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화 〉 19. 초대와 불청객 (2)
* * *
불 꺼진 방 안, 햇빛을 가리는 반투명한 커튼 아래. 여기, 푹신한 침대 위에서 달아오른 몸을 홀로 애타게 달래는 아름다운 여성이 한 명 있다.
한 손으로는 평균을 거뜬히 상회하는 사이즈의 가슴을 만지작거리고, 다른 손으로는 다리 사이의 은밀한 균열을 훑는다.
그녀의 손길은 많이 어설프다. 수음(手?) 경험이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그저 막무가내로 가슴을 꾹꾹 누르고 보지를 톡톡 건드릴 뿐이다.
그 모습은 마치 첫사랑에 빠진 소녀 같다. 한평생 남성과 음란을 멀리하며 살아온 정갈한 처녀가 갑작스러운 육체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한다.
이 관능적인 여주인공, 민혜린은 지금 너무나도 답답하다. 몸이 갑자기 뜨거워지고 곳곳이 간지러운데. 난생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이상한 감각인데. 이 야릇한 충동을 참지 못해서 아무것도 모르지만 나름 최선을 다하는 중인데.
너무 부족해. 분명 지금보다 훨씬 기분 좋아질 수 있다고, 제발 제대로 좀 해주면 안 되겠냐고 몸이 머리한테 애타게 간청하는데, 그녀는 그 방법을 도통 모르겠으니 미쳐버리겠다.
"하아··· 하으······."
만약 이 자리에 혜린이가 친구 이상이라고 여기는 정지후가 있었더라면. 여체에 능숙한 그가 있었다면 그녀는 지금쯤 천국을 맛보고 있을 것이다.
주변에 지후 말고 다른 남자가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 안 그래도 신화급 속성 덕분에 한껏 물오른 그녀다. 그야말로 여신 같이 아름다운 외모와 완벽한 몸매가 쾌감에 헐떡이며 자위에 열중하는 음란한 자태는, 남자의 이성을 날리고 오직 본능만이 남게 하는 뇌쇄적인 매력을 풍긴다.
이러한 모습의 그녀는 남자는 물론이고, 정상적인 여자마저도 한 번에 홀려버리는 끈적이는 마성(??)을 발산한다.
'무, 뭐야 이게······!'
민혜린의 손은 멈추지 않는다. 이미 그녀의 통제를 떠났다. 그녀는 그저 유전자에 새겨진 여자의 본능에 따라, 어디 있는지도 모를 고지를 향해 발버둥칠 뿐이다.
많이 어리숙하던 그녀의 손놀림도 제법 규칙을 찾아가며 점차 매끄러워진다. 그녀의 신화급 재능은 성적인 행위에서도 그 찬란한 재능을 꽃피운다. 이에 맞추어 그녀의 달뜬 한숨이 조금씩 거칠어지고, 몸의 떨림도 강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손가락이 빨딱 솟은 유두를 건드렸다.
"후아아아······♡"
찾았어.
드디어 찾았어!
기분 좋은 곳,
기분이 좋아지는 스위치를 찾아버렸어···♡
거의 동시에 그녀의 다른 손 또한 꽁꽁 숨겨진 음핵을 발견해버렸다.
민혜린은 두 곳의 흥분 스위치들을 집중적으로 자극하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꾹꾹 누르고, 돌리고, 아프지 않을 만큼 꼬집는다. 이런 간단한 손놀림만으로 온몸을 훑는 쾌감에 그녀의 입술 사이로 간드러지는 교성이 새어나온다.
야릇한 쾌락이 쌓이기만 하는 그녀의 머리도 이에 질세라, 흥분을 돋우기 위해 상상 속에서 하나의 인물을 구현했다.
정지후.
그녀의 친구이자 목표, 라이벌인 남자를, 민혜린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바라본다.
그들은 상상 속의 침대 위에서 서로 알몸으로 마주보고 있다. 그의 역동적이고 남성적인 나체에, 그녀는 시선을 둘 곳을 못 찾아 이리저리 방황한다.
"혜린아······."
그의 상냥하면서도 뜨거운 속삭임이 굉장히 어색하다.
"시작할게."
쪽.
그녀의 발등에 살며시 입을 맞춘 지후. 그는 그녀의 발을 양손으로 붙잡아 공손하게 핥기 시작했다.
쪽. 쪽. 쪽.
그의 정성스러운 애무는 간지러운 발바닥에서부터 느긋하게 올라와, 얇은 종아리와 민감한 허벅지를 지난다. 부드러운 입술이 그녀의 피부와 닿을 때마다 민혜린의 입에서 달뜬 한숨을 새어나왔다.
녹아내린다. 그녀의 몸도, 머리도. 지후가 입을 맞춘 지점들을 중심으로 신경이 녹아버리는 듯한 감각에, 그녀는 정신을 놓아버리기 직전이었다.
쾌감에, 손가락에, 지후에게, 중독될 것 같아······.
이윽고 그가 그녀의 자그마한 배꼽에 키스하고, 길다란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어 그녀의 음핵을 입에 머금자,
"흐으으읏♡♡♡!!!"
푸슉··· 푸슉···
민혜린은 보지에서 물을 뿜으며 가버렸다.
"하아아······. 이게 뭐야······."
갑작스러운 흥분과 난데없이 정지후가 등장하는 망상.
이 모든 것들은 그녀의 속성의 짓이었다.
[하늘(?)]을 처음으로 뛰어넘은 [대지(?)] 속성이, 앞으로 지향해야 하는 방향을 그녀에게 알려주고 있지만,
"후으··· 후아아···."
다시금 흥분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민혜린은 달아오른 몸을 달래느라 바빠, 이를 진지하게 고민할 여유가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내리 2시간 반 동안 침대 위에서 내려가지 않았다. 아니, 그러지 못했다.
"하하······."
민혜린은 짙은 허탈감에 한숨을 푹 내쉬었다. 충동이 전부 가시고 나니, 흥분이 사라진 빈자리를 자괴감이 가득 채운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거리람. 남사친을 상대로 야한 망상에 사로잡혀서 몇 시간 동안이나 혼자서······. 오후에 수업이 없어서 참 다행이다.
자신이 이런··· 이렇게나 음탕한 여자일 줄은 몰랐다······.
지후한테 미안하고 수치스럽다.
'당분간은 부끄러워서 지후 얼굴 못 봐···.'
그녀는 자위가 끝난 이후에도 한동안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똑똑.
"이제 나와도 돼."
"네에······."
민혜린은 메이드의 잔뜩 붉어진 얼굴을 보고, 쥐구멍으로 도망치고 싶다고 생각했다.
* * *
"안녕?"
"···아, 안녕······."
나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성적표를 확인하더니 학생회관에서 뛰쳐나간 혜린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어딘가 어색한 인사. 우리는 앞서가는 시녀의 뒤를 따라 함께 발걸음을 내딛었다.
혜린이는 뺨을 선홍빛으로 물든 채 나와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있다.
왜지? 무슨 일 있나?
그래서 나는 한쪽으로 치우친 그녀의 시선에 내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 으, 응? 왜?!"
그러자 반대편으로 머리를 홱 돌리는 혜린이. 기분 탓인가, 그녀의 홍조가 더욱 진해진 듯하다. 동시에 내 마음 속 웃음소리도 더욱 커졌다.
'이거 재미있네···.'
여태까지 같이 지내면서 한 번도 보지 못한 신선한 반응이다.
언제나 성숙한 매력을 뽐내는 혜린이도 귀여운 맛이 있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괴롭히고 싶지만, 우리를 안내하는 시녀의 눈치가 보여서 그만뒀다. 여기는 함부로 장난쳐도 되는 곳이 아니기도 하고.
이곳은 '초월(??)의 궁전'.
제니퍼 디 카이로스 1황녀 전하께서 기거하시는 궁궐이다.
초월은 1황녀를 상징하는 단어나 다름 없다. 그녀는 일반급인 [번개(?)] 속성임에도 불구하고, 각성 전부터 보유했던 태생적인 무재(??)를 바탕으로 아카데미 졸업과 거의 동시에 초월의 경지에 도달하였다.
제국 최연소 초월자의 등장이었다.
초월. 인간의 정해진 한계를 뛰어넘는 것.
나는 초월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내게는 아직 까마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리스가 말하길, 내가 그녀의 시험들을 모두 통과하고 천제의 유산을 전부 흡수하면 자동으로 초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루빨리 그 순간이 다가오기를 기다릴 뿐이다.
제니퍼 황녀는 오늘 갑자기 나와 혜린이를 불렀다. 명목은 아카데미에서 훌륭한 성적을 거둔 우리의 노력을 치하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나의 현관을 두드리는 황녀의 시녀들을 처음 마주했을 때는 솔직히 어이가 없었다. 왜냐하면 아무런 예고도 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와서 최대한 빨리 준비하라고 채근했기 때문이다.
지구에서는 꽤 무례한 행동. 하지만 이세계에서는 그래도 된다.
대륙에서 유일한 국가인 제국의, 신분제 사회의 최상단, 하늘 그 자체인 황실은 그래도 된다.
그리고 나보다는 황녀가 훨씬 바쁠 테니, 나를 만날 여유가 지금밖에 없나 보다 하며 이해할 수 있다.
얼마 전에 제니퍼 황녀가 나를 부를 수도 있다고 소니엘이 언급하기도 했다. 내가 과연 2황녀의 약혼자 자리에 어울리는지를 검증하기 위해서라나. 따라서 1황녀는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목적이 그것만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황녀는 1황자와 2황자를 상대로 황위를 노리는 황족. 계승 경쟁의 승리를 위해서는 본인의 유능함을 증명하는 공적도 필요하지만, 이와 함께 귀족의 지지를 받는 것 역시 중요하다.
그런 그녀의 입장에서, 우리는 굉장히 먹음직스러울 것이다.
다른 귀족 학생들은 가문과 가주의 성향, 지역의 위치 등에 따라서 이미 미래의 파벌이 어느 정도 결정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세계에 아무런 연고 없이 소환되었고, 앞으로의 대격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라 예상되며, 이에 어울리는 뛰어난 속성들을 수도 없이 각성했다.
거기에 나와 혜린이는 무려 전설 속에서만 등장하는 신화급이기도 하고.
내가 듣기로, 현재 귀족 정치에서 가장 잘나가는 황족은 1황자 그 변태 돼지 새끼라고 한다.
놈은 안 된다. '황제 포르쿠스'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을 것이다. 여차하면 아이리스한테 암살해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지만, 가능하면 내 손으로 직접 추락시키고 싶다.
녀석은 이전의 결투에서부터 나와 이미 척을 진 사이고, 나의 하녀 이레이나의 원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1황자의 미래는 오직 검은색으로 어두울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번 방문이 딱히 싫지 않다. 나도 제니퍼 황녀와 가까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다만, 전에 그녀가 남성혐오라고 들었던 것 같은데······.
"이곳입니다."
복도의 양옆으로 사열한 기사 동상들의 차가운 시선을 받으며, 우리는 마지막으로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시녀가 고개를 끄덕임과 동시에 거대한 문이 끼이익 열리기 시작했고,
'······?'
점점 넓어지는 문틈 너머로 보이는 내부는, 알현실일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많이 달랐다.
* * *
"아흣♡ 하앙♡ 아이잉, 오빠 넘 거친 거 아냐?"
"후우, 훅, 씨발년, 존나 맛있네 진짜···."
남자의 거친 움직임에 여자는 연신 교성을 흘리며 상대에게 아양을 떤다. 그녀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슬쩍 봐도 여유로워 보이는 반면, 그는 성욕에 잡아먹힌 것처럼 줄곧 성급한 모습을 보인다.
남자는 머지않아 허리를 앞으로 바짝 대고 몸을 부르르 떨며 사정했다. 그러고는 정액을 다 빼자마자 밀려드는 현타에 여자를 앞으로 밀쳤다. 철푸덕 넘어진 여자가 아무렇지 않아 하며 일어나서 더러운 자지를 청소하는 동안, 남자는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봤다.
드넓은 연회 홀에서 한창 섹스중인 남녀만 9쌍. 일부는 세 명씩 모여서 즐기고 있다. 독한 술의 알싸한 냄새, 분홍 연기를 피우는 향의 야릇한 향기, 그리고 남녀의 땀과 정액, 보짓물이 묻어난 음란한 체취가 후각을 둔하게 만든다.
남자가 아래를 내려다보자 그를 올려다보는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입술을 꾹 조이며 샐쭉 웃는 그녀. 그는 이세계에 소환된 뒤로 종종 창관에 다녔지만, 이렇게나 야한 년은 또 처음이었다.
역시 황궁이다. 기대를 한참이나 뛰어넘었다. 분명 제국에서 손꼽히는 창녀만이 엄선되었겠지.
남자는 다시금 발기한 자지를 그녀의 입에서 꺼내, 2차전을 시작하려고 했다가 그만두었다. 이 자리에서 가장 높으신 분이 그를 찾아오셨기 때문이다.
"자네, 잘 즐기고 있나? 분명 이름이··· 최지훈이라 그랬지?"
"네, 그렇습니다! 포르쿠스 황자님, 파티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태양(?)] 속성을 각성한 소환자 최지훈은, 포르쿠스 1황자의 초대를 받아 그의 궁전에 방문했다.
"부족한 거나 더 필요한 건 없고? 술이나 음식, 여자 같은 거. 뭐든지 말하게."
"저··· 그럼 혹시······ 암컷을 한 마리 더 받을 수 있을지······."
최지훈의 당돌한 부탁에 포르쿠스가 웃음을 터뜨리면서 그의 접힌 뱃살이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으하하하! 어이구 이 친구, 정말 남성적이네! 당연히 되지. 조금만 기다려."
"정말 감사합니다!! 황자님을 뵙게 되어 무한한 영광입니다!"
"아니다. 오히려 내가 더 영광이야. 이렇게 소환자들 중에서 '가장 우수한' 이와 친구가 되다니. 우리 친구 맞지?"
"제게는 너무 과분합니다. 미래의 황제 폐하께 제가 어찌 감히······. 제게 바라시는 게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주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하하, 다음에도 종종 부를 테니, 앞으로도 계속 친하게 지내자구."
포르쿠스는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최지훈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리고는 다음 손님을 향해 발을 내딛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비열한 웃음이 떨어질 줄 몰랐다.
'쉽구나, 쉬워.'
성욕은 앞서지만 성경험은 일천한 20살 청년 한 명을 타락시키는 데는 최고급 창녀 한 마리로 충분하다.
이것이 포르쿠스의 방식.
부하의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대가로 부하의 충성을 받아낸다. 음험하고 야만적이지만 매우 효과적이다.
그는 소환자들 사이로 은밀하게 퍼지고 있는 마수(?手)를 떠올리며 음산하게 웃었다.
누가 봐도 황제보다는 악당에 걸맞는 웃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