 왕자인 아슬란이 가르치면 될 것이고.
자네들이 중심이 되는 거야. 뒤에서 내가 팍팍 밀어주겠네.
그렇게 계속해서 규모를 키워나가며 세력을 만들어 여기 공국을 꿀꺽하는 거지. 그 정도면 세 왕국 중 하나에 얼추 비벼볼 수준은 되겠어.
그렇게 차례대로 먹어 치우면 끝. 어때? 참 쉽지?
이 작전의 핵심은 속도전이야. 다들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 끝내는 거야.”
네 자매는 입을 벌리고는 먼지가 입속으로 들어가도 다물 줄 몰랐다.
“나와 저 녀석들은 너무 눈에 띄어 곤란해. 그냥 결정적일 때 한번 써먹어야지.”
저 녀석들이란 다름 아닌 일곱 숲 거인들이었고, 그들은 어느새 악기를 꺼내 들고는 시끄럽게 연주하며 노래한다고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아이고~ 시끄럽다, 이놈들아! 얌전히 놀지 못하겠느냐? 음, 운카스를 불러야겠군. 그 녀석이 분탕질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치지. 그리고 이 일은 로라, 네가 앞장서거라.”
“제가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어보는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그럼, 이 나이에 내가 하리?”
“... 네, 알겠어요.”
이 모습을 지켜보던 네 자매는 자신들의 아비가 신의 정원에서 보내준 진정한 기적이 잘생긴 왕자님이 아니라 대마신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아버지, 좀 무리하신 게 아닌가요?”
막내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이렇게 중얼거렸고, 나머지 자매들 역시 그 말에 공감하고는 천상에서 아비가 혹여나 이 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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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자타공인 분탕질의 대가 운카스는 얼음 동상이 된 휴리첼 옆에서 바다를 향해 낚시대를 드리우고 있었다.
“빈집 지키는 것은 정말 심심해. 너도 혼자 있으니 심심하지? 로라에게 부탁해서 친구들을 만들어 주도록 할게. 그때까지 참아 봐. 엇차~ 월척이구나!”
검을 뽑아 든 얼음 동상은 운카스의 말에 침묵으로 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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