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48화 〉 겁쟁이
* * *
이어서 두 번째로는 서신에도 나왔다시피 교단의 문제였다. 도통 정체를 알 수 없었던 교단의 추적에 난항이었던 상황이었다. 트루먼과 궁전 비밀리 진행되고 있는 교단의 추적은 나름 유진의 도움 덕에 스쿨라이 남작령을 시작으로 미들 리버의 본격 정화 작업과 함께 교단을 향한 추적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으나 다시금 그들은 홀연하게 종적을 감춘 상태였다.
그들의 행방을 보았다는 소식은 서쪽 퍼칸데 지역에서 뚝 끊겨 있었다. 이러한 추적을 제외하고도 간혹 간첩으로 보이는 이들을 붙잡는다 한들, 금제의 저주에 별다른 정보를 알 수 없었던 실정이었다. 그나마 트루먼이 저주를 풀 마법을 찾아보고는 있었지만, 그 역시 아직은 확실치 않은 상태였다.
특히 금제의 저주는 평범한 마법이 아닌 고위급 주문으로 여러 상호작용은 마치 폭탄을 해체하는 작업만큼 어려웠고 조금만 실수가 있어도 저주에 당사자가 죽어버려 마법도 종적을 감추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심지어 당사자들 역시 잡히는 족족 스스로 목숨을 끊기에 많이 애를 먹는 상황이기도 해 제대로 정보를 알아낼 수 없었다.
결국 시전자를 제외하고는 금제를 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게 아무리 대마법사라는 호칭을 가진 트루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렇듯 어디에 꼭꼭 숨었는지 보이지 않던 이들이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것도 하이란 지역을 종횡무진 활동했다는 점이고 하필 유진과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 다이크 슈리엘의 분노와 초조함을 일게 했다. 오래전 유진의 하체를 못 쓰게 만든 것도 모자라 다시금 저택의 담벼락을 넘은 것처럼 이번에도 또 유진을 노려와 목숨을 위태롭게 했다는 것에 도통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이것은 엄연히 슈리엘을 향한 도전이었다. 슈리엘 가문의 가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일이며. 반드시 단죄를 내려야만 했다. 그런데 새로운 정보의 위치가 하필 북부 프레이아에서도 셀리엘 저택이라는 점이 분노를 차갑게 식히며 복잡하게 만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기사와 병사를 일으켜도 모자랐다. 물론 궁전에 허가 없이 함부로 병사를 일으키는 것은 크나큰 중죄였지만, 이러한 사태면 분명 황실, 나아가 중앙 귀족계서도 승인해주리라 생각했다.
더욱이 그러한 증인은 국경 도시를 다스리는 발룬티어 카밀 백작이 보증인이 되어 줄 것이기에 걱정은 없었다. 그만큼 후계자가 세 번이나 암살 시도를 당했다는 사실은 제법 큰 문제였다. 심지어 반신불수가 될 뻔했다. 슈리엘 저택을 제집 안방을 드나들듯 담벼락을 넘었다. 유진은 정말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암살단에 죽을 위기에 처했다. 심지어 하이란에서 말이다. 기사단을 일으켜 병사를 모집하는 명분은 충분히 만들어져 있었다.
깡그리 쓸어버릴 명분은 충분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은 하필 위치가 프레이야였다. 하이란의 황실과 중앙 귀족계의 승인이 떨어진다 한들 감히 타국에 병사를 일으킬 순 없는 노릇이다. 그것은 예외적인 문제였다.
굳이 복잡하게 외교적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유진도 그러함을 알기에 어쩔 수 없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부른 것이 분명했다. 서신의 나온 것처럼 다이크 슈리엘 자신은 그럴 수 없는 위치이자 자리에 앉아 있었기에 그나마 운신에 자유를 가진 지루드 슈리엘 즉 할아버지를 부른 것이었다. 마침 피로감에 연실 눈매를 쓸어내리던 지루드 슈리엘이 마저 말을 덧붙였다.
"그렇지 않아도 이번 일을 트루먼과 상의하기도 했어. 트루먼 역시 내가 북부로 떠나는 것에 있어서는 반대하는 견해를 보였지만, 트루먼 역시 곳곳에 손을 뻗쳐 오는 교단의 영향력에 조금은 불안한 기색이더군 그렇기에 딱히 말리지 않았어. 게다가 애초에 내가 북부로 갈 거라 이미 예상한 것 같더군,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냐?"
다이크가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습니다. 유진의 부탁이기도 했고 아버지는 예전부터 제가 물려받지 못한 호승심을 가지고 있었지요. 미지의 적에 제법 관심이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오랜 평화가 좀이 쑤시다고 자주 말씀하시고는 했지 않습니까? 매번 새로운 적수가 나타나길 바라고 있었을 테니 말이지요."
직설적인 다이크의 목소리에 엷게 퉁명스러움이 걸쳐 있자 지루드가 껄껄 웃었다. 확실히 아버지와 아들 아니랄까 서로 속내를 완벽하게 간파하고 있었다. 나아가 아무리 말린다 할지라도 지루드 슈리엘이 북부로 향하는 것은 기정사실이 돼 있음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지루드가 멋대로 출발하지 않고 저택으로 돌아와 상의하는 건 그나마 예의가 분명했고 나아가 안레사 즉, 다이크 슈리엘의 어머니를 저택에 데려다 놓기 위함이기도 했다.
한숨을 내쉬던 다이크 슈리엘은 다시금 손에 들린 서신을 곱게 접어 봉투에 집어넣은 채 말했다.
"일단은 잘 알겠습니다. 어머니는 저택에서 잘 지키고 있을 테니.. 부디 아버지도 몸 성히 다녀오십시오. 그리고 부디 유진을 지켜주세요."
"오냐.. 그러마! 아차 그나저나 황비 아리아가 이상하리만큼 유진에게 관심이 있더구나? 궁전에서도 내게 몇 번이고 유진에 대해 물어보는 것이 참으로 이상했어. 필요 이상의 관심이라고 할까?"
"저한테도 그러했습니다. 노골적이진 않지만, 언뜻 유진의 대해서 무척 궁금해하던 눈치였습니다."
둘 사이에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나 금세 지루드가 껄껄 웃으며 애써 넘겼다. 지금 그런 사사로운 의문이 복잡해진 둘의 머릿속에 들어찰 공간이 없었다. 둘은 다시금 프레이아 나아가 교단에 관해 진중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그리고 마침내 지루드 슈리엘이 북부로 향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 무렵 유진은 사라 드 셀리엘을 만나고 있었다.
//////
겁쟁이
"프리실라가 방에서 두문불출하고 있어요. 당신 때문인가요?"
불만과 분노로 점철된 날 선 목소리에는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북부의 한기만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러므로 저택 내부에도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 같다. 문득 지금 창밖에서도 눈보라가 치고 있음을 보았다. 지긋지긋한 눈보라는 며칠째 내리고 있었고 어느덧 세상을 새하얗게 물들이고 있었다. 더욱이 급격하게 내려간 온도는 북쪽 끝 프리실라 산맥 너머의 빙해가 가득한 지역에 이른 것 같기도 했다.
프릴 산맥부터 빙해까지 눈의 드래곤의 둥지라는 전설이 있었다. 고룡이 된 눈의 드래곤이 그곳에 있으므로 지금처럼 말도 안 되는 한파가 북부 프레이야를 전부 뒤덮고 있는 이유라고도 전해졌다. 더욱이 지금 부는 바람은 잠에서 깨어난 드래곤의 숨결이자 날갯짓 때문이라고도 했으며 그러한 드래곤의 살결이 닿는 곳마다 서리가 일고 얼음이 얼어붙는다고 전해졌다.
지금처럼 매해 겨울이 되는 날, 잠에서 깨어난 드래곤이 오랜 시간 동면에 이르렀던 그가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숨을 토해내며 날개를 펄럭이기에 한파가 시작된다고 한다. 그러며 다시금 동면에 이를 수 있게 빙해를 맴돌며 먹이를 먹고 있기에 한파가 이어진다는 전설이 있었다.
만에 하나 한파가 평년보다 길어지면, 그해 드래곤이 제대로 먹이를 구하지 못했다는 뜻인지라 몇몇 도시에서는 드래곤의 허기와 노여움을 달래줄 제사를 지낸다고도 했다.
지금이 딱 그러한 시기였다. 바깥의 한파와 지긋지긋한 눈보라는 최고조에 달한 상태였다. 그러한 눈보라가 지금 유진과 사라 드 셀리엘 사이에서도 거칠게 휘몰아치는 듯했다. 심장을 도려낼 것처럼 무자비한 서늘함 속에 들끓는 노골적인 분노는 굳이 숨기지 않았다. 오히려 더 직접적으로 쏘아내며 이유를 묻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진이 만들어낸 한기조차 그녀의 곁에 가면 한낱 미풍에 불과하다는 듯 혹은 산들바람에 불과한 것 마냥 태연하게 받아치고 있었다.
한낱 어린애 장난으로 여기는 듯했다.
그녀는 태연하게 탁상에 앉자 책을 읽고 있었다. 그 앞에 따듯한 차가 한잔 놓여 있었고 다과가 놓여 있었다. 그녀는 평소와 다르게 안경을 착용하며 제법 지적인 모습을 담고 있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착용하는 안경인 듯했다. 그녀는 평소보다 더 단아한 자세였고 지적인 자세로 평소보다 더 오만하고도 도도하게 보였다. 그런 그녀는 유진의 무례를 담은 행동이자 물음, 나아가 쏘아내는 한기에 개의치 않고 연실 책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다.
빼곡하게 늘어진 글씨에 간간이 지역 역사에 관한 글귀가 서술돼 있었고 사라 드 셀리엘은 유진의 날카로운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찻잔을 홀짝이며 책장을 넘겼다.
적막이 제법 오랜 시간 이어졌다. 바깥에 창문이 덜컹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아래로 차를 홀짝이는 소리와 간간이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유진은 그녀가 일부러 자신을 무시한다고 생각했다. 더욱 짜증이 일었다. 며칠째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는 프리실라가 걱정돼 미칠 것 같았다. 몇 번이고 만나 얘기라도 해달라고 호소하며 문밖에서 애원했으나 그녀는 차마 이유조차 밝히지 않고서는 조금 더 얼굴을 보여주지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