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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후가제자를숨김-4화 (4/215)

〈 4화 〉 3. 낚시를 하는 방법

* * *

호수의 물을 전부 마셔서 없앤다. 일반적으로 떠올리지 못할 발상이다. 하지만 혈마는 그 발상을 떠올렸고 그녀의 얘기를 들은 동료들이 머리를 맞대고 머릿속 짱돌을 굴려가며 곰곰히 토론을 나눈 결과, 그 방법은 이론상 실현이 가능하다! 라는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내놓았다.아무리 내가 밥을 돼지처럼 많이 처먹었거니 한다 해도 호수의 물을 전부 마셔버리라니.

'그딴 게 가능하면 사람이겠냐고 강하게 반발하며 따졌었지.'

그러나 내 동료들은 생각보다 미친 놈들이었다. 녀석들은 알겠다더니 얼마 안 가서 내게 새로운 심법을 만들었다며 희희낙락거리는 얼굴로 가져오는 게 아닌가.

바로 이라는, 이름답게 소화를 가속시키는 심법이었다. 정확히는 체내에 들어온 식량을 일소시키고 기운만 홀라당 흡수해버리는 심법으로 먹으면 먹을수록 강해질 수 있다는 무공이었다. 문제는 화 속성 내공을 지닌 무인이 아니라면 사용할 수록 살이 찐다는 단점이 있다는 걸까. 물론, 극양지체인 내게는 상관없는 문제였고 동료들도 그걸 고려해서 만들었기에 빠르게 완성된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희대의 미친놈마냥 호수의 물을 마시며 운기를 하고 있고.

"꿀꺽. 꿀꺽."

보통 운기를 할 때 입을 열어서는 안 되나 소화심법은 정신나간, 아니. 굉장히 특이한 심법이었기에 음식을 먹으며 소화를 시키고 그 기운을 운기하는 것이었기에 상관없었다. 극양지체인 나조차 속이 들끓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속에서 부글거리는 호수의 물을 계속해서 마셨다.

그 호수의 물이 빠르게 소실되다시피 소화되며 상질의 양기가 체내를 가득 채운다. 극양지체의 육신을 다시 발끝부터 머리 끝까지, 육체란 이름의 그릇에 가득 눌러담아 채우는 기분이었다. 몇 시진이나 억지로 기운을 압축하자 밀도와 순도가 말도 안 되는 정수가 체내에 만들어진다. 이것만 해도 만년화리의 내단을 얻은 것과 비견되는 기연이라 할 수 있으리라. 오로지 극양지체에 소화심법을 아는 나에게만 기연이 되는 마경. 동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달달했다.

단전에 그 정수를 담을 때는 하복부에 적지 않은 충격이 전해졌지만 극양의 내기를 압축하고 제련하여 단단하게 만든 단전이다. 고작 호수의 기운을 정제한 정수 하나 담았다고 깨지는 일은 없으리라.

……없겠지?

쓸데없이 불안한 감정을 망각의 너머로 던져버리고는 슬슬 눈을 뜬다.

주변을 둘러보니 내가 물배를 채웠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어느새 그 넓었던 호수는 열기로 달아올라 시뻘건 바닥을 드러냈으며 그 위에는 아직도 기운이 남아도는 만년화리'들'이 펄떡이고 있었다.

'아니, 잠깐만. …'들'?'

"미친."

호수가 있었을 터인 이 구덩이에서 빨간 물고기가 무려세 마리나 펄떡이며 건강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한 마리도 보기 힘들다는 만년화리가 세 마리나 있었다는 건 미래의 사태도 몰랐던 듯했다. 만년화리가 세 마리나 있었다면 사냥단이 절대 그냥 지나갔을 리는 없을 테고, 그렇게 되면 사냥단의 일원인 사태 또한 분명 기억하고 있었을 테니까.

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일단 굴러다니는 짱돌을 집어다 머리를 으깨 세 마리를 전부 잡았다. 꼴에 호수 안에서 굴러다니던 돌이라고 반들거리는 것이 뚝배기를 깨는 손맛이 좋았다. 순간 이 돌을 챙길까 싶었지만 이내 고개를 젓고는 다시 바닥에 버렸다. 그 이후에는 만년화리의 배를 가르고 혹여 상처가 나 기운이 샐까 조심스럽게 내단을 꺼내 챙겼다.

"그나저나 이거 세 개를 다 먹어야 하나."

아무리 내가 미래에서 영혼만 회귀한 고수라 하더라도 기운을 담을 그릇이 되는 육신은 빈약한 편이다. 하나라면 모를까, 세 개나 되는 만년화리의 내단을 냉큼 먹었다간 탈이 날 수도 있다. 아직 단전에 내공을 담을 여력이 있기는 한데 만년화리가 세 개나 되니 나도 잘 모르겠다. 그렇다고 이대로 갖고 나가기에는 내단을 담기 위해 특수가공한 주머니가 없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기운이 점점 허공으로 산화하며 빠질 텐데.

반각의 시간 동안 고민해봤지만 영 만족스러운 계획이 떠오르질 않는다. 여기서 동료가 바로 옆에 있었다면 나눠 먹어서 우정을 돈독하게 했겠지만 지금은 홀몸이니 내가 다 처리해야 한다.

다 먹는 것과 두 개를 버리고 하나만 취하는 것은 각각 장단점이 있었다. 다 먹으면 내가 빵 터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성공만 한다면 단숨에 경지를 상당량 회복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하나만 먹을 때는 안정적으로 낮은 경지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 그냥 위험을 감수하는 만큼 큰 보상이 되어 돌아온다는 소리다. 그렇게 고민하다 나는 갑자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생각해보니 미래에서는 이런 고민도 사치였지.'

뒤질 걱정을 뭐하러 하나. 당장 내일 요괴와의 싸움에서 뒤질 걱정을 해야 하니 그때 당시에는 신경도 안 쓰고 몸에 좋다는 건 다 꾸역꾸역 처먹었다. 그러니 동료들이 날 돼지새끼라고 놀렸던 거겠지. 자기들도 몸에 좋다는 건 다 먹는 처지라 도긴개긴이었지만.

이런 여유로운 고민을 하면서 강해져봤자 미래에 현세로 쳐들어 올 요괴들을 상대로 똑같은 절망을 맛볼 뿐이리라. 나는 빠르게 강해질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동료들이 날 회귀시킨 게 아니겠는가.

"그냥 세 개 다 먹자."

가부좌를 튼 나는 곧장 내단 세 개를 삼켰다.

처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극양의 기운을 품었다는 만년화리의 내단을 세 개나 먹었음에도 반응이 없자 설마 나는 이게 끝이냐는 심정으로 고개를 숙여 하복부를 보았다.

"만년화리가 아니라 짭년화리였나? 설마 호수를 마신 게 그냥 헛고생이었습니다~ 라는 전개인 건 아니겠­?!"

마치 살수가 어둠 속에서 암습을 가했듯 갑작스레 밀려 올라오는 통증에 본능적으로 입을 다물었다. 극양지체인 나조차 기함할 정도로 막대한 기운이 안에서 날뛰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집중력이 풀리거나 입을 벌리는 실수를 한다면 진짜로 좆 되는 수가 있었다. 기운의 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양기는 내게 너무나 친숙했으니까. 다른 무인이었다면 뜨거운 열기가 내부를 휘집는 것에 맨살을 태우는 듯한 고통을 맛봤겠지만 나는 불에 대해서라면 거의 면역에 가깝다시피 하니까.

하지만 내게 일어난 문제는 내기가 너무나도 많았다는 거다. 보통 무인이 주제에 안 맞는 고급 영약을 먹어 넘처나는 기운을 다루지 못해 혈도가 손상을 입는 것처럼 말이다. 너무나도 많은 양의 기운이 혈도를 폭주기관차처럼 돌아다니는 데 그 무게감을 견디지 못하고 혈도가 비명을 지른다. 무림맹 지부의 옥에서 극양지체를 완전히 제어하도록 운기조식을 하지 않았다거나, 혹은 호수의 기운을 전부 정제하고 제련해서 정수로 만들어 흡수하지 않았다면 내상을 입었을 것이다.

지금도 방심했다간 순식간에 내상을 입고 혈도가 걸레짝마냥 너덜너덜해져서 초주검이 될 거다.

하나였다면 충분히 감당했고, 두 개였어도 부담이 올 뿐이지 원활하게 기운을 흡수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단은 세 개였다. 세 개가 맞물리듯이 서로를 격려하며 증폭하는 것인지 더욱 늘어나는 기운은 한 번 전신을 돌 때마다 구토감을 일으킬 정도로 속을 뒤집어 놓았다. 만약 지금 운용하는 절세의 신공이 아니었다면 최종적으로 내상을 입어 요양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손꼽힌다는 천마신공은 방대한 기운을 거칠고 사나운 기운으로 밀어붙이며 어찌 유도를 해 나간다.

인류가 멸망 직전이었던 미래는 너나 할 거 없이 살아남기 위해 무공을 공유했었으니까. 덕분에 동료들을 포함해 나 또한 천마신공을 배웠다. 아니, 오히려 우리들은 머리를 맞대고 각자의 무공을 보완하여 안정성을 높이거나 단점을 극소화, 장점을 극대화시키며 발전시켰다.

덕분에 내 천마신공은 현 시대의 천마가 사용하는 것의 개량형이라 볼 수 있었으며 효율이 더 높았다. 안정성에 대한 문제는 나 개인의 문제로 건들지 않았고 장점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덕분에 어찌 현재진행형으로 증폭하며 체내에서 날뛰는 기운을 이끌 수는 있었지만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감당 못할 정도로 기운이 더 커지기 전에 뭔가 수단을 취해야만 내가 살아남을 수 있었다.

천마신공을 운용하며 전신을 맴도는 기운을 달래듯 천천히 단전으로 유도한다. 모순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압박을 가하는 듯 하면서도 달래어 이끄는 것이다.

막 상경한 시골 여인에게는 도시의 나쁜 남자가 매력을 느끼는 법이라고 혈마 또한 그러지 않았던가. 그걸 마협??이라 하던가. 어쨌든, 단전으로 기운을 유도하자 녀석들이 조금씩 간을 보기에 밀당을 하며 끌어들였다. 방대한 양이라 혈도가 무리하는 것이지 녀석들의 본질은 양기. 양기로 시작을 일군 내 단전은 녀석들에게 있어 최고의 보금자리나 마찬가지일 터다. 내 예상대로 내단의 기운이 단전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조심히. 여인의 살결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유도를……. 아니, 내가 뭐라는 거야.'

이게 다 혈마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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