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61화 〉 저주받은 왕좌
* * *
'....잠깐만 현실로 가서 쉴까?'
에테리얼 스톤이나 불가해의 반지 등. 이곳까지 오면서 꽤 많은 아티팩트의 사용 횟수를 소모한 상황.
때문에 성일은 잠시 현실로 복귀해 아이템의 소모된 사용 횟수를 채우고 올지를 고민한다.
'아냐.... 불가해의 반지의 소모된 주문은 어차피 주문 함정으로 채울 수 있고, 에테리얼 스톤은 내공으로 얼마든 소모 값을 복구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성일은 드래곤의 레어 앞에서 각종 포션을 벌컥벌컥 들이키다 일행에게 말한다.
"....마무리 준비를 하자고."
"오냐."
성일의 말에 일행은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신성 주문을 읊기 시작한다.
그러자 파티원에게 걸리기 시작하는 각종 버프 주문들. 신체 강화 같은 기본적인 신성 주문은 물론, 원소, 공포, 정신 방벽 같은 온갖 신성 주문이 도배되듯 파티원에게 걸리기 시작한다.
'....확실히 신성 주문이 사기이긴 해.'
현실에서라면 A등급 능력자는 되어야 힘들게 이런 버프 주문을 걸어줄 수 있을 텐데, 판타지 세계는 능숙한 사제면 얼마든 이런 강력한 주문을 쓸 수 있다는 것에 성일은 살짝 씁쓸함을 느낀다.
'시발.... 저런 능력이 현실 인류에게 전해질 수만 있다면 외계인과의 싸움에 큰 도움이 될 텐데.'
그렇게 생각하던 성일은 에테리얼 스톤에 마력을 불어넣어 재충전을 시도한다.
'이곳 세계의 주문 시스템은 메모라이즈 바탕인 게 살짝 아쉽군. 포션을 먹는다고 소모된 주문이 회복되는 게 아니다보니.....'
하지만, 그렇다고 게임에서처럼 소모된 주문을 회복하기 위해 드래곤 둥지 앞에서 하룻밤을 지새울 수는 없는 노릇.
때문에 성일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살짝 긴장된 표정으로 일행을 이끌어 이 성의 주인을 만나러 간다.
"....다들 간격 벌려라. 기억하지?"
"물론."
뭉쳐있다가 드래곤이 사용하는 광역 해제 마법 한 번에 기껏 걸어놓은 버프가 한 방에 모조리 날아가는 대참사를 막기 위해, 성일은 일행에게 간격 유지를 꼼꼼히 하라고 눈치를 강하게 준다. 그런 와중 어느덧 동굴 끝에서 보이는 유적지.
'오.... 게임보다 훨씬 화려한데....?'
전반적으로 휑한 느낌이 강하긴 했지만, 바닥의 바위를 반듯하게 깎고, 외곽의 바위를 신전처럼 조각해놔서인지, 휑했음에도 불구, 유적은 묘하게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오. 빨리도 오셨군."
그리고 유적 가운데에서 보이는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잘생긴 남성 한 명. 성일은 그의 말에 살짝 조롱 어린 말투로 답변한다.
"음? 아, 경비병 실력이 별로더라고."
"하하!! 그렇겠지. 그것들은 그저 손님을 응대를 위해 마련해놓은 장난감이었으니까."
그렇게 답한 남성의 몸에서 순간 강렬한 마력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한 마리 거대한 드래곤으로 변모한다.
'존나 크네.'
4층 건물 크기는 되어 보이는 레드 드래곤의 모습. 그 압도적인 위용을 본 일행의 표정은 조금씩 굳어간다.
『위대한 존재의 사도여. 굳이 피를 봐야 하는가? 지금이라도 물러난다면, 그대가 모시는 신의 얼굴을 보아 싸움 없이 조각을 양도해주지.』
"에엑?!"
성일에게 사전 설명을 듣지 못했던 관계로 세나는 드래곤의 회유에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는다.
'이 틈을 타서.....'
드래곤이 다짜고짜 싸움을 시도하지 않았기에, 성일은 놈과 대화를 시도하는 척하며 동료들에게 수신호를 펼친다.
그리고 그 신호를 본 동료들은 너무 과하지 않은 속도로 조심스럽게 산개하기 시작한다.
"저번에도 분명히 말했을 텐데? 나는 조각 외에도 네가 훔친 '성검'도 회수해야 한다고. 그걸 내놓지 않는다면 난 곱게 물러설 생각이 없다."
『굳이 벌주를 마시겠다면야. 난 그대가 모시는 신께 다시 한번 정중히 말씀드렸다네.』
그 말을 끝으로 드래곤은 고개를 치켜들고 강렬한 포효를 외친다.
『쿠워어어어!!!』
'일단 드래곤 피어는 막았고.'
전투 시작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드래곤의 포효. 일반적인 적이라면 이 포효를 듣자마자 공포와 혼란에 빠져 미쳐 날뛰었겠으나, 성일 파티는 이미 온갖 정신 방어 주문을 떡칠해 놓은 상태라 그런지 인상만 살짝 찌푸릴 뿐, 무너지지 않고 계획대로 용감히 돌진을 시도한다.
"세나!!"
"응!!"
홀로 전위의 일행에게서 20m 가까이 떨어져 있던 세나. 그런 와중 성일이 자신의 이름을 강하게 부르자, 그녀는 등을 돌려 옆에 있는 기둥 쪽으로 달려가며 스크롤 하나를 찢는다.
"춤추는 검 소환!!"
그러자 세나의 약 5m 앞쯤에 생성된 마력으로 이루어진 검 서너 자루. 제법 예기(??)가 충만한 검은 소환자의 의지에 따라 드래곤으로 돌진을 개시한다.
『꺄아아아아악!!』
춤추는 검이 돌진하자, 유적 바닥에서는 드래곤이 미리 설치한 마법 함정이 터지면서 끔찍한 밴시의 울음이 울려 퍼진다.
슈우웅....
비명이 퍼지고 세나가 소환한 소환수는 바람 빠지는 금속음과 함께 그 자리에서 역소환되어 버린다.
"지금이다!! 다들 시작해라!!"
"음!!"
하지만, 그 상황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는커녕, 후방에 위치한 몇몇 일행은 마치 밴시의 절규를 진정한 개전(?戰)의 신호탄처럼 생각하며, 사전에 연습한 대로 온갖 주문을 동시에 외우기 시작한다.
『버러지들이 내가 앞에 서 있는데 감히 주문을!!』
침입자들이 자신의 둥지에 설치된 방어 마법을 미끼 소환수로 무력화한 뒤, 일제히 강력한 소환수를 소환하려는 듯한 잔재주를 선보이자 드래곤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고함지른다.
『죽어라!! 버러지!!』
미리 저장해둔 온갖 버프 마법을 한 번에 폭발시킨 후 드래곤은 거대한 꼬리를 채찍처럼 무자비하게 휘둘러 성일, 반, 가아즈를 물러나게 만든다.
"큭....!!"
그런 후 드래곤은 가장 가까이에서 소환 마법을 시전하는 브루노를 노리며 거칠게 돌진을 시작한다.
쿵! 쿵!!
한 발 한 발 뛸 때마다 지축을 울리는 드래곤의 발소리. 건물처럼 거대한 덩치를 가진 놈인 주제에 놈은 표범처럼 빠른 속도로 브루노에게 돌진한다.
『목표물을 제거합니다.』
그런 와중 신전 외곽 기둥에서 울리는 기계음의 목소리.
『!!』
생전 처음 들어보는 기괴한 목소리에 움찔한 드래곤은 순간적으로 그곳에 시선을 던진다.
그러자 보이는 은빛 금속으로 몸이 이루어진 기괴한 쇳덩이.
놈은 역시 자신에게 생전 처음 보는 녹색의 빛덩이를 쏴대고 있었고, 그 미지의 공격에 움찔한 드래곤은 돌진을 잠시 멈추고 공격을 방어한다.
『날파리 같은 놈이!!』
에드워드가 정교하게 드래곤의 눈 방향으로 플라즈마 탄을 쏴대자 드래곤은 빠르게 고개를 돌려 탄으로부터 눈을 보호한다.
퍼엉!! 퍼엉!!
눈은 맞추지 못했지만, 에드워드는 그래도 플라즈마 탄을 드래곤의 얼굴에 성공적으로 적중시킨다.
『고작 이거냐?』
생명체가 맞으면 어지간해선 그 자리에서 녹색 죽덩이가 되어버리는 플라즈마 탄에 얼굴에 직격당했음에도 불구, 놀랍게도 드래곤은 얼굴만 살짝 찡그릴 뿐, 조금도 타격을 입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망치와 모루의 수호자여!! 내 적을 무찌르라!!"
"찌익!! 지식의 현자여!! 내 적을 무찌르라!!"
드래곤이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완성된 신성 소환 주문. 적은 수이긴 하지만, 특유의 강력한 신성력이 부여된 하수인이 전장에 소환되자 드래곤은 하수인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그따위 쓰레기 하수인으로 나를 어쩔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느냐!!』
'하겠냐?'
애당초 동료들에게 소환수를 소환하라 명령한 성일 자신도 하수인들이 드래곤을 상대로 유의미한 공격을 할 거라고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는 속으로 드래곤을 비웃는다.
'그래도 신의 하수인은 제법 쓸만한 원거리 공격을 하니, 놈들로 하여금 드래곤의 눈만 집요하게 공격시키면 드래곤이 짜증 나서 놈들을 죽이려 하겠지.'
'소환수의 역할은 그렇게 드래곤의 시선을 잠시 끌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해.'
하수인이 드래곤의 공격 몇 번을 받아주기만 해도 대성공이었기에 성일은 드래곤의 조롱을 웃어넘기고 착실히 계획한 다음 플랜을 진행시킨다.
"세나!!"
"응!!"
설명 하나 없는 성일의 외침을 찰떡같이 알아먹고 세나는 가죽 가방에서 마법 스크롤을 꺼낸다.
"정신 방벽! 공포 저항!!"
세나는 하수인들이 조금이라도 더 드래곤의 공격에서 버틸 수 있도록 신전에서 사 온 스크롤을 찢어가며 버프를 걸어준다.
『죽어라!! 버러지 놈들!!』
개미 새끼 같은 것들이 자신의 공격에도 당황하지 않고 나름대로 무언가를 열심히 해대자, 카사락'타룬은 건방진 필멸자 놈들을 모조리 태워버리고 싶은 욕망에 휩싸인다.
우우웅!!!
분노에 몸을 맡긴 채로 거칠게 뒤로 점프하는 레드 드래곤. 동시에 놈은 거대한 날개를 허공에 강하게 휘두르며 강력한 바람을 사방에 퍼뜨린다.
"온다!!"
그리고 그 행위가 브레스 공격의 전조라는 걸, 지난 며칠 동안 모의 전투 훈련을 통해 뼛속 깊은 곳까지 기억해뒀던 일행들.
"넓게 퍼져라!! 세나!! 기둥 뒤로!!"
일행은 미친 듯이 드래곤의 날개에서 뿜어지는 바람에 맞서 주변으로 퍼지듯 뛰어간다.
그런 와중 그들은 사전에 약속한 대로 드래곤을 감싸는 진형을 짜려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크워어어어!!!!』
기둥 뒤로 숨어버린 에드워드, 세나, 햄스터를 무시하고, 드래곤은 그나마 하수인 등과 뭉쳐있는 성일과 반을 향해 거칠게 뜨거운 화염 브레스를 토해낸다.
'걸렸다.'
하지만, 그 공격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 성일. 그는 날아오는 화염 브레스를 바라보며 등 뒤의 마법 각인을 빠르게 활성화시킨다.
'점멸!!!'
성일은 점멸로 빠르게 드래곤의 배후로 순간 이동해 드래곤의 브레스를 손쉽게 회피한다.
"크윽....!! 정의시어!! 저에게 힘을 주소서!!"
하지만, 성일과 달리 회피 수단이 없는 반과 하수인은 드래곤의 화염 브레스를 정통으로 두들겨 맞는다.
"크....."
하지만, 놀랍게도 바닥을 녹여버릴 만큼 뜨거운 화염에 직격당했음에도 불구, 반은 가벼운 화상을 입었을 뿐, 크게 다치지 않은 모습을 보인다.
'역시 하수인은 버티지 못하는군. 뭐.... 됐어. 잠시 시선을 끌어줬던 것만으로도 만족하니까.'
『화염 저항 오러....? 오냐 내 직접 네놈을 친히 찢어발겨 죽여주마!! 정의의 졸개 놈아!!』
정의의 신과 라이벌 관계인 투쟁의 신을 모시는 신도라 그런지, 드래곤은 반이 자신의 화염 브레스를 직격당했음에도 불구, 왜 멀쩡한 것인지를 빠르게 파악하고 마무리를 위해 근접 공격을 시도한다.
"놈이 온다!! 포위해라!!"
"망치와 모루가 노래하시도다!! 번개의 폭풍이 내리쳐 사특한 것들을 불태우느니....!!"
포위하라는 성일의 말에 브루노는 기계적으로 광역 힐 겸 버프 주문인 전쟁의 성가를 부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가아즈, 반은 며칠 동안 죽어라 연습했던 대로 빠르게 달려, 브루노가 부르는 전쟁의 성가의 영향권 안에서 드래곤을 포위하려 노력한다.
'브레스는 하루 세 번 사용 가능하고, 한 번 사용 후 최소 5분 이상의 예열 시간이 필요....!! 그 빈틈을 노려 포위 공격을 한다!!'
정확하게 드래곤의 공격 패턴을 꿰뚫은 성일만이 할 수 있는 날카로운 전략.
『어딜....!!』
자신의 돌진에 맞서 잔재주를 쓰려 뭉치는 적의 모습을 본 드래곤은 일행을 가볍게 비웃어준 후, 엄청난 속도로 주문을 캐스팅하기 시작한다.
『광역 주문 해제!! 마법 저항력 약화!! 둔화!! 극심한 혼란!! 지독한 공포!!』
한 호흡 만에 말 그대로 주문을 '폭풍'처럼 쏟아내는 드래곤. 마법 생명체의 절정답게 놈은 세 명의 적이 건방지게 뭉친 대가를 치르게 해준다.
『고급 가속!! 바위의 피부!! 주문 반사!! 마법 방어의 구체!!』
심지어, 그토록 강대한 육체를 지녔음에도 불구, 드래곤은 영악하게도 자신의 몸에 온갖 버프 마법을 떡칠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런 후 놈은 다시금 일행을 향해 미친 속도로 물리 돌진을 시도한다.
『나와라!! 나의 종복들이어!!』
돌진하는 와중에도 드래곤은 이프리트 서넛을 소환해 아군을 급습하라 명령한다.
'씨벌.... 게임보다 더 살벌하네. 이동 중에 주문을 캐스팅하다니....'
'원래대로라면 전멸하는 패턴이지만....!! 이곳엔 내가 있단 말이지....!!'
하지만, 자신은 고인물 중의 고인물. 눈앞의 드래곤을 게임에서 수백 수천 번은 죽여본 성일이기에 그는 빠르게 놈의 빈틈을 찾아 재차 공격을 시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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