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4화 〉 던전의 수호자
* * *
내키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성일을 바라보는 레나. 그런 성일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며 말한다.
"걱정 말라고! 반드시 놈들을 없애고 올 테니."
"푸하핫... 믿을게."
그렇게 동료들을 안심시킨 성일은 어설프게 무장한 고블린들을 데리고 적의 야영지로 몸을 옮기기 시작했다.
"애들아."
"케헤?"
성일이 자신들을 부르자 살짝 바보 같은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는 고블린들. 그는 그런 녀석들을 보며 쓰게 웃으며 말을 잇는다.
"...일단 부근까지만 날 바래다주고, 너희들은 잠시 근처에 숨어있어. 알겠지?"
"헤? 우리.. 안 싸우나?"
"어... 일단은?"
"케헤..."
이유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성일을 멍하니 바라보는 고블린들. 성일은 가볍게 한숨 쉬며 고민을 시작했다.
'...얘내를 데리고 싸워봐야 큰 도움이 안 될 거 같단 말이지.'
지능이 낮은 관계로 기습, 유인, 기만 등의 전략을 시행하는 게 불가능한 고블린의 능력. 때문에 성일은 괜스레 이들을 이끌고 정직하게 공격하기보다, 자신 홀로 기습을 시도해 조금씩 적을 제압하기로 한다.
'물론, 정면승부를 할 경우에는 이 이야기가 많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그렇게 생각한 성일은 고블린들을 한 구역에 주둔시키고 놈들의 캠프가 있다는 장소로 몸을 옮기기 시작한다.
'끄응... 딱 봐도 수준이 장난이 아니네.'
라쌀을 통해 적의 수준을 듣긴 했지만, 그 이상으로 보이는 적의 무장 수준.
'...플레이트 메일을 걸쳐 입은 기사가 둘이나 되는군. 사제로 보이는 성직자도 한 명 있고.'
'그리고 저 은백색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중무장한 기사가 바로 그 '백기사'겠지?'
딱 봐도 최고 책임자로 보이는 풀 플레이트 메일의 기사. 성일은 그가 자신이 찾던 새로운 동료 후보임을 본능적으로 깨닫는다.
'흐음... 요주의 인물 넷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그냥 평범한 모험가 수준의 무장이네. 저 넷만 어떻게든 제거할 수 있다면....'
아주 짧은 순간 대충 적의 전력을 파악해낸 성일. 그는 혹시 모를 변수 제거를 위해 그림자를 몸에 둘러 은폐를 한 후, 『감응』으로 적의 능력을 가늠해본다.
'음... 눈으로 파악한 것과 별다른 차이는 없군.'
역시나 자신이 눈으로 차이 안 나는 적들의 수준. 다만, 『감응』으로 체크한 백기사의 기운은 자신이 생각한 것 이상으로 위험한 느낌이 들었다.
"'...끄응, 쟤를 제압할 수 있긴 하려나?"
감응이 알려주는 느낌으로는 이아현이나 최현우 이상일 것 같은 백기사의 무력. 때문에 그가 막막해지는 심정으로 혼자 중얼거리던 그때. 누군가 그의 머릿속으로 말을 걸기 시작한다.
『응? 왜? 뭔일인데 또?』
"...응?"
그런 성일의 중얼거림에 자신의 허리춤에 걸려있던 저주받은 검이 자신에게 말을 걸자, 성일은 움찔하며 검을 바라본다.
『뭔 일인데 혼자 중얼거리냐. 나도 좀 알자.』
"아..."
그런 검의 외침에 성일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해줬고, 모든 상황을 파악한 검이 그에게 답을 시작한다.
『뭐, 별거 있냐? 너 잘하는 거 있잖아. 그거나 해라.』
"...잘하는 거?"
『어, 너 분신 만들어서 난리 치는 거 잘하잖아. 분신으로 난동 피우면서 한 놈씩 조져. 특히 사제.』
"흠...."
나름대로 일리 있어 보이는 검의 전략. 다만, 성일은 그에게 걸리는 부분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뭐... 그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문제는 놈들을 못 도망치게 해야 한다는 게 문제지."
『왜?』
성일의 말에 납득하지 못하는 검. 그런 그에게 성일은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설명해준다.
『흠... 요는 놈들이 이쪽에 달의 신의 신도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보낸 토벌대 겸 정찰대라는 거네?』
"그렇지."
『그럼 그냥 아까 내가 하란 대로나 하세요.』
"...갑자기?"
『어차피 시간의 문제잖아. 네가 쟤내를 전멸시켜 정보를 새어 나가지 않게 한다고 해서, 놈들이 추가 병력을 안 보낼까? 천만의 말씀이지. 전멸의 이유를 확인 하기 위해서라도 병력은 꾸준히 보낼거다. 그러다보면 이곳에서 떠나지 않는 한, 결국 꼬리가 잡히겠지.』
"음..."
듣고 보니 그럴듯한 검의 말. 성일이 자신의 말을 곱씹으며 고민하는 듯 하자 검은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밀어붙이기 시작한다.
『그냥 싸워! 놈들의 무장 상태나 경계하는 모습을 보니, 만만찮은 놈들 같은데, 네가 그런 무른 마인드를 가지고 싸우면, 넌 무조건 죽을걸?』
"쩝... 하긴..."
냉정한 검의 말에 성일은 고민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때문에 그는 틈틈이 마력을 충전해놓았던 보석을 잔뜩 꺼내 바라보며 생각했다.
'음, 제어하는 조건이라면 셋 이상은 불가하지만, 정교한 행동을 하지 않고 날뛰는 조건이라면 여섯 이상도 운용 가능하니까... 다수의 분신을 운용 해볼까?'
다시 생각해봐도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 검의 계획. 그는 계획이 성공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자, 검을 잠시 내려놓고 분신을 소환하기 시작한다.
'나중에 그림자 분신도 한 번 써 먹어봐야 하는데...'
창세신의 분신이 전달해준 그림자 술법. 해당 술법은 과거 신이었던 존재가 내려준 권능답게 막강한 능력들이 많았다.
'끄응... 그림자를 분리해 분신으로 만드는 술법이나, 무기로 만드는 술법이 아직 써먹을 수 없는 게 아쉽네.'
그렇게 생각을 갈무리한 성일은 그림자를 몸에 둘러 어둠 속에 숨기 시작한다.
'...대미궁이라 그런지, 햇볕이 없어 은폐하기 정말 좋군.'
어둠 속에서 그림자를 둘러 완벽하게 몸을 숨긴 성일. 그는 주변에 서 있는 분신들에게 지향해야 할 행동 양식을 정해준다.
"뭐... 적당히 난리 피워! 알지? 내가 쥐여준 무기들을 잘 사용해서!"
"그렇게 할게!"
가면을 쓴 성일의 말에 아이처럼 대답하는 분신들. 비록 여전히 부족해 보이긴 했지만, 간단한 대답도 불가능했던 예전에 비하면, 수준이 많이 높아졌기에 성일은 그들의 태도에 만족해한다.
'좋아! 시간이 지나면 좀 더 적극적인 의사소통도 가능해지겠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성일은 그들에게 손짓했고, 그 행동의 뜻을 알아먹은 분신들은 사방으로 퍼져 적에게 몰래 다가서기 시작한다.
"자아... 나도 준비해볼까나!"
성일은 그림자에 숨어 적들의 캠프로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런 성일은 30M 정도 거리에 있는 바위 뒤에서 분신의 시야를 통해 적을 정탐하기 시작한다.
'캠프에 불침번을 세워놓고 쉴 준비를 하나 보군.'
마침 적을 기습하기 딱 좋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져 있자, 성일은 거침없이 분신에게 공격 명령을 시작한다.
"공격~!!"
"적이다!! 습격이다!!"
요란스럽게 고함지르며 돌진하는 분신 너덧의 등장에 무기를 쥐어 들고 기습에 대처하기 적들은 시작한다.
"무기를 집어 약속된 대형을 펼쳐라!!"
거침없이 돌진하는 분신들에게 당황할 법도 하건만, 백기사의 명령이 떨어지자, 적들은 무척이나 절제된 모습으로 방진을 꾸려 수비 진형을 능숙하게 꾸린다.
"호오...."
큰 방패를 들고 절제된 전술 진형을 짠 모습에 감탄한 성일은 가면을 붙들고, 분신들에게 사전에 설명했던 대로 작전을 수행하게 한다.
"달의 신 만세!!"
"!!"
거침없이 자신들이 적대하는 주적의 이름을 부르짖는 분신의 포효에 움찔하는 적들. 그러나 그들은 그런 도발에도 움찔하기만 할 뿐, 별도의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마법봉 발사!!"
"...?"
그런 그들을 상대로 분신들은 나무막대를 꺼내 무언가를 읊조린다.
"...뭐야? 저것들은."
그런 분신들의 황당한 행동에 적들이 인상을 찌푸리던 그때. 분신이 쥐어 들고 있던 나무 막대 끝에서 강렬한 충격파가 날아가기 시작한다.
"미... 미친!!"
생전 처음 보는 기괴한 공격에 기겁하는 적들. 허공에서 기묘한 파동이 뿜어져 자신들을 덮치자, 그들은 큼지막한 방패를 들어 충격파를 막으려 시도한다.
"커헉!!"
하지만 생전 처음 맞아보는 강렬한 충격에 적들은 무척이나 고통스러워하는 적들.
'...명탐정 세계에서 거액의 포인트를 때려 박고 충격봉 몇 개를 구입해놨던 걸 이렇게 유용하게 써먹네.'
예전 일리나를 통해 전투용 충격 마법봉을 여섯 개 정도 구입했었던 성일. 혹시나 써먹을 일이 있을까 싶어 개당 무려 3,000 포인트나 사용해 여섯 개 모두를 인벤토리에 넣어놨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에 기뻐하며 조심스럽게 적의 배후로 접근하기 시작한다.
'...일단 사제를 단숨에 제거한다! 그러면 놈들도 회복이 불가해지니 점점 피해가 커지겠지!'
그렇게 생각한 성일은 그림자 은신을 통해 조심스럽게 배후에서 적들의 빈틈을 기다린다.
"빌어먹을!! 적은 고작 세 놈이다! 기사들 돌진 준비!! 석궁병은 기사들의 배후에서 보조를 맞춰 기사들을 엄호하라!!"
'...지금이다!!'
성일은 자신이 행한 성동격서의 전술이 먹혀, 적이 분신을 향해 공세를 취하자, 성일과 나머지 세명의 분신은 그에 맞춰 배후에서 석궁병과 함께 있는 사제에게 돌진하기 시작한다.
'저놈만 잡으면...!!'
석궁병들을 분신에게 맞기고, 성일은 제법 나이가 있어 보이는 중년의 사제에게 돌진한다.
경갑옷을 입고 모닝스타를 들고 있는 사제를 향해 성일은 거침없이 검을 휘둘렀고, 그 기습에 사제는 미쳐 저항하지 못해, 엉거주춤히 검을 막다 경상을 입고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렇게 쓰러진 사제에게 돌진해 그의 숨을 끊으려던 그때.
"네놈이로군?"
"...?!"
그러자 성일의 눈앞에 귀신같이 등을 돌려 자신에게 돌진하는 백기사의 모습이 보인다. 성일은 그런 그의 모습에 기겁하며 검을 고쳐 쥔다.
"네놈이 아까부터, 기묘한 사술로 은신한 채, 배후에서 우리를 쫓던 놈이지?"
"...어떻게?!"
분명 나름 완벽하게 은신했다고 생각했던 성일. 그런 그를 비웃듯 백기사가 검을 꼬나쥐고 그를 마중 나오자 경악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듯 질문한다.
"하! 달의 신의 종복인 다크 엘프 놈들이 우리에게 자주 써먹는 전술인데 우리가 그 정도도 대비하지 않았을까? 거기다 이번에 이곳에 도주한 놈들이 다크 엘프 잔당들인 걸 알고 있거늘!"
"...시발."
재수가 없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머리가 터진다더니, 나름 괜찮은 전술을 짰다고 생각했지만, 이게 하필 자신의 동료인 다크 엘프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란 말에 성일은 입에서 절로 욕설이 나오는 걸 느낀다.
"이만 죽어라!!"
자신을 향해 서슬 퍼런 목소리로 위협하며 검을 꼬나들고 맹렬하게 돌진하는 백기사. 성일은 그 모습에 이를 악물고 저주받은 검을 들어 온 힘을 다해 태극검결을 펼친다.
'...그래 이리된 거, 한 번 붙어보자 이 새꺄!!'
그렇게 생각한 그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모든 내공을 끌어모아 검에 불어넣은 후 전력을 다해 태극검결을 출수하기 시작한다.
『오...! 이 힘은?』
자신의 몸에 강렬한 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자 경탄을 내뱉는 저주받은 검. 일반적인 검이라면 아직 투박한 성일의 진기 운용을 버티지 못하고 검날이 박살 나버렸겠지만, 제법 강력한 마법검인 그는 신기하다는 투로 말을 한 번 내뱉었을 뿐, 내력을 무리 없이 힘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런 검의 반응에 자신감을 얻은 성일은 모든 힘을 뿜어내, 맹렬한 기세로 검을 휘두른다.
그리고 검에 가득한 성일의 내공은 이내 검날을 따라 한줄기 금빛 선으로 변모한다.
평소 색공으로 극강의 양기를 몸에 품었던 성일의 힘을 반영하듯, 얼마 지나지 않아 검에 맺힌 금빛 선에서 아지랑이가 일어나다 내공의 불길을 뿜어대기 시작한다.
"...이건?!"
그런 성일의 검술에 인상을 찌푸리는 백기사. 그녀는 그의 기묘한 힘에 놀라며, 입으로 무언가 읊조리기 시작한다.
"...빛의 신이시어 제게 축복을 내리소서!!"
그러자 역시나 성일의 검처럼 강렬한 빛을 발하기 시작한 백기사의 검. 그렇게 강렬한 힘을 실은 두 검이 부딪히자 강렬한 파공성과 함께 충격이 발생하여 사방으로 퍼진다.
콰앙!!
"큭...!!"
한순간 손바닥에 강력한 충격을 느낀 성일은 그 충격에 이를 강하게 깨물고 더 강하게 검을 쥐어 든다.
그렇게 검을 강하게 쥐어 든 성일은 역설적으로 태극검결의 묘리를 살려 부드럽게 검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강력한 힘과는 달리 부드럽게 공간을 지배하는 그의 검의 위력에 놀란 백기사는 가볍게 호흡을 들이키고 한 손에 든 방패를 이용해 그의 검격을 막아낸다.
째앵!!
날카롭게 울리는 소리, 강렬한 힘이 실려있는 성일의 마법검이였지만, 백기사의 방패 역시 만만찮은 보물이었던 모양인지, 큰 무리 없이 그의 검을 막아내는 데 성공한다.
'...길게 끌면 내가 불리하다!'
분신이 시간을 벌어주고 있긴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적의 본대가 분신을 제압하고 증원을 위해, 이곳으로 돌아오면 손쉽게 포위될 자신의 상황.
때문에 성일은 이를 악물고 속전속결로 적을 제압하기 위해, 온몸에 내공과 버프 마법을 일제히 격발 시켜 백기사에게 맹렬한 공격을 뿜어댄다.
"큭!!"
폭풍처럼 휘두르는 성일의 날카로운 검세에 백기사는 위축된 모습으로 그의 검을 막기 급급해한다.
"뒈져라!!"
이젠 그를 제압해 포로로 만들겠다는 생각도 접고, 성일은 정말 죽일 각오로 그에게 검을 휘두른다.
'...빈틈!'
맹렬한 공방을 나누던 와중 보이는 백기사의 빈틈. 성일은 그 모습을 놓치지 않고 그의 머리에 살벌한 기세로 검을 휘두른다.
째앵!!
찢어지는 금속음과 함께 날아가는 백기사의 투구. 그러자 투구 안에서 백금발이 인상적인 단발의 미녀가 등장한다.
"...?!"
눈매가 살짝 매섭지만, 이목구비가 뚜렷한 엄청난 미녀의 등장에 순간 살기를 거두고 멈칫한 성일. 그런 그때 그의 등 뒤에서 강렬한 힘을 담은 목소리가 울린다.
"빛의 신께서 부정한 자를 가두는 도다!"
"...!?"
그와 동시에 무거워지는 자신의 몸. 그에 당황한 성일은 재빠르게 검을 들려 했지만, 몸은 천근만근 무거워져 자신의 마음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된다.
"시발 대체 뭔...?"
당황스러운 마음에 성일은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며 욕설을 내뱉는다.
그러자 보이는 두 손을 들고 성일을 향해 무언가 끝없이 중얼거리고 있는 사제의 모습.
'...시발 디버프 신성 주문인가!!'
당황한 성일이 상황을 파악한 그 순간, 그의 옆에서 청량하지만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린다.
"이제 죗값을 치루어라! 부정한 자를 모시는 자여!"
"옘빙..."
다시 검을 들고 정면을 바라보던 그때, 성일의 무자비한 기세로 검을 휘두르는 아름다운 백금발의 기사가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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