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게임의 지배자-572화 (572/576)

〈 572화 〉 저주받은 왕좌

* * *

".....엘더 스폰!!"

성일의 말에 그간 가아즈 등 뒤에 자리 잡기만 했을 뿐.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던 집행자의 입에서 살기등등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어지간히도 엘더 스폰이 증오스러운가 본데.'

집행자들의 표정만 봐도 느껴지는 증오심. 성일은 다시 한번 타­자란의 피에 각인된 증오를 느낀다.

"으음.... 네 녀석이 준 자료만 보면 놈들의 전력도 만만찮지 않은 것 같은데?"

그 와중, 브루노는 자료를 꼼꼼히 살피며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린다.

"그렇지. 그걸 아니까 너희들에게 자료를 전달해 주는 거고."

지하 기지에 거주 중인 별의 자손은 고작해봐야 이백 정도에 불과했지만, 대신 놈들의 구성원 하나하나는 최정예인 상황.

또한 놈들은 지상과 지하에서 잡아 온 전투 노예들을 부리고 있기에 실제로 내부에 배치된 병력은 몇 배나 많은 상황이었다.

"트롤... 오우거 전투 노예는 물론 인간까지 세뇌해서 전투 노예로 만들었다고? 감히...."

공략집을 꼼꼼히 읽으며 거친 대사를 내뱉는 반의 모습. 특히, 그는 별의 자손이 기아스 주문을 통해 인간을 노예로 부리고 있다는 글귀를 보고 무척이나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신전의 최정예가 돌입하면 충분히 제압은 가능하겠군. 네가 준 자료가 있으니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고."

비록, 별의 자손이 정예라고는 하나, 만신전 측 역시 신의 힘을 강하게 지원받은 위대한 성전사들을 파견하려는 상황.

때문에 브루노는 만신전이 이번 토벌 때 반드시 별의 자손을 제압할 거라 확신한다.

"동감해. 놈들 중 가장 강력하다는 엘더 스폰에 비견되는 만신전의 성전사들만 못해도 수십일 건데, 절대로 질 리가 없지. 문제는 네가 말한 대로 피해 여부고."

"....그런 의미에서 이 자료를 만신전의 다른 사원과 공유해도 될까?"

성일의 말에 반은 진중한 표정으로 자료 공유 여부를 성일에게 묻는다.

"당연히 가능하지. 그러라고 이렇게 많은 자료를 전달하는 거니까. 적대적인 교단에 공유할지 여부는 네가 알아서 하고."

"....당연히 공유해야지요. 혼돈 성향의 신전이 저희의 적에 가깝다고는 하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자료는 필수적으로 공유해야지."

"네 마음대로 해라."

반의 이성적인 대답에 성일은 손을 휘저으며 그에게 선택권을 넘겨버린다. 어차피 자신이 해줄 일은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하며.

"자료 출처의 비밀은 반드시 지키라고? 괜히 퍼지면 귀찮아지니까."

"물론."

성일이 모시는 신이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지 이제는 잘 알고 있기에, 반은 성일의 말에 단호하게 동의를 표한다.

"그럼 이틀 뒤 슬럼에서 모이는 거로 하자고. 오늘은 만신전에 자료 공유하러 가고."

***

'더럽게 많군.'

이틀 뒤, 성일은 파티와 함께 오랜만에 슬럼 방면으로 몸을 옮긴다. 그러자 보이는 엄청난 숫자의 병력.

"성전사들만 있는 게 아니네?"

솔라니움의 직속 군대로 보이는 병사들이 슬럼을 돌아다니며 빈민들을 강제해산하고 있는 모습은 성일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으리.... 조금만 더 주시면 안 될까요.... 저희는 딸린 입이 많아...."

"스읍! 일단, 이 보상금을 받고 떠나시오. 지정한 장소에 도착하면 추가로 보상금과 임시 거주지 등을 제공할 터이니!! 나와 실랑이할 시간에 빠르게 목적지로 가는 게 좋을 거요!! 남들이 좋은 숙소 다 선점하기 전에!"

"아, 예.... 예에...."

흥미롭게도 솔라니움 시의 군대는 슬럼에 거주하고 있는 하층민에게 무력을 이용해 그들을 이곳에서 강제 해산하기보다는 일정 수준의 보상을 제공해 최대한 그들을 인도적으로 해산시키고 있었다.

"당연하잖나. 만신전에 천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대신탁이 내려온 상황인데, 솔라니움 시에서 손가락만 빨며 구경만 하고 있으면 그게 더 웃기는 거지."

"하긴...."

가치관과 관계없이 무려 '모든' 신들이 '동일한' 신탁을 내린 것은 전례가 없었던 상황.

때문에 신탁에 경악한 건 만신전만이 아니었고, 놀란 시의회와 군대는 물론, 마탑까지 자원 형식으로 현재 만신전을 지원하고 있었다.

"엄청 온건하네요? 솔라니움의 군인과 기사들은 콧대가 높고 난폭한 것으로 유명한데...."

세나는 솔라니움의 군인들이 평소와 달리, 온건한 방식으로 작전 구역의 빈민을 해산시키는 모습이 인상 깊었는지, 그들이 구호품을 뿌리는 것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 그건 이상할 게 없지요. 작전 주체가 무려 '만신전'이잖습니까. 각 신전의 '사제'들이 앞장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상황에서, 솔라니움의 군대가 평소와 같이 '고압적'인 민사작전을 치렀다가는 고위 성전사분들의 분노가 어디로 향하겠습니까?"

"어? 아저씨는?"

세나의 의문 섞인 중얼거림을 받아주듯 그녀의 근처에서 목소리 하나가 튀어나온다.

"라자릭 마법사님?"

"하하! 다들 잘 지내고 계셨습니까?"

고개를 돌리자, 흥미롭게도 그곳에는 얼마 전 지하 유적을 함께 탐사했던 마탑의 마법사 라자릭 경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예. 신의 명에 따라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지요."

"훌륭하십니다. 반 경."

반과 라자릭이 인사를 나누고 있는 동안, 성일은 그의 뒤에 자리 잡고 있는 로브 입은 수많은 마법사를 볼 수 있었다.

'오.... 솔라니움 마탑의 마법사들이잖아? 거진 백 명은 모인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마탑도 정예란 정예는 몽땅 차출해온 것 같은데?'

만신전이 유례없는 신탁으로 비상을 선포해 행동에 나서자, 또 다른 한 축인 마탑과 시의회가 기사단과 마법사 부대로 그 행동에 화답한 모양새.

성일은 그 압도적인 위용에 이번 작전은 정말로 수월하게 끝날 것임을 직감한다.

'시발.... 솔직히 까놓고 말해 마탑이랑 군대만 보내도 토벌 자체는 가능할 건데....'

때문에 성일은 현재 모인 전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조금도 부정하지 못한다.

"각 신전의 대표께 아룁니다!! 모든 토벌 준비가 끝났습니다!! 사전에 상의 된 대로 진형을 짜주시길 바랍니다!!!"

성일이 넋을 놓고 주변을 구경하는 와중, 들리는 포고꾼의 소리. 솔라니움의 군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주변을 정리하고 지하 유적의 입구를 뚫는 데 성공한듯했다.

"....더럽게 빠르네. 근데, 저렇게 주먹구구식으로 들어가도 되는 건가?"

성일의 말대로 만신전의 사제들은 각기 비슷한 성향의 사제끼리 뭉쳐 어설픈 진형을 짠 상태로 지하수도로 몸을 옮기고 있었다.

때문에 그 어설픈 모습에 그는 우려 섞인 말투로 중얼거린다.

"지랄마라."

"음?"

그런 성일의 우려 섞인 중얼거림에 브루노는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비웃는다.

"저기 있는 자들이 보통 사람들이냐? 여기 모인 정도의 성전사들이면 강림한 준신도 때려잡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이놈아."

"...."

성일을 뻘쭘하게 만드는 브루노의 답. 살짝 무안해진 성일은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빈정거린다.

"준신도 때려잡을 수 있는 작자들이 왜 북부에서 난동을 피우는 그리즈낙은 내버려 두고 있냐?"

"....음?"

성일의 날카로운 반격에 브루노는 순간 말문이 막혔는지 몸을 움찔거린다.

"하하. 그 문제와 이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지요."

"....!!"

성일의 곁에서 튀어나오는 또 다른 목소리. 그가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서 성일은 정의의 신전을 지휘하고 있는 마스터 팔라딘을 볼 수 있었다.

"휴머노이드들의 사악한 신 그리즈낙의 강림 문제는 이번 건과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그리즈낙이 위협적인 이유는 그가 준신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그가 모든 휴머노이드를 통치하고 있다는 게 더 문제인 상황이죠."

"음...."

"그리즈낙이 부활했다는 뜻은 북부에 엄청난 수의 휴머노이드 군대가 일어났다는 뜻과 일맥상통합니다. 만신전의 성전사들이 강하다고는 하지만, 수만의 휴머노이드 군대를 제압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그렇습니까?"

성일은 만신전이 적극적으로 전선에 성전사들을 보내면 전세가 뒤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는 납득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예. 저희 선성향의 신전에서 북부 전선으로 성전사를 본격적으로 보내면, 그리즈낙과 사이가 좋은 악성향의 신전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사악한 신앙을 솔라니움 주변으로 퍼뜨리려 할 겁니다. 그럼 오히려 혼란은 더욱 커지겠지요. 그래서 오늘 같은 상황이 굉장히 특이한 경우이고요."

"아하...."

성일은 마스터 팔라딘의 말에 그제서야 조금 이해하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정치적인 이유로군? 지금에야 야옹이가 모든 신에게 별의 자손을 토벌하라고 '명령'했기 때문에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각 신전이 힘을 하나로 합쳤지만....'

'그리즈낙은 별개라 이거지? 선한 신들 입장에서야 그리즈낙의 난동이 불쾌한 것이지, 사악한 신들은 그 난동을 되레 기회로 여긴다는 거로군.'

사실 솔라니움 만신전에는 극도로 사악한 신이 없긴 했지만, 혼란이나 분쟁을 좋아하는 신들이 분명히 있었기에, 의견이 일치되지 않거나 의외로 그리즈낙에게 호의적인 신이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무튼, 넌 걱정 마라.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움직여도 의외로 피해는 거의 없다시피 할 거니까."

"그렇다면야...."

솔직하게 성일은 속으로 여전히 납득하지 못했지만, 이번에 자신은 버스를 타는 입장이기에, 그는 더 이상 투덜거리지 않기로 마음먹는다.

"우리가 앞장서겠소."

"음....?"

무려 만신전의 성전사 무리 앞을 당당하게 가로막고, 선봉에 서겠다는 무리가 등장하자, 좌중의 시선이 일제히 그곳으로 몰린다.

'가아즈....?'

용감한 발언을 한 사람을 자연스럽게 바라본 성일. 그러자 그곳에서 그는 이제 자신에게도 익숙한 이계인을 볼 수 있었다.

"우리 타­자란은 별의 자손과 기나긴 세월 동안 전쟁하고 있는 사이라오. 때문에 우리만큼 그들의 전술을 잘 아는 자들도 없지. 그러니 우리 타­자란이 선봉에 서게 해주시오."

"아, 그대는 타­자란의 집행자로군. 당신들의 말이라면 확실히 믿을 수 있지. 우리 밤의 신전은 그들이 선봉에 서는 것을 동의하겠소."

그들의 위명을 잘 알고 있던 것인지, 밤의 신전에서 파견 나온 성전사는 별 불만을 보이지 않고 동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 기조는 다른 신전에게 전염되기 시작되어, 집행자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선봉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배짱 죽이네.'

수없이 많은 강력한 집단에게 당당히 선봉을 달라고 말하는 가아즈의 배짱에 감탄하며, 성일은 얌전히 일행과 함께 지하수도로 몸을 옮긴다.

"그걸 주시겠소?"

"아."

지하수도 깊숙한 곳으로 몸을 옮긴 지 한참. 아무 생각 없이 중간쯤에 자리 잡고 묻혀가고 있던 성일에게, 뜬금없이 가아즈가 다가와 무언가를 요청한다.

'시발, 쓸데없게 주목받잖아.'

선봉에 선 타­자란 집행관이 처음 보는 평범한 야만전사에게 다가서서 무언가를 묻자, 각 신전의 사제들은 모두 성일을 살피며 그를 흥미로워한다.

"....여기."

챙겨온 로브 후드를 은근슬쩍 머리에 뒤집어 쓴 후 성일은 가아즈에게 결계를 파손시켜줄 오브를 건넨다.

"고맙소."

그리고 그에게서 오브를 받은 후 가아즈는 그것을 들고 사전에 연습한 대로 평범해 보이는 하수도 벽에 가져다 댄다.

"오오....."

그러자 모래 벽에 물이 닿듯 지하수도의 벽은 소멸하기 시작한다. 그 모습에 놀라는 좌중.

"감히.... 만신전 지하에서 이따위 짓을...."

흥미로워하는 마법사들과 달리, 사제들은 하나같이 표정을 굳히며 분노 어린 말을 내뱉는다.

"함정을 해제하시오."

뒤에서 생긴 가벼운 소란을 철저히 무시하며, 가아즈는 휘하 집행자에게 명령해 별의 자손이 설치한 온갖 함정과 마법을 해제시킨다.

'원래는 광역 정신 함정의 세례를 두들겨 맞고 기절해야 정상인데.... 과연 타­자란이군. 그걸 해제하다니....'

성일은 원래 게임대로라면 절대로 해제할 수 없는 함정을 아무렇지 않게 해제하는 타­자란 집행자의 능력에 감탄한다.

그런 사이 성전사들은 좁은 통로를 지나 거대한 원형 문 앞에 자리 잡는다.

".....이곳을 넘어서면 별의 자손 건물 특유의 대광장이 등장할 거라오. 일반적으로 별의 자손은 광장에서 대대적인 공격을 시도하니 미리 대비하시오."

"...."

이 문 넘어서부터 본격적인 격전이 발생할 것이라고 성전사들에게 경고하는 가아즈.

하지만, 성일에게서 미리 공략집을 받고 패턴을 숙지한 성전사들이었기에, 그들은 조금도 긴장하지 않고 각자 성스러운 주문을 읊기 시작한다.

덜컥.... 쿠웅!!!

그런 사이, 집행자들이 광장의 문에 걸린 마법적 봉인을 해제하는 데 성공해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등장했군.'

그리고 그 너머 보이는 거대한 광장. 콜로세움처럼 생긴 그 광장과 그 벽 위에서는 끔찍한 촉수 주둥이가 인상적인 괴물들이 높은곳에서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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