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화 〉 210. 외전설녀의 부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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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강호에는 수많은 소문이 나돈다. 원래부터 그랬었지만 요즘은 특히 더 그랬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소문의 중심에는 마경학관을 졸업하고 나온 흑염룡군. 줄여서 용군이라 불리는 백운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야 소문이 일었던 장소에 십중팔구는 그가 있었으며 그에 관련된 이야기가 사방에 퍼지니 어찌 거짓이라 볼 수 있을까.
솔직히 개인이 했다고 보기에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하지만 과장이 보태어졌을지도 모르지만 현경의 고수라면 능히 가능할 법한 이야기들이었기에.
게다가 그중 몇 번은 그가 설립한 사냥단을 이끌고서 함께 새로이 나타났다는 흑색 마경을 손수 처리했다고 이야기였다.
그러니 백운의 이야기가 소문의 중심지가 되는 건 당연한 수순일 수밖에 없었다.
애당초 사냥단부터가 쟁쟁한 면면들로 이루어지지 않았던가. 화산파의 절대고수 사제부터 빙궁의 소중한 딸들, 거기다 남자인 줄 알았더니 남장을 가장한 채 비밀리에 백운과 연애를 해왔다던 소천마에 새로이 절대고수가 되었다는 남궁세가와 진주언가의 여식까지.
그걸로도 모자라 친분이 있다 추정되는 황보세가의 여식과 차기 무당파, 독고세가, 소림사를 이끌어 갈 후기지수들까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그들의 활약과 성장이 기이하게도 모두 백운과 연과이 되어 있다고 말이 나오고 있으니.
그리하여 오늘도 호사가들은 술을 마시며 양민 사이에 자연스레 녹아들어 죽엽청을 쏘며 정보를 풀고, 교환하고 있었다.
"자네, 그 이야기 들었는가?"
"용군이 여자가 여섯이라는 이야기 말인가? 그거라면 워낙 유명한 이야기지 않은가."
처음에는 거짓이라는 판단이 파다했던 이야기다. 그야 사마여령, 남궁수아, 언서진, 은설보, 은설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스승인 나예린까지.
다른 여인들이야 그렇다 쳐도 나이가 거진 오십 세 가까이 차이가 나는 데다가 사제라는 관계를 뛰어넘는 금단의 관계.
당연히 부모와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할 스승이 제자와 이어졌다는 사실에 처음에는 말이 많았으나.
이상하게도 몇몇 대문파의 이들이 그들의 관계를 옹호하는 태도를 보이며 퍼지는 질타와 힐난들을 붙잡았기에 크게 문제가 번지지는 않았다.
지금에 이르러서야 양민을 위한 그의 활약과 성과가 그 추문을 뛰어넘으니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저 용군이 영웅호색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변태…… 아니, 영웅이구나 하면서 말이다.
그렇기에 술친구가 그리 대답을 하며 한 귀로 흘리려 하니, 언급한 사내는 답답하다는 듯이 말했다.
"아니, 그게 아니란 말일세!"
"음? 그럼 뭔가?"
"요즘 빙궁이 이곳 섬서성에 지부를 만든다고 대거 몰려오지 않았던가."
"그렇지. 마교는 예전에 사이가 극악이었으니까 조금 꺼려진다 쳐도 빙궁과는 옛날부터 데면데면 했으니 중원 내에 지부를 하나 만든다 해서 꺼려질 게 없으니 말이야. 제법 흥미롭긴 한데 그렇게 목소리를 높일 일인가?"
술친구가 이야기에 경청하는 듯한 기미를 보이자 사내는 옳거니 하고서 냉큼 입을 열었다. 그러고선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된다는 마냥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살피고는 훔쳐 듣는 이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서야 속삭이듯 작게 말하기 시작했다.
"이건 하오문 말단인 내 친구에서 들은 비밀인데 자네만 알게나."
풍문이 퍼지기 가장 쉬운 '너만 알아'를 꺼내들며 시작하는 사내의 발언에 술친구는 사뭇 의심스러웠으나 일단은 들어보겠다는 자세를 고수했다.
그래도 자신의 친구인데 계속 무시하는 태도를 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술친구의 귀에 가까이 다가간 사내가 그 은밀한 비밀을 전하기 시작했다.
"지부가 다 설립되지도 않았는데 빙궁주까지 온 건 용군과 그렇고 그런 사이여서 그렇다더군!"
자매뿐만이 아니라 모친까지 한 남자의 여인이 되었다. 그것도 어디 하나 부족할 게 없는 빙궁의 주인과 딸들이 말이다.
그 패륜적이고 기가 막히는 위업을 성공했다는 비밀을 들은 술친구의 반응은,
"자네 취했나?"
지극히 정상적인 범주에 속해 있었다.
***
가족회의.
이런 말을 하기 뭐하지만 작금의 가족회의는 중원 역사상 가장 격이 남다른 가족회의가 아닐까 싶었다.
'생사경 하나에 현경 셋, 그리고 화경 셋이라.'
만약 이 가족회의에 불화가 일어난다면 적지 않은 파문이 강호를 강타하리라. 이 모든 여인들이 나만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에 뿌듯한 감정이 일면서도 책임감에 아랫도리가 무거워지는 기분이다.
가볍게 놀렸다면 진작에 십여 명이 넘어갔을 테고, 그랬다간 이 여편네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테니까.
내 여자들은 내 회귀에 대해서, 그리고 서진이의 예지에 대해서 이미 다 공유하는 사이이기에.
비밀이라고는 존재할래야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런 가족 사정을 가지고 있기에 회의조차 크게 필요하지 않은 가정이건만, 오늘만큼은 주제가 주제였기에 모두가 흑매관???에 모이고 말았다.
백운이 조직한 의천??단의 단원들이 머무는 신협??관이 아니라 나와 연인들이 지내기 위해 개인적으로 만든 흑매관에 말이다. 나와 스승님의 별호에서 하나씩 따서 지은 이름이었기에 불만을 가진 여인들이 많았으나.
모두 밤일로 진득하게 만족을 시켜주니 별 말 않고 넘어가 주더라. 참으로 내게 과분한 여인들이었다.
"그럼 가족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자구나."
대부인답게. 그러면서도 나보다 연장자인 사람답게 가족회의의 시작을 선언하는 스승님.
그런데 뭐랄까. 품격이라든지 그런 게 조금 부족한 꼴이었다.
'아직 하린이가 젖먹이니까 수유를 하는 건 당연하긴 한데…….'
아기에게 젖을 물려 모유를 먹이는 행위. 갓 태어난 어린 생명에게 성숙한 여인이 생명수를 주는 행위는 신성하면서도 숭고하다고 여길 수 있었다.
그런데 가족회의 중에 작은 체형이고 가슴만 가장 큰 스승님께서 하린이를 품에 안고서 수유를 하며 가족회의를 이끄는 모습은 뭐랄까.
조금 많이 음란해 보였다.
다른 연인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살짝 얼굴빛을 붉히면서도 당당한 척, 내색하지 않고 가족회의에 참여했다.
"안건은 이번에 빙궁주의 방문에 대해서다."
이미 성장이 끝났다는 이유와 대부인이라는 명분으로 유일하게 나와의 아이를 낳은 스승님께서 미미한 독점욕을 드러내며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신다.
육아에 익숙해졌다는 걸 보여주듯 한 손으로 하린이를 능숙하게 받치면서도 다른 손으로 식탁을 두드리며 불평을 토해내셨다.
"심지어 그것도 의천단이 머무는 신협관이 아니라 바로 이곳! 우리의 보금자리인 흑매관으로 오겠다고 전서를 보냈어. 이건 아주 큰 문제라는 걸 다들 알 거라 생각한다."
"대부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운랑을 저희 앞에서 따먹겠다는 선전포고라 생각합니다."
"쯧. 진짜 너무 대놓고 한다니까."
그 주장에, 다른 여인들 중 여령이와 서진이가 동의한다는 듯 불쾌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쌍둥이야 이미 학관 시절에 수긍하고 있었고, 수아 누나는 내 옆에만 있으면 뭐가 되든 상관없다는 식이어서 별 다른 반응은 없었다.
그저 내가 이 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을 뿐.
"저, 이미 다들 알고 있었던 사실 아니에요? 제가 장모님……이랑 이어져야 한다는 거."
이미 학관 시절, 그것도 거의 초창기에 벌어졌던 거래였으며 다들 그때 한 설명에 납득하고 물러났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뭐가 문제라는 건지, 여심을 모르는 나로서는 이해하지 못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보며 여인들이 한숨을 내쉬더니 서진이가 혀를 차며 설명에 나섰다.
"자기야. 지금 자기가 우리랑 아이를 가지지 않는 게 골반이 넓어져서 무공의 성장에 해가 되는 거랑 그 검좆 새끼가 찌를 만한 약점을 많이 만들지 않으려고 그러는 거잖아."
"그, 그렇지."
상당히 신랄한 표현에 그만 나도 모르게 얼떨떨한 대답이 나왔다. 여동빈이 검선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지만 검좆이라고 부르는 건 좀 너무하지 않나 싶었으니까.
"검후님은… 대부인에 이미 현경의 극의고 가장 연장자이시니 아이를 배는 게 큰 문제가 안 되서 임신했다는 건 우리들도 다 납득했어. 학관에서 보낸 추억이 우리 처들 사이에서 강렬한 유대로 이어지기도 했고."
그리 말한 서진이의 두 눈에 불똥이 튀겼다.
저건 심히 질투가 날 때 보이던 시선이었다.
"하지만 빙궁주님은 아니야. 느닷없이 자기랑 아이를 가질 관계가 됐다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납득해 줬어. 하지만 우리 보금자리에서 아이 만들기 교미를 하겠다고 당당하게 포부를 밝히는 건 얘 말대로 우리한테 하는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
'이게 그렇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건가?'
얼핏 보면 저 가슴 뜨거워지는 열의에 동화되어 나까지 덩달아 그녀의 주장이 옳다고 공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일부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게 있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장모님이 우리 가정의 보금자리에서 애를 만들고 가겠다는 주장은 분명 내 연인들에게 실례였다.
안 그래도 아직 아이를 가져서는 안 되는 처지와 상황에 놓인 여인들이다.
그런데 난데없이 등장한 장모님이 선수를 쳐서 아이까지 가지게 될 거라는 데 그걸 자신들 눈앞에서 봐야 한다? 분명 칼부림이 날 것이다.
서진이의 주장에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하던 연인들. 그중에서도 가장 격하게 수긍한 스승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다.
"그래. 그러니까 제자야."
"네, 스승님."
"걔가 여기 와서 따먹고 가게 하지 말고, 네가 가서 걔만 따먹고 후딱 돌아오거라!"
"……."
어째서 결론이 그렇게 되는 걸까.
아무래도 내가 여심을 이해하려면 아직도 먼 것 같았다.
"아우. 으아아앙~!"
"헉! 엄마가 놀라게 했니? 미안, 우리 딸. 자자. 맘마 먹고 얼른 코 하자!"
참고로 큰 소리에 놀라 울음을 터뜨린 하린이를 달래기 위해 이곳에 있는 일곱 명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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