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2화 〉 농장이야기 : 베스핀 타운
* * *
정확히 그 영양제는 진짜 '젖소'에게 사용하는 약물이 아니었지만, 그 사실을 알 턱이 없는 앤은 기쁜 표정을 하며 자신의 젖소를 데리러 자리를 뜬다.
***
"유나!! 유나!!"
"예? 주인님."
작업실에서 무언가 열심히 작업을 하는 유나의 모습. 성일은 그런 그녀에게 좀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해준다.
"히익!! 그.... 그렇게 해도 되나요?!"
"안 될 건 뭐야? 정 내 계획이 망한대도, 여차하면 공략 대상에게 마법으로 매혹을 걸거나, 정신 조작을 걸어서 해결할 수 있잖아."
"그.... 그런 극단적인 행위를 해도 될까요?!"
무책임한 성일의 말에 당혹스러워하는 유나. 그러나 성일은 태연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답한다.
"뭐 어때? 난 어차피 이 세계에 큰 의미를 안 둘 건데."
"어... 음...."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인과율'을 읽어 이곳에 세계수를 부활시킬 방법이 있다는 걸 알고, 그 지식을 알아내려 온 것일 뿐이야."
"네에..."
"그런 상황에서 난 세계수를 키울 방법 및 조력자를 구하는 데 성공했잖아? 심지어, 조력자는 인간도 아닌, 요정족이고."
"음...."
"그런데 뭐가 걱정이야? 그냥 퀘스트만 깨면 손해 없이 이곳을 떠날 수 있는데. 추종자로 쓸 만한 친구도 없고."
"아아.... 그런 뜻이군요!!"
성일의 말을 이해한 유나. 그의 말대로 주요 목적은 다 달성한 상황이니, 좀 거칠게 행동해도 문제가 없을성싶어 보였다.
"수틀리면 튀자고, 여차하면 세계수만 쿠쿠루들에게 맡겨놓고 가면 되겠지 뭐..."
"네네! 옳으신 말씀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넌 나랑 내일 있을 서프라이즈 파티를 위해 준비를 더 해야겠다."
"....이전에 요청한 도구들 말고 또요?"
"어. 방금 설명해줬잖아. 맹세를 악용할 생각이라니까? 넌 철저하게 '젖소' 행세를 해야돼. 알겠지? 내일 손님이 오면, 넌 사람이 아니라 '젖소'야. 무슨 소리를 들어도 젖소 소리만 내야 한다고? 알았지?"
"......."
황당한 성일의 요구사항. 그러나 성일은 유나의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지켜야 할 행동 양식을 설명해준다.
'맹세를 믿는 미신 행위를 이용하자. 내가 지닌 능력과 마법을 이용하면 시너지 효과가 날꺼야. 이곳 사람들은 정말로 마법과는 눈곱만큼도 관련 없는 평범한 사람들이니 더더욱 쉽게 혼란에 빠지겠지.'
'거기다, 앤의 경우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취약한 상황에 빠져있으니까 더더욱 내 수작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할 거야.'
게임상 등장하는 『최고의 밀크』 대회는 대회 우승 후 반드시 동일한 맛과 품질의 우유를 한 달간 주최 측에 납품해야 우승을 확정할 수 있었기에, 성일은 그 점을 집요하게 팔 생각이었다.
'오늘 내가 일으킬 일만 잘 마무리하면 앤은 절대로 내 손바닥에서 못 벗어나.'
강압적이든, 유화적이든 간에 그녀에게 정력 포션의 힘과 능력을 각인시키는 데 성공하면, 성일은 그녀가 사업 때문에라도 자신의 마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다.
'예아~ 간만에 재밌는 하루가 되겠네!'
미솔로지 세상에 있으면서 최근 타인의 모략에 당하기만 했던 성일. 그는 오랜만에 자신이 상황을 주도할 수 있게 되자 즐거움에 심장이 뛰는 걸 느낀다.
***
이른 아침 허름한 집에서 잠에서 깬 성일. 그는 유나가 챙겨온 커피를 데워 마시는 중이었다.
"야! 있니?"
비몽사몽 하던 그때, 누군가 성일 자신을 부르는 걸 듣고 그는 정신이 번쩍 드는 것을 느낀다.
"오.... 왔냐?"
"응! 뭐야! 해가 밝았는데, 아직도 집에 있었어? 지금 농번기인데 뭐 하는 거야!"
"괜찮아. 중요한 일은 이미 거의 다 끝내놔서."
"흐음...."
자신만만한 성일의 말에 주변을 둘러보는 앤. 과연, 얼마 전까지 주인을 잃고 엉망이었던 성일의 농장은 어째서인지 말도 안 될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있었다.
"확실히... 그런 말 할 자격이 있긴 하네....? 사람도 고용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원래 농사 경험이 있었니?"
거진 천 평에 가까운 땅을 고작 일주일 만에 모조리 정리한 성일의 수완에 놀라는 앤.
"됐고.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잖아. 본론에 들어가자고."
"오? 쿨한데?"
자타공인하는 베스핀 타운의 말괄량이인 앤. 그녀는 평소 자신의 직설적인 발언을 부담스러워하는 주민들만 상대하다, 자신과 비슷한 방식의 화법을 쓰는 성일에게 호의적인 시선을 보낸다.
"저기가 축사지? 가자!"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지 않아?"
"아.... 그거?"
아마도 맹세를 요청하는듯한 성일의 발언. 그런 그의 말에 앤은 어깨를 으쓱하며 그에게 답한다.
"너도 미신을 믿는 편이니? 어른들이야 맹세를 철저히 지킨다지만, 요즘 젊은 사람은 꼭 그런 편도 아니야."
"그래서. 넌 안 지킬 거냐?"
"....그건 아니지만."
맹세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해놓고, 막상 성일이 그 맹세에 대해 캐묻자, 앤은 찝찝한 표정으로 움찔한다.
'말은 그렇게 하더라도, 이곳 사람들은 어지간하면 여신의 이름을 건 맹세를 어기려고 하지 않지. 실제로도 게임상 여신이 존재하는 만큼, 그녀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어기면 징벌이 내려지는 시스템이 있기도 하고.'
그렇게 보험까지 완벽하게 체크한 성일은 축사의 문 앞을 가로막고 무언으로 앤의 맹세를 압박한다.
"끄응.... 알겠어! 난 오늘 본 모든 일에 대해 함구하는 걸 수확의 여신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더불어, 오늘 본 젖소와 동일한 종, 동일한 방식으로 영양제를 먹이고 젖을 짜는 모습을 성일군에게 보여주는 걸 맹세해!"
씩씩하게 그의 앞에서 맹세하는 앤. 그 모습을 본 성일은 흐뭇한 표정으로 그녀의 등을 밀며 축사로 몸을 옮긴다.
"음? 축사 맞아? 축사라기보단 무슨 공방처럼 바뀌었는데?"
과거 아버지와 루 할아범과 몇 차례 거래를 통해, 그의 축사를 들러봤던 적이 있었던 앤. 어째서인지, 내부가 축사답지 않게 공방이나 차고 같은 모습으로 변해있자 그녀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응. 맞아. 지금 기르고 있는 젖소가 한 마리 뿐이라, 당분간은 겸사겸사 공방으로도 쓰고 있어."
"아하. 뭐, 그럴 수 있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목장에서 분양을 더 받아 가는 게..."
"됐고. 여기 온 이유나 처리하러 가자고. 유나?"
성일은 천막 가리개 쪽을 바라보며, 자신이 기르는 '젖소'의 이름을 부른다.
"으... 음머어!!"
"....?"
그러자 천막 뒤에서 들려오는 가녀린 젖소의 울음.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묘한 울음소리에 앤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그곳을 바라본다.
"....젖소 소리가 특이하네? 종이 좀 다른 애야?"
"맞아. '종'이 무척 독특하긴 하지."
"아, 그렇구나. 외지에서 기르는 별도의 종이였나봐? 어째 우유 맛도 독특하더라니... 그나저나, 천막은 왜 쳐놓은 거야?"
하나라도 더 배워가기 위해 성일에게 이것저것 묻는 앤. 성일은 속으로 그런 그녀를 비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거짓을 늘어놓는다.
"예민한 애라 그래. 집 이사 온 지 며칠 안 됐잖아. 숙소가 아직 덜 익숙한가 보더라고."
"하긴... 소들이 의외로 엄청 예민하긴 해."
앤은 의외로 성일의 말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 모습을 본 성일은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억지로 숨기려 고개를 돌린 후 그녀에게 답한다.
"잠깐만 기다려! 영양제 좀 가지러 갈게!"
"응!"
시원시원하게 답하는 앤을 뒤로하고, 성일은 축사 으슥한 곳으로 이동해 보석을 꺼낸다.
'나와랏!'
영혼 가면을 착용하고 서넛의 분신을 소환한 성일. 그는 텔레파시로 그들에게 명령한다.
'애들아! 문 잠그고 주변에서 아무도 못 오게 막아. 알았지? 대답하진 말고!'
'응!!'
성일과 정신이 연결된 분신들은 그의 의지를 읽고 최대한 살금살금 축사를 나가 문을 틀어 잠근다.
보초를 세운 성일은 인벤토리에서 정력 포션을 잔뜩 꺼낸 후 다시 앤에게 돌아간다.
"금방 왔네?"
"응. 이 근처에 냉장고를 뒀거든. 언제든 내 젖소에게 영양제를 먹일 수 있도록."
"오~ 세심한데?"
자신을 추켜세워주는 앤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성일은 챙겨온 정력 포션을 테이블에 늘어놓으며 말한다.
"이게 그 영양제야. 아무거나 하나 골라."
"오... 이게?"
꽤나 고급스러워 보이는 유리병 속에 담겨있는 새하얀 액체의 모습. 앤은 성일의 말에 자연스럽게 포션 하나를 집어 든다.
"근데 왜 이렇게 많이 가져온 거야? 혹시 다 나에게 주려고?"
기대심 넘치는 어조로 묻는 앤.
"아닌데?"
"....그럼 왜?"
"내가 마시려고."
"뭐?!"
그 말을 끝으로 성일은 무척 자연스럽게 병하나를 집고, 마개를 연 후, 입에 털어넣기 시작한다.
"꿀꺽... 꿀꺽... 캬...!!"
"그.... 그걸 왜 마시는 거야?!"
앤은 뜬금없이 성일이 젖소용 영양제를 마시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런 그녀에게 성일은 뻔뻔한 표정을 지은 후 답한다.
"말했잖아. 원래 내 건강을 위해 만들던 포션이라고."
"어... 음...."
"그랬던 걸 우연한 계기로 내가 기르던 젖소에게 영양제를 마시게 했던거지. 그러다 특이하게도 사람과는 달리 젖소에겐 부작용으로 젖이 과다 촉진되고 맛도 좋아지게 된다는 걸 알게 됐던 거고."
"오홍....."
"너도 한번 먹어볼래? 자연에서 얻은 순수한 작물들로만 만든 영양제라 정말 무해(?) 그 자체야."
"그렇단 말이지....?"
앞서서 성일이 거리낌 없이 포션을 주워 마시는 걸 보고 의심하지 않았던 앤. 거기다, 랜덤하게 늘어놨던 포션 중 하나를 자신이 성일보다 먼저 집었기에, 그녀는 성일이 수작을 부렷을 거란 생각 자체를 하지 못 한다.
때문에 앤은 아무 생각 없이 성일이 했던 것처럼, 자신이 집은 정력 포션을 들이키기 시작한다.
'쿡쿡... 그걸 준다고 또 마시네?'
그렇게 성일은 앤이 아무렇지 않게 포션을 마시는 장면을 재미있게 감상한다.
'뭐... 이번 포션은 에리샤를 시켜 일부러 효과가 늦게 나오도록 만들어놨으니, 당장은 아무 이상도 못 느끼겠지.'
클라이맥스를 즐기기 위해 치밀하게 사전 조율을 끝내놓은 성일. 그는 슬슬 극을 시작하기 위해 준비한다.
"자.... 영양제도 마셨고, 원래 목적으로 가볼까?"
"드디어 시작이야?! 나이스!"
자신의 젖소를 대회에서 우승시킬지도 모르는 비장의 영양제와 그 사용법을 배울 수 있겠다는 말에 흥분하는 앤. 성일은 그런 그녀의 앞에서 히죽이며 자신의 젖소를 부른다.
"유나! 유나!! 내 젖소!! 이리 온!!"
"....젖소를 우리에 둔 게 아니었어?"
"응. 말 잘 듣거든. 정말 똘똘한 젖소라. 굳이 묶어 놓을 필요가 없어."
"헤에...."
아무 생각 없이 성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앤. 그런 그녀의 눈앞에 충격적인 장면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음... 음머어...."
천막 뒤에서 네발로 기어오는 여인의 모습.
"!!!!!!!!!!!!"
천이 거의 없는 젖소 무늬 팬티와 브라를 입은 육덕진 거유 여성의 모습.
거대한 가슴에서 유두만 간신히 가린 수준의 브라를 입은 그녀는 팬티에 젖소 꼬리가 달린 옷을 입고 있었다.
심지어 그녀는 젖소 귀를 흉내 내 만든 머리띠에 젖소 무늬가 새겨진 목줄과 방울을 매고 있기까지 했다.
"이.... 이게 무슨....."
충격적인 장면에 뇌가 얼어버려, 그 자리에서 굳어버린 앤.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성일은 유나에게 손짓해 그녀를 자신의 곁으로 다가오도록 명령한다.
"유나~ 착하지? 이리 온~"
"음머어!"
얼굴에 불이 난 얼굴로 성일에게 다가온 유나. 그녀는 사전에 성일과 협의한 대로 젖소 모습을 연출하며 그에게 애교를 부린다.
"그래, 그래 착하지?"
"음머어!!"
그리고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앤. 그녀는 여전히 이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바라보기만 한다.
"오늘도 약 먹자? 좋지?"
"음머어어어!!"
성일이 영양제를 주겠단 말에, 유나는 과장스러운 액션을 취하며, 그의 무릎에 뺨을 비벼댄다.
"자아.... 네가 좋아하는 거야~"
자연스럽게 정력 포션의 뚜껑을 딴 성일. 그는 네 발로 기고있는 상태에서 고개만 치켜든 유나의 입에 포션 주둥이를 가져다 댄다.
"꿀꺽.... 꿀꺽......"
짐승처럼 정력 포션을 마시고 있는 육덕 미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등골이 싸해진 앤은 정신이 돌아오는 걸 느끼고 성일에게 고함친다.
"너....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뭘 하냐니? 지금 젖소한테 영양제를 먹이고 있잖아."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얏!!!!! 저건 사람이잖아!!!!"
주황빛 땋은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며 성일에게 고함치는 앤. 그런 그녀를 무시하고 성일은 유나를 바라보며 그녀에게 묻는다.
"유나."
"음머어?"
"넌 사람이냐? 젖소냐?"
"음머~ 음머어어!!"
성일의 물음에 철저하게 젖소처럼 울부짖기만 하는 유나. 그런 그녀를 보며 비웃음 가득한 표정으로 성일은 말을 잇는다.
"아이고~ 사람이 아니라, 말을 못하지? 질문이 참 바보 같았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