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 주인을 살해한 마리오네트 크롬
* * *
"어머, 사장님. 어제 성교육 시간에 배웠는데. 노예나 마리오네트가 주인을 강제로 범하는 건 범죄가 아니래요."
리나가 싱글벙글 휘파람을 불며 말했다. 그녀는 묘하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 무슨 그딴 성교육이 다 있어."
나는 내 귀를 의심하며 신문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리나를 바라보았다.
"크크크...그러게 어제 마리아리온 공인 성교육 센터를 보낸다고 하셨어야죠. 성교육 센터로 가라고 하셔서 페티쉬 성교육 센터로 갔다고요. 이건 제 승리네요."
"그러냐. 근데,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네."
"네, 오늘 가게에 저랑 친한 손님이 오기로 했거든요."
"...그걸 나한테 말하지 않았다는건..."
"네, 사장님이 피곤해 하는 스타일의 손님이거든요."
리나가 나를 비웃듯 고개를 들어 날 내려다보았다.
"...설마, 어떤 유형이야."
"유형이라...바보인데요."
리나가 팔짱을 끼고 고민하듯 대각선 위쪽으로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쉐릭?"
"그 바보는 저도 싫어해요."
"음...또 누가 있지."
"....음홧홧! 레하!"
순간 리나의 뒤에서 매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설마."
"자요! 선장님, 빨리 들어와요! 지금이에요!"
"...."
드레이크는 그의 옆에 여자 한 명의 손을 나무 수갑으로 결박한채로,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뚜벅뚜벅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레하! 리하! 이게 해적식 인사랍니다! 아차차, 전 지금 마리오네트를 조종 중이니 크롬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시발년...."
드레이크가 익숙한 짜증을 느낀 듯 눈살을 찌푸리며 터질듯한 미간을 두 손가락으로 꾹 눌렀다.
"으엑, 화나셨나요?"
샤샤가 조금 주눅 든 표정으로 드레이크의 근처에 다가와 그의 안색을 살폈다.
"...1분만 닥쳐주라. 얘기 좀 하게."
"넵!"
샤샤가 경례하듯 손을 올린 뒤, 리나와 수다를 떨기 위해 카운터로 날아갔다.
"아, 안녕하십니까. 드레이크씨, 이번 출항은 쏠쏠하게 버셨습니까?"
나는 그에게 악수를 하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래, 아주 잘 벌었지. 근데 저 빌어먹을 샤샤년이 내 머리를 아프게 한다네."
드레이크가 내 손을 맞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왜 그러십니까. 역시 샤샤가 약탈할 때 너무 약해서 발목을 잡는 건가요?"
"하아....내가 저년을 노를 젓는 일을 시키려고 샀지 않는가?"
"네."
"근데 저년이 노를 젓는 선원들과 친해진 다음에, 식당 아줌마, 전투 선원, 항해사...이렇게 서서히 자신의 세력을 넓혀가더니. 이내 모든 선원들을 샤샤같은 바보로 만들었어. 멍청함이 전염되는 질병같은 존재라는 걸, 저년 덕에 똑똑히 느끼고 있지."
"....? 그게 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 간단히 말해서 해적선의 단합력이 미친 듯이 좋아져서 전투력과 일의 효율이 크게 올랐어....이 시발 이젠 저년 없이 배가 전혀 안 굴러갈 지경에 이르렀다고."
드레이크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래 이렇게만 들으면 내가 미친놈이지...잘 봐. 어이! 샤샤. 이 마리오네트랑 계약 끊어봐."
드레이크가 고개를 돌려 샤샤를 향해 외쳤다.
"어머? 그럼 저는 이제 크롬이 아닌 건가요? 크롬 이름으로 미용실 예약해 놨는데 어떡하죠?"
샤샤가 진심으로 걱정되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허허...그럼 시발 내 이름으로 해줄까? 다시 예약하던지 다른 방법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
드레이크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말했다.
"진짜요? 아싸 난 이제 위대한 해적이자 서큐버스 드레이크다!"
샤샤가 이렇게 말하고 종이를 하나 꺼내 왼쪽 눈을 가리곤 우렁차게 기합을 넣으며 가게 밖으로 날아갔다.
"....시발...조만간 다시 해군이나 들어갈까 생각 중이야."
"이해합니다."
"자. 보게."
드레이크가 샤샤와 연결이 끊겨 바닥에 주저 앉은 마리오네트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분위기가...상당히 바뀌었네요? 방금 샤샤가 조종할 때까진 분명 초롱초롱한 꼬마 인형 느낌이었는데."
"그래, 저년이 내 배의 선원들을 다 아까처럼 초롱초롱한 애새끼들로 만들었다고."
"그래도, 이 마리오네트는 주인의 마력을 직접 받기 때문에 이렇게 차이가 큰 게 아닌가요? 샤샤가 밝고 쾌활해서 배 분위기가 조금 밝아진 것 같은데, 본인 스타일이 아니시더라도 충분히 배에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생각..."
"...잘 들어보게."
드레이크는 내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쉬며 관자놀이에 거대한 힘줄을 드러냈다.
"아까 식당 아줌마 얘기를 해줬지? 지금 해적선 식당 영양사는 샤샤한테 완전히 물들어서, 일년 내내 식단을 케이크, 푸딩, 설탕 토마토 같은 애새끼 식단 만으로 구성해서 무려 1년치 식단을 짜놨다고. 시발 조만간 치과의사를 내 배에 들여놔야 할 지경이야."
"...선장 아니셨습니까? 그냥 다른 식단을 짜라고 하시면 되지 않겠습니까?"
"나 빼고 다 맛있다고 처먹는데 어떡해. 그대로 쫓겨날 일 있나? 가뜩이나 개개인이 강하기로 소문난 내 배의 선원들인데. 만약 그렇게 좋아하는 식단을 강제로 바꿔버리면 범인을 찾아서 그대로 대포에 넣고 쏴버릴 걸."
"허허..."
나는 황당한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내가 항해사도 전염됐다는 얘기를 해줬던가?"
"네. 아마 해주셨을 겁니다."
"그래, 그 역시 샤샤한테 영향을 받아서. 이젠 비가 오든 번개가 치든 그저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선원들과 시 낭독시간을 가진다고. 참고로 원래 계획대로면 여기 일주일 전에 도착했어야 한다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빌어먹을 항해사가 선원들과 시낭독...가끔 시가 안 써지면 갑판에서 동료들과 일광욕을 즐기다가 낮잠을 쳐 잔다고. 나 진짜 뒤질 것 같아 레너드. 예전엔 거친 파도와 암초에 배가 좌초되어 죽을까봐 걱정이었지만. 이젠 스트레스로 뒤질까봐 걱정이라네."
"그...그럼 엄하게 처벌하시고 규율을 잡으시면."
"혹시 아까도 얘기하지 않았나? 배의 선원의 10%가 시 낭독시간에 즐겁게 모여서 시를 낭독해. 나머지 90%는 뭐하냐고? 시발 열심히 낭독하는 시를 귀 기울여 듣지. 저번엔 세이렌을 만나서 배가 좌초될 뻔 했는데. 세이렌이 아무리 울어 제껴도 열심히 시를 처 읽더군. 그 모습에 감명 받은 세이렌이 내 배의 선원으로 자처해서 들어왔지. 그래서 요즘은 그 세이렌도 매일 12시에 선원들과 함께 즐겁게 시를 낭독하고 있다네. 아, 말하고 나니 좆같네."
드레이크가 이를 악물고 말하다가 이내 이빨이 살짝 깨져 입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허..."
나는 조용히 샤샤의 위대함을 느꼈다. 그리고 한 명의 바보가 그룹 전체를 바꿀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느꼈다.
"그럼 샤샤를 없애면 배가 돌아가지 않는 겁니까?"
"...뭐, 사실 작정하면 되돌릴 수 있긴 하지."
"오, 그럼 역시 선장님도 샤샤가 조금은 정들으셨나 봅니다. 저였으면 바로 환불 했을 텐데."
"..."
드레이크는 그 뜻을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조금 안심했다. 노련한 장사꾼의 감각에 의하면, 저 표정은 분명 샤샤를 환불 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뭔가 더 깊은 이유가 있어 보이지만 그건 내가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으악! 사장님! 실수로 가게 주소를 착각해서 게이 클럽에 사장님 이름으로 예약해 버렸어요! 저 근육 아저씨들은 무서운데...대신 취소해주시면 안돼요...?"
그런데, 얘기가 진행되던 와중에 갑자기 문을 박차고 샤샤가 입에 거대한 와플을 문 채, 헐레벌떡 가게 안으로 뛰어왔다.
"...시발...시발!!....개 씨발!!!!"
드레이크는 샤샤의 얘기를 듣고 품에서 총을 꺼내 샤샤를 쏘려다 이내 품에 가지고 있던 십자가를 꺼내서 기도를 올린 뒤, 자리에 풀썩 주저 앉았다.
"...몇 시 예약이야..."
"우물우물....15분 뒤요....와, 미쳤다 엄청 달아요. 한입 드실?"
순간 드레이크가 샤샤의 얘기를 듣고 자신의 입에 총을 넣고 마구 방아쇠를 당겼다.
틱 틱 틱 틱 틱
"아 시발, 나 좀 죽여줘 레너드. 내 총은 아군을 공격하질 못해."
드레이크가 허탈한 표정으로 내게 총을 넘긴 채, 눈을 꼭 감고 소파에 드러누웠다.
그런데 이내 뭔가 해탈한 듯, 다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내게서 그의 총을 건네받고 비틀비틀 카운터로 걸어갔다.
"아...좆같군. 잠시 게이 클럽 예약을 해지하고 올 테니. 이 마리오네트를 구경하고 있게나."
그는 샤샤를 증오심이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가, 이내 내게 건네받은 총을 천천히 품에 넣으며 말했다.
"...아, 그러고 보니 이 마리오네트는 무슨 목적으로 데려오신 겁니까?"
"...샤샤에게 듣게, 난 바빠서."
"사댱님...후하...오는 길에 게이 클럽 옆에 있는 떡볶이 가게에서 치즈 떡볶이 2인분만..."
와플이 뜨거운지 샤샤가 입김을 불며 말했다.
"...내 꺼도 넣은 거냐?"
"그럼 3인분..."
샤샤가 수줍게 손가락을 펴서 드레이크에게 내밀었다.
"하...내 인생이 어쩌다가..."
드레이크는 작은 눈물 방울을 눈에서 흘린 뒤, 조용히 문을 닫고 가게를 나섰다.
"그래서, 저 마리오네트는 뭐야? 요즘 보기 힘든 구형 매물이네."
"어머, 매물 아니에요. 마리오네트는 레너드씨한테 맡기려고 데려온 거예요."
"맡기다니. 왜?"
나는 고개를 돌려 마리오네트를 바라보았다. 마리오네트는 이미 마력이 끊겨 의식을 잃고 바닥에 널브러진 상태였다.
"그게...이 마리오네트는 주인을 죽이고 절대 어겨선 안되는 해적의 규율인 동료를 살해하면 안된다는 규정을 어겼거든요."
"...그럼 그런 중 범죄자를 폐기하지 않고 내게 맡기는 이유는 뭐야?"
"으엑...그걸 알았다면 전 드레이크 선장님이 아닐까요?...잠깐...그러고 보니 전 지금 드레이크 선장님인데....? 맙소사. 알 것 같아요!"
"뭔데."
"정답은 마리오네트를 너무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 같아요!"
"어머, 샤샤씨는 천재네요."
리나가 옆에서 쿡쿡 웃으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풋, 그래 네 그런 헛소리가 가끔 그립긴 했어. 뭐, 알 리가 없는데 물어본 내 탓이지. 자 빨리 이거 옮기는 거나 도와줘. 파는 용도가 아니라 단순 보관이면 내가 따로 관리하는 창고에 넣어 놔야겠어."
나는 마리오네트를 직접 들어 옮기기 위해 바닥에 쓰러진 크롬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어, 그게...지...직접 만지시면 안되는데...아닌가...혹시 마리오네트를 조종해본 경험이 있으세요?"
순간 샤샤는 조금 난처한 듯, 날 바라보며 무얼 할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안절부절 못했다.
"...왜그래? 당연히 없지. 이런 구식 장비는 쓰는 사람만 쓰는..."
그런데,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마리오네트에 손이 닿은 내 오른 손을 마리오네트가 강하게 붙잡았다.
"...?!"
나는 갑작스러운 괴력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크롬에게 들려 공중에 떴다가, 그대로 테이블 위에 꽂혔다.
"사..사장님!"
"주인님!...아니 레너드씨!"
샤샤와 리나가 재빨리 내게 날아오려 날개를 펼쳤다. 하지만 크롬은 어느새 내 목에 부서진 테이블 조각을 갖다 대며 리나와 샤샤에게 물러서라는 손짓을 했다.
"...무기를 내려놔..."
리나가 붉은 눈을 반짝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해코지 안 할께. 다만, 드레이크와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 너도 알고 있을텐데. 마리오네트는 주인의 마력과 같은 힘을 가지지. 날 조종할 줄 모르는 이 아저씨의 마력을 맘껏 쓰는 나는 지금 이 아저씨 만큼 강해서 이 아저씨는 확실히 죽일 수 있다고."
크롬이 이렇게 말하며 내 목을 팔로 감아 강하게 졸랐다. 리나가 이를 악물며 샤샤와 함께 크롬을 공격하려 했다.
"윽."
순간 크롬이 리나와 샤샤의 살기를 느끼고 위협을 위해 내 목을 조금 찔러 피를 내보였다. 내 피를 본 리나와 샤샤가 움찔하며 몸을 뒤로 뺐다.
"왜 아까까지 아무 말도, 행동도 안 하다가 갑자기..."
"제대로 조종 당하는 마리오네트는 절대 주인의 의지를 거스를 수 없어. 마력이 없으면 움직일 수도 없는 존재. 하지만, 조종할 줄 모르는 사람의 마력을 흡수하면 일시적으로 자유를 얻지. 미안하게 됐네...댁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이렇게 폭력적으로 굴지 않아도 충분히 평화적인 해결이 가능할 텐데."
"...미안하지만 난 해적이라 선장 말고는 아무도 안 믿어서 말이야."
크롬이 내 목을 겨눈 채,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정문을 지나 천천히 가게 밖으로 나갔다.
"...그쯤 해라 크롬. 꼴사나운 짓이다."
그런데, 가게 바로 앞에서 왼손에 떡볶이를 들고 있는 드레이크와 마주쳤다.
"...선장..."
"...치즈 떡볶이 안 판대, 카레 떡볶이로 사왔다."
그는 크롬과 나를 무시하고 가게로 들어가 샤샤에게 떡볶이를 보여주었다.
"으엑! 완전 아저씨 입맛이잖아요! 차라리 오리지널을..."
"...."
순간 드레이크는 조금 아련한 표정으로 떡볶이의 포장을 뜯어 안에 들어있는 떡볶이를 바라보다가. 이내 무표정한 표정으로 포장해온 떡볶이를 카운터에 던져버렸다. 샤샤는 날아온 떡볶이를 받아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떡볶이의 포장을 마저 뜯기 시작했다. 리나는 그 옆에서 조금 걱정되는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떡볶이를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뭐야, 나 걱정해주는 거 아니였어?"
"어머, 사장님. 드레이크씨가 있는데. 무슨 걱정이에요. 와, 이게 카레 떡볶이? 우물우물..."
리나는 떡볶이를 하나 입에 넣고 감동 받았는지, 가게 창고 안에 고이 모셔 놓은 트리케라 치킨의 삶은 계란을 두 개 꺼내 떡볶이 안에 집어 넣었다.
"시발...샤샤랑 리나랑 바꾸실래요?"
"지금 보니 저년도 만만치 않군."
드레이크가 즐겁게 샤샤와 하이파이브하며 떡볶이를 먹는 리나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조용히 우리의 얘기를 듣고 있던 크롬은, 드레이크를 억울한 표정으로 바라보며 내 목을 조르고 있던 팔의 힘을 풀었다. 그녀는 내 옆에 서서 한 손으로 내 오른 손목을 꽉 잡은 채, 드레이크를 향해 외쳤다.
"선장, 난 억울해. 난 널 해치려던 게 아니라..!"
"뭐, 지키려고 했다고? 지금 나보고 그걸 믿어라...?"
"물론 못 믿겠지. 그래도...!"
"미안하지만. 난 내 최고의 선원이자 내 아내였던 알리사를 죽인 배신자에게 어떤 말도 듣고 싶지 않은데?"
"부디, 남은 생은 내 눈 앞에 띄지 마라. 내 아내이자 네 주인인 알리사의 목을 베어버린 네년을... 네 옛 주인 드레이크가 용서한다 하더라도 해적 드레이크는 결코 용서할 수 없어. 내 배와 해적의 암묵적이고 절대적인 규율에 따라, 넌 앞으로 내 해적선에 영원히 다시 탈 수 없다."
"...그럼, 그 어떤 진실도 알고 싶지 않아? 그저 좋은 추억으로 남긴 채, 저 샤샤와 선원들처럼 바보로 살 거야?"
"...내가 왜 바보 같은 행동을 하는 선원들을 샤샤의 주도 아래 그저 가만히 바라보며 나뒀는지 아나?"
"..."
"사연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세상엔 진실을 알고도 거짓을 골라야 할 때가 있다. 내 말을 이해 못하겠다면...뭐, 굳이 설명할 필요가 있는가. 이제 넌 내 선원도 아닌데."
드레이크가 고개를 돌려 가게 안에 떡볶이를 다 먹고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서있는 샤샤를 바라보았다.
"샤샤! 이제 가자. 슬슬 출항이다."
"저...적어도 내 동료들에게 진실을...."
"그 이상 말을 아껴라 크롬. 순순히 처벌을 받아들여라. 이 모든 건 네가 해적단의 원년 멤버이기에 대다수의 간부들이 편의를 봐줘서 이 정도의 처벌로 끝난 거야. 그저 죽지 않은 걸 감사히 생각해."
"나는 억울해! 평생을 당신의 자랑스러운 마리오네트로서 싸우고, 당신이 해적이 되었을 때도! 단순한 마리오네트가 아니라 내 스스로를 네 배의 선원으로 생각하면서 자부심 속에 살아왔다고! 아무리 싫어도 당신의 명령이라면 따랐어! 그런데, 오직 당신을 위해 살아온 내게 어떤 명예도 없이 이런 억울한 끝을 내는 건...그리고 결국 너도 동조..."
순간 분노에 가득 찬 크롬의 외침을 듣고있던 드레이크의 표정이 완전히 굳어졌다. 이내 그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와 나에게서 크롬을 떼어내고 그녀의 배를 거칠게 주먹으로 쳤다. 크롬이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나 역시 크롬이 균형을 잃으면서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그만 해라! 다시 말하지만 안 죽인 것에 감사해라. 이것까진 말하기 싫었지만. 널 안 죽이고 레너드에게 맡기는 것은, 네가 창관에 팔린 채로, 영원히 회복할 수 없는 수치심과 자괴감에 빠져 동료이자 내 배의 부선장을 죽인 죗값을 톡톡히 치르라고 파는 것이야. 이제 그만하고 지금이라도 명예롭게 지옥으로 떨어져라...크롬!"
그런데, 그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다가 그만 돌뿌리를 밟고 크롬의 옆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는 넘어진 채로 멍하니 해가 지는 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 크롬의 귀에 무언가 말을 속삭였다. 바로 옆에 쓰러져있던 나는 그 소리를 미약하게나마 들을 수 있었다.
"해적은 남이 볼 때 절대 울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홀로 우는 것이, 최고의 미덕이지."
크롬은 갑자기 건넨 드레이크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어 드레이크를 바라보려 했다.
"멈춰."
이내 그의 손에서 미약한 빛이 나더니 그녀가 행동을 멈췄다. 그녀의 눈빛에 빛이 사라지고 이내 완전히 작동을 멈춘 듯 보였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해적의 술잔은 거칠게 부딪히고, 누구의 축복도 없이 까마귀에게 파먹히는 것이 해적이다. 잘 있어라 크롬. 내가 돌아올 그날까지..."
드레이크는 이렇게 말하고 일어서서, 잠시 크롬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움직이지 않는 그녀의 얼굴에 침을 뱉은 후, 샤샤를 데리고 가게에서 멀리 떠나갔다.
"싸장님~ 또봐요오! 리나씨도 안녀엉! 크롬씨는...잘 있어요! 아니, 팔려간다고 했던가...?"
샤샤가 드레이크의 뒤를 따라 날아가면서 우리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나와 리나는 그녀에게 열심히 손을 흔들어 준 후, 크롬을 데리고 가게 안으로 데려왔다.
"응? 이젠 안 날뛰네?"
"어머, 마리오네트 조종은 상위 마족의 기본이랍니다?"
"응? 그럼 샤샤는 하위 마족인데 어떻게..."
"제가 예전에 케이크 하나 얻어먹은 대신에 심심해서 가르쳐줬거든요."
"그러냐."
나는 크롬을 붙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크롬은 리나의 조종을 따라 뚜벅뚜벅 걸어서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럼...잠깐만 의식을 깨울 수 있어?"
"어머, 그런 복잡한 일은 정액을 1L는 마셔야..."
"야근하고 싶냐?"
"...여긴 어디...?"
내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크롬이 어지러운지 머리를 붙잡고 주저앉았다. 옆을 보니 리나는 눈을 감고 우아하게 손을 움직이며 크롬을 조종하고 있었다.
"...이제 몰라. 그냥 죽여줘. 차라리 창관에 팔릴 바에..."
"글쎄, 드레이크씨가 다시 만나자고 속삭이던데. 못 들었어?"
"...?"
크롬은 내 말을 듣고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빛을 지었다.
"음...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해적의 술잔은 거칠게 부딪히고, 누구의 축복도 없이 까마귀에게 파먹히는 것이 해적이다. 이게드레이크가 마지막으로 네게 속삭인 얘기인데. 이게 대체 무슨 뜻이야?"
"...아, 그거...우리 해적단이 처음 결성했을 때, 내 주인이자 선장인 드레이크는 그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그래서 날 바지 선장으로 내세웠지. 그때 계집애의 말을 따르지 않겠다고 해산하려던 해적들을 향해 했던 말이 그 말이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과 해적의 술잔은 거칠게 부딪히고, 누구의 축복도 없이 까마귀에게 파먹히는 것이 해적이다.' 즉 배신이 판치고 언제 버려질지 모르는 해적의 세계에서 우리 해적단 내부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나도 결코 서로를 탓하지 말자는 뜻이야."
"생각보다 심오한 뜻이었군. 그때 있던 사람들 몇 명이나 남았어?"
"초기 멤버가 한 12명 정도 있었는데. 이제 5명 남았지. 아 이제 4명이다. 나도 한 명으로 치고 있었으니까."
"...흥미롭군. 리나야!"
나는 리나에게 손짓해 커피를 내리게 했다. 리나는 집중하고 있었는지 당황하며 흐트러진 자세로 커피를 탔다.
"으아, 사장님 깜짝 놀랐잖아요. 해적처럼 사람을 부르시는군요. 잠시만 기다려요. 바로 타올게요."
"그래."
"나도...한잔만 줄래?"
"너, 커피도 마실 수 있어?"
"....응."
크롬의 말을 듣고 리나에게 커피를 한 잔 더 내놓게 했다. 리나는 내 말을 듣고 커피를 한잔 더 내려 크롬에게 가져왔다.
"그래서, 무슨 누명을 쓴 거야? 좀 궁금하네."
나는 커피를 마시며 크롬에게 물었다.
"드레이크의 부인. 몇 년째 불임이야. 혹시 왜 불임인지 알고 있어?"
"내가 어떻게 알겠냐."
"뭐, 그렇지. 커피도 얻어 마셨으니. 특별히 설명해 줄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크롬이 커피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드레이크의 아내는 해적단 부선장으로서 드레이크가 가장 신임하던 사람이었지. 그런데 바보같이 아무도 100%믿지 않던 드레이크가 그녀를 완전히 믿어버렸지. 이것만 들어도 뭔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
"설마, 남편을 배신하고 배의 주권을 잡으려고..."
"긴 계획이였지. 대단해. 처음부터 선장 자리를 먹으려고 드레이크에게 접근 한 거였어. 그녀는 절대 아이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 본인의 자궁에 고위 불임 마법을 걸고 배에 들어와서 드레이크와 열심히 떡 치면서 아이가 생기지 않는다고 괴로워했어. 드레이크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해, 심적으로 매우 미안해서인지 그녀를 지극정성으로 돌봤어. 그렇게 아기가 갖고 싶다고 열심히 살을 부딪히고, 의심 갈 행동을 하지 않으면서 조금씩 신뢰를 쌓아 드레이크의 해적선에 7년이 넘게 잠복해 있었지...실로 대단하지 않아? 드레이크가 10년 넘게 해적 생활하면서 가장 믿고 사랑한 여자가 처음부터 그의 선장자리를 노리고 있던 배신자였다니. 끝내 드레이크는 내가 건넨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그녀의 세력이 아직 배에 남아있는데....그가 위험한데..."
마리오네트는 당장이라도 울듯 괴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눈물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마리오네트의 한계였을까. 그녀는 울듯이 얼굴을 찡그리고 고개를 숙였다가 이내 다시 무표정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았다.
"어머, 그래서 샤샤의 바보같은 단합 정책을 받아들였나 본데요. 세력이 나뉜 해적단을 하나로 합칠 좋은 기회였으니까요."
"내전을 방지하기 위해서...샤샤가 없으면 더이상 해적단이 안 굴러간다는 말의 뜻이 그 뜻 이였나."
"..."
"어쨌건. 그래서 배신하려던 알리사의 목을 네가 벤 거야? 그런데 대체 어떻게 주인을 해친 거야. 마리오네트는 절대 주인을 못 거스르는데."
"내 주인은 드레이크야. 주인이 아닌 년을 베는데 뭐가 그리 문제지?"
"뭔 소리야, 네 주인은 알리사로 바뀐 거 아니였어?"
"..."
"글쎄, 드레이크가 과연 아내에게 내 소유권을 완전히...넘겨 줬을...까?"
크롬은 알 수 없는 감정이 담긴 눈빛으로 조용히 날 응시했다.
나는 부담스러운 눈빛을 피해 창 밖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창 밖을 잘 보니, 창 밖에서 웬 해적으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가게 안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말이 길어졌군. 그럼 너는 노예동 깊은 곳, 딘의 유작인 디안느 옆에 놔주마. 분명 널 다시 데려가실 것 같으니까."
나는 남자의 기분 나쁜 시선을 보고 기분이 나빠져 일단 크롬을 노예동 안에 들여놓으라고 리나에게 손짓했다.
"...조금은 억울하네. 아니 많이 억울해. 드레이크는 독단적으로 아내를 죽여버린 마리오네트 크롬의 공범이지만...결국 그는 해적이기에 충성을 다한 부하를 이리도 냉혹하게 내쳐버렸어. 대체 왜? 내가 그녀의 목을 쳤을 때, 그냥 해적의 규율을 따라 해적 생활을 접고 적성에 맞는 해군을 하면서 살아가도 됐을 텐데. 난 드레이크의 긍지 높은 시절이 그리워. 난 오직 그를 위해 행동한 건데. 그도 막을 수 있었지만 날 막지 않았기에 공범인데. 왜 나만...왜 선원 중에 가장 진심으로 그를 생각해준 나만 이런 꼴을..."
그녀는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괴로워하다가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며 고개를 숙여 내게 정중히 예를 표했다. 해적이라고 믿기지 않는 마치 귀족 같은 우아한 인사였다.
"...말리진 않겠다. 근데, 밖에 널 지켜보는 해적이 있는 것 같은데."
나는 이렇게 말하고 창 밖에 서성이는 그림자를 바라보았다. 그림자는 내 시선을 느끼고 잠시 그 형체를 감추었다.
"잘 생각해보면. 지금 그 배의 절반은 알리사의 추종자가 굳건히 자리 잡고 있어...나는 아무리 그에게 배신 당해도, 그가 눈 앞의 보물이 탐나 해적 생활을 포기하지 못하더라도. 그 어떤 경우에라도 그를 지킬 거야. 나 긍지 높은 크롬은 주인을 위해 죽겠다!"
크롬은 내 말을 듣지 못하고 이렇게 중얼거리다가 이내 가게 창문으로 몸을 던져 소리를 지르며 가게 밖 길거리를 뛰어다녔다. 리나가 재빨리 크롬을 조종해 가게 안으로 돌려보내려 했지만 난 손을 내밀어 리나의 행동을 잠시 저지했다.
"드레이크는...크롬의 저런 행동도 예측하고 있을 거야. 잠시 실험해 보자고."
"그래도 이대로면 드레이크가 애써 크롬을 지켜준 의미가..."
"지켜준 게 맞을까. 내가 알기로 드레이크의 배는 파벌이 여러 종류로 나뉘는 데. 정말 선원들이 아무도 사건의 내막을 모를 거라고 생각해? 저 배는 원년 멤버들이 파벌을 나눠 가진다고. 그리고 그 중 파벌이 제일 약한 건 아이러니하게도..."
"아내와 파벌을 나눠 가졌던 드레이크...인가요?"
"드레이크는 아내에 대해서 이미 다 알고도 묵인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어떤 느낌인지 알겠어? 왜 진작 자기를 암살하려는 아내를 죽이고 파벌을 흡수하지 않았을까."
"글쎄요."
"내가 생각하기에, 사람은 미련하기에 작은 감정에 속아 계속 일을 미루더라고. 크롬의 말대로 알리사가 선장이 되기 위해서 과연 7년이나 긴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을 테지. 그리고 정말 드레이크가 크롬에게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주지 않았다는 이유 만으로, 몇년 째 크롬에게 직접 마력을 넣어주고 있던 능숙한 인형술사인 알리사를 고작 마리오네트인 크롬이 죽일 수 있었을까?"
"그건..."
"아마도 드레이크나 알리사나 바보 같은 감정에 속아서 쓸데없는 줄다리기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 걸 꺼야. 그러다가.."
"서로의 마음을 알았을 때..측근이 눈치채고 암살 계획을..."
"그래, 내가 봤을 때. 이 사건의 내막을 모르는 건. 주인밖에 모르는 저 바보 인형 뿐일 거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크롬의 희생과 갑작스러운 샤샤의 등장으로 나뉘어있던 배의 규율이 완전히 하나로 통일 됐겠지. 잘 봐, 아마 우리가 안 막아도 이 사실을 알고 있는 감시자가 알아서 그녀를 데려올 거야. 드레이크의 성격을 생각해 봤을 때, 그는 크롬에게 어떤 설명도 없이 이 계획을 진행했지 않을까."
"근데 그게 크롬을 안 막는 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아마도 드레이크는 공식적으로 해적선의 적이 되어버린 크롬을 다시는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아. 잘 보니 방금도 창 밖에서 감시자가 가게 안을 지켜보고 있더군. 그런데 내 관리부실로 인한 사고로 위장해서, 저렇게 아끼는 주인의 얼굴을 한번이라도 더 볼 수 있다면...굳이 내가 막을 필요가 있겠어? 아마 쟤는 죽더라도 드레이크의 얼굴을 보고 죽고 싶을 걸."
"음...그건 그렇네요. 근데요. 저는 사건의 내막에 대해서 조금 생각이 달라요. 사장님의 얘기는 알리사가 드레이크를 사랑했다는 가정 하의 얘기이시고. 크롬의 말에 따르면 아내가 처음부터 신뢰를 천천히 얻어서 배를 장악하려했다면서요?"
"그렇지?"
"제 생각이지만. 드레이크는 아내의 진실을 모르다가 우연히 깨닫게 되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는 아내를 사랑하게 되어서 조용히 묵인하고 있었고. 들키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알리사는 거사를 준비해 측근들과 함께 드레이크를 암살하려 했고. 단순히 마리오네트일 뿐이라고 생각하며 드레이크와 이어져 있는 크롬을 간과한 채로. 크롬을 거사의 일부로 넣어버린 거죠."
"그래서 계획을 알게 된 크롬이 늦기 전에 알리사를 배신하고 그녀를 죽였다?"
"네. 드레이크는 진실을 알고 있지만.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아내를 죽인 크롬을 용서할 수 없으면서 동시에 배에서 가장 믿고 아끼는 존재는 크롬이기에 이 더러운 배에서 빨리 내리게 해주고 싶었을 걸요. 또, 배의 사정을 잘 보니, 아내를 도와 거사를 준비하던 선원들이 배 운영에 있어서 핵심 멤버이기에 해당 인원을 빼면 배가 굴러 가질 않는 상황인 거죠. 그래서 바보같은 샤샤를 내세워 파벌 상관없이 강제로 화합의 분위기를 잡으면서..."
"잡음 없이 강제로 배를 샤샤를 통해 하나로 합치고, 샤샤가 이끄는 특유의 유한 분위기 속에서 크롬에 대한 선처를 내린 건가. 상당히 유능한 대처군..."
"네. 제 생각은 그래요."
우리가 얘기하는 사이, 숨이 막힐 듯 뛰고 있던 크롬이 항구가 보일 정도로 멀리까지 뛰어갔다. 그녀가 배에 점점 가까워져 갈 때, 그녀의 뒤에 한 남자가 피던 담배를 끄고 숨을 들이마셨다.
"드레이크! 드레...이...크...!"
순간 열심히 뛰어 드레이크의 배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던 크롬의 등 뒤에, 웬 창이 날아와 리나와 연결된 마력의 실을 끊어버렸다. 창을 던진 남자는 천천히 크롬에게 다가가 크롬을 안고 내 가게까지 걸어갔다. 그는 내 가게의 문 앞에 도착해 가게 정문을 두 번 발로 강하게 두들긴 후미소 지으며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안녕하시오. 난 드레이크 해적단의 간부. 유다요. 갑작스러운 등장이지만. 할 얘기만 하고 가겠소. 부디 이 크롬이라는 인형을 조종하려 하지 마시오. 마리오네트 조종은 생각보다 어려우니까. 이렇게 실수로라도 이런 고위 마리오네트에게 주도권을 뺏기면 비극이 일어날 수도 있소. 특히 이 인형은 전과가 있잖소...잘 보시게."
남자가 크롬의 몸 곳곳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이 마리오네트는 굉장한 고급 인형으로 이젠 생산조차 불가능한, 이미 죽어버린 장인이 만든 최고급 마리오네트요. 요즘은 마리오네트를 조종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값은 못 치겠지만. 관련 직종 업무자는 꽤 관심을 보일 거요. 아니면 학자한테 팔던지. 정 팔리지 않으면 인간과 비슷한 재질로 만들었으니, 창관에 팔면 오나홀처럼 써줄 거요. 설명을 듣고도 관심이 가지 않는다면...내가 가져가도 되겠소?"
유다는 이렇게 말하며 씨익 웃었다.
"아니요, 제가 쓸 겁니다. 생긴 게 제 취향이라서요."
나는 그가 안고 있는 크롬을 넘겨 받으려 했다. 유다는 내 말을 듣고 날 빤히 쳐다보다가 그녀의 머리에 웬 종이를 붙이고 내게 넘겨주었다.
"이 종이가 있으면 마력을 뺏기지 않소. 이대로 쓰시길 바랍니다. 크크크..."
유다는 만족스러운 듯,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골목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
나는 말을 마치고 사라진 유다를 바라보다가, 리나에게 손짓해 그녀를 노예동 깊은 곳에 위치한 창고에 가져다 놓게 시켰다. 리나는 마리오네트 크롬의 머리에 붙은 종이를 떼서 태워버리고. 다시 그녀를 조종해 그녀를 창고로 데려가 눕혀 놓았다. 그런데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리나가 돌아오지 않다가. 놀란 표정으로 창고에서 나와 나에게 창고에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어머, 사장님. 잠깐 창고 좀 와보시겠어요? 제 마안으로 확인하니 크롬에게 아주 특별한 장치가 하나 있었네요?"
"...그런 식으로 음산한 데로 끌고 가서 방심한 사이에 갑자기 덮칠 거 아니지?"
"아니요. 한번 봐볼만한 광경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드레이크는 크롬을 더 아꼈던 것 같네요."
"...?"
나는 발걸음을 옮겨 크롬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어, 이건..아무것도 특별한 게 없는데?"
"네, 사장님이랑 제가 문을 열고 확인하니 각인이 희미해지는 걸 보니. 확실하네요. 이제 이 방에도 음식과 관리를 시작할 까요?"
"뭔데, 뭔 소리야."
"아주 미약하지만, 아무도 없을 때 이 방에서 마력의 기운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방 문을 열어보면 크롬의 위치가 바뀌어 있고...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내일 아침에 식사를 넣을 때, 편지로 디안느와 다른 물건들을 닦고 관리하라고 적어 놔라."
나는 이렇게 말하고 다시 방 문을 꽉 닫았다.
"마지막까지 자신을 위해 헌신한 동료를 위한 의리의 표시인가."
"그러 게요. 정말 아무도 안 보는 곳이라는 말이 진짜로 주위에 사람이 없어야 된다는 뜻일 줄 알았나요. 하마터면 야밤에 노예동 순찰 도는 경비원들에게 괴담이 하나 늘어날 뻔 했네요."
그렇게 불이 꺼진 방에 홀로 남겨진 크롬의 어깨에 드레이크의 인장이 서서히 다시 새겨졌다. 아내보다 더욱 믿었던 자신의 동료, 크롬에게 남긴 드레이크의 마지막 의리의 흔적이었다.
크롬은 오늘도 홀로 방에서 일어나 디안느와 다른 골렘, 물건들을 닦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우리가 넣어준 식사를 맛있게 한 뒤,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아마도, 그녀는 드레이크가 돌아올 때까지, 그 기약 없는 날을 기다리며. 외롭겠지만. 외롭지 않은. 불명예스럽지만 명예로운 드레이크의 해적 단원으로서 오늘도 즐거운 목소리로 뱃노래를 흥얼거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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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수익 드레이크가 몰래 서랍에 넣고 간 크롬의 관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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