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64화 (64/1,410)

〈 64화 〉 난 지옥에서 돌아온 자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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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킨이 다시 나왔을 때에는 살짝 해가 저물려 할 때였다. 슬그머니 불그스름한 석양이 떠올라 주변의 그림자가 무척이나 길어졌을 때였다.

슬슬 행상인들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고 장사가 끝난 이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며 일이 끝난 이들을 반기려는 주점에 한둘씩 불이 켜지며 주점의 노랗거나 붉은빛들이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런 술집들이 줄지어 들어선 번화가에 위치한 곳이었다. 보통 서쪽 지구에 이러한 즐길 거리가 들어선 번화가가 있었고 동쪽과 북쪽에는 거주민들의 거주지역이 잔뜩 들어서 있는 상태였다.

남쪽에는 도시로 들어설 정문의 입구와 경작지, 그리고 여관이 가득 들어서 있는 곳으로 이렇게 크게 네 방위로 나누어져 있다고 볼 수 있었다. 물론 이 도시가 경작지로 유명한 곳이 아닌지라 명목상 남쪽 경작지를 위한 지구 역시 그 부지가 무척이나 적었고 오히려 주위에는 점점 여관, 술집, 잡화점 등이 들어서고 있는 실세였다.

하긴 어쩔 수 없었다. 슈리엘이 있는 도시 아크네는 보통 번화가와 거주지역 사이에 자리한 상점과 타국이나 다른 영지에서 드나드는 상인들과 여행객의 활발한 거래로 먹고사는 도시라 할 수 있었고 그것이 돈이 더 잘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가 어렵기도 하며 돈도 안 되는 경작을 하려 하겠는가?

자연스레 농사꾼들은 상인이 되었고 상인은 땅과 건물을 산다. 그러면 자연스레 몰려드는 여행객과 타국의 상인, 다른 영지의 상인들로부터 수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다. 물론 그러하므로 망한 사람들도 많아 이리도 환한 곳에 이면에는 어둠도 존재했으나, 그건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부수적인 것이었다. 그 누구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슈리엘이 있는 아크네 도시는 웬만한 부자 동네라 할 수 있으니 자연스레 술집 역시 평범한 도시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그 크기가 무척이나 컸다.

지금 아르킨이 있는 술집도 그 크기가 총 3층이나 되는 거대한 술집이 딸린 여관으로 보통의 귀족들이 자주 이용하거나 돈 많은 상인들이 자주 이용하는 주점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한 곳 1층에 남들에게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은 아르킨이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이제 막 노을이 질 오후라 그런 것일까? 슬슬 일을 끝내고 한잔하러 온 사람들이 많다. 특히나, 상인들이 유독 많았는데, 그들의 대화 주제는 보통 거래를 성사시켰다는 얘기나 다른 가문의 가십거리만 즐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면서도 혹여나 다른 귀족에게 자신들의 가십거리가 들리진 않을까 나름 조심하려 하나 슬슬 한두 잔씩 술이 들어가니 다시금 목소리가 커져 주점 안은 꽤 시끌벅적했다.

그러한 모습을 보던 아르킨의 표정이 짜증이 서렸다. 아무리 오랜 시간 이곳에 있다 한들 원하는 정보는 딱히 없으니 괜히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저택으로 가 직접 확인해 볼 걸, 괜스레 후회가 밀려올 때였다.

"여기 주문하신 호밀 빵과 맥주입니다."

마침, 주점에 일하는 1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아이가 다가왔다. 아르킨이 잠시 그를 바라보자 그도 음식을 다 놓고서도 가지 않은 채, 아르킨을 주시하자 아르킨이 고개를 갸웃하다 퉁명스럽게 물었다.

"뭐?"

"팁 안 주세요?"

어쩜 이렇게 뻔뻔하지? 너무나 당연하게 팁을 바라는 그의 모습에 아르킨이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팁을 주는 게 당연한가? 아르킨이 불쾌하다는 듯 잔뜩 인상을 쓴다. 게다가 이곳에 맥주와 고작 호밀 빵 하나만 시켜도 다른 곳에 비해 두 배나 비싼 곳이었는데 여기서 팁까지 바라다니 터무니없다.

"꺼져."

이내, 잔뜩 인상을 쓰며 아르킨이 대답하자 그럼에도 소년은 무서울 게 없다는 듯이 팔짱을 끼며 아르킨을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불쾌한지 맥주를 들어 보이던 아르킨이 다시금 인상을 쓰며 아이를 보았다. 물론 여전히 로브를 푹 눌러 쓰고 있어 아이에겐 표정이 보이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그러니 조금 날 선 목소리를 내었다.

"뭐야? 내 말 안 들려? 꺼지라고."

그런 아이를 보며 아르킨이 잔뜩 살기를 일으키며 말하자 그제야 소년이 사색이 되어 뒷걸음질쳤다. 그때였다. 아르킨이 문뜩 떠오른 생각에 아이를 불렀다.

"이봐! 그렇게 팁이 받고 싶으면 내 질문에 대답 좀 해라."

"지, 질문요?"

아이가 사색이 된 채 몸을 부르르 떨며 묻자 아르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원하는 정보를 준다면 10 에이카를 주지."

"그, 그렇게나 많이요?"

10 에이카면 평소 평민들이 생활하는 비용의 네다섯 달 치라 할 수 있었다. 이곳의 화폐는 1 루소가 100개가 되면 은색 동전인 1 에이카가 되고 1 에이카가 천 개가 되면 금색의 동전으로 변해 명칭이 1 골덴이라 불렀다. 보통 물가가 비싼 슈리엘이 아니라면 10 에이카 정도면 아끼고 아껴 1년을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큰돈이기에 아이는 두려움도 언제 있었느냐는 듯 초롱초롱한 눈을 들어 기대감을 보였다.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긴지 아르킨이 살짝 코웃음을 쳤다.

"좋아! 일단, 여기 1 에이카다."

그가 먼저 1 에이카를 선으로 주자 은색으로 빛나는 동전이 소년의 손안에 담겨 있었다.

"우, 우와..지, 진짜네요?!"

"진짜지 그럼 거짓이겠느냐?"

자연스럽게 터지는 탄성에 어느새 두려움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치 황금알을 낳는 오리처럼 아르킨을 우러러본다. 그러자 아르킨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고작 이런 적은 돈에 이리도 좋아한다는 것이 무척이나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특히 대도시인 슈리엘에서 말이다. 하긴 이렇게 거대하고 돈이 많은 도시에도 이면에 어둠이란 것이 있음이 당연할 테니.. 오히려 다른 도시보다 빈부격차가 더 심할지도 모르겠다.

끝내 이런 시답잖은 생각을 지우고 물었다.

"일단, 내가 알기에는 슈리엘 가문의 아들이 불구가 되었다고 들었다. 사실이냐?"

일부로 지금의 정보를 모르는 척 그가 묻자 소년이 고개를 저었다.

"그랬죠!"

"그랬다?"

"네!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아이의 시선이 여전히 은색의 동전에 이른 채 말을 했다. 그러니 슬그머니 동전 하나를 더 꺼내 아이에게 보이니 아이가 몸을 부르르 떨며 다급히 말을 덧붙였다.

"이미 치료했다고 들었어요."

"치료를 했다고? 정말?"

"네!"

교단에 들어온 정보가 정말 사실이었던 것일까? 허나 궁금했다. 도대체 어떻게 치료했는지.. 자신의 회심의 역작이거늘.. 그 누가 치료했다는 말인가? 다급히 되물었다.

"어떻게?"

아르킨이 다시 묻자 소년이 대답이 없다. 고개를 갸웃한 아르킨이 왜 대답이 없나 싶자 그의 시선이 다시 아르킨의 손에 들린 에이카에 닿아 있었다. 참으로 당돌한 아이지 않은가? 아르킨이 잔뜩 인상을 찌푸린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을 무서워하던 녀석이 이제는 거래를 하려 한다니 나름 이 도시에 오래 굴러먹은 녀석이란 걸까? 무척이나 당돌하다. 마음 같아선, 이 당돌함을 교단을 위해 사용하게 하고 싶지만, 지금은 참아야 했다.

가장 중요한 일이 앞에 놓여 있으니, 은색의 동전을 아이에게 건넸다.

"좋다. 여기 1 에이카다. 이제 말해주거라?"

"사실. 자세히 몰라요."

"뭐?"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아르킨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묻자 소년이 아차 하는 심정으로 아이가 다급히 대답했다.

"그, 그게 그냥 어느 순간 나아졌다는 소문이 있어요. 그 누구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그냥 한순간에 치료되었대요.. 그 이상은 아무도 몰라요. 게다가 그러한 정보는 한낱 저 같은 아이가 알만한 일은 아니잖아요? 저처럼 주점에서 일이 나 하는 아이가 높으신 귀족 나리의 사정을 말이에요."

"정말이냐? 그게 자연적으로 치료되었다고? 헛소리!"

아르킨이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언성을 높이자. 그제야 다른 이들의 시선이 아르킨에게 닿았다. 아르킨은 그런 그들을 보며 다급히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있는 로브의 후드를 만졌다. 다행스럽게도 얼굴을 잘 가리키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직 교단이 발발하기 전 괜히 얼굴을 알릴 필요는 없었다.

특히 이 아크네 도시를 파멸로 일으킬 장본인이 자신이 될 테니 더욱 신분을 숨기는 것에 조심해야 했다.

다시금 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말이에요! 서쪽에 엘리시움의 사제님들도 몇 번 왔다 갔는데 치료하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동쪽 휴센 왕국의 마법사들도 다녀갔지만, 그들 역시 똑같았지요. 그런데 어느 날 나았더라고요. 저희는 그것을 기적이라 했어요!"

"기적? 하! 도대체 언제?"

"언제인지는 확실하진 않지만, 몇 달 전부터 도련님께서 훈련하는 모습을 저택에 경비병이 보았다고 해요."

"훈련?!"

충격이었다. 그냥 나은 것도 아니고 훈련을 받을 정도로 치료되었다니, 자신이 그에게 몰래 주입한 것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독이었다. 그 독이 혈관에 침투하면 혈맥을 막게 되어 다리나 팔에 피가 통하지 않게 했고 이내 썩어들어가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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