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2화 〉 드워프는 드워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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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억.. 허억."
"하아... 하아.."
거친 숨소리가 짙게 내려앉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프리실라와 유진이 몸을 피신한 곳은 복도를 지나고 정신없이 층계를 올라 위층 복도 중앙에 미세하게 열린 방안에 이르러 몸을 숨겼다. 다행스럽게도 불길이 휘감긴 기형 괴수는 눈마저 타버렸는지 자신을 못 보고 지나친 것 같았다. 역한 그슬림 냄새와 더불어 누린내를 풀풀 품고 달려가던 괴수는 끝내 그들이 있는 방안을 지나치고 기괴한 울음을 토해내며 엘리사와 로실라 뒤꽁무니만 쫓았다.
아마 얼마 가지 않아 엘리사와 로실라마저 사라지면 그는 극심한 혼란에 일 테고 불길에 뒤덮여 그을린 몸은 곧 다른 기형 괴수를 부를 것이다. 그리고 끝내 그들의 먹이가 되는 초라한 최후를 맞이하리라 생각했다.
그러한 결론이 내려졌을 때 유진은 안도의 한숨이 일었다. 적어도 자신에게 피해가 갈 일은 아니니 말이다.
몇 차례 숨을 헐떡이던 유진이 괴수의 기척이 사라짐을 확인하고 자리에 일어섰다. 프리실라도 따라 일어서자 둘의 시선이 겹치고 이내 방안 전체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손님을 위한 객실이었을까? 화려하게 꾸며진 방은 30평은 족히 넘을 것 같은 방이었다. 여전히 시간이 멈춘 성안인 만큼 방안도 옛것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제법 연식이 있어 보이는 고풍스러운 가구며 붉은색 이불이 정갈하게 깔린 침대가 보였고 침대 프레임 모서리 끝 부분에 달린 기둥에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잇는 실크로 된 커튼이 달려 화려함을 더하고 있었다.
그 외에도 제법 고급진 원목으로 꾸며진 가구는 옷장이며 화장대며 거울 마지막으로 욕실로 통하는 문까지 있을 것은 다 갖춘 방이었다. 침대 옆에는 제법 커다란 창문에 암막 커튼이 반쯤 열려 그 사이로 달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놀라웠다. 바깥과 지금 이곳은 전혀 딴판인 세상 같았다. 이리도 늦은 시각, 온전한 침대 위에 잠들었다가 일어나면 다시 환한 태양이 내리쬐는 부흥기 때의 갈라도가 다시 시작될 것처럼 이곳은 어느 한 곳 흐트러짐이 없이 잘 정돈된 상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심지어 먼지 한 톨조차 없었다.
유진의 시선이 주위를 훑었고 자연스레 침대 곁에 이르렀다. 걸터 앉으니 폭신함도 그대로였다. 제법 비싼 솜털을 넣은 것 같았다. 프리실라도 옆에 앉자 폭신함에 유진처럼 놀란 기색을 내보이며 말했다.
"전혀 다른 세상 같아."
아무래도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유진도 그녀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잠시 도망치며 긴장하고 기진한 몸에 안식을 주려 침대에 털썩 누워 보았다. 안락함이 온몸을 휘감았고 여전히 쿵쿵 뛰던 심장도 살며시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이불도 방금 막 세탁한 것 마냥 깨끗했다. 그 사이로 은은한 향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히려 자신의 몸에서 또는 프리실라 몸에서 풍기는 시큼한 땀 냄새가 미안해질 정도였다. 마침 프리실라도 자신을 따라 옆자리에 털썩 누웠다. 그러며 같은 안락함에 살며시 미소를 짓고는 긴장함에 뻐근한 팔을 주무르며 말했다.
"이대로 잠들면 내일 아침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글쎄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 모든 일이 꿈이었으면 좋겠네요. 그저 하나의 악몽이요."
프리실라의 시선이 힐끔 유진에게 닿았다. 유진의 시선도 프리실라에게 닿았다. 잠시 서로의 눈동자가 마주했다. 유진의 에메랄드를 닮은 눈빛은 어둠 속에 그림자가 져 퇴색되어 있었다. 프리실라 역시 살짝 빛을 잃었으나 그 속에 초롱초롱함은 여전했다. 마침 프리실라의 손길이 뺨을 쓸어내리더니 그녀의 고운 목소리가 이어졌다.
목소리와 손길에 다정함이 실려 있었다.
"이제 이런 짓도 익숙해졌나 봐."
"왜요?"
고개를 갸웃하며 되묻자 그녀의 시선이 다시금 천장에 이른 채 말했다. 천장에도 솜씨 좋은 화가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그림은 확실히 예스러웠다. 빨가벗은 아기 천사들이 호숫가에 목욕하는 여인을 훔쳐 보며 하나의 화살을 쏘아내려는 작품이었는데 요즘에는 쉬이 볼 수 없는 풍의 그림이었다. 그러한 그림을 보며 프리실라가 입술을 달싹였다.
"이러한 상황에도 태평하게 네가 내 옆에 자고 일어나며 얼마나 좋을까 상상을 했어. 지금처럼 같은 침대에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곧장 네가 보이는 거야. 생각만으로도 행복할 거야."
"아... 하하.."
머쓱한 얼굴로 유진의 시선이 그녀에게서 떨어졌다.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매일 같이 너와 함께 자고... 일어나고. 같이 씻고 밥도 먹고 때론 같이 훈련도 하는 거지.. 그러다 저녁이 되면 다시 같이 자고."
조심스럽게 그녀의 손길이 유진의 손에 닿았고 이내 움켜쥐었다. 떨림이 고스란히 느껴졌고 그 속에 간절한 소망이 전해졌다. 유진의 얼굴에 씁쓸함이 맺혔다.
프리실라가 품고 있는 소박한 소원마저 너무나 간절하게 바랄 정도로 이들의 미래는 온통 어둠으로 물들어 있었다. 감히 다가서지 못할 정도로 지독한 어둠은 모든 것을 앗아가고 사소한 것마저 힘겹게 하고 끝내 앗아간 채 막막하고도 무거운 절망이란 여운만을 덩그러니 남겼다.
괜스레 침묵이 흘렀다. 침묵은 무척 무거웠다. 목 언저리가 까끌까끌한 것 마냥 무언가 말하고 싶지만, 쉬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거워진 분위기 속에 그 누구도 용기를 내기 힘들었다. 끝내 깊은 한숨과 함께 유진이 먼저 자리에 일어섰다.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가야 했다. 어서 로아나를 찾고 다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다가도 시무룩함이 일었다. 돌아간다면, 어디로 돌아가야 할지..
간신히 낸 용기에 우울감으로 물들 무렵 프리실라도 자리에 일어섰다. 그러며 말했다.
"가자.. 가서 로아나를 데려와야지."
"그래요."
다행이었다. 우울감과 함께 다시 무기력해질 마음에 그녀의 목소리가 힘이 되었다. 이럴수록 이 지독한 지옥 속에서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이 언제나 다행으로 다가왔다. 만에 하나 그녀가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버틸 수 없으리라 생각했다.
걸음의 힘이 실렸다. 잃어가던 희망이 다시 채워진 기분 속에 문앞에 이르던 유진이 힐끔 프리실라를 보았다.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할 무렵 피식 웃고는 그녀 앞에 서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고마워요. 누나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진심에 우러러 나오는 감사함에 당황하고도 부끄러워하는 그녀가 눈을 껌뻑였다. 유진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조금 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입술에 살며시 입술을 포갰다. 그리고 떨어졌을 무렵 그녀의 얼굴은 맛있게 익은 붉은 과일 마냥 새빨갛게 익어 당황한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그런 어벙한 모습에 피식 웃어 보인 유진이 말을 이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에요? 어서 가요. 로아나를 찾아야지요?"
"어.. 응... 그, 그래야지.."
여전히 멍한 얼굴로 대답하는 그녀를 보며 유진이 쿡쿡 웃고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어젖혔다.
아쉽지만, 잠깐의 휴식을 끝내고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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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늘어진 복도를 걸었다. 조금 전보다 더욱 조심조심했고 엘리사에게 부탁해 먼저 정찰을 보냈다. 이럴 때마다 요정의 중요성이 어찌나 큰지, 매번 느낀다. 너무나 다행이고 고마웠다. 물론 그러한 마음이 전해질 때마다 로실라는 새색시 마냥 부끄러워했고 엘리사는 더욱 의기양양해지긴 하나 그런 둘은 자부심을 느껴도 될 자격이 있었다.
그렇게 엘리사와 로실라 덕에 몇몇 괴수들을 피하며 나아가길 어느덧 3층 복도에 이르렀다. 다행스럽게도 중앙 본궁 건물은 어느 복도로도 길이 이어져 있었다.
본궁에 이르렀을 때에 훨씬 화려했고 더욱 웅장함을 느꼈다. 드리워진 복도에는 붉은 카펫이 바닥에 깔려 대리석 바닥을 가리고 있었다. 하물며 복도 구석진 곳에도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다. 그러며 보이는 장식품이며 미술 작품을 볼 때마다 별궁보다 훨씬 화려하고 고풍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러한 곳에 오히려 유진과 프리실라의 더러운 발자국이 깨끗한 복도를 더럽히는 것 같아 미안할 정도였다. 하물며 본궁의 건물은 멀리서 보았을 때 별궁과 그 크기와 높이가 비슷하게 보였거늘 안에 들어오니 본궁은 층수가 더 높았으며 복도를 비롯해 힐끔 본 방안의 크기도 더욱 커다랗다. 하물며 가구 역시 현대에 이르러도 비싸게 돈을 주고 거래가 될 정도로 고급진 가구들이 즐비했다.
그러함을 느끼며 이들의 걸음은 자연스레 맨 위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보통 알현실은 가장 위층에 있음이 통상적이었기에 둘의 걸음은 자연스럽게 맨 위층을 목표로 삼은 상태였다. 본궁 3층 복도에 왼쪽 층계에 이르렀다. 유진은 먼저 엘리사를 위로 보냈고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는 조심스럽게 위로 올랐다.
계단에도 카펫이 깔려 그 아래에는 대리석 바닥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며 새워진 난간에는 상아색 원목으로 된 나무 난간으로 금박이 장식되어 그 끝에는 태양이 조각되어 있었다. 이런 세세한 것에서도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니 확실히 왕이 기거하는 성이라 할 수 있었다.
4층에 이르렀다. 그러나 더는 위로 올라갈 계단은 없었다. 아무래도 4층부터 알현실이 있을 층계는 중앙 계단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다.
분명 한 층 전체를 알현실로 만드는 경향이 있을 테니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단순한 구성이었다. 유진 역시 4층 복도로 오르는 층계에 잠시 멈춰 섰다. 그러고는 이제는 당연하게도 엘리사와 로실라에게 정찰을 부탁하자 둘의 자그마한 몸으로 4층 층계를 넘어 꺾어지는 복도에 힐끔 고개를 내밀었다.
복도를 확인한 엘리사가 인상을 찡그린 채 다가왔다. 그러며 말했다.
"누군가 있어."
"괴수가 있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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