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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247화 (247/1,410)

〈 247화 〉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

* * *

"아를란 선배가 진검 대련 때, 요정을 부려 제시 라일라인을 공격했다는 거야! 그래서 지금 제시 라일라인이 크게 다쳐서 의무실에 가 있다고 하고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해. 그래서 징계 위원회가 열렸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야."

유진이 말없이 눈살을 찌푸렸다. 롤랜드의 말마따나 일이 꽤 심각성을 그리니 이맛살에 깊은 주름이 맺혔고 미간의 골이 찌푸려졌다.

"분명, 팔불출인 라일라인의 백작이 학교에 올지도 몰라! 아니 분명 올 거야! 그럼... 당연히 일이 더 커지는 거야."

"학교에 외부인은 쉽게 들어오지 못하잖아?"

처음으로 바리오스가 롤랜드의 말에 껴들었다. 유진 역시 그러하지 않냐며 그의 말에 동의했을 때, 그가 답답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하지만, 그는 예외야.."

"하! 이곳에 예외도 있어? 무슨 이윤데 그래?"

비릿한 웃음을 내보이며 살짝 언성을 높여 되묻자 롤랜드가 다시금 주위를 훑어 아무도 없음을 재차 확인한 채 대답했다.

"지금 라일라인 백작 가, 아니지! 곧 후작이 된다고 하니 후작이라 불러야 하겠지? 애초에 그 마커스 라일라인 후작은 이곳 소아렌에 쏟아 부은 돈이 어마어마하다고 들었어."

"돈을 쏟아 부었다고?"

"그래! 매년 천문학적인 금액을 기부하고 있나 봐, 아무래도 제시 라일라인 때문에 그런 것 같아! 그러니 소아렌 역시 마커스 라일라인을 특별 관계자로 취급해서 소아렌에 드나드는 것을 제지하지 않다고 해 그러니 제시 라일라인이 더 날뛰는 거고 아무도 그녀를 제지하지 못하는 거지! 언제든 아버지를 부를 수 있으니까.. "

롤랜드가 인상을 찡그리며 주변을 서성였다. 그러며 계속해서 말을 덧붙였다.

"그런데 이번에 아를란 선배가 제시 라일라인을 건드렸어! 심지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면 제법 큰 상처를 입었다는 건데 그 팔불출인 사람이 가만히 있겠어?"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맞아! 그렇다면 학교는? 이 학교에 최대 기부자인 그를 위해 분명 아를란 선배에게 필요 이상에 징계를 내릴지도 몰라. 아를란 선배는 별 볼 일 없는 상인이고 제시 라일라인은 귀족이니까! 학교는 최대 기부자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지 않을 테고 말이야! 엄연히 마커스 라일라인 백작은 이제 곧 후작으로 내정된 사람이고 중앙 귀족 계에 큰 손이기 때문이지.. 분명 일이 제법 심각하게 흐를 거야."

제법 날카로운 롤랜드의 예상에 유진의 얼굴에 핏기가 가시며 백지장처럼 하얗게 변했다. 롤랜드의 추론에 허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제법 날카로웠고 그라면 분명 그러하리라 생각했다. 굳어진 얼굴로 잠시 상념에 잠겼다. 만약 필요 이상의 징계라면 무엇이 있을까? 문뜩, 프리실라와의 수업에서 대련 도중 검이 아닌 다른 힘을 사용했을 때에는 징계 위원회에 회부가 되리라는 말을 들었던 것 같았다.

그러나 그때 유진은 그런 일에 관심이 없던 나머지 제대로 듣지 않았었다. 분명 꽤 높은 수위에 징계였긴 했는데 제대로 떠오르는 것이 없으니 답답함에 바리오스를 보자 마침 그가 유진의 조급함을 꿰뚫어 보는 것처럼 무덤덤하게 입술을 달싹였다.

"보통, 대련 도중 다른 힘을 사용했을 때에는 유급까지 제한 점수가 70점인데 총 점수에 20점 감점에 한 달 근신처분으로 들었어."

"그 정도면 다행이지."

롤랜드의 말을 덧붙이자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에도 바리오스는 아직 말을 다 끝낼 생각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진검 대련이라면 또 말이 달라질 거야. 분명 목숨이 오가는 상황에서 다른 힘을 사용하고 끝내 상대에게 피해를 줬다면, 어쩌면 1년 유급은 당연할지도 몰라. 만약에 그녀가 정식 기사였거나 용병이었다면 다신 검을 들 수 없도록 힘줄을 끊기도 해."

"그렇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를란 선배는 학생이고 기사가 아니야. 그리고 여기서 마커스 라일라인이 나선다면?"

롤랜드가 초조한 듯 사족을 붙이자 바리오스가 잠시 고민하더니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최소 퇴학까지 생각해봐야겠지.. 더 나아가 기사처럼 힘줄을 끊을지도.. 마커스 라일라인이 어떠한 제안을 하냐의 문제가 되지 않을까?"

"설마? 분명 무슨 일이 있었을 거야.. 아를란이 일부로 그럴 리가 없잖아? 분명 제시 라일라인이 수를 쓴 게 분명해!"

불안함에 유진이 살짝 언성을 높여 대답하자 롤랜드가 착잡한 얼굴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만약 내가 들은 정황이 진실이라면, 아무리 제시 라일라인이 일을 꾸몄다고 한들 바뀌는 사실은 없어! 결국, 아를란 선배는 진검 대련에서 다른 힘을 사용해 제시 라일라인을 공격했다는 것은 사실이란 소리야."

"제길... 그리고 그 역겨운 팔불출 쓰레기는 그 점을 물고 늘어지겠지? 아무리 트루먼 교장이라도 제쉬 오언 부 교장이 공명정대하게 하도 진실은 변하는 게 없을 거야. 사실이니까."

이를 갈며 유진이 대답했다. 그러더니 이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롤랜드가 화들짝 놀라 다급히 유진의 손을 붙잡았다.

"어딜 가려고?"

"당장 아를란을 만나 봐야겠어! 무슨 일이 있는지 알아야 할 거 아니야?"

"지금 기숙사에서 가해자로 불려 가기 전에 근신처분을 받은 상태라 기숙사에 있어 아무도 만나지 못할 거야."

"하지만 이러고 있을 수는 없잖아?!"

유진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러고는 롤랜드의 손을 뿌리치고 다급히 기숙사로 향하자 롤랜드와 바리오스도 결국 짙은 한숨과 함께 유진의 뒤를 쫓았다.

/////

기숙사로 향하는 길이 무척 무겁고 멀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당장 홀로 두려움에 떨고 있을 아를란을 생각하니 초조함이 극심해졌다. 다급히 걸음이 슬슬 뜀박질이 될 정도로 급해졌으나 오늘따라 왜 이렇게 길이 멀고도 무겁게 느껴지는지 가도 가도 길게 이어진 가로숫길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았다.

불안함에 입술을 깨물었다. 여기저기 롤랜드를 비롯해 상황의 심각성과 자신의 감정을 느낀 로아나가 걱정하지 말라는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 어느 목소리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제길! 분명 제시 라일라인이 일을 꾸민 게 분명한데 어떻게 해야 하지?'

­분명 잘 해결될 거야!­

하지만 증거가 없었다. 증인 역시 바랄 수 없는 노릇이 분명했다. 그녀라면, 제시 라일라인가 쉬를린 베사르, 메이린 사이스럼 역겨운 셋이라면 애초에 뒷작업을 해두고 일을 진행했을지도 몰랐다. 적어도 유진이 보았던 그들은 조금 허술했지만, 바보는 아니었다. 특히 제시 라일라인은 더더욱 말이다.

오히려 제시 라일라인은 제법 머리가 좋아 보였다.

거기다가 마커스 라일라인 백작까지 껴든다면? 아무도 아를란의 편을 들어줄 사람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애들이 있다면 진작에 아를란이 혼자가 될 일도 없었을 테고 말이다. 그러니 제시 라일라인은 어떻게든 눈엣가시처럼 느껴지는 아를란을 학교에서 내보낼 것이 분명하고 더 나아가 힘줄까지 끊어버릴 생각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점점 최악의 상황이 떠올라 불안함에 휩싸였다. 그러며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된 것 내키지 않지만, 슈리엘의 힘을 빌릴까 싶었다. 만에 하나 슈리엘의 힘을 빌린다면 라일라인 따위야 아무렇지도 않게 압박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무리 라일라인 가문이 중앙 귀족 계의 큰 손이라 할지라도 슈리엘의 비하면 새 발의 피도 못되었으니..

그러나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소아렌의 일 때문에 슈리엘 공작과 라일라인 후작이 싸운다면 서로 가문의 이름을 먹칠하는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한심스러운 일이었고 그 한심스러운 일에 라일라인은 가문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터무니없기도 했다. 한편으론 이러한 일에 소아렌은 어떠한 힘도 쓰지 않으리란 생각을 하자 트루먼과 제쉬 오언을 향한 불만도 커졌다.

­유진.. 괜찮을 거야..­

도무지 로아나의 다독임은 귓가에 마음에 닿지 않았다.

유진이 이를 악물며 다시금 제시 라일라인을 떠올렸다.

그 역겨운 머리를 어떻게든 회전시켜 악독하고 잔인한 방법을 써 아를란을 구석으로 내몰았을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위험을 감지한 요정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힘을 사용했을 것이 유진이 내린 결론이었다. 그만큼 요정이 갑작스레 멋대로 힘을 사용하는 것은 오직 계약한 친구가 위험에 빠졌을 때니 말이다.

그러나 어떠한 술수가 있다 한들 현실을 직시하면 결국, 아를란은 검술 대련에 다른 힘을 사용했다는 것은 진실이었고 그것도 하필 진검 대련일 때 힘을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최악의 상황이 한데 겹쳐 그녀를 완전히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이제 살짝 등을 밀기만 하면 곧장 나락으로 떨어질 위기였다. 그리고 그녀의 등을 밀 존재는 분명 마커스 라일라인일 것이다.

초조함에 몇 번이고 입술을 깨물더니 어느덧 비릿한 피 맛이 혀끝에 닿았다. 아무래도 입술을 강하게 깨물어 피가 흐르나 보다. 비릿한 맛이 입가에 닿아 목 언저리를 타고 넘어가니 씁쓸함이 입안을 타고 심장에 무겁게 얹혔다.

어느덧 여자 기숙사에 이르렀다.

////

당연하게도 여자 기숙사를 지키는 사감 선생이 유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잠깐이면 돼요! "

유진이 조급하게 말하나 이름이 케일린이라는 여 사감에게는 융통성이란 것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두툼한 살집의 넙데데한 얼굴 옆으로 쫙 찢어진 얼굴과 그 사이에 두툼한 입술과 찢어져 뱁새 눈처럼 보이는 두 눈은 고집과 아집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가 기숙사 로비에서부터 유진과 바리오스 그리고 롤랜드를 단단히 막아선 형태였다.

마치 거대한 벽을 마주한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안 된다고 했네! 그러니 유.."

그녀가 잠시 이름을 생각하며 고민하자 답답한 유진이 언성을 높였다.

"유진이요!"

그래! 유진 학생! 아무튼! 절대 허락할 수 없어! 특히 남자는 여자 기숙사 방에 들어갈 수 없고 그 역시 징계 사유야. 그러니 어서 돌아가!"

머리도 좋지 않은지 10분도 채 안 돼서 말한 이름을 벌써 두 번이나 까먹은 그녀가 무심하게 대답했다. 유진이 괜스레 짜증이 일어 조금 언성을 높였다.

"그럼 불러주기라도 하면 안 되나요? 잠시 얘기할 것이 있어서 그래요! 잠깐이면 돼요!"

"미안하지만, 그 역시 허락할 수 없어! 유민 학생!"

"유진이라고요!"

또 자신의 이름을 까먹은 그를 향해 사납게 소리쳤다. 그럴수록 무심하게 뜨인 여자 기숙사 사감 케일린은 새끼손가락으로 귀를 후비적후비적하며 더더욱 유진을 무시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았고 애초에 유진에게 관심이 없다는 듯 이름조차 외우려는 노력조차 없는 그녀에게 아무리 소리쳐도 쇠귀에 경 읽기나 다름없었다.

끝내 잔뜩 짜증이 인 얼굴로 케일린 사감을 바라보았을 때였다. 케일린 사감이 갑작스레 고개를 숙여 보이자 유진의 얼굴에 어리둥절하게 변했다. 연이어 롤랜드와 바리오스도 갑작스러운 케일린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을 때, 마침 기숙사 안으로 들어와 유진의 옆으로 선 한 선생을 볼 수 있었다.

유진 역시 어디선가 언뜻 보았던 여선생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머? 여자 기숙사에 남학생이 있네요?"

살짝 간드러지며 나긋한 목소리를 내는 여성이었다. 입고 있는 초록색 드레스가 무척 잘 어울렸고 머리를 양 갈래를 땋아 제법 귀여운 인상이었다. 두 눈은 동그랗고 커다란 안경을 착용했고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는 무척 선해 보이는 여성은 분명 유진이 입학할 때 입학 심사를 보았던 메로나 선생이었다.

일어선 모습은 처음인데 키도 고작 150 간신히 넘을 것 같은 작은 키와 유난히 커다란 가슴이 도드라져 보이는 매력적인 메로나 선생은 심사장에서도 보았던 특유의 눈웃음을 그리며 유진의 일행을 향해 방긋 웃어 보이고는 케일린 사감의 앞에 섰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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