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197화 (197/1,410)

〈 197화 〉 프리실라... 그녀의 향은 무척..

* * *

"가, 갑자기.. 왜?"

그녀가 파문이 이는 목소리로 당황하자 한 번에 여러 곳에서 목소리가 겹쳐서 들려왔다.

"만나보고 싶었어요!"

"팬이에요!"

"대단해요! 저도 에일린 공주님처럼 강해지고 싶어요!"

"친해지고 싶어요!"

"아름다워요!"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의 질문 세례가 귓가에 한데 어우러져 도무지 무슨 뜻인지 모르게 했다. 정신이 사납다는 뜻이 지금 이 순간을 말한다는 것을 오늘에서야 느꼈다. 사방에서 토해지는 시끄러운 질문 공세에 도무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혼란에 일었다.

이상하게 소아렌에 그리 오래 있지 않았거늘 이곳에서만 벌써 세 번의 혼란을 겪은 것 같았다. 처음에는 유진과의 대결에서, 이어 프리실라의 결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말이다.

"자, 잠시."

에일린이 연실 뒷걸음질치며 소리쳤으나 이들에게 닿지 않은 것 같다.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정말 학교에 선생님으로 부임하시는 거에요? 몇 학년 담임이 되는 건가요?!"

"너무 아름다워요!"

무언가 대답을 할라치면 또 다른 곳에서 그와는 전혀 다른 질문이 이어지곤 했다. 그럴 때마다 조금 전에 했던 대답과 지금 해야 할 대답이 섞여 이상한 말이 되기도 했다. 그러한 상황이 꽤 오랜 시간 이어지다 못해 끝내 틈이 난 순간 도망쳐야 했다.

"아! 서, 선생님!"

"에일린 선생님!"

"잡아!"

자꾸만 따라오는 아이들을 피해 도망치다 보니, 마치 쫓기는 신세가 된 것 같았다. 심지어 도둑을 쫓는 것 마냥 잡으라고 외친 학생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인상을 찡그리며 최대한 기척을 죽여 간신히 학생들을 따돌리니 어느덧 중앙 본관에 제2 건물에 이르러서야 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 있었다.

힐끔 주위를 훑으며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자 안도의 한숨이 토해졌다. 그러고는 다시 지금 있는 곳을 쭉 훑었다.

처음 보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휴일이다 보니, 교실이 늘어선 건물은 제법 을씨년스러울 정도로 고요했다. 그녀에겐 차라리 이러한 고요함이 좋았다. 오히려 조금 전의 사태가 그녀로서는 받아내기가 더 힘들었으니까 말이다.

멋대로 발이 움직여 건물 안으로 이르렀다. 내부는 기분 좋게 고요하기만 했다. 하긴 그 누가 휴일에 학교에 나오고 싶을까? 조금 전처럼 아카데미의 부지를 돌아다니던가 친구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하던가 아니면 도서관에 가는 것이 그들에겐 휴일을 더욱 의미 있게 보내는 일 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교실이 늘어선 건물 내부가 텅텅 빈 것도 이해가 되었다. 에일린 역시 어렸을 적 개인 교사들과 수업을 받을 때면 휴일을 가장 기다렸고 휴일에는 그들 근처에도 가지 않았으니 말이다. 동병상련의 느낌을 받은 에일린이 피식 웃으며 걸음을 옮겼다.

걸음이 자연스레 1층 복도를 거닐다. 오른쪽 끝에 이르러 2층 계단을 올랐다.

왜 올랐느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그저 발길이 가는 데로, 고요함을 즐기며, 그저 걸을 뿐이었다. 물론 프리실라 선생님을 찾기 위함이 가장 컸지만, 이러한 을씨년스러운 건물에 그녀가 있으리란 생각은 쉬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2층에 이르렀고 여러 교실을 힐끔힐끔 구경했다. 몇 군데는 과학실인지 역한 화학약품 냄새가 코를 찌르듯이 풍겨왔으며 음악을 가르치는 곳도 있는지 악기가 모여 있는 곳도 있었다. 여러 마법 지팡이가 놓인 교실도 있었다.

그러한 곳을 제외하면 다른 교실들을 딱히 볼 것은 없는 교실들이 즐비했다. 3층에 이르러서도 그러했으니 4층에 올라가는 계단에 잠시 멈춰 서서 고민했다.

이대로 4층 그리고 5층까지 올라가 볼까? 아니면 다시 바깥으로 나가 다른 곳에서 프리실라 선생님을 찾아보도록 할까 고민했다. 그러나 고민은 금세 해결되었다. 차마, 조금 전의 그 곤혹스러움을 다시 겪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조금 더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슬슬 잠잠해질 때 프리실라 선생님을 찾기로 다짐한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겨 4층으로 올랐다.

4층 역시 길게 늘어선 교실이 가득했다. 지루하고 별 볼 일 없으며 그다지 특별함이 없는 교실이 쭉 이어졌고 다른 층도 그러리라 생각에 돌아갈까 생각한 순간이었다.

­하으읏... 하아..­

어디선가 들려오는 한 여인의 교성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혹여나 잘못들은 것은 아닐까? 잠시 멈춰 선 채, 조심스럽게 청각에 집중하는 순간이었다.

­하앙!­

화들짝 놀랐다. 도무지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 곳에 들려오는 여인의 교성 소리라 등골에 오싹함을 느꼈다. 혹시나 귀신은 아닐까? 마른침이 꿀컥 삼켜지며 주위를 훑었다. 연이어 교성이 미세한 바람을 타고 이어졌다.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심장 박동이 미친 듯이 요동치며 잔뜩 경직된 몸은 쉬이 움직이지 않았다.

­하으읏... 하앙!­

다시금 들려오는 교성, 조금 전보다 더욱 큰 소리였다. 이제는 귀신의 곡소리라기보다는 혹여나 누군가 다쳐 우는 소리가 아닐까 싶었다. 그제야 경직된 몸이 조금씩 움직인다. 천천히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복도를 거닐었다.

­하앗!! 하앙!­

가면 갈수록 더욱 짙어지는 교성은 아무래도 아픈 이의 교성도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정말 귀신의 곡소리는 아닐까? 이 고요한 건물에 귀신이라도 사는 것일까? 점점 두려움이 일었다. 사실 에일린에게 있어 그 어떠한 것도 무섭지 않았다만, 그녀가 유일하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하필 귀신이었다.

세상에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존재, 도무지 자신의 검술로서는 어찌할 바가 없는 존재를 가장 두려워했다. 그러다 보니 다시 걸음이 느려졌다. 무덤덤한 얼굴이 한껏 굳었다. 만약 그녀의 피부가 프리실라나 다른 출신의 아이들처럼 구릿빛이 아니었으면 안색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탈색되었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그녀는 아무도 모르게 귀신을 무척 무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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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이고 마른침을 삼키며 도망칠까 하는 갈등 속에서 끝내 소리에 근원지에 이르렀다. 잔뜩 움츠러든 몸을 최대한 숙여 한 교실에 멈춰 섰다. 다른 교실과는 그다지 다른 점이 없는 곳이었으나 분명 이곳에서 한 여인의 교성이 들려왔다.

이어 중간중간에 섞여 들어오는 사내의 거친 숨소리까지, 뒤늦게 귀신의 곡소리는 아님을 깨달았고 마음의 안식이 찾아왔으나 다른 의미로 당황함을 느꼈다. 귀신의 곡소리라고 하기엔 이 교성에 담긴 감정은 무척이나 격렬했고 야릇한 흥분감을 일게 했다. 간간이 들어오는 사내의 숨소리도 그러했다.

차츰 교실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귀신의 곡소리도, 혹여나 누군가가 다쳐서 낸 소리도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남녀간의 정사, 조금은 속된 말로는 섹스라는 단어가 떠올랐으며 조금 더 다르게는 방사라는 말도 있는, 같은 뜻에 여러 가지의 단어가 있는 행위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지금 텅 빈 교실 안에서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러니 더는 방해하지 말고 그냥 돌아가자고 생각했으나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에일린의 마음에 살며시 호기심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그 호기심은 처음 검을 쥐었을 때의 호기심과 동일했으며 차마 거부할 수 없는 감정을 낳았다.

결국 교실에 이르렀다.

여전히 움츠러든 몸을 숙인 채, 교실의 앞문을 지나 머리 위쪽에 자리한 커다란 창문에 아래에 이르렀다. 이제 허리를 펴기만 하면 곧장 교실 안의 모습이 보이리라..

하지만 용기가 쉽게 나지 않았다.

물론 성교육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왕성에서 유모를 비롯해 개인 교사들로부터 여러 가지 학문과 지식을 배웠으며 그중에는 당연하게도 성교육도 있었다. 주로 유모가 도맡아서 가르쳐주었던 기억이 있었으나 그다지 에일린에게는 흥미가 동하는 과목은 아니었다. 애초에 어릴 때부터 검에 빠져 살았던 그녀에게 성교육이며 남녀 간의 정사는 관심 밖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랬던 마음이 갑자기 왜 이리도 흥미가 돋고 동요하기 시작한 걸까? 이론으론 알아도 실제로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혹여나 누군가 볼지도 모르는 곳에서 즐기는 정사의 스릴감을 즐기는 이들의 대담함에 놀라워서 그럴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렇기에 더 호기심이 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몇 차례 마음을 다잡고 살며시 허리를 폈다. 차츰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다. 차츰 창문 속에 담긴 교실을 본 순간 에일린은 숨이 멎는 것을 느꼈다.

그 안에는 그토록 찾고 싶었던, 꼭 찾아야 했던 프리실라가 나체가 된 채, 한 사내를 향해 추잡스럽게 허리를 내밀어 커다란 가슴을 부르르 떨며 교성을 터트리고 있었다. 그런 그녀 뒤에는 익숙한 아이가 그녀의 둔부를 향해 우악스럽고도 흉측한, 흉기를 질 내를 몇 번이고 찌르고 있었다.

그러며 나는 소리가 어찌나 야릇하고 추잡스러운지...

"헙!"

화들짝 놀라 헛숨을 삼켰다. 그러며 두 눈이 화등잔만 하게 커지며 마른침이 꿀컥 삼킨 그녀가 점점 호기심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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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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