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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374화 (374/1,410)

〈 374화 〉 우리에겐 최고의 행운이 함께하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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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뜨거워지는군."

"후우.. 숨쉬기도 힘들어져요."

알렉세르의 말에 앞서 가던 유진이 힘겨워하며 쇳소리 가득한 말을 덧붙였다. 말마따나 공기가 무겁고도 더워지고 있었다. 깊숙한 지하로 갈수록 공기가 적어지는 것 마냥 숨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였다. 하물며 제대로 된 음식을 먹지도 못하고 물을 마음껏 섭취할 수 없다 보니 몸의 피로가 더욱 빨리 쌓이고 입안에 쇳가루가 담긴 것 마냥 꺼끌꺼끌하고 입안이 바싹바싹 말랐다.

심지어 이마부터 시작해 온몸이 땀으로 흥건한 것마저 수분이 빠져나가는 것에 아까울 정도였다.

그에 비해 드워프 들은 한결 같은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애초에 이런 상황이 익숙할 테고 그들이 믿는 신 스토스티안의 축복을 받아 더위에 저항이 있다 보니 그들의 행색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대신 유진을 비롯해 옆에 꼭 달라붙은 프리실라마저 슬슬 희박해지는 공기와 더불어 타는 듯한 더위에 제법 힘들어하는 눈치였다.

특히 프레이야 출신의 프리실라라면 더위에 더욱 취약했다.

"하긴 인간들은 지금 환경이 힘든 건 어쩔 수 없지. 심지어 오랜 시간 마법까지 사용해야 하니 말이야."

기름이 떨어진 랜턴을 만지작거리던 페키르 라파엘라가 조금은 미안한 감정을 내비치며 대답했다. 이렇듯 유진은 결국 랜턴 기름이 다 떨어져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 앞줄에 선 상태였다.

그러길 벌써 2시간여, 처음보다 더 깊은 지하 갱도로 내려온 상태였다. 몇 번이고 갈래 길을 정하고 처음과 비슷한 경사가 진 길을 내려왔다. 다행스럽게도 앞이 막힌 곳에 이르진 않았지만, 이 지옥과 같은 갱도는 정말 저승까지 이어진 것 마냥 처음부터 지금까지 여전한 폭과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둠의 길에 종착지는 보이지 않았다.

기진한 유진도 슬슬 한계에 이른 상태였다.

오랜 시간 걸으며 마법을 사용해 기진한 몸과 더불어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어서 그런지 금방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였다. 그렇다 보니 프리실라는 연실 안절부절못한 채 유진을 보았으나 그녀로서도 딱히 도와줄 방법이 없음에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렇듯 유진을 제외하고 아무도 마법을 할 수 없는 실정인지라 교대도 할 수 없어 유진 역시 나름 사명감을 가진 채 이들의 길을 밝히고 있었다.

그나마 빛이 있다는 것에 이들에 위안이 되기 때문이었다. 만약 빛이라도 없다면, 아무리 지하가 익숙한 드워프들이라도 사사로운 생각에 우울감을 느낄 테고 끝내 두려움에 떨 테다. 유진 역시 빛이 없는 지하에 갇힌다는 생각에 두려움이 먼저 일었으니 아주 미세한 빛이라도 빛은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했다.

그러므로 드워프들 역시 유진에게 고마운 감정과 미안한 감정이 가득했고 특히 페키르 라파엘라는 어차피 기름이 없어 불이 붙지 않은 랜턴을 애써 만지고 있는 것이었다.

한편 그 사이로 프리실라의 얼굴은 더욱 굳어져 지금이라도 마법을 배울 수 없냐고 넌지시 물었으나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마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언어의 힘, 즉 룬어 속에 정신력을 부여해야 했다. 때론 자연의 힘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지하에서 빛을 만들어내려면 자연의 힘이 아닌 내면의 정신력으로만 온전히 빛을 발하게 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못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랜 시간 연습이 필요한 일인지라 시간이 없을뿐더러 그러한 일로 괜한 힘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그녀가 배우겠다는 것을 간신히 말려야 했다. 대신 휴식할 때마다 천천히 가르쳐주겠다는 것으로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제법 오랜 시간 더 길을 갔을 때, 점점 유진이 만들어낸 빛이 그 세기가 약해질 무렵이었다. 놀랍게도 이들 앞에 하나의 철문이 가로막고 있었다.

무척 거대한 문은 양옆이 10m나 될 법한 거대한 갱도 전체를 가릴 정도의 문이었다. 쌍여닫이문인 것 같았다. 그러한 검은색 철문에는 거대한 망치를 들고 있는 드워프와 그 아래에 불꽃으로 이글거리고 있는 모루가 각각 문 앞에 그려져 있었다.

놀란 페키르를 비롯해 알렉세르까지 곧장 문앞에 이르렀다. 그러고는 철문에 새겨진 문양을 본 이들은 무척 아련하고도 반가운 얼굴을 했다. 분명 아는 문양 같았다.

"이럴 수가! 그랬어.. 여기가 굳센 망치와 불꽃 모루 일족의 갱도였구나! 그러니 여기저기 드워프의 흔적을 볼 수 있었겠지!!"

"크램 산까지 이어졌다는 소리군! 그나저나 그 멍청한 것들은 어떻게 갱도를 만들었길래 이렇게 부실하고도 숨도 쉬기 힘들 정도로 만들었을까? 제대로 된 숨구멍조차 만들지 않은 것 같군. 그만큼 급했다는 뜻일까?"

알렉세르의 말에 유아르 팬토나임이 대답했다. 유진은 그런 이들 뒤에서 지친 숨을 내쉬다가 끝내 빛을 더는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미세한 빛마저 완연하게 사그라지자 당황한 이들이 그제야 유진을 보았다. 유진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당황한 프리실라가 그의 옆에 앉아 품에 기댈 수 있게 했다.

유진이 땀을 뻘뻘 흘리며 거칠어진 숨으로 말했다.

"어휴.. 더, 더는 빛을 만들 수 없을 것 같아요. 적어도 조금 쉬고 가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러지! 고생했네."

알렉세르의 말에 유아르 팬토나임이 키득키득 웃으며 다가와 장난기 다분한 목소리를 냈다.

"이봐 애송이 고작 이 정도 일로 힘들어하면 밤일은 어떻게 하나?"

"예?!"

화들짝 놀라 소리치자 그가 연실 장난기 다분한 미소를 싱글거리며 프리실라를 흘깃 바라보자 그녀도 한껏 얼굴을 붉혔다. 다행스럽게도 프리실라는 딱히 그의 장난에 불쾌감을 느끼진 않은 것 같았다. 아무래도 한때 발레린 에페엘과 떠돌며 용병 일을 했다고 했으니 그때부터 이런 음담패설은 익히 들어온 것 같았다.

분명 용병들이 더욱 거칠고 장난기가 다분했으리라 생각했다. 용병들은 태생적으로 따분한 것을 싫어했고 장난치는 것을 좋아했다. 아무래도 매사에 잔뜩 긴장감에 시달려야 하는 생활을 하다 보니 그 긴장감을 풀기 위해 음담패설은 기본으로 여러 장난이 다분한 행위를 자주 하는지라 프리실라에게도 익숙했나 보다.

그러나 유진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다. 특히 자신의 여자를 두고 하는 장난은 더더욱....

표정을 굳힌 채 무어라 반박하려 할 찰나였다.

"유, 유진 밤일 잘해요. 무척... 잘해요.."

어색해지려는 공기 속에 프리실라가 얼굴을 붉히며 껴들었다. 그것도 터무니없는 말을... 불쾌감을 느끼던 유진의 얼굴은 붉은 홍당무처럼 변했다. 무어라 반박하려던 말을 금세 잊어버렸다. 유아르 팬토나임도 제법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껄껄거리며 웃었다. 연이어 다른 드워프들도 낄낄거리며 웃자 어느덧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온 로아나가 물었다.

"밤일이 뭐야?"

"하하! 꼬마는 아직 알 필요 없어! 킥킥!"

유아르 팬토나임이 호탕하게 웃으며 대답하자 로아나가 볼을 부풀렸다. 그러고는 유진에게 다가가 물으려 하나 유진은 괜스레 프리실라의 품에 안겨 눈을 감아버렸다. 그러며 조심스럽게 로아나를 흘깃 보았으나 안타깝게도 빛이 완전히 사그라져 로아나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로아나의 호기심 어린 질문은 가까스로 넘길 수 있을 때였다.

유심히 문을 바라보던 페키르가 짙은 어둠이 내려앉은 상태에서도 문을 조심스럽게 만져 보았고 문을 밀쳐 열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문은 빗장이 걸린 것 마냥 꼼짝을 하지 않자 슬슬 난감한지 짧게 앓는 소리를 했다.

"강제로 열고 갈 방법은 없나?"

유진과 프리실라에게 장난을 치던 유아르 팬토나임이 어느새 페키르에게 이르러 물었다. 아무래도 성격이 급한 그는 벌써 다른 일족의 터전에 가보고 싶어. 좀이 쑤시는 눈치였다. 페키르 역시 그러고 싶어하나 굳게 닫힌 문은 애석하게도 열리지 않았다. 혹여나 무언가 다른 방식으로 열리는 문인가 싶어 꼼꼼하게 살폈으나 별다른 특이점이 없는 문은 여전히 꼼짝을 하지 않았다.

결국 중구난방으로 자란 턱수염을 매만지던 페키르가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이 녀석들 얼마나 문을 굳게 잠갔는지 꿈쩍조차 안 해."

"방법이 없나. 그럼 힘으로라도 밀어보는 건 어떤가?"

유아르 팬토나임의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그 순간 모두의 시선이 너무나 당연하게도 오르간 채피르에게 닿았다. 마침 그가 문앞에 이르렀다. 그가 조심스럽게 철문을 매만지며 조금은 걱정 어린 모습으로 물었다.

"무너지지 않을까? 지반이며 천장이 많이 약해진 상태인데."

지반과 천장이 약해진 갱도는 문 하나를 열 때에도 조심해야 했다. 하물며 빗장을 잠근 것은 확실히 들여보내고 싶지는 않다는 뜻이었고 억지로 힘을 줘 들어가려고 하면 자칫 갖은 함정을 비롯해 혹여나 균형을 잃고 문이 무너지면서 천장이 무너질 위험도 있기 때문이었다. 오르간 체피르는 그러한 점을 걱정하며 물은 것 같다.

그의 말마따나 다른 이들도 고민을 이어갔으나 마침내 알렉세르가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어차피 이러고 있을 순 없어 빗장은 안에서 열어주지 않는 이상 열리지 않으니까. 강제로 열고 들어가자. 아니면 되돌아가던가."

힐끔 여태 왔던 길을 바라보던 오르간이 뺨을 긁적이며 말했다.

"돌아가고 싶진 않아."

"그럼 억지로 열고 들어가는 수밖에 없어. 부탁하네 오르간."

돌아가라면 다시 한참을 뒤돌아가야만 했다. 심지어 유진은 더는 빛을 내기도 힘들었고 무엇보다 물이 다 떨어지고 음식도 없으니 여기서 굶어 죽을지도 몰랐다. 그러한 점이 자칫 억지로 문을 열어 내려앉을 토사보다 더 두렵게 다가왔는지 더는 알렉세르의 말에 반박하는 이가 없었다.

결국, 여전히 꺼림칙함이 남은 얼굴로 결정을 끝낸 오르간 체피르가 문앞에 이르렀다. 다른 이들은 조금은 멀찌감치 뒤로 물러섰고 지친 유진 역시 프리실라의 부축을 받고 뒤로 물러섰다. 그 순간 오르간 체피르의 두툼한 팔이 쌍여닫이로 된 문의 양쪽에 얹혔다.

이어 짧게 숨을 내쉰 그가 이내 힘을 주기 시작했다.

쿠르릉! 거친 굉음이 갱도를 울렸다. 땅속에서 천둥이라도 치는 것 마냥 울리기 시작했고 천장에서는 흙더미가 우수수 떨어지고 뭉텅이로 떨어지는 곳도 있었다. 그럼에도 오르간 체피르는 힘을 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이미 양팔에는 울긋불긋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고 근육도 한껏 부풀어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마침 그가 디딘 바닥은 점점 움푹 파이기 시작했다.

"끄으윽!"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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