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 노예, 제가 삽니다-91화 (91/99)

〈 91화 〉 마녀 에르메리엘은 실수로 레너드의 가게가 아닌, 레너드의 집에 사은품을 배달시켰다.

* * *

"키키야...메르마게돈에서 마리아리온까지 배달하는데 무려 일주일이나 걸려놓고...당일배송 요금 받으려고 한다면...내가 정말 그 요금을 만족스럽게 지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니?"

"넵!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닷."

마녀 택배 배달부 키키가 당돌한 표정으로 레너드에게 착불 영수증을 건넸다.

"이런 씹...아니...아니 아무리 그래도 50골드는 너무하잖아! 대체 오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야 겨우 사람만한 크기의 상자 하나 배달하는데 무려 50골드나 들 수 있는 건데?!"

"음...오늘 길에...이 선물상자를 노리는 킹크랩 닌자들이랑...가슴 세개 달린 음란 마녀들...그리고 악어 머리 수인들을 따돌리느라 진땀을 뺐는뎁쇼?"

"...지..진짜?"

레너드는 순간 주춤했지만, 키키가 배달한 상자 속에서 어느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텔레포트로 옮기셨는데요..."

"...이런 쉬발! 이..이 상자에 사..사람이 들어있어요...?! 이런 미친!"

키키가 상자 속에서 들려오는 가녀린 여자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는 발 끝으로 상자를 툭툭 쳤다가, 반응이 없자 이마에 흐른 땀을 닦아내며 레너드를 째려봤다.

"키키는 절대 인신매매 안 해요! 삑! 추가요금입니다!"

"추가요금같은 소리하고 앉았네. 그만 지랄하고 10골드만 받아가라...나 화낸다."

­­­"...주인님...제가 알기로...에르메리엘님이 이미 택배 요금을 선불로 내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쾅!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던 키키가, 발로 힘껏 상자를 걷어찼다.

"오호..."

레너드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칼 손잡이에 서서히 손을 갖다댔다.

"...돈 안내면! 허...헌병대에 신고할 거예요."

"지랄마. 다 들었다. 헌병대에 신고 당할 건 그쪽이지!"

"이런 싯팔!"

키키가 모자에서 면도칼을 꺼내들고 레너드에게 달려들었다. 레너드는 별 감흥없이 옆에 서있던 거대한 선물상자를 넘어뜨렸고. 키키는 자신의 몸보다 훨씬 큰 상자에 깔려버렸다.

"좋아. 30골드. 더는 못깎아드려요."

"이 씹년아. 에르메리엘씨가 돈을 냈는데 내가 거기에 왜 더 돈을 얹어내야 해?"

"마녀연합장님이 20골드 내셨으니. 남은 30골드를 당연히 내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수학 못해요?"

"...하아...10골드. 더는 못 줘. 무슨 택배든 절대 안전을 보장하는 너니까...수고비로 주는 거야. 이 이상 욕심내지 마. 한푼도 못 받기 전에..."

"23! 더 깎으면 헌병대에 레너드처럼 생긴 아저씨가 절 따먹으려 했다고 신고할 거예요!?"

"신고하던지! 너 50살 넘었잖아!"

"마녀 기준으론 5살이거든요~"

­­­콩.

"으캿!...이 쒸뿔...미성년자 폭행으로 신고할 거야..."

키키가 머리에 난 혹을 쓰다듬으며 울먹울먹한 표정으로 레너드를 바라보았다.

"나이로 치면 네가 나보다 누나인데 무슨..."

"치...그럼 누나 취급이라도 해주던가요...자~누나 해봐 레너드~"

"응, 네가 마녀 기준으론 5살이라며. 5살이면 나보다 한참 나이도 어린 년이 누나는 무슨..."

"쉬...뿔...."

키키는 바닥에 침을 칵 퉤 뱉은 후, 머리에 맨 리본을 정리하며 상자에 쳐진 보호, 위장 마법을 풀었다.

"...자, 손님이 상당히 좆같이 나오는 관계로...상자에 있던 모든 보호 조치를 해제했습니다! 가게로 상자를 옮기는 동안...꼭 강도를 만나길 바래요!"

"왜? 강도 말고 이단심판관 아벨이라도 만나라고 하지? 텔레포트로 가는데 강도는 개뿔이 강도...어...?"

"흥~지금 당장 밖에 뛰쳐나가서~거리에 있는 a나 s급의 상위 모험자나 대교회 사람들을 찾아서 오빠가 팔면 안되는 매물을 팔려 한다고 소문 낼 거예요~"

"...팔면 안되는 매물...?"

"넵! 제발 오빠가 이단으로 잡혀가서, 아벨에게 고통스러운 이단심문을 당하다가...아아~키키에게 30골드 쥐어주고 가게까지 배송을 부탁할걸~싶어질 거라고요~"

"...호오, 이단심문을 당할 만한 매물을 가게에 들였다...이말인가?"

"네~이단심판관장이 알게 되면~댁이나 나나 몸이 반토막나겠지만~저는 그때 이미 마리아리온 국경을 넘은 상태일 테니...아니 잠깐...방금...아저씨가 말한 거 아니였나요...? 어...라...?"

"...아...시발...이 미친년아...넌 내 목소리랑...젊은 목소리랑...구별이 안 가냐...?"

키키는 창백하게 굳어버린 레너드의 얼굴을 발견하곤, 방금 자신이 대화를 나눴던 인물이 레너드가 아님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녀의 등 뒤에 서늘한 땀방울이 한줄기 주륵 흘러내렸다.

"이상~! 배달 마칩니닷! 안녕히 계세요! 이..이...이ㅣㅇ이잉...아ㅣㅇ.ㅇ.ㅇ;ㅇ;ㅣㅇ;이이..."

"이단 심판관 아벨일세."

"이..이리일ㅇ이ㅣㅇ잉잉이이....으갹...!"

키키는 이를 덜덜 떨다 혀를 씹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으며 바닥에 풀썩 엎드려버렸다. 물론 혀를 씹고 괴로운 척 하는 그녀의 행동은 페이크로. 어떻게하면 자신이 이 방을 사지 온전하게 탈출할 수 있을지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

아벨은 엎드려 덜덜 떨고 있는 키키를 흘긋 바라보았다가, 저벅저벅 걸어 한 손으로 레너드의 멱살을 잡아올렸다.

"...이래서 불심검문이란 걸 하는 걸세 레너드. 자, 내 신경쓰지 말고...어서 저 상자에 든 매물을 꺼내보게나..."

"...하..하하, 조금 껄끄러운 매물인데...어찌..."

"왜? 이단 심판관장에게 보이면 안되는 매물...그것은 곧 불경스러운 매물임이 분명하지 않나?"

"...맞아욧! 이..이 수염난 남자는 이단입니닷! 전 이 변태 로리코남에게 이용당한 가녀린 소녀고요! 이..이만 가보겠습니닷! 수고하세요!"

­­­촥!

"...흐..헥...!?"

아벨이 손 끝으로 참격을 날려, 키키가 잽싸게 올라탔던 빗자루의 머리를 반토막냈다.

"...제..제가 교회에 십일조를 내고 있다는 사실...알고계신가요...?"

"..."

키키는 자신을 노려보는 아벨의 시선을 느끼곤, 덜덜 떨며 바닥에 도게자했다.

"아..앞으론....두..두배로 내겠습니닷...!

"...그래, 상자 안에 들어있는 물건을 확인하고...죄의 무게에 따라...정상참작의 여지를 남기도록 하지..."

아벨이 엎드려 아까보다 더욱 덜덜 떨고 있는 키키의 머리카락을 마구 헤쳐 지나, 주방 식탁으로 다가가 식탁의자를 하나 빼낸 후, 테이블 위에 올려진 쿠키를 씹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 레너드. 상자를 열게. 너무 시간을 끌면...상자 채로 자네의 목을 베어버릴 게야..."

"하..하지만 이단심판장님....!"

­­­쿵.

아벨이 테이블을 세게 내리쳤다.

"...무언가...자네가 망설이는 이유가 있을 테고...그 이유라 한다면...걸끄러운 내 존재겠지...그렇지 레너드?"

아벨의 총명한 눈이 레너드의 눈을 응시했다. 레너드는 그의 눈에서 흘러나오는 빛이 눈이 부셔 잠시 눈을 비볐다가, 이내 침을 꿀꺽 삼키며 상자의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곧이어 그가 예쁘게 포장된 상자의 리본을 잡아당기자, 상자에 겹겹이 둘러져 있던 리본들이 바닥에 우수수 힘없이 추락했고.

레너드는 식은땀을 흘리며 그의 덜덜 떨고 있던 손을 상자 뚜껑에 가져다댔다.

"..."

곧이어 레너드는 반쯤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선물 뚜껑을 열어제꼈고. 아벨은 경악했다. 레너드가 연 상자에서. 자신의 빼어난 용모를 쏙 빼닮은, 어느 여성이 수줍게 걸어나왔기 때문이었다.

"아니 마..맙소사...레너드...자네..."

"..."

레너드가 식은 땀을 흘리며, 아벨의 공격을 피해 어떻게든 리나와 츠요를 포함한 주요 전력들을 일제히 소환할 준비를 했다.

"...허허...자네도 결국 약자일 뿐이니...이해하네. 쯧...장로회의 변태성이란...정말 끝이 없군...."

허나, 아벨에게서 돌아온 것은 자녀의 변태스러운 수집품을 발견한 부모의 한숨 같은 한숨소리뿐. 그의 몸 어디에도 참격은 날아오지 않았다.

"크흠....하아....목 위아래가 피부톤이 다른 거 보니...얼굴만 수술해서 붙였나보군...뭐 이런 매물을 취급하고 있는 걸 보아하니...자네도 이미 알고 있겠군..? 사실 자네가 그간 만났던 대부분의 '나'는...분신이였음을..."

"...네...? 아..네...그렇죠...?"

"우리 교회 장로들 중에서도...천사의 용모를 쏙 빼닮은...날 흠모하는 사람들이 있다네...보나마나 그 사람들이 자네 가게 단골이였던 것일 테고...그 뒤는 뻔하지..하아..."

"네...아...예...맞습니다!...아니...잠깐...아, 이게 아닌데..."

"보아하니...몸은 강대한 마력을 품은 하급~중위 천사고..내 분신 대가리야 뭐...장로들이 구할 방법이야 널렸겠지...에휴...."

아벨이 큼큼 숨을 고르며 머리를 긁적였다. 여자 아벨은 나름 눈치가 좋은 편인지 상자 안에 들어있던 아벨의 갑옷을 발 끝으로 밀어 상자 구석 쪽에 숨겼다. 그런 뒤, 레너드에게 조용히 윙크를 날렸다.

"..이..일단 이 얘기는 잠시 미뤄두시고...저..저를 찾아온 목적을 말씀해주시죠...단순한 불심검문 때문에...제 집까지 찾아오신 건 아니실 텐데요...?"

"...혹시 자네...최근 대신교라는 미친 종교가...신을 만들었단 소문을 들은 적 있나?"

"그...금시초문입니다."

"..."

아벨은 잠시 팔짱을 낀 채 의자에 목을 기댔다가, 이내 곧바로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그...그럼...루시아라는 이단이. 자네가 천계 감옥에 투옥시켰던 뮈헤인이 만든 작품이란 건 알고 있나?"

"...몰랐던 사실이군요."

"모를 수 있지 이해하네. 뭐...난 일단 임시 교황의 명을 따라...사악한 외과의 뮈헤인을 죽이고, 갈란드렐을 토벌한 뒤...루시아의 목을 베란 명을 받았다네...아무리 신의 아들인 나라고 해도...성공할 거라 장담하기 힘든 임무지..."

"...뮈..뮈헤인은 얼마 전에 제..제가 주...죽이긴 했습니다만...?"

"...엥, 주..죽었다고?...아니...죽었...다고? 뮈헤인이?....그 뮈헤인 맞는 게지? 우리가 지금 같은 뮈헤인에 대해 애기하고 있는 게 맞는가. 그런가?"

아벨은 뻘쭘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대앉았다가. 손에 쥐고 있던 쿠키 부스러기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척 하며, 품에 지니고 있던 뮈헤인의 몽타주를 쓰레기통에 처박아버렸다.

"...그래, 사실 난 갈란드렐과 루시아의 목만 베도 충분하다네!...그래...뭐...뭔가 할 일이 팍 줄었다고 생각하면 편할테지...끌끌..."

"음 솔직히...지금 대신교가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건진 잘 모르겠지만...일단 대교회 입장에서도 대신교라는 존재가 상당히 껄끄러운 존재이긴 한가 보군요...? 무려 아벨님의 본체를...파견 보낼 생각을 하다니...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내가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 해서 대교회 본교가 하루 아침에 마물들과 이단들에게 함락 될 것도 아닐뿐더러...이대로면 주신을 포함한 다른 신들도 상당히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기 때문이지..."

"...대신교가 그렇게나 세력을 불린 상태였다니...최근 마을에 믿는 사람이 좀 많아졌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그렇게까지 위험한 존재로 올라설 지는 몰랐습니다."

"그래, 일단 대교회도 바보는 아니기에, 일단 대신교 12간부 중 한명에게 빨대를 꽂아놓은 상태임을 명심하게..."

"...빨대요...?"

"우리가 꽂은 빨대의 정보에 의하면...루시아는 이미 신이 됐으며...신의 힘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할 거라더군."

"...그...그렇군요."

".흠...뭐...그래서...비록 인위적으로 만든 가짜 신이었지만...신을 죽인 적 있는 자네에게, 조만간 있을 큰 싸움을 위해...뭔가 조언을 들을만 한 게 있을까 싶어 자네의 집에 잠시 들렸던 것이라네."

아벨이 말을 마치 후 식탁 위에 올려져 있던 주전자에 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레너드는 침대에 걸터앉아 아벨을 바라보았다가, 아벨에게 양해를 구한 뒤, 담배를 입에 물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짜 신들은...좌심방, 우심방, 우심실, 좌심실 중에...몸이 무너지지 않도록 균형을 유지시키는 핵이 위치해있습니다. 진짜 신은...심장 그 자체가 핵인 걸로 알고 있고요."

"그럼 더 쉬운 것이 아닌가?"

"윈디네의 심장을 벨 땐...설계자 라칸이 윈디네의 심장 설계도를 넘겨줬었습니다...진짜 신은...솔직히 인간이 만든 칼날 따위가 들지도 의문이네요..."

"...루시아는 진짜 신이 아니야 레너드. 말 조심하게."

아벨이 눈을 부릅뜨고 레너드를 빤히 응시했다.

"...죄..죄송합니다."

"핵은 심장인가...? 그 외엔 아무리 베어도 전혀 소용이 없었나?"

"...네, 목을 베어도. 아무리 깊이 칼을 찔러도 소용이 없습니다. 핵을 중심으로 끝없이 몸을 수복하기에. 오직 핵을 파괴하는 것만이 해답입니다. 마치 리플렉트 슬라임과 싸울 때처럼요."

"...리플렉트 슬라임과 싸울 때처럼이라...그래 무슨 느낌인지 확실히 이해했네. 나중에...또 도움이 필요하면 자네의 가게에 들려도 되겠나? 오늘처럼 불쑥 집으로 찾아오진 않겠네...뭐...프라이빗 타임이란 게 있는 거니까."

"...네, 때가 되면 꼭 돕겠습니다."

"그래주면 나야 고맙지."

이내 아벨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방을 떠났고 레너드는 털썩 주저앉았다. 키키는 아벨이 여자 아벨에 정신이 팔린 틈에 이미 진작 도망친 상태였고. 여자 아벨은 주섬주섬 상자 안에 들어있던 자신의 갑옷을 챙겨입으며 레너드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죄..죄송합니다...저 때문에...이상한 오해를..."

"이미 지나가버린 일은 신경 쓰지 마라...일단 리나를 불러야 하나...?"

레너드는 말과 달리 조금 날이 선 눈빛으로 아벨의 클론을 쳐다봤고. 아벨의 클론은 그런 쪽엔 눈치가 없는지 주인의 시선을 사랑이라 느끼고 수줍게 미소지었다.

"...아..기 딸린다...그냥 이따 같이 출근하자. 에라이 모르겠다...일단 짐이나 싸고 있으렴."

"넵."

"...응?"

피곤한 목소리로 침대에 드러누웠던 레너드가, 천장에 매달린 붉은 눈을 보고 벙찐 표정을 지었다.

"못 봤어. 잘 거야."

"...봤으면서~! 히끅..."

"...?"

천장에 매달려 외롭게 와인을 홀짝이던 세리나가, 취기 가득한 얼굴로 레너드의 위에 착지했다. 그녀의 얼굴은 붉게 물든 상태였고. 몸 곳곳에서 술냄새가 났다.

"...곧이어 천장에서 술병들이 떨어져내렸다...끄윽...밤새 괴로운지 술을 마신 상태였다...꺄하하....우욱..."

세리나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술병들을 가리키며 실실 웃다가 비틀거리며 침대 위에 대자로 털썩 드러누웠다. 여자 아벨은 만취한 세리나를 노려봤다가, 이내 덤덤한 표정으로 다시 짐을 싸기 시작했다.

"이제 신입한테도 무시를 당하는 내 삶~..호호호...내 인생~...내 삶이여~"

"..."

"오호, 눈 야리지 마시죠. 전 순혈 뱀파이어라고요. 쉬뿔..."

"...? 인간 피가 섞여있으신데요...?"

"팩트로 후리지 마랏! 이 싸가지 없는 년!"

만취한 세리나가 이성을 잃고 빈 술병을 하나 집어 클론 아벨의 머리를 후려쳤다.

­­­쨍강!

침대에 누워 있다가, 술병 깨지는 소리를 듣고 잠시 잠이 깬 레너드가, 비몽사몽한 표정으로 세리나를 막아섰다.

"너...너 오늘따라 왜이래?"

"후우...술한잔 했습니다...제 행동이 별로 일 수 있습니다...레너드씨..."

"...상당히 별로네."

"아니, 제가 술을 안마시게 생겼어요?! 이쿠야인지 이쿠요인지 시발...갓파년을 가게에 들인 뒤엔...뭔가 사장님이랑 같이 일한 기억도 없는 것 같고...저번 티타임때...리나씨의 배신으로 땅굴을 적발당한 뒤엔 징계 조치 때문에 한달 동안 고정으로 화장실 청소 당번이 돼서 밤에 자주 덮치지도 못하고! 이게 뭡니까 이게!~꿀꺽...꿀꺽...!"

"...아니 자주 못 덮치긴 뭘 못 덮쳐!? 어제도 리나랑 가게 땡땡이치고 내 침대에서 난리를 쳤잖아!"

"몰라요~뭔가 서운해~공기가 된 기분이에요~흐아앙~!"

"...요 며칠 사이 숙성 와인에 맛들인 이후로 매일같이 술을 퍼마시니 매사 모든 일들이 잘 기억 안 나지 미친년아!"

"아니 시발...뭔가...뭔가 억울해요 싯팔! 지금도 봐요! 리나나 제네베씨가 이렇게 소리쳤다면 뭔가 극적이고 멋진 장면이 연출됐을텐데! 전 아무런 연출효과도 없잖아요? 아니에요?"

"...효과는 무슨 효과! 네가 소설 주인공이냐?!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 거야?"

"한...12병이요...?"

"돌겠네..."

레너드가 천장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술병을 보곤,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세리나를 올려다봤다.

"12병 같은 소리하네..."

"...주인님...혹시...실례가 안된다면...제가 이 만취한 오만하고 방자하며 냄새나는 여자를...제압하도록 할까요?"

"...응?"

이마에 붙은 술병 조각을 떼어내던 아벨의 클론은,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세리나의 와인을 벌컥벌컥 마시는 레너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오만...? 히끅....방자...? 냄새...? 넌 오늘 뒤졌어...신참년아...나때는..신참이....히끅....!"

"...제압할까요?"

"...그래, 제압 좀 해봐라...윽...쓰다...아 몰라..어지럽네...나 이대로 잔다. 알아서 해결해라...아벨의 클론...이름도 한숨 잔 뒤에 정해줄게...그래...쿨...일단 좀 자고...zz..."

"...제압? 제~압?...아핳핳..레너드씨, 저 딱 봐도 여리여리해보이고 약해빠져보이는 년이...절 어떻게 막을 수 있겠어요~? 레너드씨?....엥, 진짜 주무시네...?"

세리나는 잠든 레너드의 볼을 손가락으로 콕콕 찔러대다가, 분풀이하듯 고개를 돌려 아벨의 클론을 째려봤다.

"너 때문에...레너드씨가 잠들었잖아...어떡할 거야...?"

"...어떡하긴요. 편하게 주무시게 뱀파이어를 쫓아낼 성기를 방출해야죠."

"성기를 방출해요? 후후...이 아름다운 제게, 그딴 허접한 빛이 통할 리가 없잖아요. 우스워라~"

"..."

여자 아벨은 세리나의 말을 듣곤 오만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황금빛 머릿결을 휘날렸다.

­­­지잉.

"...?! 꺄...꺄아아아아아악!...이게 뭐야 시바아아아아아알?!"

그렇게, 세리나는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가...아니에요!"

악에 받힌 세리나가 뱀파이어의 권능으로 부활했다. 허나 아직 취기는 가시지 않은 상태였다.

"그 요상한 빛...신성력인지 개뿔인지 자세힌 모르겠지만...보나마나 한두번이 고작일....."

아벨의 클론은 세리나의 말을 무시하며, 또다시 그녀의 황금빛 머릿결을 휘날렸다.

­­­치이이이익.

"꺄아아아아...! 딜레이도 없이 연속으로 된다고오오오오오.....?!"

세리나가 재가 되어 무너졌다.

"...신의 아들 아벨도 머리 빗는 걸론 마물 못 죽여요!!...당신 뭐야?!"

세리나가 악에 받힌 분노를 원천삼아 무너졌던 몸을 수복했다.

"글쎄요. 에르메리엘씨가 뮈..헤인? 그 요상한 인간의 몸을 아벨의 목과 합치면서...몸 외부로 신성력을 방출 할 수 있게 개조했다던데요? 듣자하니...제 존재는 뱀파이어나 구울, 좀비들 같은 존재들의 완벽한 천적이라던데..."

"지랄하지 마요! 아무리 천적이라 할 지라도! 전 순혈 뱀파이얽...!"

세리나는 악에 받쳐 손톱을 길게 늘어뜨리고 여자 아벨의 목을 베려 했다가, 그녀의 근처에 가기도 전에. 그녀의 황금빛 머리와 반짝이는 눈에서 뿜어져 나온 빔을 맞고 몸이 산산 조각 나버렸다.

­­­­비이이이이이이임.

그렇게 세리나는, 깊이 잠든 레너드가 깰 틈도 없이, 순식간에 뿜어져 나온 빔을 맞고 재가 되어 산산이 흩어져버렸다.

"...가 아니얏! 이 빌어먹을 새끼야아아아! 뒤질뻔 했네 쌰아아앙!"

세리나는 아버지, 라몬에게 배운 뱀파이어 금단의 주술로 자신의 손목을 명계로 잡아끌던 사신 게롤드의 손을 뿌리치고 현계로 돌아왔다. 완전히 죽었다 부활했기 때문이었는지. 그녀의 얼굴에 서려있던 취기는 완전히 가신 상태였다.

"하아...하아....일단...무승부로 해요...하아...하아..."

마력을 많이 사용했는지, 세리나가 숨을 거칠게 쉬었다.

"...무승부로 할까요 주인님?"

"...쿨..."

레너드는 여간 피곤했는지, 둘의 싸움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아주 깊은 잠에 빠진 상태였다.

"뭐...일단 무승부로 하죠. 이 이상 언쟁하면 고단한 하루를 보내신 주인님의 달콤한 휴식을 망칠 수도 있으니까요."

"지랄났네 지랄났어...하아...머리 다 뻗쳤네...당신, 운 좋은 줄 알아요. 제가 취하지 않은 채로...전력을 다해 공격했다면...당신 따윈 흔적도 안 남았을 테니까..."

"...넵."

말을 마친 아벨의 클론이 그녀의 황금빛 머리를 찰랑거리자, 세리나는 아까의 기억 때문인지 뒷걸음질 치며 그녀의 몸을 움찔했다.

"풉...아 죄송합니다. 당신 같은 좆밥은 실바람에 머리가 조금만 찰랑여도 덜덜 떨 텐데...배려가 부족했네요. 많이 무서우셨나요?"

"...하! 쫄긴 누가 쫄아요? 뭣하면, 한판 더 하실래요? 진심으로...?"

세리나가 아벨의 클론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냈고. 아벨의 클론은 도도한 미소로 그녀의 살의에 답했다.

"...그래도 뭐 상관없지만...지금은 주인님이 주무시고 계시잖아요. 혹시라도 당시 비명 때문에 주인님이 깨게 된다면....메이ㄷ...아니 기사...아니 주인님의 노예로서 충의를 다하지 못한 거랍니다."

아벨의 클론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세리나의 말에 따박따박 응수했고. 세리나는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레너드의 얼굴을 흘긋 쳐다봤다가. 작은박쥐로 변해 밤하늘을 훨훨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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