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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809화 (809/1,410)

〈 809화 〉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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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하며 유진의 시선이 다시금 정에게 닿았다. 마침 그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제법 아팠을까? 쓰라린 목을 손으로 쓸어내린다. 목 부위가 퍼렇게 부어 있었다. 다시금 검을 움켜쥐며 손을 뻗었다. 분노로 치솟는 눈빛에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의 눈빛에는 회귀 전의 기억을 자극하는 향수를 느낄 수 있었던 유진은 여전히 웃는 낯으로 창을 강하게 꼬나쥐며 말했다.

"쿤을 보면 한 마리의 야수처럼 보이지.. 그런데 넌... 고작 새끼고양이보다 못하네? 어찌 그래서 염이라도 넘어설 수 있겠어?"

두 번째 역린은 염이었다. 암살 부대의 이 인자, 쿤이 죽고 아들 정이 아닌 염이 암살부대의 대장이 되었을 때의 정은 거진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동시에 쏟아지는 치욕 속에 폭발한 열등감은 그를 괴물로 만들었으나 그만큼 나약하게 했다.

만인이 그를 비웃었다. 쿤의 아들이 아닌 염이 부대의 대장이 되었을 때, 정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 결정에 반박하는 이 없었다. 오히려 더욱 환영하는 듯했다. 나아가 염이 아니라면 그 누구도 될 수 없다는 말까지 오갔다.

교단에서도 당연하게 허락했다. 교단 내에 간부들 역시 만장일치로 허락했다. 이유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당연했다. 실력이다. 나아가 재능이며 동료에게 얻은 믿음이자 신위였다.

염은 쿤의 또 다른 제자이기도 했다. 심지어 교단에서는 정보다 더 아들처럼 대해 배다른 아들이 아닌가 하는 공공연한 소문이 퍼지기도 했었다. 그만큼 쿤이 헬리글 교관이 되기 전 암살 부대에서 정이 아닌 염을 친아들 마냥 옆에서 키웠다. 그리고 당당하게 이 인자 자리를 차지하게 된 사내였다. 그런 사내가 정의 또 다른 역린이었다. 어찌 보면 그의 열등감을 가장 자극하게 된 계기가 염의 존재이지 않을까 유진은 생각했다.

이어 세 번째 역린은 자신이었으나 아직은 나아가 앞으로도 없을 역린이었다.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채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아까보다 더 분노한 검은 이제 자그마한 생채기에 멈추지 않았다. 유진은 그를 놀리면서도 연실 거리를 벌렸고 창의 장점을 살렸다. 이미 반미치광이처럼 변한 정은 암살자답지 않게 무식하게 밀어치기 시작했다. 하긴 이렇기에 암살 부대에 재능이 없다는 말이 오가는 것이다.

그는 암살자의 재능이 없었다. 특히 성정이 불과 같아 차분해야 할 때 차분하지 못했다. 이성적인 생각보다는 감정적인 본능에 따르는 그는 암살단보다는 교단의 전투 부대에 어울렸다. 그렇기에 교단에서도 정은 암살부대가 아닌 전투 부대, 즉 최전선에 싸우는 군부를 추천하기도 했었다.

물론 열등감에 휩싸인 그는 부대를 옮기는 것조차 치욕으로 받아들였다. 교단의 제안에 단칼에 거절했고 고집스럽게 암살부대에 남게 되었으나 그러한 고집이 결국, 그의 성장을 방해하게 된 것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의 검은 암살자로 하기에는 육중하고 요란스럽게 다가와 창날을 쳐냈다. 그러며 끊임없이 수많은 창날의 품에 무모하게 뛰어들며 분노를 토해냈다. 성난 황소를 상대하는 건 언제나 쉬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는 별다른 방비도 없다. 그렇다 보니 무자비한 창날은 그의 옆구리를 베고 어깨를 찢어발겼다.

간신히 급소는 피해 가고는 했으나 그것은 유진이 바라는 일이었다. 나아가 즐기는 방법이었다. 그는 함정에 빠진 것이었다.

전혀 모르고 있었다. 점점 늘어가는 생채기에 움직임이 굼떠지고 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나아가 피 칠갑을 한 몸은 전부 그의 피인지라 안색이 창백해져 있음을 말이다. 그 순간, 그의 신경질적인 검이 창날을 강하게 쳐냈다. 창날은 그 힘에 반발해 하늘 높이 떠올랐을 때, 그가 기회라고 여겼는지 다시 한 번 축이 된 발을 강하게 내디뎌 몸을 날렸다.

창은 아직 회수하지 못한 상황에 성난 황소의 뿔처럼 검이 심장을 노리고 다가왔다. 그때 정은 보았다. 싱글벙글 웃고 있는 유진의 모습을... 웃음은 장난기 많은 악귀처럼 조소를 내비치고는 정은 뒤늦게 함정이라는 것을 깨달았으나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이미 균형은 앞으로 쏘아졌고 성난 황소의 뿔은 눈이 멀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분노해 마구잡이로 쏘아진 검 따위 손쉽게 피했다. 동시에 유진의 손이 그의 손목을 강타했고 놓친 검을 빼앗은 상태였다. 동시에 유진의 오른쪽 다리가 축이 되는 그의 다리를 툭 걷어차 균형을 일게 했다. 이내 역수로 쥔 정의 검을 무자비하게 휘둘렀다. 치명상을 입혔다. 정의 가슴팍에 길게 상처를 낸 것이다.

"악!!"

짤막한 비명과 함께 피를 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이러한 과정이 고작 5초도 안 돼 일어났다. 나아가 슈리엘 가문의 검술이기도 했다. 적절한 체술을 섞어 상대의 균형을 무너트리는 기술, 힘을 역이용하며 흘려내는 기술이 유진의 손에서 멋들어지게 발현했고 끝끝내 정에게 치욕을 안겼다. 격렬한 고통 속에 충격과 치욕의 경악이 담긴 정의 시선이 다시 유진에 이르렀다.

어느덧 빗줄기를 가르고 손에 쥔 검이 하늘 높이 들려 있었다. 그 사이로 벼락이 쳤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울부짖음 아래에 내려치는 벼락은 근처에 쏘아져 불길이 치솟게 했다. 그 사이로 절망과 두려움으로 물든 정의 시선이 유진에게 닿았다.

정은 똑똑히 보았다. 무덤덤한 눈, 오랜 살인을 해온 눈,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는 아무리 적이라 할지라도 머뭇거림이 있다. 그러한 눈빛에는 불안함이 담긴다. 그것이 살인을 즐기는 자와 그러지 못한 자의 차이였다. 그런데 지금 보이는 유진의 눈은 살인을 즐기는 자였다. 아니 그것을 넘어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무덤덤하다는 뜻이었다.

마치 암살자와 같다. 혹은 수많은 전쟁을 경험한 전쟁 영웅이자 혐오와 실의에 빠진 군인과 같다. 정은 저 눈을 보며 아버지를 떠올렸다. 쿤의 눈빛이 저러했다. 누군가를 죽이는 것에 있어 무자비함을 보일 때마다 입은 웃고 있으나 차갑게 식어 버린 눈은 공허함을 담아 살인의 무덤덤해지면 괴물이 된다. 정은 똑같은 공포를 느꼈다. 나아가 거대한 벽을 느꼈다. 열등감이 치솟았으나 불에 덴 것 같은 화끈거리는 고통에 어떠한 방비도, 저항도 할 수 없다.

무력감이 정을 짓눌렀을 때, 마침내 유진의 검이 그의 심장을 쏘아지려던 찰나였다. 다른 암살자가 비수를 날려 검을 막아냈다.

불똥이 튀었고 유진의 검이 홱 돌아갔다. 검 끝이 정의 뺨을 길게 베며 지나갔다. 나아가 유진의 손아귀에 전기가 흐르는 것 마냥 얼얼함이 남아 신음을 토해내던 순간, 검은 실루엣은 한달음에 바로 지근거리까지 이르렀다. 실루엣은 곧 유진의 심장을 향해 검을 찔러넣으려 했다.

소스라치게 놀란 유진이 힘겹게 피해냈으나 어쩔 수 없이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그러며 곧장 튕기듯 몸을 일으켜 검을 꼬나쥔 순간, 암살자는 맹렬히 검을 뻗어 멈추지 않고 연거푸 검을 휘둘렀다.

헛바람을 삼키며 막아내는 것에 급급했다. 사내는 정과 차원이 달랐다. 빨랐고 효율적이었으며 냉정했다. 무리하지 않으며 반격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침내 유진은 암살자의 눈을 볼 수 있었다. 눈빛만 봐도 익히 알 수 있었다. 아니 반쯤 탄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정의 역린, 나아가 차기 암살단의 대장이 될 염이었다. 어찌 보면 쿤의 양아들이라 할 수 있는 그가 칼 하나는 어디다 버리고 왔는지 남은 하나로 검을 휘둘렀다.

얼굴이 반쯤 타 지독한 고통 속에서도 무심하게 뜬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

다시금 두 사내의 검이 한데 어우러질 무렵 난장판이 된 정작은 점점 더 지옥도가 되려 했다. 그러며 정신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는 쉬이 끊이질 않을 무렵이었다. 갑작스레 검은 하늘에 이질적인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갑작스레 변한 공기가 먹먹해짐을 느꼈고 알 수 없는 쓰라림이 살결을 타고 전해졌다. 마치 전율이 흐르는 듯 오싹했다.

숨을 쉬기 힘들었다. 더욱이 갑작스레 빗방울 사이 미세한 전류와 진동이 느껴지며 살갗을 쓰라리게 했던 순간이었다.

주변에 자연적이라고 할 수 없는 벼락이 수차례 내려치기 시작했다.

벼락은 곳 전장 전체를 아우르기 시작하자 마치 허락하지 않은 전장에 천벌이 내리는 것 같았다. 모두의 행동이 멈추게 되었다. 그러며 이질적인 기운을 따라 시선을 돌린 순간, 요란한 말발굽 사이 뒤편에서 카밀의 지원군이 오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선두에 서서 백마를 탄 여인의 모습이 어둠 속에서도 보였다.

여인의 주변에 푸른 마법진이 그녀를 돋보이게 해주고 있었다. 그녀야말로 번개에서 강림한 전장의 중재자 나아가 전장의 종식할 천사로 보였다. 카밀의 병사들 사이에 의기양양한 환호성이 터지기 시작하자 암살자들의 표정이 더욱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갑작스러운 염의 공격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던 유진은 안도하며 마침내 이 지긋지긋한 싸움에 종지부가 찍어지리라 생각했다. 이어 신경질적으로 염의 검을 쳐냈을 때, 전장은 금세 고요함을 되찾았다. 암살자들은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이질적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먹구름 속에 전류가 지글지글 사납게 울부짖으며 다음 목표를 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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