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후가제자를숨김-141화 (141/215)

〈 141화 〉 140. 무화제

* * *

무화제?化?.

마경학관에서 한 학기에 한 번 씩 여는 최대의 행사로 용과 봉?을 결전하는 용봉전도 이때 개최된다.

용봉지회는 학년 무관하게 성적이 상위권이면 참여가 가능하며 여기서 한 번이라도 용이나 봉이 되는 영광을 누리는 것이 대부분 학생들의 목표였다.

구룡오봉, 즉 중복을 제외한다면 일 년에 스물여덟 명의 후기지수를 뽑는다는 걸 의미하며 학관을 졸업하기 전까지 3년이니 그를 고려하면 재학 중 84명을 뽑는 것이다.

그중에 '나도 어쩌면 한 번 쯤은……'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 운이 좋아 말석이라도 차지하게 된다면 앞으로 탄탄대로의 포장길이 미래에 펼쳐지니 말이다.

한 번이라도 용봉이 된다면 졸업 후에 자신이 속한 문파를 이끌 중책을 맡게 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저도 참가하고 싶었는데 말이죠."

"포기하거라."

투정을 부리듯 넋두리를 흘리자 스승님 어림도 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화경이 어디 개집 이름도 아니고 용봉지회에 참가를 시켰다간 초식동물 사이에서 육식동물이 나타난 꼴 아니겠느냐. 학관의 의미를 퇴색시키니 예선전부터 걸러야지."

"그렇긴 하죠."

무화제는 학생들끼리 즐기도록 가게를 차리거나 연극, 혹은 연회를 벌여 인맥쌓기를 하는 일주일이 전반제다.

동시에 후반제인 용봉지회를 하기 전에 예선전을 치뤄 걸러내기를 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하지만 말그대로 '걸러내기'이기에 무위가 보증된 나는 예선전에서 빠지고 말았다.

학생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보여주는 게 관건인데 압도적인 경지 차이로 찍어누르는 건 분위기만 망치게 되니까. 차라리 내게 용의 자리를 하나 넘기고 시작하는 게 학생들 입장에서도 좋은 거였다.

납득할 수는 있으나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지만.

"너만 빠진 게 아니니 그리 아쉬워 하지 말거라. 다른 아이들도 빠졌잖으냐."

나 말고도 화경의 고수가 된 여령이나 원래 화경인 언서진, 그리고 지아도 빠지게 되어 빠졌다고 한다.

때문에 시작부터 봉?의 자리가 두 개만 남은 여류 무인 예선전은 더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째 미래의 고수 남녀비율이 깨져오는 소리가 들려오는 기분이다.

화경 이상의 학생은 용봉이 들어가는 별호가 확정이며 예선전을 빠지고 본선전에서도 후반부에서 용봉이 된 이들과 비무하기 위해 참여하게 되니.

우리들, 정확히 곧 화경으로 올라갈 보아를 제외한 우리들의 시간은 널널했다.

"어쨌든 꼭 1등을 하거라."

"1등이요?"

"용봉지회에서 우승을 한 용과 봉은 원하는 상대와 비무를 치를 수 있도록 되어 있더구나."

"……제 경지를 일부 알리실 생각이시네요."

"그래."

시원하게 인정하신 스승님께서 진중한 표정을 지었다.

얼핏 보면 엄해 보이기도 했다. 제자에게 조언을 주는 스승으로서 위엄을 잡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간 네 경지를 숨기려던 건 시기심이 강한 중원인끼리 내분이 일어나서는 안 되는 것도 있엏지만 여동빈에게 천살성인 네 존재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가 주된 이유가 아니더냐. 그건 신강에 나타난 놈의 돌발상황으로 인해 접촉하여 무의미해지고 말았다. 이 스승의 말이 틀렀더냐?"

"아뇨. 정곡이세요."

무의식으로 하는 건지 교육을 할 때처럼 팔짱을 끼시는 스승님.

덕분에 부각되는 국부에 눈 둘 곳을 모르겠다.

몰라서 그냥 빤히 응시했다.

그런 제자의 시선을 부담스러워하긴 커녕, 더 보라는 듯 허리를 살짝 휘어 흉부를 내밀고서 여덟 개의 꼬리를 내게 살랑였다.

"그러니 생사경이란 걸 사실대로 밝힐 필요는 없어도 현경 초입은 보여도 괜찮지 않겠더냐? 네 재능을 질시하는 이들 때문에 내분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걱정은 알겠으나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곪게 해서 빨리 짜내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단다."

"확실히……."

현 무림에 현경의 수는 극단적으로 적었다.

새외를 포함해도 두 자리 수가 못 되는 게 작금의 현실.

구 무림일 때는 어느 전성기에는 두 자리 수를 넘겼는데 신 무림이 되고서는 그 반토막이 되었다. 내단의 보급으로 인해 화경급의 무인은 많아졌으나, 그만큼 질이 떨어져서인지 현경급의 무인은 되려 줄어들게 된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후기지수가 현경이 됐다?

세간의 이목이란 이목은 다 끌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분간 은밀이 요구되는 일이 발생할 때마다 불편하게 역용술을 쓰는 등등 불편한 점이 많겠지.

"걱정 말거라."

그런 내 근심을 드러나는 것만으로 간파한 스승님께서 날려버리신다.

"이 스승이 우리 제자의 방패가 되어줄 테니 너는 할 일이 있으면 마음껏 하거라."

"……네."

저 작은 체구가 듬직하게만 느껴지는 상황 속 내 입가에는 터럭 한 점 없는 맑은 미소가 지어졌다.

"이 제자, 스승님을 믿고­"

입가에 짙은 투지가 서린다.

"마음껏 날뛰겠습니다."

이 기회에 용의 별호를 얻게 될 놈들 중 싹수가 보이는 놈들은 내 연인들처럼 손 좀 봐줘야겠다.

***

용봉지회의 예선전이 포함된 무화제의 전반제.

학생들끼리 끼리끼리 모여 무슨 활동을 할 것인지 신청을 하며 즐기는 축제. 이 시기가 되면 같은 문파나 세가의 사람들끼리 뭉쳐 다니는 게 보통이다.

그건 같은 동아리일 경우에도 해당하는 이야기였기에 [신비육체 안마회]의 인원들은 함께 모여서 뭘 할까 토론을 하고자 했다.

은설보는 아직 초절정 극의이기에 예선전에 참가해야 해서 시간 상 어쩔 수 없이 빠졌다.

그렇게 언서진, 사마여령, 은설지, 그리고 백운까지 이렇게 넷이 모이자 언서진 쪽에서 곧장 의견을 꺼내었다.

"우리도 돈을 벌자! 명색이 뭔가를 하는 동아리인데 파티­! 아니, 축제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건 그렇잖아."

"그건 맞는데…… 꼭 금전을 목표로 해야 하는 거야?"

그냥 즐길 생각으로 뭐 해보자는 생각에 모이자고 한 건데 생각보다 언서진이 적극적이었기에 백운이 떨떠름한 기분으로 물었다.

그녀는 두 눈에 열정이란 이름의 장작을 불태우며 극성으로 외쳤다.

"무슨 소리를?! 최저비용으로 최대비용을 번다는 건 상인으로서 최고의 업적이라고! 명색이 금언표국의 부표국주인 내가 그걸 두고만 볼까 봐!"

"……아. 맞다."

역설하는 언서진을 보며 은설지가 작게 중얼거린다.

그녀가 금언표국을 키운 실세라고 남자친구가 알려줬던 걸 까먹고 있던 걸까.

다른 이들이 뚱한 반응을 보이거나 말거나 언서진은 열성을 다했다.

"그런 의미에서 돈을 벌기 가장 좋은 수단은 자재값이 들어가는 노점이나 장난감 말고 원재료 값이 들지 않는 작업으로 돈을 벌 필요가 있어."

"그냥 내가 연단술로 건강식이라도 만들어서 팔면 되지 않을까?"

"그거 정력환 말하는 거지? 그거 금지. 심의 규정을 배반해서 탈락처리 받을 테니까 꿈도 꾸지 마라잉."

하악질을 하는 고양이처럼 노려보며 입술을 기이하게 비틀며 날 선 어조로 백운에게 경고까지 한다.

"그리고 그거 효과를 보고 소문이 날 때 쯤이면 이미 무화제 전반제 끝날걸."

심드렁하게 주장하는 그녀의 말에는 묘한 확신이 서려 있었다.

사마여령이 손을 들어 질문의사를 밝히고는 물었다.

"어째서지? 효과가 좋으면 소문에 발이 달리는 법이잖아."

"킥. 그거야 간단하지."

코웃음을 친 언서진이 그녀의 의문에 대해 답했다.

"보통 사람은 비싸고 좋은 건 혼자 먹는 법이야. 자기 코가 석자인데 누구 코에 붙여주겠어. 그래도 퍼질 소문은 퍼지겠지만 며칠 안 되는 전반제가 먼저 끝날 테니 돈벌이가 안 돼."

생각보다는 굉장히 합리적인 이유였다.

"그럼 뭐가 좋을 거라고 생각해?"

"야. 야. 우리 동아리의 근본을 떠올리라고, 근본을!"

"설마……?"

근본을 주장하는 언서진의 모습에 백운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런 백운을 보며 속이 시원하다는 듯이 씨익 미소를 흘린 그녀가 말했다.

"어떤 사람이든 뿅가게 만드는 황금의 손을 가진 백운이 우리한테 있잖아. 돈도 안 들고 솜씨가 좋아서 소문도 금방 날 테니 일석이조! 게다가 분신술도 쓸 줄 아니까 공간만 확보되면 손님도 넉넉하게 받을 수 있지."

그녀의 주장에 남은 두 사람의 시선도 백운에게로 향했다. 그렇게 세 여인에게 주목을 받으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한 백운은 여차하면 튀자는 생각을 품었다.

'머리칼. 머리카락이 위험하다!'

안마를 목적으로 전반제 동안 아무리 뽑아도 손오공처럼 머리에 땜빵을 만드는 일은 없겠지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백운이었다.

여자도 그렇지만 남자에게도 머리카락은 소중했다.

당황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며 그는 어색한 미소로 작게나마 저항했다.

"저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전반제에 그렇게 진심을 내보이는 것도 좀 그렇잖아."

"야. 동아리로 판매율 1위를 달성하면 뭐가 주어지는지 알아?"

"……아니."

알고 싶지도 않은 백운이었다.

"동아리 부활동비가 늘어난다는 거랑……. 크크크."

언서진이 세 명의 연인들을 음흉하게 번갈아 보며 말했다.

"동아리실 확장 및 고급 침대 등의 가구로 변경. 그리고 다음 학기 수강 대신 동아리 활동으로 학점 대체 가능."

그 순간, 사마여령과 은설지의 눈이 매의 속도로 자신들의 정인에게 향했다.

저 말은 즉, 강의 시간이 줄어든 만큼 백운과 있을 시간이 늘어난다는 소리였으니까.

그의 일상은 강의가 끝나면 대大부인이 될 정실인 검후 나예린이 독차지한다.

그러니 그녀들에게는 후처??로서 조금이라도 더 시간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런 사소한 시간이라도 절실했다.

마치 해주지 않으면 갈굴 거라는 듯한 두 여인의 눈쌀에 밀린 백운은 저항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리고 그 광경을 보던 언서진은 남몰래 속으로 안도했다.

'휴우. 다행이다. 엄마가 용돈 끊는다고 했는데 이번 기회에 짭짤하게 묵돈 좀 만들어야지.'

참고로 그녀는 아직도 19금 창작활동을 하고 있었다.

*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