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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 나를 보고 딸침-116화 (116/170)

〈 116화 〉 진실

* * *

존 케네디는 참 기운 넘치고 활달한 청년이다.

늘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고, 의외로 미신을 많이 믿었다.

그리고 그와 훌륭한 기사 단장 유스턴은 잡담을 나누며 숲 길을 걷고 있었다.

대화 주제는 시덥잖았다.

‘숲 속의 귀신’ 따위의 괴담을 늘어놓아, 유스턴은 매우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다만 존은 계속해서 귀신에 대한 이야기들을 늘어 놓았다.

이야기의 출처는 헨리로서, 미신을 좋아하는 존을 위해 ‘비밀스런’ 표정으로 해 준 이야기다.

“숲 속에서, 가끔씩 알몸으로 출현하는 여자 귀신이 있답니다!”

“..존. 혹시, 양파한테 좋은 말 하면서 키워본 적 있어?”

“어.. 안 해 봤습니다.”

“그래. 나중에 한 번 꼭 해 봐. 그럼 더 잘 자란대.”

“진짭니까?”

“진짜겠냐? 으이그..”

유스턴의 일침에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존.

그는 활달했지만, 조금. 아주 조금..

눈치가 없었다.

그렇지만 회복하는 것도 빨랐다.

존은 약 1분 정도를 시무룩해 있다, 다시 생기가 도는 얼굴로 고개를 치켜 들었다.

“근데, 단장님. 요즘 사모님이랑은 잘 지내십니까?”

“그래. 잘 지내지. 조금 있음 결혼 기념일이라, 챙겨주러 가야 해.”

“이번에는 좀 박력있게 하는게 어떻습니까? 전엔 되게 쑥맥같이 했다가 밤새.. 큼. 그러셨다고 했잖습니까.”

“다신 잡아먹히기 싫어..”

존은 ‘잡아먹힌다’ 라는 말의 의미를 곧바로 이해했다.

사모님이 기가 세신 분이라고 했었나.

아무튼 존은 유스턴의 결혼 기념일에 대해 열을 띠며 수다를 떨었다.

결혼이라곤 해 본 적 없는 그였지만, 여느 베테랑 부부 못지 않은 훈수를 둘 수 있었다.

유스턴은 그런 존의 이야기를 귀엽다는 듯이 얌전히 들어 주었다.

‘나중에 결혼하면 보자..’

아주 약간의 앙심을 마음에 품으며.

그렇게 숲 쪽을 지나가던 와중.

열심히 이야기를 하던 존이, 무의식적으로 살짝 어두운 숲 쪽을 응시했다.

아직은 아침 시간이라 그다지 음침하진 않다.

다만, 저쪽에는 ‘보안’ 을 위해서 무슨 투명한 짐승 같은 것을 키우고 있다고 했었다.

아주 째끄만 용족이 그걸 돌본다고 듣긴 했는데.

자세한건 알지 못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보니까 엄청 으스스하네..’

존이 생각했다.

아까 그 미신에 대해 이야기해서 그런지, 약간 으스스한 기분도 들고.

마치 이렇게 쳐다보고 있으면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 저기 있는 새하얀 여자 처럼.

여자?

“어..?”

눈을 슥슥 비볐다.

존은 인상을 찌푸리며, 저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응시했다.

거기에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한 여자였다.

갈색 머리에, 새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매우 아름다운 여자.

그리고 그는 그 여자를 보며.

“우, 우와아아악!!”

목이 찢어져라 비명을 질렀다.

****

“으, 으윽..”

나는 몸을 부르르 떨며 꿈틀대는 다리를 응시했다.

이내 다리는 움직임을 멈추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정지했다.

스칼렛으 아까 내 다리에 일어난 변화를 알지 못한 모양이었다.

다급한 얼굴로 날 휠체어에 태우고, 가림막용 천을 다시 덮는다.

그리고선 저 너머에 있는 유스턴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스칼렛.

동시에 유스턴이 뒤늦게 스칼렛을 발견한다.

“다, 단장님! 보셨습니까? 저거 보셨어요?!”

“야, 야! 진정 좀 해. 저기 있는거 안 보여?”

정말 다행히도 유스턴은 눈치가 매우 빨랐다.

그는 존의 어깨를 탁탁 치며, 순식간에 나와 자리를 바꾼 스칼렛을 가리켰다.

잠시 우뚝 선 채로 손을 흔드는 그녀.

동시에 존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아가씨..?”

본인이 잘못 봤다고 느꼈는지, 눈을 슥슥 비비며 인상을 찡그린다.

“아, 아닙니다. 방금 제가 분명 봤는데.. 갈색 머리 여자였습니다, 분명히.”

“야 인마, 저거 똑똑히 봐봐. 아가씨 머리가 갈색이냐?”

유스턴은 존의 얼굴을 꾹 잡아 보란 듯이 스칼렛 쪽을 가리켰다.

루시는 휠체어를 잘 안 보이는 수풀 쪽으로 끌고가, 내 모습을 숨겼다.

이런 장면을 들킨다면 썩 곤란할테니 말이다.

“어.. 빠, 빨간색입니다.”

“그치? 그러니까 그런 등신 같은 귀신 이야기는 집어 치우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늘은 하루종일 파스타만 먹어야 할지도 몰라.”

“오.. 주방장님이 분량 조절 실패라도 하셨답니까?”

이내 유스턴이 솜씨 좋게 화두를 돌렸다.

존은 곧바로 그의 화젯거리에 넘어갔고, 그 둘은 자연스레 저택으로 향했다.

“후아..”

그 둘이 가자마자 스칼렛이 옅은 한숨을 쉰다.

나는 아랫배가 여전히 찌릿찌릿한걸 느꼈다.

설마, 보여진다는 사실 때문에 흥분한 건가.

아냐. 난 그리 변태가 아니다.

그렇게 애써 현실을 도피하며, 스칼렛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그녀의 얼굴이 상당히 상기 되어 있다.

“휴우.. 들킬 뻔 했네요..”

“아가씨..?”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내 위에 살포시 올라타는 스칼렛을 응시했다.

그녀의 체온과 적당한 무게감이 올라와 묘한 안정감을 준다.

그리고, 이내 손가방에서 길쭉한 무언가를 하나 꺼내는 스칼렛.

“조금만.. 하다 가요.”

그녀가 꺼내든 것은 딜도였다.

그것도, 전에 내가 애용했던 생체 딜도 말이다.

스칼렛은 지금 상당히 흥분한 듯했다.

남에게 들킬 지도 모를 스릴감과, 야외에서 섹스를 한다는 개방감.

그 둘은 그녀의 이성을 지우기에 충분했고.

쉬르르륵­

이내, 내 음문이 있던 자리에 생체 딜도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동시에 느껴지는 것은 딜도 부분을 타고 흐르는 바람.

나는 몸을 부르르 떨고선 숨을 거칠게 들이마셨다.

찌걱, 찌걱­

동시에 스칼렛이 제 치맛자락 아래에 있는 뷰지를 딜도에 문지른다.

그녀는 아래쪽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채였다.

스커트가 살랑이고 얇은 천의 감촉이 딜도를 스쳤다.

그 묘한 자극에, 전류 같은 것이 짜르르 올라왔고.

쯔어어억­

이내 그녀가 망설임 없이 삽입하자.

몸을 부르르 떨며 깊은 신음을 내뱉었다.

“햐아아앗..”

“읏.. 흐읏..”

스칼렛 또한 깊숙히 닿은 딜도가 기분 좋은 모양이다.

그녀는 나를 꼭 끌어안은 채, 거친 숨을 토해냈다.

숨은 귓가에 스치고 묘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우리는 그대로 숲 내음을 맡으며 연결되어 있었다.

옆에선 루시가 다리를 꼼질대고, 주변에 사람이 없나 고개를 돌린다.

그렇게 조용한 숲 속은 교태 어린 숨소리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우리가 저택으로 돌아갔을 때엔 해가 모습을 감췄다.

숲에 잔뜩 흩뿌려진 격렬했던 흔적을, 누가 발견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흐아아암.. 머리 아파 죽겠다..”

“좀 쉬면서 하십쇼. 이러다 과로사 하는거 아닙니까?”

“새끼, 불길한 소리는..”

늘어져라 하품하던 유스턴이, 존이 건넨 커피를 받아 들었다.

그는 잠시 휴식을 취하려는지 기지개를 쭉 폈다.

온 몸에선 우두둑 소리가 났다. 오래 앉아 있었다는 증거다.

유스턴의 앞에는 수많은 서류들이 무방비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일처리를 아무렇게나 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남들은 알아보지 못하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정리된 서류.

그렇기에 그는 다른 사람이 자신의 일거리를 건드는 것을 극도로 기피했다.

“아직 죽을 일은 없으니까 걱정 마라. 할 일이 산더미야.”

“이게.. 전에 저희가 조사하던 그겁니까?”

“어. 그 암상인.”

유스턴이 답했다.

그는 그 난잡한 서류의 무덤 속에서, 솜씨 좋게 딱 필요한 서류를 하나 꺼내었다.

그의 이런 재주는 언제 보아도 놀라운 것이었다.

존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유스턴이 꺼낸 서류를 응시했다.

“이게, 그나마 단서에 근접한 자료야. 읽어 봐.”

서류를 받아든 존.

그가 읽어 내려간 서류의 중심엔, 비교적 최근까지 그가 했던 활동들이 적혀 있었다.

어디 지역에 가서 뭘 팔았다던가.

누구한테 뭘 샀다던가 등의, 일종의 영수증에 가까운 서류다.

“어.. 몇 주쯤 전에, 수도를 방문했네요?”

“그래. 우리 감시망을 뚫고, 버젓이 수도를 돌아다닌 거지. 뭘 했는지는 몰라. 애초에 우리가 찾을 수 있는건 이런 흔적들 뿐이고.”

“역시, 그 제물하고 연관이 있는게 맞는것 같습니다.”

“왜 제물을 찾으려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애초에, 그 강령술은 개인 단위로 할 수 있는게 아닌데.”

유스턴 또한 스칼렛에게 이야기를 들어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제물의 그릇부터가 조건이 까다로운데, 추가적인 가공까지 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게 아니다.

생명을 빼앗는건 쉽지만 부여하는건 극도로 어렵다.

단순히 움직이게 하는건 몰라도, 자아를 유지시킨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기에 온갖 생명력이 넘치는 재료들이 필요하다.

가령, 용족의 심장이라던가.

그런 ‘일반적인’ 방법으론 얻을 수 없는 재료들 말이다.

‘..용족의 심장이라.’

유스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상황이 너무나도 틀에 맞춘 것처럼 흘러가고 있었다.

가장 처음 스타트를 끊은 것은 세실의 발견.

제물의 발견 자체는, 프리드먼 가문의 눈 덕분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위화감이 드는 일이 너무나도 많았다.

정말 우연히, 그것도 요주 인물인 칼슨이 준 열매로 세실의 몸은 ‘가공 과정’ 이 끝났다.

그리고 의식에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재료는 용족의 심장.

프리드먼 가문은 아슬아슬하게 귀족가에 걸쳐져 있고 가주는 죽었다.

‘너무 이상해. 마치, 계획이라도 된 듯이..’

“아, 단장님. 저기 침대 사이에 껴 있는거 자료 아닙니까?”

존의 물음에, 유스턴이 상념에서 빠져나왔다.

얘기했던 대로 침대 사이에는 살짝 구겨진 자료가 한 장 들어가 있었다.

그는 읏챠, 소리를 내며 자료를 집어 들었다.

‘이건 처음 보는 자룐데..?’

아마도 대충 서류를 물색하는 작업에서 실수로 빠져나간 자료인 모양이다.

아직 안 읽고 놓친 서류가 있다니.

나도 늙었구나, 따위의 잡생각을 하며 글을 읽어 내려가던 유스턴.

“..존.”

그의 표정이 급속도로 굳어 가기 시작한다.

“네, 단장님. 뭐 문제라도 있습니까?”

“너희 할머니.. 환갑 때에 갔던 가게 이름이 뭐라고 했었지?”

“환갑이요? 음.. 그때가 한 15년 전이니까.. 지금은 사라진 가겝니다. 왓슨의 선술집.”

“확실해?”

“네. 제 사촌하고 이름이 똑같아서, 그걸로 농담을 주고받았던 적이 있었죠.”

존이 고개를 끄덕이자 유스턴의 얼굴이 더욱 심각해진다.

그가 무슨 일이냐고 물을 새도 없이, 그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

“넌.. 할머니 얘기를 많이 해 줬었지. 너희 할머니가 시골 처녀였던 시절, 상점을 하셨다고 했나?”

“네. 돈이 썩어날 정도로 금수저여서, 아주 큰 가게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때만 해도 50년은 훌쩍 넘었을텐데.. 그건 왜요?”

“이런, 망할.. 이것 봐.”

유스턴이 쓱 내민 종이에는 수많은 가게들의 기록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가게들은 전부 최소 20년, 길게는 60년 전까지도 있었던 가게들의 목록이다.

그 중에는 존의 할머니가 하셨다던 ‘레이먼드 무기점’ 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아니, 잠시만.. 이, 이거..”

“조사 기관에 의뢰를 넣었던 건데.. 터무니 없는 결과가 나왔어.”

드르륵­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야. 한시라도 빨리, 아가씨께­”

하지만 유스턴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챙강!

창문을 깨고 뾰족한 무언가가 방 안으로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거기엔 주문서로 보이는 종이 같은 것이 묶여 있었고.

그 화살은, 정확히 유스턴의 머리를 겨누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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