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화 〉 몸에만 손을 안 대면, 이런 방법은 괜찮지 않을까요?
* * *
레인은 왕국의 재정 관리인이다.
수도의 귀족가에서 자랐고, 무난무난하게 왕국에 취직할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이 무난한 편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그녀는 그럭저럭 먹고 살만한 환경이 갖춰졌다고 생각했다.
이 거지 같은 업무 환경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테지만 말이다.
‘레인, 이것 좀 처리해주세요.’
‘저것 좀 결제해줘.’
‘향신료 샀으니까, 왕국 이름으로 좀 달아놔.’
점점 반말이 되는게 조금 이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귀족들은 싹퉁바가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항상 스트레스와 과로에 시달려야만 했다.
언제는 아침에 머리를 감을때, 머리카락이 우수수 빠진 적도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최근에 더욱 큰 스트레스를 받을 일이 있었는데.
그건 바로 ‘제물’ 에 관한 일이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왕은 미쳤다.
항상 강하고 총명했던 왕의 모습은 이제 없다.
왕비가 죽은 뒤, 매일매일 그녀의 시체를 닦아 주며 사랑을 속삭인다.
식사도 잘 하지 않는다. 항상 제물에 눈독을 들이고 집착한다.
그 때문에 왕국은 점점 병들어 가고 있었다.
반면 멍청한 수도 귀족들은 미래를 보지 못하고, 사치와 향락에만 관심이 있다.
그 때, 왕비가 죽고 시간이 꽤나 지났을 때.
왕에게 처음 ‘제물’ 에 관한 이야기를 한 인물이 있다.
뻐드렁니의 상인.
본인을 떠돌이 상인이라 소개했지만, 레인은 그에게서 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한 번도 암흑가와 접촉을 하지 못한 그녀였기에 느낄 수 있던 분위기.
상인이 무얼 했는지는 그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상인이 수도 귀족들과 응접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뒤.
그 때부터, 왕에게 이상한 바람이 들기 시작했다.
왕비를 부활시키겠단다.
그 어처구니 없는 기행의 시작이었다.
물론, 거기에 들어가는 모든 노동력과 일거리들은 레인의 것이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스트레스와 일거리에 빠진 레인의 유일한 낙은, ‘푸른 햇살’ 에서 술을 마시는 것이었다.
독한 술과 흑맥주를 진탕 들이키고 취해 있으면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맛이 죽여주는 면 요리.
맛 좋은 술과 음식에, 한 달에 한 번씩 가던 가게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수가 늘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술에 진탕 취해, 엿 같은 세상을 저주하고 있을 즈음.
낯익은 얼굴을 보았다.
****
“..일이 그렇게 된 거였네요.”
“그래애.. 나는! 이! 좆! 같은! 일.. 한시라도 빨리 때려치고 싶다고오..”
주먹까지 쾅쾅 내리치며 맥주를 벌컥이는 레인.
이 정도 소란이라면, 사람들이 인상을 찡그릴 법도 하지만.
참 신기하게도 손님들은 전혀 기분 나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활기를 띤 채로 킬킬대며 웃고 있다.
“저 아가씨, 오늘도 대판 깨진 모양이야.”
“왕국 일이 예삿 일인가. 고생이 참 많아.”
“주인장! 큼직한 고기 국수 하나 갖다줘! 저 아가씨한테도 하나 주고!”
저마다 안쓰러운 얼굴, 공감된다는 얼굴, 딸을 보는 듯한 얼굴을 하며 술을 들이킨다.
그 중에는 음식을 따로 시켜 주는 사람도 있었다.
“..되게 분위기가 정겹네요.”
“그럼요. 여긴.. 저 분 같은 곳이 많이 모이는 곳이니까요.”
그리 말하는 유스턴의 얼굴에는 묘한 감정이 떠올라 있다.
아무튼, 이걸로 얻을만한 정보는 거의 다 얻었다.
이만한 이야기를 큰 소리로 얘기한다는 것이 맞나 싶긴 했지만.
어차피 왕에 대한 이야기는 소문이 쫙 퍼진 채였다.
왕이 쇠퇴한 것도, 왕국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도.
사람들은 전부 다 알고 있다.
“휴우.. 결국 식사는 제대로 못 했네.”
“..죄송합니다. 좀 더 조용한 곳으로 왔어야 했을까요?”
“탓하는건 아냐. 예상친 못했지만 정보도 얻었고, 음식도 맛있긴 했었으니까.”
괜찮아. 생긋 웃은 스칼렛이 덧붙인다.
“흐그어어엉.. 아무나 잘생긴 남자 좀 데려와아아아..”
어째서인지 레인은 갑자기 또 이상한 소리를 하며 펑펑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는 상당히 조용하고 차분한 인상인데, 술만 먹으면 개가 된다.
술 같은건 절대로 마시고 싶지 않다고, 스칼렛이 생각했다.
그녀는 슬슬 나가기 위해 카운터로 다가가 음식 값을 지불한다.
유스턴이 자기가 내겠다 했지만 대충 손을 휘저으며 저지했다.
‘생각보다 수완이 괜찮네.’
의외의 수완에 대한 보상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에는 좀 그랬지만, 결과적으론 매우 좋았다.
그래. 칼슨이 예전부터 왕국과 관련이 있었다고 했지.
그렇다면, 암상인이라는 직업도 거짓 직업이었던 것일까?
그렇다기엔 활동을 매우 오래 했는데.
아무튼 이걸로 실마리는 잡았다.
남은 것은 칼슨의 뒤를 쫓는것 뿐.
겸사겸사 지하에 감금되어 있는 애셔에게도 심문을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벌 주는것도 잊지 말아야겠고..’
그리 생각한 스칼렛이 유스턴과 대기하고 있는 마차를 향해 발을 옮겼다.
그녀가 방으로 돌아갔을 때엔, 루시는 차분한 얼굴로 세실을 돌보고 있었다.
****
벌컥
그토록 기다리고 기다리던 방 문이 열렸다.
스칼렛은 예쁜 외출복을 입고 들어와, 나를 보며 산뜻한 미소를 짓는다.
옆에서 우물쭈물거리며 옅게 한숨 쉬고 있는 것은 다름아닌 루시.
어째서인지는 모르겠는데, 자기 애액을 작은 병에 담은 뒤부터 계속 저 상태다.
나와 섹스한게 그리 기분이 좋지 않았던 걸까?
그렇다기에는 되게 야한 신음을 내며 허리까지 비틀었는데.
“아가씨!”
나는 내게 다가오는 스칼렛을 보며, 매우 밝게 인사했다.
그러자 덩달아 웃으며 날 껴안아 주는 스칼렛.
이마에 짧게 키스하고, 따뜻한 손길로 내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준다.
“저 없는 동안 잘 있었어요?”
아가씨 손길 기분 좋아.
나는 마치 신난 강아지처럼 얼굴을 부비며 그녀를 격하게 환대했다.
이내 나와의 인사가 끝나고, 스칼렛이 루시에게 다가간다.
움찔. 뭐 때문인지 루시의 몸이 움찔 하고 떨린다.
‘무슨 일이지?’
상황 파악이 잘 되지 않았다.
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그렇게 얼마나 대치를 하고 있었을까.
스칼렛이, 루시의 뒷덜미를 살짝 붙잡으며 속삭이듯 말한다.
“루시..”
“네, 네. 아가씨.”
“너.. 세실 아가씨 건드렸지?”
움찔. 다시금 루시가 몸을 떤다.
입은 달싹이고 ‘들켰다’ 라는 표정이 얼굴에 만연한다.
“아, 아니요. 안 건드렸”
콰악!
“켁, 에겍..”
고개를 저으며 상황을 부인하는 루시의 목을, 스칼렛이 강하게 움켜쥔다.
숨이 차단된 루시는 켁켁대며 몸을 부르르 떨었고.
나는 화들짝 놀라며 눈을 크게 치켜떴다.
분명 루시를 기분 좋게 해 주긴 했지만, 그건 내가 해 주겠다고 한 거였는데.
“아, 아가씨! 잠시만요! 제, 제가 해 주겠다고 했어요!”
“응? 그래요?”
그러자, 알았다는 듯이 루시의 목을 놓는 스칼렛.
휴우.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스칼렛은 가끔 보면 너무 무서운 표정을 지을 때가 있다.
그 때만 되면, 아랫배가 저릿하며 하반신의 힘이 풀릴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런데.
그녀가 택한 것은, 단순한 용서 따위가 아니었다.
따악
스칼렛이 손을 튕기자 내 몸이 저절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전에 메이드복 플레이를 했을 때 사용했던 꼭두각시 마법.
동시에 몸을 덮고 있던 이불이 아래로 내려간다.
알몸이었기에, 몸에 시원한 바람이 스친다.
“그러면.. 벌도 세실이 줘야 겠네요.”
“네에..?”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어볼 새도 없었다.
스칼렛이 손을 다시 튕기니, 내 손이 앞으로 확 뻗어 나간다.
콰악!
“케엑.. 겍..”
동시에 양손으로 있는 힘껏 쥔 것은 루시의 목이었다.
가녀리고, 따뜻한 온기를 머금은 목.
그걸 내 손으로 쥔 채 숨을 차단하고 있다.
“아, 아가씨! 이거, 이, 이거..”
곧바로 루시의 얼굴이 새빨개졌기에, 당황하며 스칼렛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렇지만 그녀의 입가에 떠오른 것은 미소였다.
“왜요?”
“왜, 왜라니.. 이거, 놔, 놔 주세요! 루시.. 루시 죽어요.. 이렇게 조르면..”
“그 정도로는 안 죽는답니다. 용족은 튼튼하다고, 전에 말했잖아요?”
그리 말한 스칼렛은 정말로 의아하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반쯤 축 늘어진 루시의 얼굴을 응시했다.
루시는 눈가가 촉촉히 젖은 채 켁켁대고 있었다.
꾹 쥔 손 안에서 동맥이 콩콩 뛰는 감촉이 느껴진다.
그 감각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하고 소름끼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흐르기 시작한다.
“히끅.. 제, 제발.. 아가씨.. 잘못했어요.. 다시는.. 다, 다시는 안 할게요.. 용서해 주세요..”
간절한 목소리로 흐느끼며, 필사적으로 스칼렛에게 애원한다.
그녀는 이런 내 반응이 그리도 흥분이 되는 모양이다.
상기된 제 뺨을 어루만지며 숨을 헐떡인다.
“제발.. 아가씨..”
“그래요? 진짜로, 다음부터는 바람 안 필 거에요?”
“네에, 네.. 진짜.. 지, 진짜로.. 히끅.. 안 필게요.. 제바알..”
“흐음.. 어쩐담..”
“헥, 케엑, 켁..”
제발.
스칼렛은 일부러 간을 보며, 루시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점점 루시의 숨과 움직임이 약해져 가고 있다.
힘 조절 따위는 들어가지 않은 채, 목을 콱 조르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쪼르르르륵
이내 눈이 반쯤 넘어간 루시가 실금을 해 버렸다.
바닥이 축축해지고, 초조감과 공포는 더욱 커져 갔다.
“제바알.. 흐그윽.. 아가씨.. 제발.. 제발..”
이젠 더 이상 가면 죽는다.
진짜로 죽을 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눈물이 하염없이 줄줄 흘렀다.
그렇게, 루시가 축 늘어져 버리기 직전.
따악
이쯤이면 됐다 싶은 표정의 스칼렛이 손을 튕긴다.
털썩
“꺼어어억..! 허.. 꺼억..”
동시에 땅으로 떨어지며 필사적으로 산소를 흡입하는 루시.
“아.. 아아..”
다행이다.
어찌나 놀랐는지, 아래는 축축하고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스칼렛은 필사적으로 숨을 삼키며 침을 질질 흘려대는 루시를 붙잡고, 침대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선 이내 공포에 빠져 있는 내 입술을 훔친다.
“흐읍, 쯉.. 후읍..!”
몸이 고정된 상태에서 키스를 받았기에 벗어날 수가 없다.
격렬한 키스에, 숨이 조금 부족했다.
그렇게 얼마나 혀를 섞었을까.
옷을 훌렁 벗어 버린 스칼렛이 질척한 허벅지를 보이며 서랍을 연다.
그리고, 거기에서 꺼내든 것은 은빛 실로 연결된 목줄이었다.
“끄윽.. 그, 그건..”
“세실은 알아요? 세실이 괴로워 할 때, 얼마나 예쁜지.”
내 물음에도 스칼렛은 알 수 없는 말로 되물었다.
그리고, 난 이내 그녀의 의도를 눈치챌 수 있었다.
찰칵
스칼렛이 산소 부족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루시의 목에 목줄을 건다.
이내 나머지 하나를 내 목덜미에 갖다대며 말을 이었다.
“근데, 직접 몸에 손을 대는건 죽어도 싫더라구요. 그래서 생각을 해 봤는데..”
목줄에 걸린 후크가 풀리고, 내 목에 목줄이 걸쳐 진다.
“몸에만 손을 안 대면, 이런 방법은 괜찮지 않을까요?”
찰칵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몸을 엄습한 것은.
산소 부족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