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제가 보았습니다.
* * *
/////
"하하... 하하핫!"
유진이 히죽히죽 웃다가 끝내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더 나아가 배까지 부여잡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정도로 웃었다. 언뜻 무례하게 보일 수 있는 웃음이었으나 그런 유진의 모습을 본 선생들의 얼굴은 더더욱 굳어져만 갔지 별다른 제재를 하지 못했다.
그들은 유진의 웃음이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므로 무척 불쾌감을 느꼈지만, 이상하게도 이 아이를 향한 자신들의 모습이 무척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러며 다른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왜, 저 아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 것일까? 무슨 이유로? 왜? 수많은 의문이 이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선생이란, 무엇일까? 그 누구보다도 자신의 제자이며 학생을 믿어야 할 자들이 저 아이의 진실을 믿어주지 않으려했다. 오히려 승냥이 떼처럼 어떻게든 기회를 엿보며 약점을 찾으려 했고 찾은 약점을 물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이미 여러 증거가 저 아이를 무죄라고 하거늘, 과연 자신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이 아이를 이렇게 궁지로 몰아넣으려는 걸까? 이런 자신의 모습이 한심하고도 추레하게 보였다.
이것이 몇몇 선생들이 느끼는 공통적인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그 누구도 저 비아냥 섞인 유진의 웃음을 제재하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 것이냐?"
마침, 가려운 것을 긁어주려는 듯 트루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선생들은 한순간이지만, 알 수 없는 안도감을 느껴야 했다. 만약 트루먼 교장 선생님이 막아주지 않았다면 저 아이의 웃음에 더욱 비참하고 초라해질 뻔했으니 말이다.
유진이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손으로 대충 닦아내며 말했다.
"그냥 참으로 웃겨서 말입니다."
"무엇이?"
"그저 지금 상황이 말입니다. 하핫!"
유진의 방그레 미소를 그리며 트루먼을 보았다. 그 모습이 무척 후련해 보였으나 트루먼에게는 무척 당혹스럽게 다가왔다. 지금 유진이란 아이의 눈빛이 말해주고 있었다. 소아렌은 썩을 대로 썩었으며 더이상 이곳에서 배울 것이 없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고 자신들을 나무라고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 선생은 유진이었고 학생은 자신들이 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배우지 못한 한심스러운 학생들을 향해 그는 웃음으로 이들을 추레하고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선생으로서의 자격을 앗아가고 있었다. 트루먼이 굳어진 얼굴에 한숨이 배어 나왔다.
유진이 입술을 달싹이며 물었다.
"여기서 저를 믿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 소아렌은 모두에게 공평하며 평등합니까?"
".... "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유진이 다시 크게 웃었고 이번엔 꽤 오랜 시간 이어졌다. 그러며 한 명, 한 명, 자신을 못마땅하게, 그리고 불쾌감이 가득 담긴 시선을 향하고 있는 선생들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마치 기억하겠다는 듯이 그러며 생각했다.
분명 이곳에 선생은 제시 라일라인의 가문이 중앙 귀족에 꽤 영향력이 있는 백작 가임을 모두 알 것이다. 하긴 모를 리가 없었을 테다. 이미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할 때 꼭 성을 붙이는 습관이 있었으니까. 그러므로 자신이 라일라인 백작 가의 딸임이 공공연하게 밝혔졌다. 그 역시 규칙 위반인 것을 모르는 이가 없을 테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그 누구도, 심지어 트루먼 교장을 비롯해 제쉬 오언 부 교장도 제재하지 않았다.
이들도 어렴풋이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알고도 모르는척하는 것일지도 모르고 말이다. 지금 자신들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는지 자신들이 얼마나 썩었는지를! 유진은 당장 코를 틀어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들의 모습에 고여 썩어 버리고는 역한 내가 풀풀 풍긴다.
유진이 보기에 이들은 당장 여기서 떠나고 싶게 하는 욕구를 자라게 할 영양분이자 비료였다. 그러니 이곳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프리실라가 이 더러움에 물들까 걱정이 일 정도로 이곳은 썩어버렸다고 생각했다.
유진이 웃음을 거두었다.
"좋습니다. 말하겠습니다."
"그래! 어서!"
벨른이 재촉했다. 썩은 내가 풀풀 풍겨 유진이 인상을 찡그렸다. 그만 끝내고 역겨운 곳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그럼 모두가 공증이 되는 겁니다."
"응?"
"말하지 않았습니까? 벨른 선생님께서 제안한 것.. 어떠한 소원 한 가지를 들어주겠다는 것! 저 역시, 억울해서 말입니다."
이어 유진의 시선이 제쉬 오언과 트루먼에 이르니 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다른 선생들도 고개를 끄덕이니 유진이 말을 이었다.
"좋습니다. 저는 어젯밤. 저는 여자와 함께 있었습니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벨른이 옳다구나 의기양양한 얼굴을 들어 소리쳤으나 유진이 비웃었다. 차마 그는 보지 못했다.
"우린 서로 사랑하는 사이입니다. 물론 외부인도 아닙니다."
경비단장이 안도의 한숨을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그 역시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 것 같았다.
"그녀와 오랜 시간 함께 했으며 들어가기 전까지 그녀와 함께했습니다. 이 역시 사실이지요."
"그리고 기숙사로 데려갔겠지?!"
마치 사특한 악마가 유혹하듯 벨른이 소리높여 소리쳤다. 그러나 이번엔 그의 뜻대로 이어지지 않았다. 유진이 벨른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바라는 모습과 대답이 아닌지라 제법 당황했다. 두툼한 뱃살이 역하게 움직일 정도였고 역겨운 면상에 자리한 갈색의 꼬부랑 콧수염이 파르르 떨리며 의문을 그렸다.
그를 보며 유진이 대답했다.
"정확한 시간은 모르지만, 자정이 살짝 넘은 시간까지 저는 그녀와 함께했고 헤어져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 혼자였지요.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기숙사로 돌아갔지요. 그게 전부입니다."
모두의 당혹스러운 시선이 유진에게 이르렀다. 표정 하나하나가 역겨웠다. 저 놀라움 속에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역력하나 유진의 몸에는 조금 전 거짓말을 했을 때 나오던 폭죽 같은 현상은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진실이라는 소리였으니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쌓였다.
프리실라 그리고 롤랜드와 바리오스를 제외하고는 유진의 말을 믿는 이는 여전히 없었다. 이들에게 진실은 의미가 없어 보였다. 믿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며 그게 진실이라도 역겨움으로 눈과 귀에 가림막을 세워 놓았으니 믿을 리가 없었다.
유진이 피식 웃었다. 그때 벨른이 다시금 카랑카랑해진 본래의 목소리로 소리쳤다.
"지, 진짜란 말이야? 그, 그럼! 자네와 함께한 여학생은 누군데!"
비명에 가까운 외침으로 쏘아붙이니 유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제대로 정보조차 말하지 않았거늘 그는 이미 유진과 함께한 여인이 당연하게도 학생이라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다른 이들도 그러했다.
한편 프리실라가 살짝 움찔하는 것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얼굴을 한껏 붉힌 채 고개를 숙여 보이고 있었다. 만약, 유진이 자신의 이름을 거론하면 어찌하나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끝내 눈을 질끈 감은 그녀는 이왕 이렇게 된 것 직접 자신의 입으로 밝혀야 하나 고민할 때였다.
"그건 굳이 또 얘기해야 합니까?"
다시금 트루먼을 보며 유진이 물으니 그가 피곤한지 그가 미간을 좁히며 잠시 입술을 달싹이려 할 때, 어딘가 모르게 다급해진 벨른이 감히 무례하게도 말을 가로막았다. 그러므로 제쉬 오언이 불쾌감을 표출했으나 이미 그의 모든 감각이 유진을 향하고 있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대질신문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 그 학생도 불러와 자네가 거짓을 했다는!"
이번엔 유진이 말을 가로막았다.
"아무래도 벨른 선생님은 현자이자 현 시대 유일하게 대마법사의 호칭을 받은 트루먼 베식타스 교장 선생님의 마법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바라 여겨도 되겠습니까? 말하지 않았습니까? 자정까지 전 그녀와 함께 있었고 자정이 지난 시간에 헤어졌으며 기숙사에는 혼자 들어갔다는 겁니다. 증인으로는 기숙사 사감 선생님인 코아테스 라란 사감 선생님이 증인을 해주었고 롤랜드와 바리오스도 증인을 해주었습니다. 도대체 증거조차 없는 일에 고작 제시 라일라인의 일행이 한 말을 무엇을 믿고 이리도 절 핍박하는 것입니까?"
"그, 그건.."
유진이 오히려 되묻자 벨른의 눈동자가 확장되며 무척이나 당황해 했다. 그럴수록 유진의 비릿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고 뒤이어 다른 이들을 향한 불쾌감을 마음껏 드러냈다. 한편 벨른이 당황한 시선을 들어 트루먼의 무덤덤한 눈빛에 이르렀을 때, 그는 당황하다 못해 지레 겁을 먹고는 식은땀까지 삐칠 흘려야 했다.
만약 여기서 유진의 말에 동의한다면? 트루먼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선 마법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시인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그럴 순 없었다. 지금 자신이 유진의 말에 동의하면 트루먼 교장님, 아니 대륙 모두가 칭송하는 대마법사이자 현자를 자신이 직접 모욕을 주는 일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더이상 소아렌에 자신이 설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마른침을 꿀컥 삼켰다. 마법사는 자신의 마법에 자부심이 있었다. 특히 직접 만든 마법에는 더더욱 말이다. 제자에게조차 쉬이 가르쳐주지 않은 직접 개발한 마법은 마법사의 존재 이유, 삶의 이유이며 명예이자 죽어서도 남길 업적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자부심을 느낀다. 심지어 창조자가 대마법사라면 그의 마법은 향후 몇백 년간은 칭송을 받을 정도였다. 그 자부심이 상상 이상으로 거대할 텐데 지금 자신이 유진의 말을 인정하는 순간 분명한 것은 대마법사를 욕보이는 일이었다.
결국, 벨른이 꼬리를 말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니 유진이 히죽히죽 웃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거짓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굳이 제가 좋아하는 분의 이름을 거론해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에 껴들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 점은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어찌 되었건! 지금 이곳에 계신 모든 선생님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화두는 이거 아닙니까? 제가 기숙사에 여자를 데리고 들어갔느냐? 규칙을 어겼느냐? 이것이지 않습니까? 제가 누굴 사랑하고 누구와 만나는지는 교칙 위반이 아니니까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
한 명을 콕 집어 물은 것이 아니었다. 모두를 향한 물음이었고 모두가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인정해야 했다.
"그렇다면, 저는 어기지 않았다는 겁니다. 여러 증인을 비롯해 대마법사의 마법이 증거가 되었습니다. 제가 어긴 규칙은 코아테스 라란 사감 선생님이 말한 통금 시간을 어겼을 뿐입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경고를 들었고 저는 학생의 본분이자 소아렌의 교칙을 어겨 충분히 참회하고 있습니다. 그게 전붑니다. 도대체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는 겁니까? 아니면 제게 뭔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까? 꼭 거짓말을 하길 바라는.. 제시 라일라인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그런?"
"그 무슨!"
몇몇 선생이 움찔하며 무어라 대답하려다 눈치를 보며 말았다. 그러며 유진의 말에 모두가 얼어붙은 듯 숨을 죽이니 그 모습이 어찌나 웃기진 다시 한 번 히죽히죽 웃는 유진이 말을 계속해서 덧붙였다.
"그러는게 아니라면 이제 인정해야 할 때 아닙니까? 저 역시 이렇게 끝내고 싶습니다. 여기서 더 나아갔다간 서로가 더러워질 뿐입니다. 게다가 괜히 저 때문에 제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여인이 이렇게나 의심스럽고 무척이나 강압적이며 어떻게든 거짓을 만들게 하려는 분위기 속에 서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니 이제 인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선생님들 저는 어젯밤, 그녀와 함께 있었지만, 자정이 넘은 시간에 홀로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진실의 마법은 반응하지 않았다. 진실이란 뜻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