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노예, 제가 삽니다-24화 (24/99)

〈 24화 〉 머리가 붙어있는 듀라한 히샤

* * *

"음..이게 뭐지."

가게 앞의 우편함을 열어보자, 한통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친애하는 나의 친구 레너드에게.

친구여, 너무나도 기쁜 소식이 있다고. 내가 너한테 일전에 보여준 소중한 골렘, ptx:z 123이 골드잽 경매장에서 무려 2000골드에 팔렸어! 덕분에 난 막대한 수수료인 1000골드를 정산 받을 수 있었지. 이 돈으로 며칠 밤을 새우며 연구해 이번에야 말로 자네와 자네의 고객들을 만족 시켜줄, 진짜 로망 가득한 로봇을 만드는데 성공했어. 이번엔 정말로 기대하고 있으라고. 이틀 후 가게에 들려서 직접 보여줄게.

자네의 영원한 친구 딘.

"음...이번엔 믿어볼 만하려나."

나는 편지를 다 읽은 뒤, 편지를 접어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그런 뒤 가게에 들어가 봉투를 테이블 위에 대충 올려놓았다.

"어머 사장님, 웬 편지인가요?"

"딘이 새 골렘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세상에...아직도 골렘에 미련을 못 버리신 거예요?"

"그래도 내 어린 시절 친구가 나를 위해 열심히 만들었다는데, 안보는 건 실례 아닐까?"

"정말 그게 이유예요?"

리나가 날 빤히 쳐다보았다. 나는 그녀의 눈을 피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고개를 돌리고 우연히 바라본 창문 밖에 웬 여자아이 하나가 설레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

여자아이는 날 바라보며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기대감이 가득한 숨을 내뱉고 있었다. 난 창문에 다가가 창문을 조금 열고 여자아이에게 물었다.

"저기...혹시 우리 가게에 무슨 볼일이 있니...?"

"드디어! 보았구나!"

"반갑다. 인간! 이 몸이 친구가 필요한데!"

난 여자아이의 말에 어떠한 답변도 하지 않고, 곧바로 창문을 다시 닫아버렸다. 여자아이가 당황한 표정으로 창문을 마구 두드렸다.

"어머...웬 꼬맹인가요?"

"몰라, 별로 휘말리고 싶지 않네."

나는 리나에게 손짓해 커피를 한잔 받은 뒤, 다시 자리로 돌아가 신문을 꺼내 읽었다. 한 15분쯤 지났을 때, 신문을 다 읽고 창밖을 바라보자 여자아이는 여전히 창문 밖에 서서 울먹거리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하아..."

나는 한숨을 쉰 뒤, 여자아이가 붙어있는 창문가로 걸어 갔다.

"뭔데. 딱 1분 줄 테니까. 정말 간단하게 용건만 말해."

"드디어 이 몸과 대화할 생각이 들었구나! 나는 긍지 높은 듀라한 히샤다! 목이 붙어있는 듀라한이지!"

"...? 듀라한이 왜 머리가 붙어있어."

"나도 모른다!"

"그럼 네가 듀라한인건 어떻게 아는데."

"사람들이 나를 듀라한이라고 부르던데?!"

"어떤 사람들이?"

"몰라! 기억 안 나!"

"...리나야 소금 가져와라. 애니까 굵은 거 말고 맛소금으로."

"어머, 오랜만이네요 바로 가져올게요."

"이 몸! 언데드라 소금이 닿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러냐, 하고 싶은 말은 그뿐이야? 그냥 네가 언데드인걸 알리고 싶어서 온 거야?"

나는 무심한 표정으로 히샤를 바라보며 창틀에 기대서서 말했다.

"아니! 나는 쓸만한 친구를 찾으러 왔느니라!"

"...돈은 있고?"

"여기!"

히샤는 내게 굉장히 상태가 좋지 않은 1골드를 건넸다. 골드는 곰팡이가 피어있고, 왠지 모르게 이끼가 껴있었으며 곳곳에 흠집이 나있었다.

리나는 히샤가 건넨 골드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히샤가 질색하며 손을 뺐다. 그리곤 나를 지긋이 바라봤다. 나는 손을 내밀어 히샤의 골드를 받았다.

"받았구나! 끝났다!"

"뭐라는 거야...이 골드 대체 어디서 주워온 거야?"

나는 이상하게 생긴 1골드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심한 찌린내가 났다.

"아마...하수구 일거다!"

"....이런 애한테 노예를 팔아도 괜찮은 거냐?"

나는 히샤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리나에게 물었다.

"어머...글쎄요. 그래도 돈을 냈으니 일단 손님 아닌가요?"

리나가 주방에서 가져온 소금을 히샤에게 던지며 말했다.

"이몸...아프다....콜록...소금...아파아...그만 던져라!"

"어머...미안해요. 하지만 중위 마물인 듀라한은 이런 싸구려 소금 따위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텐데요."

리나가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히샤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그렇지! 이몸!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소금을 맞아도 멀쩡하다! ...으 으악! 눈에 들어갔다! 물! 물! 어서 물을 가져오거라!"

히샤는 리나의 말을 듣고 억지로 눈을 뜬 채로 소금을 맞다가, 눈에 소금을 맞고 고통스러워하며 가게 앞을 방방 뛰기 시작했다. 보다 못한 내가 리나에게 손짓해 양동이를 가져오게 했다. 잠시 뒤, 리나가 양동이에 물을 가득 떠와 히샤에게 뿌리자, 히샤는 충혈된 눈으로 기세등등한 자세를 잡으며 말했다.

"어때...멀쩡하지!"

"가게를 옮길 때가 됐어...이 자리가 완전히 저주 받았어..."

나는 이렇게 혼잣말하며, 기세등등하게 서있는 히샤에게 가게 문을 열어줬다. 히샤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가게에 들어와 손님 응접실의 소파 위에 앉았다.

"그래서, 무슨 노예를 사러 왔는데."

"이몸은...듀라한을 사고 싶어! 듀라한은 멋지니까!"

"듀라한은 최소 50골드는 받아야 파는데. 1골드로는 택도 없어."

"할인해줘!"

"안돼."

"제발!"

"안 돼."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때?"

"어떻게."

"내게 듀라한을 팔면 이 다음에 커서 성공하면 한 달에 1골드씩 갚을게!"

"...아니, 이시발...왜 성공했는데 한번에 안 갚고 한달에 1골드씩 갚는 건데."

"글쎄...그럼 성공하고 한번에 갚으면 팔 거야?!"

"안 팔아."

내가 팔짱을 끼고 히샤를 바라보자, 히샤는 안절부절 못하며 나를 초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그....그럼 어떻게 하면 날 믿어줄...건데?"

"내가 대체 널 뭘 믿고 49골드를 외상 해주겠니. 그냥 돈을 더 가져오렴."

나는 인자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나...나는 목이 달린 듀라한이라...분명...희소한 마물이랬는데...그럼 날 팔면 얼마가 나오는데...?"

"...네 말이 사실이라면 학자들이 널 무조건 살테니...한 100골드?"

"그...그렇다면 날 팔고 듀라한을 2명 사면 되겠구나! 야호! 1명도 아니고 2명이라니! 당장 날 사라!"

"돌겠네. 너 다른 노예점에 가서도 이렇게 말하고 다녔니?"

"다...다른 노예점은 아저씨들이 무...무섭게 생겨서 싫다!"

"어머...사장님이 대부분의 노예점 사장보다 무섭게 생기셨는데...의외네요..."

"무...무섭기 보단...친근하달까....몰라! 어렵네!"

나는 히샤의 답변을 듣곤 머리가 아파와 눈을 감고 소파에 기대 누웠다.

"하아...그래, 그럼 네가 듀라한인걸 증명하면...듀라한이 있는 노예동에 넣어줄게."

나는 그냥 빨리 이 상황을 넘기고 싶어, 그냥 히샤를 노예동에 넣을까 생각했다.

"증명...? 어떻게 하면 되는데!?"

"머리를 떼본다 거나..."

"머..머리는 안되지만 소...손은 가능해!"

히샤는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손을 떼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녀의 손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냥 순순히 인정해 꼬마야. 장난치지 말고 빨리 집에 돌아가렴."

"으흑...으흑흑..."

히샤는 내말을 듣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을 떼는 걸 포기하고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너흰...너흰 귀축이야. 가련한 듀라한에게...이런 가혹한 행위를 시키다니. 연구진들이 날 희귀한 케이스라고 말했다고...!"

히샤가 울먹이며 말했다.

"네가 한다며."

"어머...그런데 누가 희귀하다고 말해줬다고요? 연구진이요?"

리나가 카운터에서 히샤의 얘기를 듣다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웬...웬 이상한 아저씨들이 말했어."

"술 취한 취객들 아니었을까?"

"근데...사장님...방금 얘기를 듣고, 이 아이를 제 마안으로 조금 살펴보니...이 아이가 마물이긴 마물이예요. 종은 잘 모르겠지만..."

리나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뭐...? 진짜 마물이었다고?...그러고 보니, 잘 보면 피부가 창백한 것 같기도 하고."

난 히샤의 볼을 꼬집어봤다. 히샤의 볼은 굉장히 차가웠다.

"으...으엑...."

히샤가 볼을 잡아당겨 따가운지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한번 포르노씨한테 검진해 보는 게 어떠신가요?"

"근데, 이 여자애가 내게 건넨 1골드로는 택도 없어, 3골드는 있어야 포르노의 정밀검진을 받을 수 있다고."

"음...그렇지만 사장님...왜인지 이 아이를 보니, 제 동생 생각이 나서 좀 가엽네요. 3골드는 그냥 제가 낼 테니 한번 검사해보시죠."

"네가 웬일이냐. 그래 그럼 한번 봐볼까."

"잠시만요."

리나가 가게의 카운터에서 3골드를 꺼내왔다.

"여기요."

리나가 웃으며 3골드를 건넸다.

"이런 시발 그거 내 돈이잖아."

"어머...겨우 3골드 때문에 이렇게 여린 아이와 나약한 직원을 외면하시는 사장님은 정말로 귀축이시네요."

"마...맞아 이런 귀축 사장!"

히샤가 가만히 듣고 있다가 리나에게 동조했다.

"안돼. 못 봐줘. 안 해. 가뜩이나 이번 달 가계부도 마이너스라고!"

나는 팔짱을 끼고 돌아섰다.

"여러분! 사장님이 어린아이를 가게로 데려와 돈을 뺏고 손목을 자르려 해요!"

"?"

나는 영문 모를 소리에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바라보았다. 그곳을 보자 리나가 문을 활짝 열고 히샤와 함께 거리의 사람들에게 열심히 소리치고 있었다.

"사장님은 주기적으로 제 몸을 만지고, 월급 대신 정액을 건넸습니다! 부디 이 쓰레기를 처벌해 주세요!"

"그렇다! 이몸의 몸을 막 만지고 내 귓가에 사랑한다고 속삭였느니라!"

"야...야 잠깐만."

히샤와 리나의 외침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순식간에 가게 앞에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게 앞의 사람들은 어린아이 모습을 한 히샤를 바라보다가 분노한 표정으로 횃불을 들고 가게 안으로 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아성애자를 불에 태워라!"

"불태우는 걸론 부족해! 고문하고 죽입시다!"

"그리고 죽은 시체를 또 매답시다!"

사람들이 내게 다가오고, 나는 창고 안으로 도망쳤다.

"변태 사장님이 창고로 도망갔어요! 이쪽에 또 문이 있으니 이리로 오시죠!"

리나가 군중에게 소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았어! 검진...해주면 되잖아. 빨리 환각을 풀어!"

나는 이렇게 말하고 주머니에서 3골드를 꺼내 창고 한가운데에 던졌다. 순간 창고가 일그러지며 뒤틀리더니 가게 응접실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어머...역시 마음이 넓으시네요."

"역시...환각...환각이었나."

"네, 오늘 빌린 3골드는 히샤가 안볼 때, 제 몸으로 갚을게요."

"됐어, 차라리 돈을 더 내고 말지."

"힝."

"역시...귀축이었군..."

나와 리나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히샤가 날 혐오스럽게 바라보며 말했다.

"너를 들여보낸 내 잘못이지."

나는 주머니에서 포르노의 명함을 꺼내 테이블 위의 촛불에 태웠다. 명함이 촛불에 타며 뿜어낸 뿌연 연기가 방안을 가득 감쌌다.

"위대한 마법사 포르노시여 이곳에 강림하소서!"

내 주문이 끝나자 뿌연 연기가 방을 빠져나가고 방 한가운데에서 아주 밝은 빛이 퍼져 나왔다.

"홀홀홀...레너드, 오늘도 노예의 건강검진을 위해서 부른겐가?"

"아니요. 오늘은 정밀 검진만 부탁 드립니다."

"그래?...그럼 그리 하지. 매물은 이 꼬마인가?"

"예...이 아이가 어떤 종인지 식별 부탁 드립니다."

"이몸은 듀라한이니라!"

히샤가 두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홀홀홀...꼬마야 듀라한은 저주나 주술 때문에 목이 붙어있지 않아서 듀라한이란다. 너 같이 평범하게 되살아난 시체는 그냥 언데드라고 부른단다."

포르노가 이렇게 말한 뒤,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히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웬일로 친절하시네요."

"이렇게 어린애를 바라보다 보면, 내 손주 리리의 어린 시절 생각이 난다네...이렇게 어린 아이들에게 어찌 모질게 말할 수 있겠나."

포르노는 왼손에 들고 있던 완드를 히샤의 머리에 가져다 댔다.

"음....그렇구만...아니, 이런 세상에."

"왜 그러세요 포르노씨."

"이 아이...듀라한 맞는데?"

"네?"

"이런 경우는 처음이군...대체 어떻게 된 거지."

"나도 몰라! 그래도 이제 이몸이 듀라한인걸 믿어주는 거지?! 야호! 친구가 2명이나 생기겠네!"

히샤가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음, 머리가 붙어있는 듀라한이라니...나도 이런 경우는 본 적이 없네...기억을 한번 읽어봐야겠어."

포르노는 히샤의 머리에 손을 갖다 댔다. 포르노는 순간 얼굴을 찡그리고, 히샤를 힐끗 바라보더니 리나에게 손짓해 히샤의 귀를 막도록 시켰다. 히샤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는 것을 확인 한 뒤, 포르노는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이건 의외로군. 이 아이, 리만제국의 지하연구소 출신인 것 같네."

"그...그게 무슨 말입니까. 리만제국에서 마리아리온까지는 말도 안되게 먼 거리인데요. 그럼 이 아이가 그 먼 거리를 단순히 두 발로 걸어왔다는 얘기입니까?"

"...이 아이는 죽었을 때 당시에 어린아이였고, 언데드가 된 지는 10년이 넘었네...다만 이 아이는 실험에 의해서 강제로 마물이 된 경우라서 부작용으로 지능이 많이 떨어진 듯 하군. 더군다나 어린시절의 충격적인 경험들 때문에, 기억 또한 유년시절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네."

포르노가 내게 굳은 표정으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가, 무언가 나와 포르노 사이의 무거운 분위기를 읽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히샤를 발견했다. 그는 이내 히샤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히샤는 포르노의 미소를 보고 안심했는지, 다시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린 나이에 안됐군. 아마 죽고 나서 언데드인 상태로 저주 때문에 목이 떨어진 대부분의 듀라한들과 달리 이 아이는 살아있을 때, 강제로 목을 자른 다음 언데드로 부활시키면서 매우 기형적인 형태로 듀라한이 된 것 같네."

"정말 끔찍하군요."

"왜? 무슨 얘기 하는 거야? 이몸도 껴줘!"

나는 히샤가 외치는 소리를 듣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몸 군데군데 나있는 상처가 왜인지 그녀가 감내해온 수많은 괴로움을 대변하는 듯 했다. 포르노는 히샤의 머리에서 손을 떼며 말했다.

"음...기억은 모두 읽었네. 어린 나이에 괴로운 기억을 감당하지 못하고, 강제로 기억을 지워버린 부분이 많아서 이 이상 알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군."

그가 안타까운 표정으로 히샤를 바라보며 말했다. 포르노는 리나에게 손짓해 히샤의 귀를 막고 있던 손을 떼라고 지시했다. 리나 역시 슬픈 표정을 지으며 히샤의 귀에서 손을 뗐다.

"이 아이를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는 겁니까?"

"....글쎄 그건 연구를 해봐야지. 그렇지만...별로 가능하다는 생각은 안 드는군."

"비극적인 답변이군요."

"음...레너드,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도 되겠는가."

"...네, 그러시지요."

"이 몸? 이 몸을 자네 같은 노인이 감당할 수 있겠나?! 이몸은 무려 머리가 붙어있는 듀라한이라고!"

"계속 그 소리네...이제 믿을게. 미안해."

"그래? 그럼 어서 친구를 넘겨라!"

"...여전히 그날을 헤매고 있는가...일단 골드를 주게, 오늘은 이만 돈을 받고 돌아가야 할 것 같군. 이 아이가 지낼 곳도 만들어 줘야 하니 말이야."

"여기 있습니다."

나는 포르노에게 3골드를 건넸다. 포르노는 돈을 품에 넣고 히샤의 손을 잡았다.

"그럼...이제 집으로 돌아가자꾸나"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히샤에게 아련한 마음이 들어,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히샤는 왜인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우리 어디 가는 거야?"

히샤가 내 얼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포르노를 바라보며 말했다.

"홀홀홀...네 친구인 듀라한들이 가득한 곳이지. 이제 실컷 친구들이랑 놀 시간이란다."

"실컷 놀 수 있다고?...이미 충분히 놀긴 했는데...친구가 많다니...이몸! 거기 좋아! 빨리 가자!"

듀라한은 포르노의 다리를 안았다. 포르노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히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꼬마야."

"왜그래?! 아저씨 가게의 친구들한테는 미안하다고 전해줘! 대신 가끔 놀러 올게!"

"이거 받아라. 친구들한테 자랑해야지."

나는 그녀에게 아까 받은 1골드를 건네주었다.

"앗! 이 몸의 동전! 이걸 대체 언제 훔쳐갔느냐!"

히샤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내게서 1골드를 재빠르게 낚아 채갔다.

"...음...이게 그 동전인가...잘했네 레너드 훌륭한 판단이야."

"네?"

"아닐세...그럼 이만."

이내 포르노는 히샤와 함께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나는 그가 떠난 후 자리에 앉아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았다.

왜일까, 내게 처음 동전을 건넸을 때와 내가 그녀에게 동전을 돌려주었을 때, 나와 만난 후, 늘 밝게 미소 짓던 히샤는 왠지 굉장히 슬픈 표정을 지었었다. 그 오래되고 냄새나는 낡은 동전 하나가 그 아이에게 어떤 의미였을지는, 지금의 나로선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왜일까, 동전을 받은 아이가 내게 돌려준 밝은 미소가 내게 그 동전이 어떤 의미인지 귀띔해주는 듯 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고 소파에 등을 기대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내가 상상한 그곳에서 히샤는 자신과 같은 언데드 친구들과 놀며 즐겁게 하루를 보냈다. 나는 자세를 고쳐 잡고 앉아 져가는 노을을 바라보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

$오늘의 지출 ­ 3골드 (포르노의 정밀검진비)

. 오늘의 매물 ­ 머리가 붙어있는 듀라한 히샤 (0골드)

. 이번달 가계부 ­ ­8골드

­­­­­­­­­­­­­­­­­­­­­­­­­­­­­­­­­­­­­­­­­­­­­­­­­­­­­­­­­­

­­­­­­­­­­­­­­­­­­­­­­­­­­epilogue

나는 히샤! 나는 듀라한을 좋아해! 어렸을 적에 집 근처에 나타난 걸 본 적이 있는데, 너무너무 멋있었거든. 근데 그거 알아? 나도 듀라한이야~! 그것도 목이 붙은 듀라한! 엄마 아빠는 이게 엄청 대단한거래! 어떡하지...사인을 연습해둬야겠어!

오늘도 엄마 아빠와 이상한 실험실에서 이상한 놀이를 같이 했어. 너무 아프고 괴로웠지만. 엄마 아빠랑 함께 있어서 괜찮아! 그런데 오늘은 이상하게도 엄마랑 아빠가 방에 없네...어떻게 된 거지?

나는 외로워서 구석에 앉아있다가, 천장의 얼룩을 세면서 놀았어! 그런데 고개를 너무 높이 들어서 목의 흉터가 따가워져서 그만 울고 말았어...하지만 괜찮아! 난 벌써 7살이니까! 이 정도는 가볍게 넘길 수 있지! 그런데...조금 졸리네....

한 숨 자고 일어나니 눈앞에 엄마랑 아빠가 날 다급한 표정으로 깨웠어! 엄마 아빠도 참...얼마나 신나게 놀았길래 머리가 다 까져서 피가 나는 거야. 다음엔 나도 데려갔으면 좋겠다.

"어디 갔다 왔어요? 또 나만 빼고 논거야?!"

나는 화내면서 말했어.

"놀았냐고...? 아...당연하지! 너무 재밌었는걸~이번엔 히샤도 껴줄까?"

엄마는 날 슬픈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비웃는 듯이 쳐다보며 말했어...분해.

"응! 나도 놀래!"

"여보...시간이 없어...어서 히샤를 내보내야 해..."

"쉿. 날 믿어줘요. 히샤야, 엄마랑 술래잡기 할까?"

"에이, 숨을 데가 침대밖에 없어서 너무 지루해!"

"에이, 아닐걸?"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침대 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어. 어라...? 웬 구멍이 있네? 이번엔 내가 이기겠다!

"그럼 이번엔 엄마가 10분이나 기다려 줄 테니까, 되도록 깊숙한 곳에 숨어야 한다?"

"아...좁은 곳은 싫은데...난 좁은 곳이 싫어!"

나는 화를 내며 팔짱을 꼈어. 좁은 곳은 냄새나고 눅눅해!

"아니야 여보, 비켜봐. 우리 히샤....그럼 이렇게 하자. 아빠랑 전혀 색다른 게임을 하는 거야 어때?"

"뭐...뭔데?!"

"히샤야...이거 받아. 여기 이 돈을 받아서 제일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안돼요 여보, 히샤한텐 너무 어려워요. 얜 이제 겨우 7살이라고요."

"안돼...잘 생각해보니 술래잡기라고 설명하면, 얘가 도망치다가 지루해져서 다른 사람한테 말을 걸 수 도 있어. 이제 진짜 시간이 없어, 히샤를 최대한 안전하게 밖에 보내야 해. 당신이 얻은 능력...이 썩어 빠진 연구소의 저주라고 생각했지만 이번만은 유용하게 써먹자고."

"설마...제 능력으로..."

"그래 암시를 걸어...히샤가 살려면 그 방법밖엔 없어."

"뭔데...엄마 아빠 왜그래...그냥 평소에 하던 게임을 하자! 내가 이번엔 특별히 술래해줄게! 아니면 또 역할 극을 할까? 이번엔 내가 아빠 역할을 할게!"

"...아빠 역할...그래 그거야! 히샤야, 그럼 이렇게 하는 게 어떄? 아빠를 닮은 사람을 찾을 때까지 사람들한테 안 잡히는 놀이야. 아빠를 닮은 사람을 만나서 여기 이 돈을 건네고 널 멀리 데려가 달라고 말하면 네 승리!, 아빠한테 잡히면 네 패배. 그리고 만약 그 외의 다른 사람들한테 잡히면...우린 다신 히샤랑 안 놀 거야."

"너무해! 그런 게 어딨어!"

"대신 네가 이기면, 그때부턴 엄마 아빠가 히샤가 하라는 거 다 할게. 어때?"

"음...그럼...딴 말하기 없기야?"

"아니에요...그러면 안 돼요...이 아이가 안전한 곳에 갈 때 쯤엔...그 이상 멀리 가는 게 의미가 없을 거예요. 그리고...더 안전하게 암시를 걸어야 해요..."

엄마는 이렇게 말하곤 내 머리 위에 손을 올렸어. 손에서 빛이 나네...신기하다.

"히샤야...멀리 가서 아빠를 닮은 긴 수염에...금발인 남자를 만나면...절대 먼저 말을 걸지 말고 멀리서 바라만 보도록 해...착한 사람이라면 네게 먼저 친절하게 말을 걸 거야...이상한 사람이면 네게 손찌검을 하거나 위협적으로 말하겠지...그럼 도망쳐!"

"깜짝이야!"

순간 내가 놀라서 엄마의 손에서 머리를 뗐어. 그랬더니 엄마 손에서 빛나던 빛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어. 신기한 걸. 엄마는 나를 바라보다가 또 한번 내 머리에 손을 올렸어. 또 빛이 난다...

"알았지? 그리고 안전하게 그 사람 집으로 들어가서...시간이 흘러 그 사람과 친해지면...염치 불구하지만 또래 친구를 한 명 소개해 달라고 해. 우리 히샤는 노는 걸 좋아하니까...미안해...엄마는 바보라서...이..이 이상 히샤한테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네...그래도, 엄마가 이상하게 말했어도...히샤는 잘할 거야...우리 히샤는 무려! 목이 붙어있는 듀라한인걸. 그 골드를...꼭 소중하게 간직해...널 도와줄 사람한테 넘겨야 해...절대 다른 사람에게 주지마..."

이 말을 마지막으로 엄마는 내 머리에서 손을 뗐어. 빛이 또 들어온다. 신기한 기분이네.

"그...그래! 이제 도망가?"

"어서 가렴. 그러다 따라잡히면 히샤가 싫다고 말한 술래잡기만 할 거라고?"

아빠가 나를 향해 다가오며 말했어.

"내가 이겨서 딴 게임 할 거지롱~"

나는 이렇게 말하고 침대 밑에 기어 들어갔어..역시 냄새나...

"자, 그럼 경기 시작."

엄마랑 아빠가 나한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어. 그리곤 구멍을 막아버렸어. 구멍을 안 쓰고 날 어떻게 찾으려는 걸까. 엄마랑 아빠는 바보네.

나는 좁은 틈을 기어서, 열심히 기어서 밖에 나갔어. 검은 연기가 나고...세상에, 얼굴에 가면을 쓴 무서운 사람들이 한 가득이네...얼굴이 안보이니 일단 피해야겠다.

나는 걷고 걸었어...걷고 또 걷고...윽, 저 사람은 좀 무섭게 생겼네 피해야겠다. 하마터면 큰일 날뻔 했네.

지루하게 걷고 또 걷고 여긴 어디지? 물속인가?...그래...바닷속을 걷고....아 돌아가는 길 잊어버렸다. 어떡하지...어차피 아빠가 금방 찾을 테니 괜찮겠지!

...가끔 졸리니까 자고...아빠가 준 골드를 바라보면서, 누구한테 부탁해야 하더라...어..어떡해! 골드에 이상한 게 묻었는데 안 지워져...아빠가 이걸 보면 화내겠지..아니 엄마 동전이었나...

가끔 외롭고 고독해서 발을 멈춰 서면, 엄마가 내게 보여줬던 그 빛이 날 인도해줘...그래도 이제 그만 쉬고싶다아...

기억이 안 나네...내가 누구였더라....저 빛...히샤...맞아 난 히샤야! 근데 뭐하고 있었더라...난 듀라한이고...그래 여기 웬 동전이 있고...친구...그래 친구를 만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아닌가...누굴 닮은 사람을 찾으려고 했었나...

.....여긴 어디지....육지다아...집에 가고 싶다아...엄마의 케이크....배고파아...

어지럽네...여긴 냄새도 독하도...쥐들도 많고...이젠 하수도도 지겨워...슬슬 밤인데 거리에 나가볼까...근데 들키면 못 노는데...누구랑 못 놀더라...일단 사다리를 타고..엇! 찾았다!...아닌가...

일단 그 이상한 사람을 쫓아왔는데...저 사람이 그 사람인가?!...창문 안에 있는 사람이 어제 내가 본 그 사람 같은데...금발에....긴 수염....

나는 창문 안을 바라보고 또 바라봤어...너...너무 대놓고 봤나? 드...들켰다...나한테 다가오는데 어떡하지....도망갈까? 이상한 사람인가?...근데 이제 사람을 피해 다니는 건 지겨운데.

내가 고민하며 주저하는 사이 그 남자가 창문에 와서 내게 물었어.

"저기...혹시 우리 가게에 무슨 볼일이 있니...?"

친절하게....말했다...이거 이긴 거 맞지?

"...드디어! 보았구나!"

나는...드디어 도착했구나!...내가 이겼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