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3화 〉 122. 전력상승
* * *
천마용린무
태극일점화
+
점전척석
시작부터 강력하게 정권을 내지른다. 그 저돌적인 공격에 심드렁한 얼굴로 주먹에 맞춰 검을 내지르는 여동빈.
회귀 전이라면 어떻게든 검로에서 벗어나면서 빈틈을 파고들어 반격을 날릴 기회를 엿보았겠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 거라는 고수의 직감이 들었다.
캉!
"흠? 단단하군."
주먹과 검이 충돌하자 그 충격에 서로 튕겨 밀려났다.
생각보다 좀 친다는 식으로 감상을 늘여뜨리는 '녀석', 여동빈을 보며 나는 확신했다.
녀석은 지금 정상이 아니다.
생사경 중에서도 극의에 도달해 한 발짝만 더 나아가면 신선경???, 혹은 신선지경??之?이라는 신선의 영역에 도달할 괴물이 여동빈이다. 괜히 생사경인 혈마가 있었음에도 우리가 그토록 압도적으로 패배한 게 아니다.
그런데 지금 직감이 시키는 대로 주먹을 내질러 한 번 충돌을 해보니 판단이 섰다.
'해볼 만해.'
회귀 전이라면 진작에 주먹이 주/먹이 되었을 터.
부딪혀 본 결과, 지금 녀석은 생사경 초입에 불과한 상태였다. 역시 요계를 조각낸 인과율로 무아에 갇혀 시간이 될 때까지 나오지도 못하는 놈이 벌써부터 나온 건 다 대가가 있었던 것이다.
오히려 경지가 높은 만큼 인과율이 주는 부하가 심각할 테니 지금 여동빈의 전력은 생사경 초입이 한계라는 거다.
겁화를 추진용으로 사용한다.
반동으로 몸에 가해지는 부하가 막심하지만 탈골된 어깨에 벌써 완치됐을 정도로 회복력이 좋았기에 충분히 실전에서 쓸 수 있었다.
가속을 붙인 돌려차기 그대로 맞아주는 여동빈.
하지만 타격감이 없는 건 실체가 아니라는 증거였기에 뒤돌면서 곧장 손날로 검법을 자아내 한 송이의 매화를 피워낸다. 꽃잎 하나하나가 밀집된 강기의 덩어리인 만큼 아름다운 외형과 달리 흉악하기 짝이 없었다.
카카캉!
매화를 완성하자 이형환위로 뒤를 점거했던 여동빈이 즉각 검을 놀린다.
일어나는 강기의 충돌.
"오랜만에 보는 검법이로다."
""…….""
"이번 시대의 천살성은 심심한 자로군."
척 보기에도 고명한 검선을 그리며 꽃잎들을 전부 뜯어낸다. 해제되다시피 분해된 꽃잎들 사이로 다시 매화를 그리자 여동빈도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과연 검선??이라는 걸까.
매화검법으로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매화가 세상을 메우는 듯 했으나 일장춘몽이었다는 듯이 자하??를 그리는 검로에 짓눌리며 꽃이 저물고 떨어진다.
나보다 더한 유능제강으로 전부 흘려내고 내 몸에 간간히 상처를 입힌다.
검법으로는 녀석보다 못하다는 결론이 서자마자 곧장 다른 수를 꺼냈다.
겁화를 기공처럼 제어해 근거리에서 쏜다. 팔괘로에서 얻은 불꽃에 대한 이해가 난폭하기 짝이 없는 겁화를 한층 더 매끄럽게 다루는 걸 돕는다.
천마용린무
흑염룡(小)
덕분에 좀 더 세밀하게 개선시킨 작은 흑염룡(小)을 매화 사이사이로 집어 넣는다.
매화를 품은 용들이 날아들자 여동빈은 망설이지 않고 자주빛 벼락을 떨구며 용들을 사냥했다. 그 모습에 철벽 같은 그의 정신에 조금이라도 파고들 틈새를 만들고자 비꼬고, 조롱한다.
""느그 스승을 배신한 놈답게 용도 쑹덩쑹덩 잘 자르네.""
"……불쾌하군."
""그러냐? 그럼 다행이네.""
공수를 나누는 와중임에도 녀석의 미간이 좁혀지는 걸 보니 속이 다 시원했다.
"그나저나 자네는 나에 대해 생각보다 잘 아는 모양이군. 내 이름이나 스승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아는 걸 보면 말이야. 아무리 천살성이 자미성에 대해 잘 알고 있다지만 그런 것까지 알려줄 수 있을 리가 없지. 도대체 어디서 나에 대한 걸 알게 된 거지?"
"……."
역시 녀석은 위험했다. 동격의 고수와 치열하게 생사를 가를 전투를 펼치고 있음에도 냉정하게 상황을 분석하고 있었다.
회귀라는 전대미문의 이적을 추측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고려한 나는 피워내던 매화를 하늘로부터 숨겼다.
사라락.
정원을 가꾸듯 사방에 매화가 가득해지며 꽃향기가 만연하게 차오른다.
분명 아름다운 풍경이었으나 꽃 한 송이, 한 송이가 살의로 가득한 게 장미를 보는 것 같기도 한 기분이 들었다.
매화검법 + 천둔검법
매화만리향
살의의 정수??나 다름없는 꽃들의 향연을 만끽한 여동빈의 얼굴이 굳었다.
화룡의 제자인 녀석이라면 이 매화 속에 깃든 천둔검법을 못 알아보지 않을 터.
"이건…… 그렇군. 모든 건 인과응보인 것인가."
똑같이 천둔검법으로 주변에 자하를 뿌리며 이 일대를 노을빛으로 만든다.
매화들이 자하와 어우러지는 듯 싶더니 때가 되었다는 듯이 꽃이 지기 시작했다.
'역시 매화검법으로는 녀석을 못 이겨.'
천마신공이 마공의 시초로 모든 마?의 위에 군림한다면 여동빈이 사용하는 '자하신공'은 어떤 뜻으로 피어났든지 매화를 지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저 상성 때문에 구파 중에서도 가장 빠르게 멸문지화를 당한 게 화산파이지 않던가.
덕분에 동료들에게 사문의 절학을 공유받아 중원의 수많은 무공을 알고 있는 나조차 자하신공을 몰랐다. 검법서가 있는 매화검법이라면 모를까, 자하신공은 문주에게서 소문주에게 전해지는 일인전승이기에 뒤지면 끝이니까.
"화산의 후인이여."
여동빈의 자하를, 노을빛을 의념을 담은 태산압정으로 베어버렸다.
"사제??이자 동문?門인 그대에게 한 번의 기회를 주고자 하네."
역시 녀석은 날 화룡의 새로운 제자로 오해했다.
하기사, 화룡이 여동빈을 제자 삼은 것도 천살성의 혈겁을 막고자 함이었다. 이제는 재앙이 된 여동빈을 막기 위해 새로운 제자를 받아들였다 해도 이상할 건 없는 상황에서 천둔검법을 쓰는 내가 등장했으니 저리 착각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오히려 좋아.'
이로서 녀석은 착각을 굳히고 진실로 받아들여 만에 하나라도 내가 회귀했다는 가능성으로 사고를 돌릴 일은 없어진 셈이니까.
"도망치게."
""……뭐라고?""
다시 공격을 이어가려던 순간, 여동빈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나왔다.
"먼 후인이자 파릇한 사제에게 최초이자 최후의 아량을 베푸는 것이네. 솔직히 화산 출신인 유능한 젊은 사제가 마도의 종주인 천마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짓은 좋지 않네."
""…….""
"사제 같은 신성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화산파에 충?을 다하는 것이며, 동문의 사람들에게 효?를 다하는 법이지. 그러니 사제는 이대로 돌아"
""닥쳐.""
저게 말이냐. 방구냐.
아니, 방구겠지. 사람 새끼라면 자기 입으로 저런 말을 내뱉을 수가 없을 테니까.
극양지체를 넘어 불에 관해서는 거의 면역이라고 봐도 좋을 내 정수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육체가 열을 받는다고 머리가 뜨거워지는 기분을 맛보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냥 죽어버려!""
슈욱!
내 의지에 반응해 날아 돌아온 홍련봉황검을 낚아채듯이 쥐고서 겁화를 증폭시킨 건곤일척을 내지른다.
단순한 건곤일척도 아니고 태극일점화, 점전척석 등등 다양한 묘리를 담아 펼치는 검극의 출수.
더 크게, 더 짙게 타오르는 겁화의 열선은 제아무리 동격인 생사경 초입이라 해도 막기 힘들 터!
"아쉽군."
서걱!
그리 생각했었다.
"사제의 재능은 참으로 놀랍군. 역대 천살성 중에서도 아주 최고라 해도 무방하네. 그런 사제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손에 꼽히겠지. 상대가 나만 아니었다면 말일세."
그 말을 들으며 무심코 내질렀던 홍련봉황검을 회수해 세우고,
시야가 격변했다.
건물의 벽에 처박히고 나서야 간신히 인지할 수 있었다.
'아. 저놈 갑자기 존나 세졌네.'
이유는 모른다. 그저 천살??과 화룡점정???의 이중의념을 단숨에 부수고 날 제압할 정도로 강해졌다는 것만을 혼란 속에서 간신히 인지했다.
나는 두 눈을 부릅 뜬 채로 검을 횡자로 휘두른 자세를 한 여동빈을 응시하고, 경악했다.
'경지가, 보이질 않아?'
설마 그 짧은 새에 생사경 완숙으로 제한이 풀리기라도 했다는 걸까.
아니면 새롭게 깨달음을 얻고 성장한 걸까.
그것도 아니면 자미성이 천살성을 이기기 위해 힘을 내어준 걸까.
의문에 의문이 꼬리를 물며 이어진다. 답이 없는 혼란 속에서 간신히 몸을 일으킨 날 응시하며 여동빈이 담담히 진실을 말해 주었다.
"무얼 그리 놀라는가? 그저 사제처럼 나도 여동빈으로서의 의념기와 자미성으로서의 의념기를 합쳐 이중의념을 다뤘을 뿐이거늘."
""그렇다 해도 방금 그 움직임은……!""
"불합리하겠지. 하지만 잊지 말게나, 사제. 우리들은 그런 불합리의 화신인 자미성과 천살성이네."
여동빈은 처음으로 쓴웃음을 내보였다.
"하늘이 점지해 준 운명의 별을 타고난 화신化?. 인간의 이해를 넘어선 우리들은 합리적으로 따지면 안 돼. 지금 사제는 이것만 이해하면 되네. 그저 내 의념기인 '역천??'과 '여명?'이 사제의 이중의념보다 강했다고."
저 두 의념이 무슨 이적을 일으키는 건지는 모른다. 하지만 역천신공을 만들어낸 대종사답게 의념기가 역천이라는 점에서 간약한 추측은 가능했다.
""역천??은, 경지를 강제로 상승시키는 의념기인 거냐?""
"오. 한 합의 격돌로 거기까지 읽은 건가? 내 생각보다 사제의 오성이 대단할지도 모르겠군."
""……미친.""
혈마도 활강시답게 역천신공을 배우고 그를 기반으로 완성한 의념기가 역천이었으며, 그 과정이 결코 눅룩치 않았다는 걸 곁에서 지켜본 나는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세상의 섭리를 거스르고 경지를 강제로 끌어올리는 것인데 반동이 여간 작을까.
그 역천을 운명에 강하게 순응하는 자미성을 타고난 여동빈이 자력으로 익혔다? 그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런데 그게 눈앞에서 벌어졌다.
미래에서는 상시 압도적인 강함을 보유한 괴물이라 의념기도 쓰지 않고 상시 우리를 몰아붙이느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여동빈의 의념기.
그런데 생사경 극의인 녀석이 의념기를 썼다는 건 그 다음 경지를
오싹!
거기끼지 생각이 미치자 이제야 이해가 갔다.
녀석은 진정 인계에 강림한 괴물이다.
신선의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그게 편법이기에 우화등선을 하지 않고 하계, 우리가 사는 인계에서 아무런 인과율의 제재없이 활동이 가능한 신선이나 다름없다는 소리다. 저러니 요계를 박살내고 인계가 요괴들로 개판이 나도 미래에서 신선들이 간섭하지 못했던 걸까.
미래에서 알 수 없었던 의문의 실타래가 풀린 순간이었다.
"뭐, 사제에게 저승길 선물로 한 가지 알려주자면"
여동빈이 화안금정으로도 겨우 인지할 수 있는 속도로 다가와 검을 내리친다.
"내 여명? 또한 경지의 상승일세."
……이런 시발.
'존나 사기잖아.'
그런 감상과 함께 검광이 번뜩인다. 이렇게 죽는 걸까.
아니, 죽어서는 안 된다. 반응해라. 천살성이라면 자미성에게 어떻게든 저항하라고.
팔다리가 움직이지만 저 검로를 그리는 검극이 더 빨랐다.
그러나 내게 주마등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다.
카가각!
의도한 것인지 아닌지.
평소와는 조금 달라진 모습으로 돌연 나타난 수아 누나랑 그와 마찬가지로 끼어들은 손오공이 내 양옆에서 각자의 병장기를 교차시켜 여동빈의 참격을 막아냈다.
여의금고봉과 화룡신검이 교차되어 내려오려는 여동빈의 검을 막고 있었다.
"이 시벌 놈이. 누구 싸움에 끼어들어서 훼방질이냐……!"
"백운 동생, 괜찮아?"
여동빈에게 화를 내는 손오공과 날 걱정스레 돌아봐 안부를 묻는 수아 누나.
……수아 눈나. 멋져부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