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 연금술사가 되는 방법
* * *
"수락했으면 조수지. 아무튼, 잘 생각했고. 내일부터 출근해라. 몇 시부터 출근할래?"
"...제길."
아름다운 외모와 다르게 입이 제법 험한듯한 그녀는 무척이나 짜증이 난 표정으로 성일과 출근 시간을 정했고. 둘은 합의 내용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계약서를 작성한다.
"그럼 내일 보자고! 조수!!"
"...시끄러!!"
얼굴이 빨개진 채로 고개를 돌리고 자신의 기숙사로 뛰어가는 그녀. 그런 그녀를 보며 성일은 음흉한 미소를 짓는다.
'이제 슬슬 수작만 부리면 되겠군!'
"망할!!"
자신의 기숙사에서 분노한 얼굴로 연신 욕설을 내뱉는 비비안. 그녀는 이 끔찍한 현실에 당혹스러워하며 현실을 부정한다.
'...진짜 내일부터 그 하등한 놈들의 부하 노릇을 해야 해? 정말로? 이 비비안이?!'
자신에게 닥친 현실에 절망하다 욕설을 내뱉는 비비안. 그녀는 이 끔찍한 현실을 부정하며 연신 분노를 하다 하루를 마감한다.
"오! 왔네?"
"...약속은 약속이니까!!"
용케 에리샤가 오지 않은 시간을 파악해 귀신같이 그 시간대에 찾아온 비비안. 그녀는 잽싸게 공방 구석에 들어가 성일을 들들 볶아댄다.
"내가 오늘 할 일이 뭐야! 빨리 말해줘! 빠르게 일하고 갈 테니!!"
"...빠르게가 아니고 매일 4시간이야."
"아무튼!! 나의 우수한 능력으로 빠르게 정리해주지!!"
'에리샤가 말한 대로네...'
전날 밤.
"야. 내일부터 비비안 온다며?"
"어. 내일부터 하루 4시간씩 열심히 부려먹으면 된다."
"과연 그게 될까?"
"...응?"
"걔가 다음 주 공방 업무 시간표라고 보낸 걸 보니까. 내가 수업이 있는 시간만 노려서 방문하려는 거 같던데?"
"...설마?!"
"어, 나랑 마주치기 싫어서인 듯?"
"어지간하네. 걔도."
"뭐... 걔는 자존심 하나로 사는 애니까. 이해는 가. 하지만 잔뜩 부려먹어주겠어!!!"
그동안 비비안에게 무시당했던 게 어찌나 서러웠던지, 이를 악물며 그녀를 부려먹겠다며 열의를 다지는 에리샤. 그녀는 자신의 갈색 머리를 손가락으로 비비 꼬면서 음침한 미소를 짓고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후후후...! 내일부터 보조 시약이랑 정력 포션 밑 재료를 만들 시약을 준비하라고 잔뜩 쪼아대야지!! 안 되겠어! 지금 바로 명령서를 작성해야겠군!!"
그렇게 말한 에리샤는 거실에서 무언가를 잔뜩 써오더니 성일에게 당부한다.
"자! 이거 보이지? 앞으로 걔의 일일 할당량이야! 내가 이미 이 정도를 하고 있으니, 걔가 그걸 못하면 그건 그년이 무능하단 뜻이지."
"...넌 숙련자잖아."
"알 게 뭐야? 못 만들면 아무튼 무능력한 거지."
"..."
살짝 광기에 빠진 듯한 에리샤의 모습에 성일은 움찔하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성일의 태도에 에리샤는 득의양양하며 계속해서 혼잣말을 중얼거린다.
"지옥을 보여주지~"
"..."
멍하니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회상하던 성일. 그런 그를 향해 비비안은 보채며 말한다.
"야! 빨리 일 안 시킬 거야? 나 바빠! 이렇게 멍하게 서 있게 할 거면 그냥 조기 퇴근시켜주던가!!"
날카롭게 말하는 비비안에게 성일은 어제 준비한 에리샤의 명령서를 들고 와 그녀에게 건넨다.
"...이건 뭐야?"
"니 상사의 명령서."
"!!"
'상사'란 표현에 표정을 굳히는 비비안. 하지만 성일은 그런 그녀를 무시하며 실행을 종용한다.
"아, 빨리하기나 해라. 보면 에리샤가 하루에 준비하는 포션 밑 재료에 대한 정보야."
그렇게 말하는 성일에게 자료를 빼앗아 읽어보기 시작하는 비비안. 그녀는 한참 동안 자료를 읽더니 얼굴이 파리해진 채 그에게 묻는다.
"이.. 이렇게 많이?"
"뭘 많아야. 에리샤는 그거 혼자 다 하더만. 기껏 해봐야 밑 재료인데..."
"!!"
꼴도 보기 싫은 라이벌의 능력 이야기가 등장하자, 비비안은 열의에 불탄 눈을 하며 성일에게 답한다.
"당장 시작한다!! 공방 내부 장비나 설명해줘!!!"
'얘도 은근 다루기가 쉽네....'
그런 비비안을 데리고 공방 내부에 관해 설명하는 성일. 한참 동안 그런 그의 설명을 듣던 비비안은 성일에게 축객령을 내리며 말한다.
"흥! 별거 아니군! 이제부터 내가 처리할 테니 넌 방해하지 말고 저기 나가서 놀기나 해!!"
그런 비비안의 말에 성일은 어깨를 으쓱한 후, 연금술 공방에서 나가 정원에서 무공 수련에 매진한다.
그런 식으로 이틀이 지나고. 비비안은 끝도 없이 에리샤를 피해 죽도록 포션을 만들다 질린 표정으로 성일에게 질문한다.
"하아... 그나저나 대체 뭘 만들길래 이 난리를 피우는 거야?"
"뭐긴 뭐야 포션이지."
"...후. 당연히 포션이겠지!! 무슨 포션이냔 말이지. 내 말은."
"아, 정력 포션이야."
"!!"
뜬금없는 '정력 포션'이란 말에 경멸 어린 표정을 지은 후 성일을 바라보는 비비안. 성일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무시하며 자신의 할 말을 계속한다.
"왜? 무려 복용자를 수 시간 동안 절륜한 정력을 가지게 하는 포션이야. 지금 시장에서 귀족들에게 없어서 못 파는 물건이라고?"
"...더러워."
"아~ 그리고 넌 그 더러운 포션을 만드는 데 일조를 하고 있지."
그렇게 말한 성일은 찬장에서 정력 포션 세 개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며 말한다.
"받아. 최소한 네가 만드는데 이 정도는 받아 가야지."
"누... 누가 그딴 걸!!"
하지만 성일은 이죽거리며 계약서를 꺼내 그녀에게 들이민 후 말을 잇는다.
"업무상 명령이야! 받아 가도록 해!"
"...어이가 없네."
성일의 강권에 어쩔 수 없이 포션을 받아 간 비비안은 짜증 난다는 표정을 지으며 퇴근을 준비한다.
"아무튼... 난 오늘 할 일을 다 끝냈어! 그러면 약속이 있어서 이만..."
무척이나 피곤하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공방을 떠나가 버리는 비비안. 그런 그녀를 보며 성일은 이죽거리며 생각한다.
'쟤도 제법이네? 시키는 일도 빠릿빠릿하게 다 하고... 경계심도 은근 많이 낮아진 거 같은데, 조만간 부두 인형을 사용해볼까나?'
그런 성일의 생각을 모르는. 비비안은 투덜거리며, 그날 저녁 자신의 귀한 딸을 보기 위해 아덴하임으로 찾아온 아버지 브레너 올케를 뵈러 간다.
"비비안!! 내 사랑스러운 공주님!"
"아버님 오셨어요!"
"그래. 그간 잘 있었니?"
브레너 상단을 이끌고 있는 상회주 브레너 경의 등장. 오랜만에 뵙는 아버지의 등장에 비비안은 얼굴에 희색을 띠며 그를 반긴다.
"예~! 열심히 학업에 매진하며 열심히 아카데미를 다니고 있답니다!"
"하하! 이번에 전체 3등을 했다지?"
"예에... 후후..."
그런 식으로 한참 동안 정겨운 부녀간의 이야기를 나누던 둘. 그러나 어느 순간 브레너는 엄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에게 묻는다.
"그나저나... 요새 소문이 돌더구나?"
"예에...?"
"네가 동방에서 온 유학생의 집에 들락거린다는 말이 있던데. 이건 무슨 소리냐?"
"흣!!"
뜬금없이 아버지의 입에서 자신의 내기 관련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한 그녀는 정곡을 찔린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본다.
그런 비비안을 향해 브레너는 인상을 더욱 찌푸리며 그녀를 몰아세운다.
"혹시 외간 남자와 쓸데없는 사랑놀이에 빠져 이상한 짓을 하고 다니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요!!"
비비안은 필사적으로 아버지에게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며 상황을 설명한다.
"그... 제가 거기 가는 이유는...."
"이유는?"
"사업!! 사업 때문이에요!!"
"...사업?"
"예! 동기들이 포션 사업에 뛰어든 관계로...!! 제가 좀 뒤늦게 그들의 사업에 발을 걸친 상황이에요."
"흐음...."
"진짜예요! 여... 여기 시제품도..."
"...시제품?"
뜬금없이 시제품이라며 자신에게 녹색 포션을 건네는 비비안의 모습에 의아해하는 브레너. 그는 포션을 받아 가며 그녀에게 말한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니 사실이겠지. 사업이라니 앞으로 번창하길 기대하마! 과연 너도 이 아비의 피를 닮은 게 분명해. 하하!!"
"가... 감사합니다!"
그렇게 오해(?)를 푼 부녀는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대화하며 만남을 마무리한다.
'...큰일날 뻔했네.'
설마 아버지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이렇게까지 감시하고 있었을 줄 몰랐던 비비안은 소름이 돋는 걸 느끼며 행실을 조심해야겠다고 거듭 생각한다.
더불어 정말 내기에 져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렸다고 울적해 하며 그녀는 자신의 기숙사로 돌아간다.
그렇게 성일과 에리샤의 공방에서 포션 노예(?)로 일하던 어느 날. 비비안은 늘 그렇듯 에리샤를 피해 성일과 포션 재료를 만드는 일을 도맡아 하다 지친 표정으로 기숙사로 돌아간다.
그때.
"비비안 아가씨?"
"엇? 당신은...?"
뜬금없이 자신을 찾아온 아버지 비서의 등장. 비비안은 젊은 남자를 향해 의아하다는 듯 질문한다.
"어쩐 일로...?"
"브레너 경께서 찾으십니다! 당장 가시죠?"
"예? 갑자기?"
뜬금없이 아버지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에 황당해하는 비비안. 하지만 상대가 모르는 사람도 아니고 아버지를 오랫동안 모셨던 비서인 만큼 비비안은 의심하지 않고 그를 따라 집무실로 이동한다.
"오오! 내 딸!!"
"예에! 아버님... 갑자기 왜...?"
늘 사업에 치여 뵙기 힘든 아버지가 갑자기 자신을 찾는 것에 대해 의아해하는 그녀. 그런 비비안을 향해 브레너 경은 빈 포션병을 꺼내 그녀에게 묻는다.
"이 포션!! 이 포션은 대체 어떻게 만든 게냐!!"
"예에...?"
"이 포션은 혁명이다!! 네가 이 제조법을 개발한 거니?"
"아뇨... 그건 아니고..."
"그러면?! 네 동기들과 포션 사업을 같이한다면 너도 제조법은 알고 있겠지?"
"그... 그것도 아닌데요..."
눈이 뒤집힌 채 비비안을 향해 잔뜩 캐내는 브레너. 결국, 비비안은 얼굴을 붉힌 채 그에게 변명하기 시작한다.
"그... 전 후발 주자라 아직 핵심 레시피는 모르고요... 그냥 밑 재료 준비라던지... 보조 위주로 하고 있어요..."
"흐음!! 그렇단 말이지..."
딸을 앞에 두고 한참 동안 무언가를 고민하던 브레너. 그는 비비안에게 힘겹게 입을 떼며 말을 잇는다.
"비비안."
"예에..."
"네가 준 이 포션은 앞으로 시장에서 엄청난 파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큰 물건이다.
"!!"
아버지가 무언가를 높게 평가한 것 치고, 성공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에 비비안은 무척이나 충격받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본다.
"...때문에 값을 얼마나 치러도 좋으니 이 포션의 제조법을 얻고 싶다만..."
"그... 그게 제조법은 저한테도 공유된 게 아니라서 쉽지 않아서요..."
"흐음... 그러면 알아 오면 되겠구나! 친구들에게 부탁해서 제조법을 팔라고 네가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렴."
"예에...?"
"왜? 이 아비를 위해 그 정도도 어려운 게냐?"
"그... 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꼭 부탁하자. 앞으로 우리 가문의 부흥을 좌지우지 할 수도 있는 그런 물건이다."
"...알겠어요."
아버지의 강권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 비비안의 태도에 브레너는 무척이나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후 그녀에게 말을 잇는다.
"하하! 그래야 내 딸이지! 친구들에게 말해 보아라! 얼마든지 제조법의 값을 치러주마!"
"예에..."
다음 날 아버지 브레너 경의 부탁에 무거운 마음으로 성일의 공방을 방문하는 비비안. 그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성일에게 인사한다.
"야, 나 왔어."
"어. 왔냐? 저기 책상에 오늘 할 일 적어놨다. 보고하면 된다."
"...그 전에 좀 할 말이."
"...?"
뜬금없이 할 말이 있다는 그녀의 말에 성일은 의아하단 표정을 지으며 비비안에게 나선다. 그러자..
"혹시 그 포션 제조법 팔 생각 없어?"
"...뜬금없이?"
"그... 그게..."
그렇게 말한 비비안은 아버지의 극찬과 함께 제조법을 구매하고 싶단 말을 성일에게 전달한다.
"턱도 없는 소리 하고 있네."
"!!"
"돈이라면 나도 썩어나게 많아.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전달 좀 부탁한다."
"뭐... 뭐라고?!"
"내가 바보냐? 지금도 병당 3골드에 팔고 있는 물건을 미쳤다고 제조법을 넘겨. 마진이 1골드가 넘는데."
"!!"
생각보다 엄청난 판매가와 이윤에 충격받는 비비안. 성일은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품에서 무언가를 꺼내 건넨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거나 받아."
"...이건?"
"그래도 신입 직원인데 선물은 해줘야지. 빗이랑 거울이야. 한번 써봐."
"지금?"
"응. 그래도 성의가 있잖아."
"아니.. 무슨 이런 막무가내가..!!"
"아~ 업무상 명령이야~ 일단 좀 써봐."
성일의 말 같잖은 행동에 비비안은 한숨 쉬며 그의 말대로 그가 선물해준 빗으로 머리를 쓸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성일은 묘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한다.
"호오... 잘 빗기네!"
"빗이 잘 빗겨야지 무슨 헛소릴... 아무튼! 그러지 말고 제조법 어떻게..."
"됐어. 그건 일단 넘겨. 일이나 해라!"
비비안에게서 빗과 거울을 뺏앗아 공방 식탁에 올려놓은 성일은 그녀를 밀어 붙여 공방에 밀어넣고 강제로 업무를 시작하게 한다.
그런 성일의 태도에 비비안은 가볍게 한숨 쉰 후 업무를 시작한다.
'후후... 머리카락은 얻었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