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화 〉 잊으라고 했잖습니까.
* * *
내 것이 아닌 냄새가 난다.
스칼렛은 눈을 부릅떴다. 그녀는 일어난지 채 10분도 되지 않은 채였다.
하지만 감각은 그 어떤 때보다 매우 예리했다.
킁킁. 가녀린 소녀의 목덜미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는다.
확실하다. 다른 것의 냄새가 묻었다.
가볍게 묻은 향은 저택에서 사용인들이 뿌리는 옅은 향수다.
사람을 구별하기 위해 그녀가 지시해 놓은 사항이었다.
남자 사용인은 과일 향을, 여자 사용인은 꽃 향을.
메이드들은 산뜻한 민트 향수를 뿌린다.
스칼렛이 소녀가 깨지 않게 조심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새근새근 잘 자고 있다.
쪽.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가벼운 키스.
소녀는 그대로 걱정 없이 자고 있으면 된다.
그저 자신의 뜻대로 맞춰서, 예쁜 모습으로.
벌컥
문을 열어젖힌 뒤 방을 나섰다.
이걸 방해하는 것들은 필요 없다.
천천히 계단 아래로 향하는 스칼렛.
쉬르르륵
얇은 장막 같은 것을 통과하고 나서야, 아래층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저택의 사용인과 메이드들은 각자 품에 작은 마석을 들고 다닌다.
그 마석을 가진 자는 이 환술을 통과할 수 있다.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조, 좋은 아침입니다 아가씨!”
“좋은 아침입니다..”
2층으로 내려오자 분주한 사용인들이 스칼렛에게 일제히 인사했다.
하지만 죄다 목소리를 떨거나, 표정이 굳어 있다.
그녀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다만 스칼렛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가치 없는 것은 그녀의 관심사가 아니었으니까.
남자 사용인 휴게실은 2층의 복도 중앙에 있다.
벌컥.
“으, 으아아아악! 아가씨?!”
첫 번째 방.
남자 사용인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여긴 아니네. 시큰둥하게 문을 콱 닫았다.
벌컥.
두 번째 방.
“꺄아아아아아악! 아가씨!!”
아차. 방을 잘못 열었다. 여긴 여자 사용인 휴게실이다.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죄다 옷을 갈아입고 있다.
여기도 꽝. 다시금 문을 콱 닫는다.
그리고 세 번째 방을 열었을 때.
“..아가씨. 무슨 일이십니까?”
거기에는, 어제 음료수를 줬던 사용인이 다른 사용인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살짝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가장 가능성이 있는 후보다.
‘냄새부터 확인해 보자.’
콕. 그녀가 제 코를 손가락으로 짚는다.
동시에 점막 안을 휘감는건 시원한 마력의 기류.
숨을 두 번 들이마신다.
그 때.
콰악!
얼굴을 일그러뜨린 스칼렛이 남자 사용인의 멱살을 콱 잡는다.
“너구나?”
“갑자기 무슨”
쉬이이익, 콰드드득!
“꺼어어억..”
손에 바람 마법을 모아, 곧바로 복부에 직격.
남자는 고통스러운 숨을 토해내며 땅에 무릎을 꿇었다.
순식간에 휴게실의 분위기가 차갑게 변한다.
“켈록, 케헥..”
“제가 말했잖아요. 당신들은 당신들 할 일만 하면 된다고..”
스칼렛의 표정은 싸늘하게 굳은 채였다.
그녀는 옅게 한숨을 쉰 뒤, 입술을 꽉 악물었다.
분에 못 이겨, 입술에서 피가 탁 터질 때까지.
“근데, 그 일 하나 제대로 못 해요..?”
쉬이이이이익
손을 펼치며 마력을 불어넣은 스칼렛.
그러자 손에서 튀어나간 바람이 칼날의 모양처럼 변한다.
“주제 넘게 끼어들기나 하고.. 쓸데없이 남의 거에 손이나 대고..”
남자는 인상을 구기면서도 스칼렛의 얼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이제는 숨길 필요도 없다는 듯이.
“켈록.. 망할.. 아가씨야.. 지금, 네가 하는 짓이.. 제정신인”
서억.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스칼렛의 손이 그의 목을 훑었기 때문이다.
터억.
무언가 묵직한 것이 하나 땅으로 떨어지고.
“흐, 흐아아아아아아악!!”
휴게실을 남자 사용인들의 비명이 채워 간다.
그녀는 생기 잃은 눈으로 그의 앞에 쪼그렸다.
붉은 단면을 시야에서 치우곤, 커다란 손을 꼭 잡는다.
손에는 아직까지도 옅은 온기가 남아 있었다.
이 손으로 내 것을 더럽히고.
내 것을 만지고.
내 것을 회유하려 들고.
내 것을 망가뜨리려 했겠지.
스칼렛이 다시금 손을 치켜 들었다.
그리곤 칼바람을 이용해 손목을 절단한다.
사용인의 옷을 부욱 뜯어, 절단면에 간단히 봉합.
“조용히 해요.”
소란에 신물이 나,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한다.
뚝. 사용인들은 몸을 오들오들 떨며 입을 다물었다.
“이거, 처리장에 박고 깔끔히 처리해요.”
한 마디 한 스칼렛이 휴게실을 천천히 나선다.
그러다가, 발을 뚝 멈추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당신들이 권리를 외칠 신분이 아니라는걸 잘 알아 두세요.”
턱.
문이 닫혔다.
스칼렛은 몽롱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다, 이내 발을 옮겼다.
이제 돌아가야지. 슬슬 소녀가 깰 시간이다.
가는 길에 주방을 좀 들려야겠다. 식사 시간이 조금 지났다.
먼저 이걸 보여주고, 이제 당신을 해칠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해줘야지.
그리고.
사랑을 나눠야지.
****
축축한 시트가 허벅지에 닿는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었다.
아니, 몸이 아예 굳어 버렸다.
입을 열래야 열 수가 없다. 스칼렛은 손을 내 옆에 살포시 내려 놓았다.
자연스레 신경은 약이 들어간 오른손으로 향했다.
그러다가 이내 간신히 잡생각을 떨친다.
“아, 아아아..”
입에서 나오는건 의미 없는 목소리.
스칼렛이 잠시 내 머리를 쓰다듬더니, 생긋 미소를 지었다.
“당신이 움직이는건 신경 쓰지 않아요. 방 안에만 있는건 얼마나 답답하겠어요?”
이윽고 내게 서서히 다가오는 그녀.
움츠린 어깨를 붙잡고 내 뺨에 짧게 입맞춘다.
오들오들. 춥지도 않은데 몸이 떨린다.
그런 내 몸을 껴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도.. 제 것이 아닌 냄새는 싫어요. 당신도 이해하죠?”
“그으, 그윽. 으흑. 끅.”
대답 대신 나오는건 옅은 흐느낌이었다.
스칼렛은 천천히 몸을 떼고, 방금 가져온 쟁반을 내 옆에 놓았다.
잘린 손은 시큰둥하게 방 밖으로 던져 버렸다.
손을 잘라왔다고?
대체 왜?
설마. 나 때문에 뒷덜미가 잡힌 건가?
혹시, 죽은건
거기까지 사고가 닿으니 온 몸의 솜털이 빳빳이 선다.
질문해 볼까.
아니. 아니야.
죽진 않았을 거다.
아무리 스칼렛이 미친년이라고 해도.
그래. 설마 죽였겠어? 저것도 마법으로 만들어낸 모조품일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시체는 깔끔하게 처리했으니까.”
그래야만.
하는데.
확인사살을 하듯, 스칼렛의 한 마디가 가슴을 쿵 내려앉게 만든다.
죽였구나.
진짜로. 아무렇지도 않게.
나 때문에
“우욱..”
누군가의 죽음에 밀접히 관련 되어있다는 감각.
묘한 구토감이, 속을 답답하게 옥죄어 갔다.
스칼렛은 그런 내 반응을 즐기듯 입꼬리를 슥 올렸다.
“바람 마법으로 목을 단숨에 베어냈어요.”
그만.
“그리고 손목을 잘라서..”
그만. 그만해.
“제바알..”
나는 몸을 웅크린 채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제서야 스칼렛은 하던 말을 멈춘다.
그리곤, 주머니에서 향 하나를 슥 꺼내어 전에 향이 타들어가던 곳에 콕 꽂았다.
“자아.. 괜찮아요. 아픈건 다 잊고.. 기분 좋게 해 줄게요.”
치이이이
손가락을 치켜든 스칼렛. 그녀가 향에 불을 살짝 붙인다.
이윽고 향에서 달콤한 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코를 킁킁대며 그 향을 한껏 들이마셨다.
서서히 마음이 편해지는게 느껴진다.
머리가 조금씩 몽롱해진다. 불안과 공포가 전부 달콤한 향을 타고 저 멀리 날아간다.
“하으..”
몸이 이완되어 나도 모르게 침대에 벌러덩 누웠다.
실금한 하반신에선 오줌이 아닌 다른 것이 조금씩 배어 나온다.
기분 좋다.
마음의 가장 약한 부분을 비집고, 향이 퍼져 갔다.
그런 나를 보며 미소 지은 스칼렛.
이윽고 뭔가 길쭉한 것을 꺼내 들었다.
“당신하고 같이 써 보고 싶었어요.”
찌거억
그녀가 제 뷰지에 집어넣은건 다름아닌 길쭉한 딜도였다.
다만 그 반대쪽에는 약간 작은 딜도가 달려 있었다.
특이한 생김새를 보고서야, 그게 뭔지 뒤늦게 눈치챘다.
마치 섹스하듯 쓸 수 있는 딜도.
“으흣.. 흑..”
축축히 젖은 뷰지가 딜도를 전부 삼켜 버린다.
스칼렛은 안을 꽉 채우는 쾌감에 신음하다, 이내 딜도에 달린 끈을 제 허벅지에 묶는다.
아마 딜도를 고정하는 용도인 모양.
그녀가 부드러운 손길로 내 머리를 쓰담는다.
이 향을 맡았을 때에는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럽게 보인다.
아래쪽에 강하게 저릿저릿한 감각이 퍼졌다.
그 감각에 나도 모르게 허리를 슬쩍 움직였다.
“하아, 하아..”
참기 힘든건 스칼렛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그녀는 골반을 살짝씩 비틀다, 이내 딜도를 내 뷰지에 콕 댄다.
무슨 마법을 썼는지 딜도는 살짝 따뜻했다.
마치 스칼렛의 체온 같아.
쯔어어어억
“흐이이입..”
안쪽을 강제로 밀어내며, 딜도가 질 안쪽을 가득 채웠다.
다만 딜도의 크기는 상당히 작아 그리 아프진 않았다.
부드럽고 따뜻하지만 묘하게 기분 좋은 곳을 콕 찌른다.
저릿한 곳에 찌릿하게 전류가 흐르곤 몸이 움찔 떨렸다.
“아흐으으으.. 하아, 하아..”
왜인지 모르게 스칼렛이 내 몸 위에 살짝 몸을 기댄 채 거칠게 헐떡인다.
위이이잉
살짝씩 진동이 전해지는걸 보니, 진동 기능까지 있는 모양.
나는 멍한 얼굴로 꾹 움켜쥔 스칼렛의 손을 슬며시 건드렸다.
서로의 손가락이 교차되며, 차가운 바닥이 맞닿는다.
얽혀드는 손이 묘하게 야한 느낌.
“움직.. 일게요..”
거친 숨을 토해낸 스칼렛이 허리를 뒤로 뺐다.
찌걱, 찌걱.
서서히 시작되는 피스톤.
나는 여린 신음을 뱉으며 몸을 슬쩍슬쩍 비틀었다.
처음에는 그리도 싫었던 쾌락이지만.
향 냄새를 맡으면, 뭐든 상관 없어진다.
기분 좋아. 더 느끼고 싶어.
“푸하.. 츄읍..”
입을 살짝 벌려 교태를 부리듯 혀를 내미니, 스칼렛이 입술을 맞대며 딥키스를 해 준다.
타액을 교환하고 뜨거운 열을 맞대는 감각.
피어오르는 행복감에 그녀의 손을 꽉 쥐었다.
찌걱, 쯔걱, 쩌걱
서서히 피스톤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찌익, 찌이익
스칼렛은 피스톤을 하면서도 계속해서 절정을 맞고 있었다.
시트를 애액과 조수가 흠뻑 물들인다.
나도 이제 슬슬 올 것만 같다.
한 번, 두 번 찌를 때마다.
가슴이 쿵쿵 뛰고.
아양을 떠는 듯한 신음이 튀어나온다.
그렇게 슬슬 질이 쪼여들기 시작하자.
“히으윽..!”
치밀어 오르는 절정에 허리가 확 튄다.
동시에 느껴지는건 타오르는 듯한 전류.
“헤엑, 하악..”
잠시간 황홀한 오르가즘을 느끼다, 몸에 힘을 축 뺐다.
스칼렛 또한 헥헥대며 내 몸 위에 엎어져 버렸다.
그런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목덜미에 키스.
그렇게 우리 둘은 껴안은 채 뜨거운 쾌락 속에서 헐떡였다.
너무 체력을 많이 쓴 탓일까.
아침인데도 잠이 솔솔 온다.
나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일어난건, 향이 꺼진 뒤의 오후였다.
****
“아니야.. 아니야..”
옆에는 스칼렛이 잠들어 있다.
향초가 꺼진 방에는 더 이상 아무런 향도 나지 않았다.
차가워진 몸과 찝찝하게 젖은 균열.
그리고.
“제가 분명 그랬잖습니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은 전부 잊으라고.”
내 앞에는, 목이 잘린 남자가 다리를 꼰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잘린 손목을 까딱이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