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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1화 (1/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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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화 〉 프롤로그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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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며 하나의 화살이 몸에 박혀 들었다.

­퍽­ 이어지는 둔탁하고도 섬뜩한 소음, 공허한 숲속을 울렸다.

이어 몸 전체에 퍼지는 뼛속까지 시린 찬기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그다지 고통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 아무래도 이미 몸에는 많은 상처가 나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허나, 더이상 걸을 힘이 남지 않아 결국 멈춰 서야 했다. 하긴 어차피 갈 곳도 없다.. 이미 사방에 흉흉한 살기로 가득하니..

그러니 멈추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때를 기다린 것 마냥 이어지는 잔뜩 날 선 파공성이 겨울의 찬기를 머금은 채 이어졌다. 그 찬기는 일말의 자비심도 없었다.

귓가에 가까워지는 파공성, 여러 갈래에서 들려왔다. ­퍼퍽, 퍽!­ 연달아 들려오는 둔탁한 음,

이제야 슬슬 고통이 느껴진다. 신형이 크게 휘청이다 결국 균형을 잃고 넘어졌다.

"커억.... 컥..."

울컥, 토해지는 피, 입가에 비릿한 피 맛이 느껴졌다. 이어 숨도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쉴라 하면 자꾸만 핏물이 토해졌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몇몇 화살이 재수 없게도 폐를 찌른 것 같으니 간헐적으로 쉬어지는 숨에도 쇳소리가 가득했다.

끝내 바닥에 쓰러졌다. 이어 핏발이 선 눈이 앙상한 나뭇가지가 가득한 공간을 담았다. 나뭇가지 위에는 하얀 눈송이가 쌓여 있는데. 자신의 피인지.. 아니면 다른 이의 피인지 모를 붉은 흔적이 가득했다. 그 모습이.. 마치 붉은 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자신의 죽음을 위한 조화일까? 피식 웃음을 그린 사내가 생각했다.

이제 끝이리라고.. 이 지독한 삶이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는구나라며 사내는 조금의 후회와 아쉬움을 담았으나 그 속에는 자그마한 후련함도 조금은 있었다.

"제...길.. 새끼들..하, 한 번 좆되바라... 하아..하아.."

슬슬 시야도 먹먹하게 흐려졌다. 이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일 힘 하나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고통은 사라졌다. 대신 온몸에 오한이 들었고 몸이 으슬으슬 떨렸고 가늘어진 정신은 슬슬 흐릿해지며 당장에라도 정신의 끈을 놓고 싶었다.

제길.. 이럴 때면 조금이라도 햇빛이 내려쬐도 좋을 텐데.. 죽어도, 아니.. 죽어가는 중에도 저 지독한 햇빛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으려 했다. 일부로 자신을 피하는 것처럼..

그래 죄가 많으니 어쩔 수 없겠지... 자신의 손으로 가족들을 죽인 그날... 햇빛은 자신을 거부했으니.. 이 눈 덥인 쓸쓸한 숲 속.. 외롭고도 고독해 햇볕조차 쉬이 들어올 수 없는 이 숲 속만이 자신에게 주어진 공간이었으니..

포기하자..

"컥.."

경직된 몸에 힘을 풀었다. 이어 다시금 토해지는 핏물, 세상이 핑핑 돈다. 돌아..

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사방에서 시끄러운 발소리가 가득 들려온다. 그리고 점점 가까워진다. 그 무거운 걸음엔 짙은 살기가 담겨 있었다. 잘 벼려진 날 선 검처럼.. 그러나 이제 걱정은 사라지고 대신 차분함과 함께 평안함이 찾아온다. 한겨울의 숲 속은 앙상한 나뭇가지들과 하얀 눈만이 가득한 외롭고도 쓸쓸한 곳에 드디어 차분함과 함께 평온함이 몸을 어루어만지니 왈칵 눈물이 나려 했다.

얼마만의 평온이지?... 죽을 때가 되어서 느끼는구나.. 참으로 엿 같은 삶이었다..

이내 사내가 힘겹게 손을 들어 보인다. 애꿎은 허공에 뻗어낸 손에 은은하면서도 차가움을 품고 있는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사내에게는 그저 따듯한 춘풍이 부는 것처럼 느껴지니 입가에 미소가 어렴풋이 맺혔다.

"죽어가는군."

안식을 방해하는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활을 쏘아낸 장본인일까? 정체를 알 수 없게 검은 복면과 함께 흑의를 입고 있는 사내였으나 죽어가는 사내에게는 익숙한 사내였다. 어찌 잊으랴?... 허나 상관하지 않았다. 여전히 손을 뻗어 허공에 흩날리는 저 자유 가득한 바람을 조금 더 느끼고 싶었으니..

뒤이어 그 흑의인 뒤에 여러 명의 사내가 자리한다. 모두 활을 등에 멘 흑의인과 같은 복장이었다. 오직 보이는 것이라곤 무심히 뜨여진 눈이 전부인 그들은 도저히 인간미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인형처럼 영혼이 없는 눈빛은 무척이나 무심했고 잿빛이 담겨 혹여나 사자(死者)의 눈을 하고 있어 무척이나 섬뜩했다.

이어 앞선 사내가 말을 이었다.

"더이상 쫓을 필요는 없다. 어마 유물은 부숴졌으나 우리의 본래 목적은 달성했으니 그만 돌아간다."

중저음에 감정이라고는 담겨 있지 않은 무심한 목소리, 흑의인은 더이상 쓰러진 사내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아니 둘 필요도 없었다. 더이상 미동도 없을뿐더러 허공을 허우적거리던 손도 끝내 갈피를 잃고 힘없이 쓰러졌으니 말이다. 물론 아직은 간헐적인 숨이 토해지나 저 숨도 곧 한계에 이를 테고 사내의 몸에 고요함이 내려앉을 테니까...

쓸쓸하고도 외로운 죽음이었다.

허나 입가에 그려진 미소, 자신을 향한 비웃음이 역력했다. 저 사내는 그러했으니까...

"..."

이내 뒤에 자리한 흑의인들의 신형을 점멸하듯 사라져 모습을 감추었고 이들의 대장 격인 사내만이 남게 되었다. 그 역시 무심히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잠시 자리에 멈춰 섰다. 이어 시선을 돌려 이내 쓰러져 죽은 듯 고요함만을 남긴 사내를 보았다. 그 사내 역시 온몸이 피칠갑이었으나 복장은 사내와 비슷해, 혹 같은 편이 아닐까 싶었다.

허나 죽은 사내에게 보내는 눈빛은 동료를 떠나보내는 눈빛은 아니었다.

무심하고 공허함, 허나 그 공허함 속에 자그마한 안타까움이 어렴풋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쯧쯧. 왜 이렇게 아둔한 것이오?"

무슨 말을 하는 것일까? 돌아오지 않은 대답이란 것을 알면서도 흑의인의 사내가 쓰러진 사내에게 일렀다. 이어 품속에 하나의 목걸이를 꺼내 보인다. 별 문양이 그려진 볼품없는 목걸이였다.

"예전부터 당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지... 그런데 지금도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군... 차라리... 죽은 듯 사라지지 왜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복수를 위한 것이오? 이미 몇십 년도 전 기억을 다시금 되찾다니.. 놀랍군, 놀라워 나도 기억을 되찾으면 당신처럼 이러할까? 조금 두렵소."

의문이 담긴 목소리가 애꿎은 허공을 채우다 흐드러졌다. 이어 내려앉은 고요함에 사내가 쓰게 입맛을 다셨다. 순간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는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이어 흑의인의 사내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고 별 문양이 그려진 목걸이를 한차례 바라보다가 무심하게 차디찬 시체가 된 사내에게 던졌다. 그러니 툭 하는 소음이 고요함을 잠시 깨었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잘 가시오.. 대장 당신이 훔치려던 것이오.. 아주 잘도 부숴버렸소.. 확실히 교단에 분노를 불러 일으켰으니.. 분명 대장은 또 성공했소.. 대단해.. 유물을 세 개나 훔쳤고 두 개를 부쉈으니.. 아니지 목걸이도 결국 부서졌으니.. 세 개 전부를 부쉈군.. 허나 교단은 남은 유물만으로도 이 세상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이오.. 그 이유야 당연히 대장 때문임을 잘 알 것이오... 이미 우리를 막아설 자들이 없으니까.."

피식 미소를 흘렸다. 이어 무심히 고개를 돌렸다.

"뒤늦었지만, 이정하겠소.. 당신은 내가 본 이들 중 최고였소."

그 말을 끝으로 사내도 그 자리에서 벗어났고 이어 쓸쓸하게 주검이 된 시체만이 홀로 남게 된 숲속이었다.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흑의인이 던져낸 목걸이에서 빛이 새어나오기 시작했으니.. 동시에 차가운 시체가 된 사내의 몸에도 빛이 일렁인다. 마치 무언가 공명이라도 하듯이 말이다.

///// (돌아오다.)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창문을 투과하고 지나쳐 얼굴에 한 아름 쏟아져 내렸다.

"으음.."

하얀 침대 위에 누워 있던 아이가 쏟아지는 햇살에 몸을 뒤척였으나 쉬이 일어나기 싫어하는 것 같았다. 여전히 수마 속에 허우적거리며 그 고운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몸을 뒤척이니 어디선가 날아왔는지 한 쌍의 푸른 날개를 가진 자그마한 새가 창문 앞에 이르러 ­툭툭­ 노란 부리로 창문을 건드리곤 했다. 마치 아침을 알리는 듯, 어서 일어나라는 듯이 말이다.

"뭐야.. 시끄러워.."

이제 막 10대 초중반의 나이가 되었을 법한 금발이 매력적인 아이가 잔뜩 짜증을 부리다 끝내 눈을 떴다. 햇빛 한 번 제대로 쬐지 못한 것인지 하얀 피부는 무척이나 새하얘 실핏줄이 다 보일 정도였다. 이어 그의 팔이며 하얀 손에도 굳은살은커녕 가녀린 팔에도 근육이란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야리야리했으니 마치, 귀족 가의 여식의 몸처럼 피부는 하얗고 가느다라며 목소리 역시 꾀꼬리처럼 맑았다.

허나 그는 놀랍게도 사내였으니..

그렇게 무척이나 고귀하게 자랐을 법한 아이가 천천히 눈을 떴고 짜증을 한 아름 담았다.

"이씨....어..?"

살며시 뜬 눈 사이로 보이는 익숙한 천장, 푸른 에메랄드 빛이 담긴 아이의 시선이 몇 번이고 의문을 가진 채 껌뻑였다. 처음 짜증을 보였던 것도 금세 사라지고 이내 의아함이 자리했다. 그러더니 점점 동공이 확장되며 끝내 화들짝 놀라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무언가 잘못되기라도 한 것일까? 한껏 당황함을 담은 시선이 주위를 살폈다. 그러자 더욱 익숙하게 다가오는 공간, 이어 온몸에 닿는 따사로운 햇살, 흠칫 몸을 떨었다. 이 무척이나 익숙하고 따사로움이 무척이나 이질적으로 느껴져서 말이다.

"꾸, 꿈인가?"

그리 화려하게 꾸미지 않은 익숙한 공간, 허나 방안에 들어선 가구는 무척이나 고급스러움을 담아 꽤 고가의 가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고작 방인데도 이렇게 커다란 것을 보면 애초에 이 집, 아니 저택이라 불리우는 집은 꽤 고귀한 자제의 방이란 것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그럴수록 아이의 시선이 파르르 떨려 몇 번이고 믿기지 않아 주위를 훑기를 반복했고. 괜스레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모든 것이 익숙하나 이질적이기에 이어 믿을 수 없기에... 아이는 꿈이라 여길 수밖에 없었따.

허나 꿈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니..

"..."

아이가 천천히 몸을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다리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당황한 눈으로 하체를 바라보니 앙상한 뼈 위에 가죽만 두르고 있는 것만 같은 다리는 자신의 가녀린 팔보다 더 얄상한 것 같았다. 아니 가녀린 팔? 이어 보이는 새하얀 피부..

"뭐, 뭐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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