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대련
* * *
너무 오랜 시간 자리를 비워서 강의 일정 내역을 잊어버렸던 성일.
그는 수업 시간을 체크하며 생각했다.
'응? 오늘 마침 대련 수업이 있네?'
아침잠이 많아, 오전 시간을 비우고 오후에 수업을 몰아놨던 성일. 점심시간 이후 있는 첫 수업이 전투 대련임을 확인하고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생각했다.
'크흐흐... 드디어...! 복수의 시간이 다가왔다!!'
상당히 긴 시간 동안 고통을 받아왔던 성일. 그는 게임 세상에서 반년 동안 갖은 고생과 노력, 기연을 통해 준비한 것들을 실행할 시간임을 느끼며, 복수를 준비하며 생각했다.
'도착하면... 바로 고영태를 지정해서 대련을 요청한다. 설사 지더라도 상관없어! 지면 다시 게임 세계로 돌아가서 복수를 준비하면 되니까!'
그렇게 고민이 완료되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옷을 갈아입고 수업 준비를 했던 성일은 이전에 뽑기에서 뽑았던 3분 요리를 먹고 배를 채운 후, 학교로 떠난다.
오랜만에 보는 몇몇 동기들과 가볍게 인사를 하고 도복을 입은 채, 대련장에서 얌전히 수업을 기다리던 성일.
그런 그의 눈앞에 자신이 기다리던 자가 등장했다.
"여어~ 우리 성일이~ 반갑다~"
"오~ 영태 왔냐?"
"...?"
뜬금없이 자신을 향해 편하게 인사하며 자신만만하게 바라보는 성일의 태도에 당황한 고영태.
그런 그가 성일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답했다.
"너 뭐 잘못 먹었냐? 말 싸가지가 영 그렇다?"
그런 그를 보며 비릿하게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는 성일.
"뭐 어쩌라고? 반갑게 인사해도 지랄이네. 새끼가."
"뭐? 이 새끼가?"
자신의 말에 비아냥대는 성일의 모습에 격분한 고영태. 그가 주먹을 쥐고 당장이라도 성일에게 달려들듯 하자 주변에서 그를 말렸다.
"야! 미쳤냐? 비전투능력자를 상대로 폭력을 쓰면 넌 바로 구속이야..!"
"그래. 굳이 지금 손 쓰지 말고 좀 있다 합법적으로 해라 합법적으로."
'때리는 새끼보다 말리는 새끼들이 더 좆같다니. 저 새끼들도 조만간 손봐줘야겠네.'
그런 영태 패거리들의 개지랄에 신물이 난 성일. 그런 그가 영태에게 말했다.
"야. 너도 나한테 꼬운게 많은가 본데, 그냥 잴 거 없이 바로 나랑 붙자."
"...너 미쳤냐?"
"아마도? 내가 널 재밌게 해줄 게 이 새끼야. 기대해라. 알았냐?"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고영태를 도발하는 성일. 그런 그의 모습을 보고 영태와 그 동료들은 무언갈 느끼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뭐지...? 저 자식 기껏 해봐야 『감응』 능력자 아니었어? 뭘 믿고 저러는 거지...?"
"글쎄. 너무 처맞아서 돌아버렸나 보지."
그렇게 말한 후 표정을 굳힌 채, 자리로 돌아서는 고영태.
그런 그들을 무시하며 성일은 대련장 구석에서 주변을 살폈다.
'오... 왠일로 이아현이랑 최현우가 수업을 나왔네...?'
1학년 최고의 유망주인 이아현와 최현우.
그들은 무려 두 가지 특기를 가진 거로 유명한 유망주들로서, 그들은 서로를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과 클래스가 다른 거로 유명했다. 그 극심한 차이로 인해, 타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필수 과목인 대련 수업을 프리패스한 것도 유명했고.
기본적으로 둘 다 육체 강화 능력을 베이스를 갖춘 채, 염력을 사용 할 수 있는 최현우와 공간 왜곡을 사용하는 이아현은 졸업과 동시에 모든 길드와 정부 기관에서 쟁탈전을 펼칠 게 분명한 특급 유망주였다.
'예전 같았으면, 나도 먼 발끝에서 쟤들을 부러워하며 고개를 숙였겠지만. 지금은 아냐.'
자신만만하게 둘을 바라보는 성일. 그런 그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이아현이 그를 바라본다.
'아차!'
재빠르게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는 성일. 그런 성일의 모습을 보며 이아현은 인상을 살짝 찌푸리다 이내 표정을 고치고 성일에게서 신경을 껐다.
'이아현 쟤는 능력도 좋으면서 얼굴은 왜 저리 이쁘냐...'
어지간한 연예인 수준으로 아름다운 이아현의 외모. 그리고 그녀의 외모를 빛내주는 완벽하게 단련된 육체는 수많은 남성들을 그녀의 매력에 빠지게 했다.
'의외로 성격도 꽤 좋다던데...'
실제로 거들먹거리는 육체 강화 능력자들에게 주의를 줘서 그들이 나대지 못하게 한 게 이아현라는 말이 있었을 정도로 그녀는 인성적으로도 상당히 호평을 받는 인물이었다.
'그런 것 치고 최현우 저 자식은 참....'
여러 가지 의미로 완벽한 이아현와 달리 말이 많은 최현우. 그 역시 제법 준수한 외모에 성격도 무난했지만, 의외로 평판이 안 좋았는데...
'안 봐도 뻔하다, 알음알음 주변에 물어 이아현이 수업에 등장한 걸 알고 어떻게든 꼬셔보려고 수업에 온 거겠지.'
나쁘지 않은 인품에도 불구 최현우의 평이 안 좋았던 이유는 단 하나. 그가 지저분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지독한 바람둥이였기 때문.
준수한 외모와 압도적인 실력까지. 완벽한 조건을 갖춘 최현우가 나쁘지 않은 성격까지 보여주자 그의 주변에는 여성들이 끊이지 않았다.
문제는 최현우가 그런 그들의 호감을 이용해 괜찮다 싶은 여성들을 문어발 형식으로 지저분하게 건드리고 다녔다는 것.
'저 새끼 듣자 하니, 만나는 여자만 10명이 넘는다던데. 이젠 그것도 부족해서 이아현까지 노리는 건가? 있는 새끼가 더한다더니...'
사실 최근의 행적을 따지면 성일도 결코 최현우의 행적에 뒤지지 않았지만(..), 성일은 내로남불을 시전하며 최현우를 속으로 계속 욕했다.
"오...! 오늘은 다들 미리 모여있군요? 웬일이죠?"
대련장에 잔뜩 모여있는 학생들을 보고 말을 걸며 들어오는 젠틀하게 생긴 중년 남성의 등장.
'마귀 새끼 등장했네.'
속칭 마귀 '조우영' 교수.
나긋나긋하고 젠틀한 말투, 상시 웃는 낯의 외모와는 다르게,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다그치는 것으로 악명높았다..
'학기 초반에 멋도 모르고 수업 중 배실거렸다가 저 마귀 새끼한테 뒤질뻔한 적 있었는데... 오랜만에 보니 저 새끼도 반갑네.'
그렇게 생각하며 성일은 조용히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자...! 오늘은 뭐 별거 없습니다. 그냥 대련 한판만 하면 됩니다. 제대로."
'저 대련 한판이란 말에 낚여서 뒈질뻔한 놈들이 한둘이 아니었지? 아마...'
말만 들으면 가볍게 대련 한번 하고 돌아가란 뜻으로 보였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는 자신이 기대하는 수준의 격렬한 대련이 나오지 않으면, 여지없이 '다시'를 외치고 수업 맨 끝으로 순번을 미룬 뒤, 재대련을 끊임없이 시키는 거로 악명높았다.
'어찌 보면 저 개새끼 때문에 내가 고영태한테 그 수모를 당한 게 맞는거겠지.'
그런 성일이 이를 악물고 분을 삼킬 때, 어느덧 고영태가 그의 곁에 다가와 속삭였다.
"어이. 나 너 지목할 건데. 준비는 됐냐? 새꺄?"
"응?"
자신을 바라보며 득의양양하게 웃고 있는 고영태. 그런 그를 향해 성일은 말없이 빙그레 웃었다.
"....웃어?"
"왜 씨발. 내 입에서 내가 웃겠다는데 지랄이야 새끼가."
"...이 새끼가."
"주둥이 그만 털고 대련 신청이나 해 새꺄."
그런 성일의 도발에 몸을 부들부들 떨며 이를 악무는 고영태.
"...네가 자초한 거다?"
"응."
결국 성일의 도발을 참지 못한 고영태가 손을 들어 조우영에게 대련을 신청했다.
"교수님!"
"오... 영태군. 자네가 먼저 대련을 시작할 건가?"
"예. 한성일과 대련을 하고 싶습니다만..."
그런 그의 말에 인상을 찌푸리며 짜증 나는 듯한 목소리로 그를 다그치는 조우영 교수.
"응? 이제 두 번째 학기인데 비전투요원과 대련을 하겠다고? 자네도 슬슬 자네보다 뛰어난 전투 능력자들을 지정해서 대련할 생각을 해야 하지 않겠나? 마침 이아현양이나 최현우 군이 왔으니, 이참에 그들에게 도전해 봄이 어떤가..?"
그런 그의 말에 말문이 막힌 고영태. 그런 그들의 사이를 끼어들어 성일이 답한다.
"교수님. 제가 부탁한 건입니다."
"?"
갑작스레 튀어나온 성일의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조우영. 그런 그를 보며 성일은 어깨를 으쓱하고 말을 이었다.
"저도 언젠가 위험한 현장에 파견될지 모르잖아요? 그 때문에 육체 강화 계통의 능력자와 대련을 해보고 싶었는데, 마침 옆에 있는 영태가 제 고민을 듣고 대련을 돕겠다 해서요. 그래서 그가 저 대신 대련 신청을 한 겁니다."
"....정말로?"
"예. 그럼요."
그런 그의 폭탄 발언에 수군대는 장내.
"...쟤가 정말 미친 건가?"
"고영태 그래도 나름 3등급 육체 강화 능력자 아냐? 저 정도면 단순 대련에선 괴수급일 건데..."
"웃기는 새끼네 참..."
자신의 뒤에서 들리는 온갖 비아냥. 그런 그들의 조롱을 들으며 성일은 대련장 한복판으로 이동해 내공을 끌어올린다.
'오늘. 지든 이기든 끝장을 본다.'
결연한 마음으로 대련장에 서서 고영태를 바라보는 성일.
그런 그를 보자, 성일의 머릿속에 지난 6개월간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흘러 지나갔다.
멋도 모르고 들어간 무협 세상에서 소교주에게 처맞아 죽을뻔했던 일이나, 포켓걸즈 세상에서 칼을 맞고 죽다 살아나, 분한 마음에 이를 악물고 수련에 집중했던 시간들.
그 시간들을 생각하자 성일은 자기도 빙그레 웃으며 생각을 시작했다.
'시발 칼 맞고 뒈져본 적도 있는데. 이까짓 것쯤이야. 여차하다 크게 다치면 포션 빨면 되는 거고.'
옛 생각에 빠져 웃고 있는 성일의 모습이 자신에 대한 도발이라 생각한 건지, 고영태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성일을 노려보다 대련 자세를 취하기 시작했다.
"자. 둘 다 준비가 된 것 같으니 시합을 시작 하지. 늘 하던대로 내가 다섯을 세면 그 뒤 시합이 시작되는걸세. 이의 있나?"
"없습니다!"
둘이 큰 목소리로 우렁차게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교수가 카운트를 세기 시작했다.
"5.. 4.. 3... 2.. 1... 대련 시작!"
말이 끝나자마자 우악스럽게 몸을 날려 성일에게 엄청난 속도로 돌진하는 고영태.
그런 그의 돌진에 성일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감응』을 일으켜 감각을 극대화한 후, 상대의 공격 동선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매섭게 날아오는 영태의 주먹질.
성일은 눈을 똑바로 뜨고 자신을 행해 날아오는 주먹질을 기민하게 고개만 슬쩍 움직이며 회피한다.
파앙!!
그리고 허공에 울려 퍼지는 고영태의 주먹질로 인한 파공음(??音).
'이 새끼 진심으로 날 죽일 생각인가 본데?'
그런 영태의 살심(?心) 어린 주먹질에 쓴웃음을 지으며 성일은 더욱 깊게 집중하여 그의 공격을 회피한다.
파앙! 파앙!! 파앙!!
대체 공중에 닿은 것도 없는데 어떻게 저런 소리가 나는 건지 궁금할 정도의 맹렬한, 고영태의 주먹질로 인해 발생하는 파공음(??音).
무자비한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이어지길 한참.
성일은 그 주먹질을 피하다, 어느덧 3~4미터 정도 뒤로 물러나게 되었다.
그런 성일의 모습에 놀라는 표정을 짓는 영태.
"이 새끼가... 오늘따라 왜 이리 깝치나 했는데, 능력을 이용해 쥐새끼처럼 회피하는 법을 배웠나 보지?"
그런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없이 주먹을 쥐는 성일.
"오...! 새로 배운 주먹질 좀 써먹어 보려고? 그래 한 대 맞아주마. 한번 쳐봐."
성일과의 대련을 통해 그의 공격을 몇 번 맞아봤기에, 그의 주먹이 능력을 끌어낸 자신의 육체에 별다른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던 고영태.
그는 성일에게 호기롭게 외치더니, 가드를 풀고 그에게 얼굴을 들이대며 외쳤다.
"쳐봐. 새꺄. 쳐보라고. 한 대는 맞아주마."
"오~ 정말?"
"그래. 한 대 칠 기회를 줄게. 쳐봐 새꺄."
"고마워!"
그런 그의 행동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몸의 내공을 몽땅 끌어내 주먹에 집중하는 성일.
'시발 내가 개처럼 모았던 3성 내공 맛이나 봐라 씨발새꺄.'
준비가 끝나자 전력으로 주먹을 갈기는 성일
빠악!!!!
그렇게 고영태의 얼굴 한복판에 박히는 성일의 무자비한 타격.
그러자 성일의 주먹은 고영태의 얼굴을 살짝 파고들듯 들어가더니 그의 코와 입을 으깨버리고 말았다.
"케헥...!"
마치 워해머로 머리를 맞은듯한 엄청난 충격. 그런 충격에 고영태는 뒤로 날아가듯 쓰러지고, 이빨이 허공에 흩뿌려진다.
"병신 새끼가. 방심하긴."
고영태가 강렬한 충격에 대자로 바닥에 뻗어 정신을 못 차리자 성일은 득달같이 달려서 그의 상체를 자신의 하체로 깔아뭉갠 후 무자비하게 두 주먹을 휘둘러 얼굴을 두들기기 시작했다.
빠악!! 빠악!! 빠악!!
그동안 쌓였던 원한에 결국 이성을 잃고 무자비하게 그를 두들기는 성일.
"그만!!"
그런 그를 보다 못한 조우영 교수가 그를 제지한다.
하지만 이성을 잃어버린 성일이 그의 만류에도 전력을 다해 그를 끊임없이 두들기자, 결국 조우영은 성일을 향해 돌진한 후 수도(手?)로 성일의 목 뒤를 내리쳤다.
"좀 자라."
팍!
조우영 교수의 날카로운 타격이 성일의 목에 작렬하자, 성일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기절해버리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