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노예, 제가 삽니다-83화 (83/99)

〈 83화 〉 대신교의 주교 루시아는 사악한 외과의 뮈헤인과 다소 심심한 대화를 나눠보기로 했다.

* * *

"참으로 오랜만이군요...뮈헤인."

대신교의 주교 루시아가 대신교 교회 옥상에 위치한 뮈헤인의 연구실을 찾아왔다.

"어어~그래그래. 무슨 일이지 루시아? 혹시 몸에 뭔가 이상이 생긴 거야?"

연구에 몰두하고 있던 뮈헤인은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손을 살살 흔들어 인사를 건넸다.

"아니요, 제 몸 상태는 아주 쾌적합니다...다만, 오늘 당신이 저희 교회를 떠나신다 들었는데...그게 정말 사실인가요?"

"...오, 벌써 네 귀에 들어갈 정도로 소문이 퍼졌어? 갈란드렐 그 년은 덩치만 산만하지 보기보다 입이 가볍구만?"

"...드디어 꼴보기 싫은 벌레 한 마리가 시야에서 사라질 거라며 좋아하고 계시던데요."

"나에 대해 좋게 생각할 거란 일말의 기대조차 안 했지만...시불련..."

"너무 맘 상하지 마세요. 갈란드렐씨는 천사 이외의 존재는 벌레 이하로 취급하니까요."

"...후우...그 새끼! 내 머릴 자르고 몸통을 마리아리온 대로변 한복판에 버려두고 올 때부터 알아봤다니까!...심지어 그때 두고 온 내 몸을 누가 주워가는 바람에 회수도 못했어...내 몸! 개시발!!"

뮈헤인이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연구 테이블 위에 놓인 시체를 이리저리 헤집었다.

"네..? 그럼...지금 쓰고 계신 몸은...뭐죠?"

"뭐긴 뭐야 예비용이지 시발...이 몸은 예비용이라 품고 있는 마력량이 존나 작아서 결계 치는 것도 버거울 것 같아...! 으으...시발! 레너드 다음은 너다...갈란드렐...!"

뮈헤인의 말을 듣고 있던 루시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쿡쿡 웃었다.

"어휴...그래 재밌냐? 난 매 순간이 고통이야 쉬불..."

"...음, 이게 그때 말씀하셨던...그 결계인가요? 흉측하군요."

"쓸데없는 말은...그냥 무시냐..."

루시아가 벽과 천장에 주렁주렁 달려있던 마물들의 시체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살펴보았다.

뮈헤인은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흘긋 쳐다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연구대 위에 올려져 있는 시체를 이리저리 해부했다.

"하! 흉측하다니! 이 세상에 흉측한 것은 없나니. 무언가 흉측하다면 그건 네가 아직 그것들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뮈헤인이 잠깐 동안 집중해서 긴 호스들을 시체의 몸에 연결하더니, 실실 웃으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후후후...잠시만 기다려 봐. 곧 완성이니까. 굳이 옥상에 위치한 연구실까지 찾아온 걸 보아하니...나와 꼭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보지?"

"...네, 그리 대단한 대화를 하고 싶은 건 아니고...다소 심심한 대화일 겁니다."

"오케이. 잠깐만."

이윽고 뮈헤인이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괴상한 마물 생물체에 마력을 흘려보내자.

연구실 천장, 벽에 빼곡하게 차있던 시체들에 호스를 타고 뮈헤인의 마력이 흘러들어가기 시작했다.

­­­끼이익..끼이이익!

뮈헤인의 마력 때문에 되살아난 마물의 시체들이 꿈틀거리며 날카로운 비명을 내질렀다.

­­­끼이이이익....끼익....!

그는 천장과 벽에서 꿈틀대는 마물들의 시체를 살펴보다가 시체들에 연결된 호스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팅!

동시에, 뮈헤인의 손이 팅하고 튕겨나갔고.

뮈헤인은 호탕한 웃음소리를 내며 크게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하! 역시 성공이야! 이제...레너드 그 씹새끼를 죽이는데...서큐버스 여왕이건 하이엘프의 최강의 전사건...아무도 방해할 수 없을 거라고! 아하하하하하!"

뮈헤인이 호탕하게 웃자 루시아는 조용히 뮈헤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 정도 수량의 언데드를 조종하시려면...마력이 상당히 많이 필요하실 텐데...괜찮으시겠어요? 예비용 몸의 마력량이...원래 쓰시던 몸의 마력량보다 훨씬 적다면서요. 괜찮으시겠어요?"

"...크크크...나이먹은 전직 용사 잡는데 뭐 그리 많은 마력이 필요하다고...크크크크..."

"그 새끼를 죽이는 덴 원래 내 몸이 지니고 있던 힘의 1%만 사용해도 충분해. 고로 약해빠진 이 몸으로도 늙다리를 죽일 힘은 충분하다 이 말이지..."

"완벽한 기회를 버리고...적은 마력량으로...복수를 행하는 데만 급급하신 모습이...전 조금 염려가 되네요."

"...무슨 말이지?"

"제 말은...너무 그를 향한 분노에 눈이 멀어 쉽게 잡을 상대와 너무 어려운 방식으로 싸우시려는 건 아니실까...걱정이 된다 이 말입니다."

"너도 배달음식인줄 알고 문을 열어줬다가 허무하게 평생 쌓아온 연구 데이터와 가장 아끼던 연구표본을 빼앗기게 되면...나처럼 복수에 완전히 눈이 멀어버릴걸?"

뮈헤인이 히죽히죽 웃으며 연구하느라 굳어버린 그의 몸을 이리저리 스트레칭했다.

"당신의 뜻이 그렇게 확고하다면...제가 이 이상 딱히 드릴 말씀이 없군요."

루시아가 인자하게 웃으며 말하자, 뮈헤인은 고개를 작게 끄덕이며 그녀를 향해 접이식 의자를 하나 던져주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지? 앉아서 얘기하라고. 다리 아프잖아."

"어머, 친절하셔라."

"다만 손님이 뜸해서 의자 쓸 일이 없어서 먼지가 쌓였으니. 신경쓰이면 털고 앉으라고."

"네."

루시아는 뮈헤인의 조언을 무시한 채 먼지가 수북한 의자 위에 털털하게 앉아버렸다.

"그래그래,대신교의 위대한 주교께서 이 미개한 연구원과 나누고 싶은 대화가 무엇이신가? 힘의 통제법? 정비한 몸의 주의점...? 뭐든 답해주겠다만...너무 뜸 들이지 말고 물어보라고. 이 밤이 지나기 전에 레너드의 목을 따버릴 생각이니까."

뮈헤인이 창 밖에 뜬 달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냥 시체들에 마력을 충분히 공급한 뒤에...치밀하게 준비하고 가시는 게 낫지 않으시겠어요?"

"10년이다 루시아. 10년! 감옥 벽에 매일 머리를 박으며 꿈꿨던 10년! 미룰 수 없고. 쉽게 끝내주지 않을 10년이란 말이야! 난 오늘 죽일 거야. 공을 들여서. 아주 길고 깊은 고통을 줘서...죽일 거라고! 절대 쉽게 안 죽여...절대로... "

"그래도, 지금 몸에 품고 계신 마력으로는...퇴근 길에 붙어다니는 에스메리엘이나 뱀파이어 여자애랑 맞붙게 되면...아슬아슬한데요?"

"아슬아슬 한 거지 지진 않을 거야...그런 놈들 한둘 정돈 어떻게든 처리할 수 있어! 이제 그만! 쓸데없는 간섭 하려고 온 거라면 난 이만 가보겠어!"

뮈헤인이 성을 내며 창문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잠깐 기다려요 뮈헤인. 기분이 상하셨다면 죄송하군요. 이 이상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도록 하죠."

"또 그러면 그냥 가버릴 거야!"

루시아의 말을 듣고 뮈헤인이 발걸음을 멈춘 뒤 뚱한 표정으로 돌아서서, 팔짱을 낀 채 루시아를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뭐 알겠습니다. 너무 염려 마시길. 딱 3가지. 3가지 질문에 답을 주신 뒤엔...그 어떤 것도 묻지 않을게요."

"그것 참 희소식이군. 너나 갈란드렐이나 상대방의 심경을 좀 헤아리면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니까..."

뮈헤인이 피가 흥건한 연구실 테이블 위에 털털하게 걸터앉았다.

루시아는 잠시 머뭇하더니, 이내 평온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첫번째 질문...제 생물학적인 부모는...아직 살아있습니까? 아니면...전 부모 없이 태어난 건가요?"

"...핫핫핫! 뭐야. 그딴 질문을 하려고 그렇게 뜸을 들인 거야? 하하하하하! 아이고 배야!"

뮈헤인이 배를 잡고 웃으며 벽에 매달려있던 오크 시체의 입꼬리를 올려주었다.

"자, 여기 네 생물학적인 할아버지가 계시고..."

뮈헤인은 두리번두리번 시체들을 살피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네 할머니인 하위 천사는...아쉽게도 표본이 없네 ㅋ."

"그럼...제 아버지는 하위 천사와 오크...사이에서 태어난 자 인가요...?"

"맞아. 네 아비는 똑같은 에너지원을 품고 있는 마물과 천사의 교배를 통해 만들어졌다..."

"..."

"그리고 네 어미는 포레우시아 디에르소 왕국에 숨어 들어가 납치했던...어느 우수한 여전사였다...뭐 널 낳다가 죽어버려서 정확한 이름이나 나이는 모르지만."

"..."

루시아가 표정변화 없이 뮈헤인의 애기를 경청했다.

"어때? 궁금증이 좀 해결됐어?"

"...네...뭐. 생각보다 별 게 없네요...근데, 이종교배란 게 생각보다 쉬운가 봐요?"

"야, 너야 결과만 쏙쏙 빼 들으니 쉽지 쉬발련아. 교배 가능한 천사와 마물을 찾느라 희생된 마물들만 1000마리...아니 10000마리가 넘어! 심지어...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낸 네 아비도 너무나 불완전하게 태어나서 언제 숨이 끊길지 모르는 상태였어."

"..."

"뭐, 그래도 숨이 끊기기 전에 디에르소 왕국에서 납치한 여전사와 단 한번만에 교배에 성공해서 참 다행이었지만."

"그렇군요..."

"다만 아쉬웠던 건...네 육신은 네 아비보다 안정적인 상태였지만....네 몸의 조합 비율이 너무나도 조잡했다는 거다. 이 비율은...내가 목표로 삼았던 완벽한 삼위일체에 근접하기는 커녕 인간 60%, 천사 25% 마물 15%라는 내 목표와는 다소 거리가 먼 결과였다고!"

"...그렇게 큰 실망에 빠져 있을 때...리만 제국의 유명 브로커에게 윈디네의 표본을 구하는데 성공했고...제 연구를 그대로 마무리해버린 거군요?"

루시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뮈헤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완벽한 삼위일체의 표본이 있는데. 굳이 하위품을 쓸 필요가 없으니까. 지금에서야 넌 상위천사의 피부를 이식하고...츠페리얼의 신체 일부를 이식받아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데 성공했지만... 그때 당시의 넌 나에게 네 표본으로서의 연구적 가치는 사실상 0이었으니...이해하지?"

루시아가 조금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가, 잠시 후 다시 뮈헤인을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그럼 두번째...지금 제 몸은...방금 말씀하신 대로 정말 완벽한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는 건가요? 아니면...뭔가 불안정한 상태...인가요? 만약 불안정하다면...제가 뭔가 특별히 주의해야할 사항이 있을까요?"

뮈헤인이 루시아의 질문을 듣고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하! 내 그 질문 할 줄 알았다! 뭐...지금 네 몸은네 팔에 들러 붙어있던 츠페리얼의 마충과...갈란드렐에게 제공받은 그녀의 피부 dna를 이식함으로서...네 불안정했던 몸의 비율이 마침내 완벽한 균형을 이루게 됐지! 다만..."

"...다만?"

"다만! 이 완벽한 균형은 일시적인 평형일 뿐이고...신의 흉내를 내고 있는 상황이란 걸 명심해!"

"...흉내..."

"크크크...그래 넌 흉내쟁이다 루시아! 간 크게 신을 흉내내고 있는 오만한 인간이지...너도 알겠지만. 처음부터 평형을 이룬 채로 태어난 존재와...억지로 평형을 이뤄낸 존재는 하늘과 땅차이라고...그 차이를 명심하고...늘 조심해."

"..."

루시아가 그녀의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잘 이해가 안되는가 루시아? 넌 억지로 몸의 비율을 맞춰...신이 될 수 있을 구색을 갖췄을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네가 물려받은 천사로서의 능력이 뭔지도 모르는 데다가...신도에게서 아주 많은 마력을 흡수해야만 네 몸이 유지될지...적게 흡수해서 네 몸에 과부하가 생기지 않도록 막아야 할 지 아무도 모르는 상태라고!"

"...결국...흉내쟁이의...한계는 명확할 것이다...이 말이죠?"

"한계라...글쎄, 네가 지금 신이라고 불리는 것들보다 셀지 약할지는 경과를 지켜봐야만 알겠지....아! 그리고...말이 나온 김에 해주는 말인데. 만약 억지로 평형을 맞췄던 몸이...사유 불문하고 조금이라도 그 평형이 깨지게 된다면...."

"깨진...다면...?"

"그땐 예전 몸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그냥펑!"

뮈헤인이 입으로 크게 펑 소릴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

이에 루시아가 깜짝 놀라 몸을 움찔했다.

"하아...하아...질 나쁜 장난이군요 뮈헤인."

"펑~하고! 그대로 빛이 되어 사라질 거라 이 말이지!"

"..."

루시아가 덜덜 떨리고 있는 그녀의 두 손을 바라보았다.

"이걸로 이제 궁금증은 전부 해결되셨나? 나 이제 간다? 아이씨, 여유롭게 걸어가려 했는데. 뛰어야 할 수도 있겠네..."

뮈헤인이 그의 반지에 호스로 연결된 시체들을 봉인한 뒤, 창틀에 몸을 걸쳤다.

"잠깐...!"

"...?"

창틀에 매달려있던 뮈헤인이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바라보았다.

"아직...묻지 못한 게 있습니다."

"...뭔데?"

"갑작스러울 수 있겠지만...일생을 바쳐천사, 마물, 인간.이 세가지 존재를 연구해온 뮈헤인씨가 생각하기에...셋 중 가장 우월한 종족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셋다..."

"셋 다 우월하다면...그 근거는 무엇이죠?"

"...꽤나 재미있는 질문이군. 재밌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네겐...아주 중요한 질문일 수 있겠지."

"..."

"...만약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네 마지막 계획에 뭔가 변동을 주려는 거라면...만약 그렇다면...갈란드렐이 가만 두지 않을텐데? 괜찮겠나 루시아?"

뮈헤인이 팔짱을 낀 채 루시아를 노려보자, 루시아가 뮈헤인의 눈을 마주보며 말했다.

"...모든 생명체를 천사로 합치던...인간으로 합치던...마물로 합쳐버리던....그 순간이 찾아왔을 때 갈란드렐이 제게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겁니다."

루시아의 말을 듣고 뮈헤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그는 웃음을 멈추고 말을 이어가려다, 다시금 터져버린 웃음에 입을 틀어막고 진정하려 애쓰고 또 애썼다.

"...푸흣흡...하하하! 그래그래...그럼 갈란드렐을 죽일 때 꼭 나를 불러줘. 아까 말했듯이 그년한테 원한이 좀 있어서 말이야. 어때? 동의한다면 내 생각을 말해줄게. 콜?"

"...좋아요."

"오케이...음, 갑작스러운 얘기일 수도 있지만...혹시 루시아 너는 천사들이 태어날 때 어떤 원리로 태어나는 지 알고 있어?"

"신의...축복으로요?"

"땡! 순수한 이론 적으로 접근하자면...그들이 태어날 때 그들은 특정한 에너지원을 핵으로 삼아 태어나지. 너무 어려운 설명인가?"

"...헷갈리는군요. 그게 무슨 말이죠?"

"쉽게 말해주지. 예를 들어 불이라는 에너지원이 있다. 아직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특정 이유로 이 불이라는 에너지가 한 곳에 응축되면서...불을 핵 삼아 그곳에서 천사가 태어나게 된다...는 얘기지."

"뭔가 정령이 생기는 원리와 비스무리하군요."

"그래서 이유를 알 수 없는 거야. 어떤 존재는 정령이 되고, 어떤 존재는 천사가 되니까. 아직...그 명확한 기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

루시아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어쨌건, 그렇게 태어난 천사는 신의 저주를 받아 상위 천사가 되기 전엔 힘을 쓸 수 없는 족쇄가 걸린다. 그들은 신의 허락 없인 함부로 성교도 할 수 없고. 신을 배반할 수조차 없지."

"네, 그건 제가 아는 내용이네요."

"그렇게, 긴 인내의 시간을 거쳐. 하위 천사 중에서 신의 인정을 받게 된 자는 중위 천사 혹은 상위 천사로 승급하게 되는데. 이때 힘의 제한이 풀려, 승급한 천사는 태어날 때 핵으로 삼은 에너지원을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된다.좋은 예로, 그 유명한 대천사장 아탈란테는...하위 천사 때까진 시간을 1초 밖에 못 멈췄는데...상위 천사가 됐을 땐 30초는 멈출 수 있게 됐다나 뭐래나..."

"그럼...천사들의 자손들 역시 그 에너지원을 그대로 다룰 수 있는 건가요? 그럼 천사들끼리 아이를 낳으면 세대를 거듭할수록 점점 강해지겠네요?"

"글쎄, 교배가 된다면 말이지. 아까 말했잖아 만 번이 넘게 시도해야 한 번 성공할까 말까야. 천사의 정자와 난자는 수정율이 낮아도 너무 낮아! 시발...진짜 신의 허락 없이는 임신이 안되는 건지...뭔지. 왜그런진 나도 궁금하다야. 나중에 연구해봐야지 뭐."

"...그럼...지금까지 당신이 한 이야기에 따르면...제 능력은..."

"그래, 기본적으로 널 만들 때 써먹었던 하위 천사와 같은 능력이겠지 뭐."

"...그럼 전 신의 인정을 받아야만...힘을 쓸 수 있게 되나요...?"

"바보같긴! 넌 지금 뭐야? 넌 비록 흉내쟁이이지만 그 흉내의 대상이 신이잖아! 신이 신한테 뭐 하러 허락을 구해? 그냥 스스로 힘의 제한을 풀면 되지."

"...불안정하다면서요..."

"그건 네가 차차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지. 아....! 설명이 끊겼잖아. 음...질문이 뭐였지?"

"...천사, 인간, 마물 중 어느 개체가 가장 우월하냔 질문이었습니다."

"아 맞다. 오케이! 자...천사의 존재에 대한 설명은 이미 했고...자, 그럼 천사가 핵으로 쓰고 그 주변에 남은 에너지의 찌꺼기들은 어떻게 될까?"

"그냥 흩어지지 않나요?"

"아니...그 에너지는 그대로 마계로 흘러들어가 마물들의 몸에 흡수된다...! 그냥 에너지가 아닌 천사가 핵으로 쓰고 남은 에너지가 흡수된다는 얘기야!"

"...? 아니 그게 대체 무슨 말이죠?! 그..그럼 아탈란테처럼 시간을 다루는 마물이...존재한다는 말인가요?"

"그래! 허나 그 마물이 아탈란테만큼 강하진 않겠지...하지만 분명하게도! 아탈란테가 태어날 때 쓰고 남은 찌꺼기의 힘을 지니고 있는 마물이 있다는 말이야...!"

"...그것 참...흥미롭네요."

"자, 이어서...인간이다! 인간은 참 재밌어. 인간은 재밌게도 찌꺼기를 먹고 힘을 얻은 마물이나...천사의 힘을 빌려 힘을 쓸 수 있어. 마치 힘을 담는 그릇처럼 말이야!"

"그릇..."

루시아가 그녀의 몸을 흘긋 훑어보았다.

"그래 그릇! 오직 인간만이 신이 될 수 있다! 천사도 마물도 아닌 인간만이 신이 될 수 있다고!"

"..."

"같은 에너지를 품고 있는 마물과 천사...이 둘의 에너지를 그것들을 담을 수 있을 만큼 튼튼한 인간의 몸에 합쳐냈을 때..."

"신이...된다..."

"그렇게 신이 된 인간이 지닌 힘은 마치 무한대와 같아서, 몸에 품은 마물과 천사의 힘을 아무런 마력 없이 쓸 수 있지! 피에로가 들끓는 용암과 불꽃을 마치 숨결처럼 뿜어내고! 그라미드가 단순한 발걸음으로도 세상을 뒤집어엎듯이 말이야!"

"이 이론을 써먹어서 만들어 낸 것들이...대교회에서 관리 중인...인위적인 신들의 존재인가 보군요..."

"맞아. 뭐...자연적인 신도 원리는 다르지 않을 걸로 보고 있지. 다만 천사들이 모시는 신만은...아무런 정보가 없어서 모르지만..."

"..."

"일단 이야기를 이어서, 이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인간이 신이 되는 순간! 결국 그릇은 인간이기에...단순한 몸의 유지에 엄청난 마력이 필요하게 되고..."

"교회를 세워 신에게 기도를 시키고...신도들이 뿜어낸 마력들을 모아 신께 바치게 하는 거군요...그래서 츠페리얼이...신도를 많이 확보해야만 한다고 했던 거고...아...!"

루시아가 무언갈 깨닫고 감탄하자, 뮈헤인이 낄낄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조금 아이러니한 이야기를 해보자면...진짜 자연적으로 탄생한 걸로 알려진 물의 신 이터리온이 다른 인공 신들에게 밀려 신자를 잃고...지금은 해상 도시 아틀란타 어딘가에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채로 수장되어 있다고 하더군. 가짜들에게 밀린 진짜라...참 아이러니한 이야기야."

"...물의 신을 믿는 자가 이젠 그리 많지 않다고 들었었는데...그런 허무한 최후를 맞이했는지는 몰랐습니다."

"하하, 신도가 아예 없는 건 아니라서 완전히 죽진 않았지만...거의 죽은 거랑 별다를 게 없는 상태긴 해. 숨만 간신히 붙어있는 상태니 말이야."

뮈헤인이 털털하게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어떻게 그런 비밀들을 알고 계신 거죠?"

"...리만 제국 지하 연구소...윈디네를 만든 그곳 연구소장과 꽤나 절친한 친구였거든...큭큭...내 애증의 대상이지."

"...과연...윈디네의 표본도 그분에게서 받은 건가요...?"

"아니...아, 이야기가 또 샜잖아! 어쨌든 내 얘기는! 힘의 순수함을 따지자면 천사가 가장 우월하며. 끈질기게 힘을 지켜내고 그 수를 늘려가는데 있어서...생존력은 마물이 가장 뛰어나고. 이 둘의 성질을 담을 수 있는 유연함만은 인간이 제일이다 이 말이지!"

뮈헤인이 말을 마치고 고개를 돌려 똑딱똑딱 움직이는 시계바늘을 쳐다보았다.

"이제 정말 끝! 생각나는 대로 뱉었지만 질문에 답이 되었나 루시아? 만족 못했더라도 이제 질문타임은 끝이야. 난 바쁘다고."

"...친절한 답변 고마웠습니다 뮈헤인...안녕히 가시길. 아, 그리고 혹시 모르니..."

"알아, 그 누구에게도...대신교의 '대'자도 안 꺼낼 테니 걱정 마."

"...그럼 됐습니다. 조심하세요. 만약 복수에 성공하신다면...레너드를 부활을 방지하기 위해 시체를 확실하게 훼손하시도록 하시고요."

"당연한 얘기를 하는 군! 그럼 이만, 인연이 되면 또 보자고...크크크..."

뮈헤인이 말을 마치고 창문을 훌쩍 넘어 어디론가 훌쩍 사라져버렸다.

루시아는 천천히 걸어 창가로 다가가 뮈헤인이 사라진 자리를 손가락으로 훑었다.

"...인연이 닿는다면 말이죠...뮈헤인..."

어두운 밤길.

레너드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휘파람을 불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 오늘은 애들이 사고도 안치고~손님도 존나 많이 받았고~아주 행복한 하루를 보냈구만! 늘 오늘만 같아라..."

­­­스스스

"...?"

불현듯, 그의 귓가에 무언가 흙을 헤치고 올라오는 듯한 요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아...딱 보니 할로윈 남매 이 년놈 둘이...또 사골용 뼈 도굴한다고 마리아리온 무덤터를 털고 있나 보네...이제 왕이 바뀌어서 그러다 진짜 헌병대에 잡혀갈 수도 있다니깐..."

레너드가 그의 옆에 놓여진 마리아리온 무덤터 도굴 금지 표지판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크크크....하하하하!...레너드...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구나...?! 넌 이제 좆됐다...!"

"...어...?! 이..이 목소리는..."

레너드가 자신의 귓가에 들려오는 아주 익숙한, 한번 들으면 결코 잊을 수 없는 불쾌한 목소리를 듣고 깜짝놀라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이쪽이다."

레너드가 뮈헤인의 목소리가 좀 더 선명하게 들려오는 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뮈헤인이 실실 웃으며 레너드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그의 오른손에 새겨진 각인으로 리나를 소환하려 했으나. 어째선지 그의 각인은 아무런 효과를 내지 못했다.

정확히는, 각인에 흘러 들어간 마력 때문에 각인 빛이 발하며 리나를 소환하려 했으나. 마력만 소비될 뿐 그 어디에도 리나가 소환되질 않았다.

"...?"

레너드가 당황한 표정으로 그의 오른손에 계속해서 마력을 흘려보냈다.

"하하하하...! 왜? 그 서큐버스 여왕인지 뭐시기랑...하이 엘프, 전직 용사같이 널 지켜줄 년들이 나타나질 않나? 빨리 불러봐 레너드!"

"..."

"빨리~안 부르면 칼 한 자루 없이 이 뮈헤인님을 상대해야 할 텐데...괜찮겠어!? 이번엔 그때 날 엿먹였던 피에로의 마력과 요상한 마법, 마도구들을 쓰던 라칸도 없잖아...이거 꽤나 위험한 거 아니야?"

레너드는 자신을 향해 천천히 다가오는 뮈헤인으로부터 한걸음 두걸음 뒷걸음질 치다가, 그의 등 뒤에 맞닿은 시체들의 산에 머리를 툭 부딪혔다.

­­­"끼이익...끼긱....! 끽....!"

그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주위에 원형으로 쳐진 거대한 시체들의 벽을 보고, 섬뜩함에 침을 꿀꺽 삼켰다.

"뭐하냐니까 레너드!? 그러다 나한테 살해당한다고?! 빨리 안부르면 그냥 바로 시작한다!! 레너드! 하하하하하하하!"

"...이거 좆됐구만..."

레너드가 각인이 빛나고 있는 그의 오른주먹을 꽉 쥐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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