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후가제자를숨김-13화 (13/215)

〈 13화 〉 12. 마경주 사냥

* * *

화경의 경지란 과연 무엇을 뜻할까.

그것은 바로 완전한 검강이라고도 불리는 검기성강을 구현하는 경지를 뜻했다. 검기성강이 뭐냐 묻는다면 검강만을 따로 쏘아내 적을 죽일 수 있는 기술이다. 중단전을 개방하면 선천지기의 영향을 받아 좀 더 내공의 밀도가 올라가게 되는 데 그렇게 되면 검이라는 매개체에서 검강을 떼어내도 온전한 검강으로서 존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화경의 고수는 검기성강을 날리며 원거리 공격이 가능하다는 거였다. 굳이 그게 아니어도 초절정보다 밀도 높은 검강으로 강하기도 했고.

그리고 대부분의 마경주 공략전에서 시작은 원거리 공격이다. 왜냐하면 첫 공격을 맞는 조건으로 능력을 발휘하는 요괴도 간혹 있었기에 안전을 위해 거리를 벌리고서 첫타를 먹이는 거였다.

그렇기에 마경주 공략전은 생염단을 씹어 호신강기를 해제한 두 화경의 고수가 전력을 다한 검기성강을 날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아압!"

"하앗!"

두 고수가 날리는 검기성강이 늘씬한 초승달을 그리며 자고 있을 주작에게 날아갔다. 그리고 예상대로 회복기에 접어들어 있던 녀석은 무방비하게 두 고수의 일격을 얻어맞고는 새 주제에 돼지 멱 따는 괴성을 질렀다.

­끼요오오오오옷───────?!?!

잘 자다가 난데없는 구타에 화들짝 놀라며 기상하는 주작. 별다른 능력은 보이질 않았다. 녀석이 당황한 틈을 놓치지 않고 백도진인과 검후가 화살처럼 달려나간다. 쏜살같이 돌진한 둘이 합을 맞추듯 교차되지 않는 검선을 수없이 그리며 정신을 못 차린 주작을 두들겨 팼다.

촤아악.

깊게 베지는 못했으나 과연 검강은 검강인 것인지 주작의 몸 위로 붉은 선혈이 새겨지며 적은 출혈이 일어난다. 흘린 핏물이 얼굴에 튀긴 주작의 눈빛에 이성의 빛이 돌아온 게 보인다. 막 흘린 핏물의 뜨끈함이 이성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된 걸까.

녀석이 제정신을 완전히 되찾기 전에 조금의 시간이라도 벌어보고자 비수를 뽑아 눈을 노려 투척했다. 방금 날개를 피려고 하던 그 행동은 사방에 불꽃을 깃털 뿌리듯 날리려는 반격의 전조였기 때문이다. 워낙에 광범위인지라 피하는 건 불가능했다.

백도진인과 검후라면 충분히 막아내겠지만 그 사이에 주작이 육탄전으로 공격해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적을 잡아 토막 낸다는 사실을 아는 나는 서둘러 비수에 강기를 실어 안구를 향해 투척하며 외쳤다.

"스승님! 진인! 녀석이 뭔가를 하려는 것 같습니다! 잠깐 뒤로 물러나 주세요!"

다행이도 두 사람은 내 말에 의문을 품기 이전에 제대로 경청하고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내가 앞으로 나서 검을 빠르게 휘두른다. 휘두른 횟수는 훨씬 부족하지만 내기를 정밀하게 제어해 휘두를 때마다 강기를 넓게 퍼뜨리는 걸로 부족함을 채운다.

"검막?"

­끼아아아악!

백도진인의 혼잣말과 함께 주작이 포효를 터뜨리며 날개를 활짝 핀다. 날개를 피면서 사방으로 퍼지는 불씨. 말이 불씨지 주작의 크기가 크기답게 불씨 하나하나가 사람 머리통만 했다.

휘두른 횟수가 부족했기에 검막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얇았지만 지금은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 우연찮게도 불완전한 주작이 흩뿌리는 화 속성 공격은 내 불꽃의 강기보다도 질이 떨어졌으니까.

같은 속성이면 더 격이 높은 쪽이 유리한 법. 작은 불꽃은 더 큰 불꽃에게 먹혀 하나가 되는 것처럼 머리통만한 불씨들은 내 검막에 대부분의 기운을 흡수되다시피 하면서 소량의 충격만이 검막을 두들겼다. 내 검막에 안전이 확보된 둘은 뒤에서 준비를 하다가 불씨들이 모두 꺼지자마자 다시 검기성강을 날린다.

촤촤촷!

다만, 이번에는 한 번이 아니었다. 수십의 참격이 모두 검기성강이 되어 공격을 마친 주작을 두들긴다. 그러나 녀석도 이번에는 방심하지 않겠다는 듯 입에서 화염의 숨결을 방사해 검기성강 다발에 맞선다. 용종 계열의 요괴도 아니면서 숨결을 내뿜는 주작은 과연 사신수라는 이름에 걸맞았다.

그러고 보면 금 속성인 백호 빼고 전부 숨결을 토해내기는 한다. 현무는 한기가 가득한 숨을, 청룡은 뇌기로 이루어진 광선을 말이다.

그러니 화 속성 요괴인 주작은 화염의 숨결을 내뿜는 건 당연한 수순이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두 사람보다 내가 유효타를 먹이기에 더욱 유리할 것이다.

등에 매고 있던 하나뿐인 창을 역수로 쥔다. 왼발을 앞으로 내밀고 상체는 비스듬하게 돌려 투창의 자세를 취한다.

두 고수는 투창을 준비하는 내 모습을 보고 전음을 하는 듯한 음파를 일으킨다. 날 믿어줄지 말지에 대해서겠지만 결론은 나 있었다. 대요괴와 체내에 지닌 기운으로 소모전에 들어가봤자 당연히 패배할 테니까. 검기성강 다발을 계속해서 날리는 건 내공소모가 극심한 일이니 이 흐름을 끊어줄 필요가 있었다.

과연 고수답게 눈치가 좋은 둘은 참격의 중앙에 빈틈을 만들었다. 내가 투창할 창이 지나가도 아군의 참격에 휘말리지 않도록 말이다.

화르륵.

창 위로 불꽃이 일렁인다. 이번에 한 번 쓰고 잃을 창이니 일회용으로 쓴다는 생각에 단전에 있는 내공으로 강기를 씌우고 압축, 또 압축하여 위력을 중시한다. 일으키는 불꽃의 강기를 요괴의 시체로 만든 창이 견디지 못하고 조금씩 녹아내리기 시작했지만 한 방이면 족하니 상관없었다.

주작에게 들키지 않게 은밀하게 내기를 운용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덕분에 던지기도 전에 창으로서의 역할을 소실하나 싶었지만 다행이도 그 이전에 완성했다.

이제 할 일은 녀석에게 들키기 전에 이 진천뢰나 다름없는 창을 투창할 뿐.

"흐읍!"

입을 꾹 다물고 폐 속의 공기를 가둬 디딤 삼듯 어깨와 같은 높이에 있는 창을 전력으로 던졌다.

파앙!

허공을 가르는 투창이 파공음을 터뜨리며 벼락처럼 쏘아진다. 그에 주작이 숨결의 출력을 더 높힌 것인지 위력이 상승하는 게 보였지만 그게 패착이었다. 같은 속성에서 격상인 내 불꽃의 강기는 방금 전 기막이 불씨들을 효율적으로 막아 낸 것처럼 압축된 강기가 조금 벗겨졌을 뿐이지, 구할 이상 온전한 상태로 숨결을 뚫으며 그대로 주작의 입 속에 들어가­

퍼어어엉!!

­끼이이이이이이잇───────!!!

성대하게 폭발을 일으켰으니까. 아무리 녀석이 불꽃에 강하더라도 입 속에서 폭발을 일으킨 충격에 흔들리는 두개골은 어찌 할 수 없었는지 숨결이 끊어졌다.

"지금일세, 검후!"

"알고 있네!"

백도진인이 궁신탄영의 경신법으로 쏘아지고 검후가 바닥을 쪼갤 기세로 도약한다.

다양한 성질의 무인들이 모인 청성파는 사파적인 기질이 강하다. 하지만 그렇기에 다식??을 기반으로 완성된 청운적하검은 강력했다.

공방일체를 목표로 했으나 거기까지는 도달하지 못했어도 상황에 따라 일방적인 공격, 혹은 일방적인 방어를 취하기 용이한 검법이 청운적하검이다. 지금은 방심하고 있는 주작의 급소를 노리기 위해 공격일변도의 날카로운 살초가 펼쳐진다.

그에 반해 검후는 마치 살랑이는 매화잎처럼 보이는 검술을 펼친다. 검극에서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나며 낙하하는 검후가 주작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다양한 환검을 펼치며 그 속에 진짜를 숨긴 채 공격한다.

청운적하검

­여명적하?赤?

매화검법

­매화천추?花??

노을빛이지만 아침에 비춰오는 여명처럼 상승곡선을 그리는 백도진인의 검과 하늘에서 내려꽂히는 검후의 매화꽃. 두 고수의 절기가 그대로 주작의 심장과 머리를 노린다.

'이제 끝이다.'

나조차도 그런 확신이 드는 필살의 일격이었다. 주작이 성장을 마치고 전생의 힘을 완전히 되찾은 이후였다면 부족한 일격이었을 테지만 지금은 불완전한 상태. 그렇기에 나는,

이번 공격이 먹히리라 확신한다는 방심을 하고 말았다.

­빌어먹을 인간드으으으으을──────────────!!!

쿠과과과과과!

"읏?!"

"요괴가, 말을…?!"

여태까지 사고력이 낮은 짐승 같은 면모를 보였다고는 믿기 힘든 노성을 터뜨리며 자신을 중심으로 불기둥을 일으켰다. 어떠한 전조도 없이 불기둥이 솟구치자 백도진인의 검이 녹아내리고 검후의 매화가 불살라지며 튕겨졌다.

'빌어먹을?! 주작 녀석, 현계로 가는 걸 포기했어?'

현대의 무인들은 모르지만 마경이란 본디 요계의 파편 같은 것으로 요괴들이 선계로 가기 전에 중간에 있는 현계에 침략하기 위한 방편이다. 그렇지만 부작용도 있었다. 인과율이랄까, 세상은 그리 쉽게 요괴들에게 길을 내어주기 싫은 것인지 마경에 충분한 요기가 모여 자연스럽게 터져 마경붕괴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자아를 봉인하고 수준 이하의 짐승성을 보여야만 한다는 것이다.

만약 자아의 봉인을 깨고 나온 요괴가 있다면 녀석은 대요괴 수준을 뜻하며, 동시에 마경붕괴가 일어나도 현계로 가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지는 마경(=요계 파편)과 함께 소멸이란 운명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니 목숨이 아까워서라도 대요괴들은 자아의 봉인을 해제하지 않는다. 오래 산 녀석일 수록 제 목숨이 더 아까운 법이니까. 그런 예상을 깨고 주작은 자아의 봉인을 풀고 전력을 드러냈다. 정해진 운명이라도 조금이나마 더 사는 쪽을 택한 걸까.

이제 정해진 양식에 따른 전투가 아니라 자율적인 전투를 취하며 훨씬 더 까다로운 상대가 됐을 것이다. 아니, 대요괴 중에서도 상위급인 주작이라면 화경의 힘으로도 현경의 고수와 맞먹는, 정면대결을 펼쳐도 오할 이상 승리를 점칠 저력이 될 터.

­내 숙원을 엉망으로 망가뜨리다니. 내, 남방의 대요괴로서 네놈들을 절대 가만두지 않겠다!

녀석의 선천지기가 빠르게 불타는 게 느껴진다. 이 녀석, 진짜로 전생에서 비축했던 자기 힘까지 연소시켜서 연료 삼아 힘을 강화하고 있었다. 쉽게 말하자면 앞으로 얻을 힘을 천천히 흡수하는 게 아니라 연소시킴으로서 일시적으로 폭발적인 힘을 낸다는 것인데 보통은 하지 않을 짓이다.

문제는 지금 상황이 녀석에게 있어 보통이 아니란 거고. 주작은 정말로 모든 걸 받쳐서라도 우리들을 태워 죽일 심산이었다.

"지금부터는 저도 전력으로 가세해서 돕겠습니다."

"고마운 말이네만, 자네… 방금 전의 투창에 내공을 꽤나 쓰지 않았나?"

초절정이 감당하기 힘든 기량을 펼친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긴 하지만 내공의 소모를 걱정하는 백도진인의 질문을 받은 나는 그에게 보급용 검을 넘기면서 대답했다.

"사실 이 마경에 처음 휘말렸을 때 운 좋게 호수에서 만년화리를 찾았거든요. 녀석을 먹은 덕분에 내공이 넉넉하지는 않아도 싸울 수는 있습니다."

"……아니, 밥 대신 기연을 처먹었나."

검후가 내 말에 황당하다는 듯 혼잣말로 작게 중얼거리지만 다 들린다. 하기사, 검후의 입장에서는 천둔검법에 화산파 무인과의 만남으로 육합검법, 그리고 만년화리의 내단까지 먹었다고 하니 기연을 밥 먹듯이 먹는 녀석으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질투가 나도 그렇지 제자에게 저런 말은 스승으로서 좀 어떨까 싶었다.

스승으로서의 위엄을 지켜주고자 못 들은 척을 한 나는 두 사람과 나란히 서 주작의 다음 행동에 대비했다. 절대 스승의 옷이 헤지면서 살결이 노출되고 있기에 시선을 돌리는 게 아니었다.

* *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