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6화 〉 115. 전력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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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거미가 내려앉은지 한참이 지난 야심한 시각.달은 통통한 보름달이 된 모습을 내보이기 수줍은 것인지 구름 뒤로 모습을 감춰 달빛마저 옅은 어두운 밤이었다.
그런 시간대임에도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한 곳에서 밀회가 벌어지고 있었다. 교주의 둘째 자식이자 소교주 후보 2위인 사마군은 비밀리에 진법까지 친 곳에서 의자에 앉아 맞은편에 여유로워 보이는 자신의 협력자를 응시했다.
커다란 외투를 뒤집어 써서 전신을 가린 불명의 인물.
그가 바로 사마군의 지지세력과 협력하는 이들의 대표였다. 정확히는 간부급이지만 이번 일을 담당하는 이 중에서는 가장 직위가 높았다.
사마군은 그가 넘겨준 약병을 살살 돌리며 그 내용물을 빤히 보다가 다시 협력자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봐. 정말로 이 독이 교주님에게 통하는 게 맞겠지? 안 통해서 일이 수틀리면 우리 쪽도 네놈들과 진심으로 싸워서 무관계를 증명할 수밖에 없다."
"괜찮아.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수틀리면 대놓고 배신하겠다고 했으나 자기들 또한 마찬가지라고 맞받아치는 불명의 인물. 서로에게 향하는 살기가 둘 다 진심이라는 걸 알려주고 있었으나 손이 출수하는 일은 없었다.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였으나 둘은 그 이상으로 머리가 차가운 이들이었다.
그 상황 속에서 돌연 협력자가 키득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킥킥킥. 역시 네놈을 우리들과 함께 할 이들로 고르길 잘 했네."
"그게 무슨 의미지? 만약 내게 장난을 치는 거라면 쉽게 넘어가지 않겠다."
뭔가 수상한 짓거리를 하는 거라면 당장 검을 출수하며 단번에 목을 베겠다고 마음 먹은 사마군이었다. 교주위를 차지하기 위해 협력하는 중이라곤 하나 천마신교의 미래를 위해서는 언젠가 쳐내야 할 이들이긴 했으니까.
그런 사마군의 속내를 간파한 불명의 인물이 조소에 가깝게 실소하면서도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무얼. 네놈들과 협력한 게 우리들에게 가장 잘 맞는다는 거다. 첫째 놈은 너무 근육뇌라 뒷처리가 힘들었을 테고, 막내 놈은 지지세력이 검마단 하나뿐인 약소세력이라 계획을 도모하는 데 자원이 많이 들어갔을 테니까. 그런 의미에서 절제심이 강하고 힘도 적당히 강한 네놈의 세력이 저희에게 최선이다, 라는 걸 새삼 자각했을 뿐이야."
"흥. 말은 번드르르하게 잘 하는군."
사마군이 검파에서 손을 놓는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제 와서 저들이 자기들을 배신하고 형제들 쪽으로 노선을 갈아타면 상당히 귀찮아질 것을 알기에 더 건드리지 않는다.
"그야 현경의 극의라 할지라도 그 독을 직접 먹는다면 통할 수밖에 없겠지."
"이게 대체 무슨 독이기에?"
"주술이라면 몰라도 독에 대해서는 나도 잘 몰라서 할 수 있는 말은 적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이라면…그건 수줍은 척을 하며 구름 뒤에 숨은 달에 사는 달두꺼비,그중에서도 그 떡대들의 여왕이 직접 고름을 짜 가며 만든 원념이 담긴 독이라던가."
"독두꺼비 여왕의 원념?"
"그래. 듣기로는"
협력자는 동물의 꼬리로 균형을 잡는 특유의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
"태양마저 떨어뜨릴 독이라던가."
***
"이런 미친. 진짜 하루만에 공략해버렸네."
마경을 공략하고 나오자마자 언서진이 우리를 마중하며 그리 말하지만 입가에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시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반면에 같이 대기를 수행하고 있던 검마단원이 입을 쩍 벌리고서 믿을 수 없다는 눈을 했다.
저들이 보기에 나와 여령이, 그리고 수아 누나까지 화경의 고수가 셋이나 되지만 소수정예로 마경을 공략하는 건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줄 알았을 테니까.
그렇기에 들어갈 때도 검마단이 예상 시간을 일주일 정도로 잡았었던가.
단순히 마경주를 사냥해서 공략하는 마경은 그만큼 넓었기에 보통 그 정도 걸리는 편이다. 화경 셋이 보조도 없이 들어갔으니 무리해서 줄인다 하더라도 사흘 이상이라고 예상했겠지.
"그래도 힘들긴 했지. 설마 아룡??이 나오는 마경이 신강에 있을 줄은 몰랐다니까."
"그렇게 힘들었어?"
"신강은 전혀 모르는 곳이니까."
회귀 전 마교는 둘째 패륜아 때문에 망조가 빠르게 들어서 요괴들에게 빠르게 탈취당하는 몇 안 되는 지역이었기에 정보가 적었다. 덕분에 이번 기회에 아룡을 사냥하며 많은 소재를 얻을 수 있었다.
나중에 운이 좋다면 뛰어난 대장장이에게 맡겨볼까 싶었다.
나도 만들고자 한다면 할 수야 있지만 시간이 아까웠으니 말이다.
검마단원에게 수고했다는 의미로 여령이가 어깨를 두드리며 가라고 말하고 다시금 우리끼리 뭉쳤다. 신교 내부여서 그런지 감시하는 시선이 느껴지긴 했지만 작게 말하는 것까지 엿들을 수준은 아닌 듯했기에 작게 대화를 나누었다.
"교주님과는 접선했어?"
"바로 했지. 네가 말해준 덕분에 크게 의심은 안 해서 편하게 정보를 전할 수 있었어."
"그래서 대비는 어떻게 하기로 했어? 교주님이 설마 거절하신 건 아니지?"
계획대로 장인어른이 받아들였을까. 아니면 따로 행동하시려는 걸까.
부친을 걱정하는 여식답게 여령이가 초조한 감정을 담아 그녀에게 물었다. 마경을 나오면서 신교로 돌아오기 직전에 주물을 착용하고 남장을 한 상태라 내 옆이 아닌 언서진 옆에 있는 여령.
잠깐 주변을 경계한 뒤에 문제가 없다 판단한 언서진이 얘기했다.
"천마는 받아들였어."
"교.주.님."
"…교주님은 받아들였어."
여령이가 노려보자 언서진이 옅은 홍조와 함께 고개를 돌리며 말을 수정했다.
언서진… 큰 가슴만 보면 그냥 붉히는 거구나. 그렇게 가슴이 좋으면 본인 걸 만지지 왜 임자 있는 여자 가슴을 보고 얼굴을 붉히니.
나중에 좆으로 혼내주자고 결심하며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둘째놈이 교주님한테 배알하고 싶다고 요청했데. 교주님은 허락하셨고, 비밀리에 교의 방비를 더 철저하게 짜고 있어."
"암마단과 음마단 말하는 거야?"
암마단???과 음마단音??. 교주 직속 세력으로 중립을 유지하고 있으며 암살 및 정보수집, 그리고 대량학살에 특화된 이들이다. 무력은 장인어른 혼자서 충분히 감당하고 있으니 이런 뒷작업을 잘하는 이들을 직속이자 중립으로 두고 나머지를 소교주 지지를 마음껏 하라고 풀어준 거였다.
"맞아. 하지만 둘째놈을 따르는 지지 세력이 더 많아서 대공자도 은밀하게 끌여들였어."
"첫째 형님, 아니… 첫째 오라버니를?"
이건 나도 의외였다.
암마단과 음마단이 무력이 부족한 편이라지만 그만큼 비밀리에 대응할 준비를 완벽하게 마칠 테니 장인어른께서 나머지 녀석들을 처리하겠다고 직접 나서실 줄 알았으니까. 내가 들었던 장인어른의 행보는 대체로 그러했다.
그리고 그런 장인어른께서 방식을 바꾼 이유가 언서진의 입에서 나왔다.
그녀가 능글맞게 날 응시하며 말했다.
"백운이 경계할 적이라면 천외천에 가까운 존재들일 테니 혼자서 무식하게 감당할 마음이 없다던데?"
"운랑. 도대체 얼마나 교주님을 몰아붙인 거야?"
"……."
차마 여령이 앞에서 장인어른을 죽일 기세로 검을 휘둘렀다고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다 미움 받으면 어떡하라고.
물끄러미 묵비권을 행사하는 날 쳐다보던 여령이가 이내 시선을 거두고서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킥. 뭐, 운랑이 알아서 적당히 했겠지. 나는 우리 운랑 믿어."
"믿어줘서 고마워, 여령아."
"나도…… 동생, 믿어."
"…누나도 믿어줘서 고마워."
깨알같이 끼어들어서 자기에게도 관심을 좀 가지라고 호소하는 수아 누나에게는 미안한 마음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스승님이 해줄 수 없는 도움을 받으며 편의성을 많이 봐줬는데 그게 오롯이 나의 호감을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아무리 나라도 완전 외인도 아니고 절친하던 동료였던 수아 누나가 좋아한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성의를 들이미는 데 마냥 마음이 안 끌릴 수가 없었다.
'절대 스승님 다음으로 큰 가슴에 마음이 흔들리는 게 아니지. 암.'
그렇게 자기암시를 걸고 있는데 옆에서 눈꼴 시렵다는 듯 헛구역질을 하던 언서진이 대뜸 말했다.
"우웩. 나 참. 천마신교의 신검을 부러뜨려놓고 잘도 그렇게 말하는 구만."
"……."
"……."
여령이와 수아 누나의 말 없는 시선이 따가웠다. 조직에서 대대로 내려오는 가보와도 같은 천마신검을 부러뜨렸다는 건 전쟁을 벌여도 무방할 정도로 큰 사고를 쳤다는 뜻이나 진배없다.
여차하면 최악의 경우에는 나 때문에 난데없이 정마대전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걱정 마. 내 불로 절단면을 녹여서 티 안 나게 다시 붙여줬으니까."
"미친놈. 그걸 말이라고 하냐?"
씨알도 안 먹혔다. 오히려 언서진의 걸걸한 욕설에 말문이 막힌 내가 시선을 피하며 궁색맞게 변명해 보았다.
"…장인어른이 괜찮다고 했으니까 믿자고."
그 변명에 반응한 건 여령이었다.
"장인어른?"
"너랑 사귀고 있으니까 당연히 호칭이 장인어른이 되는 거지. 공석에서는 교주님이라 부르겠지만 사석에서는 편하게 부르려고. 혹시 싫었어?"
"……."
잠시 침묵하던 여령이가 이내 상큼하게 미소를 짓더니 전음을 보냈다.
운랑. 나… 아래가 살짝 젖은 거 같아.
"……."
그러고 보면 묘하게 달콤한 향이 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천마신검을 부러뜨린 값하고 날 이렇게 만든 값, 오늘 밤에 받으러 갈게♡
저 교태가 가득한 전음에 나도 아랫도리가 설 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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