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5화 〉 두려움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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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여성이 강한 남성이라면 누구든 몸을 섞었고 남자들은 여성을 얻기 위해 서로 죽이고 죽이며 강함을 증명했다고도 유명한 부족으로 알려진 바가 많은 부족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마지막 부족장이었던 바라반이 이끄는 부족으로 본래의 명칭은 제대로 나온 바가 없었다. 그들은 특히 악마 숭배의 부족으로 유명했다.
인신공희의 시초가 되는 부족이었으며 그것도 타 부족의 아이를 훔쳐 제물로 바치기에 서슴없다고 한다. 심지어 식인한다는 설도 있었고 부족 자체가 순혈주의에 폐쇄적인지라 근친을 즐겨 외형이 기괴하다는 말도 많았다.
그들 역시 싸움을 좋아했고 강인함을 증명하기를 좋아했으니 역사서에는 피 묻은 곡검 부족과 자주 영토 혹은 식량 전쟁을 벌이고는 했다. 다른 곳에서는 둘의 영토가 딱 맞붇혀 있었으나 서로 추구하는 바가 전혀 다르기에 운명처럼 서로 물고 뜯는 원수지간이란 표현을 사용한 역사서도 몇몇 있었다.
이어 네 번째 부족이 까마귀 그림자 부족으로 프레이야와 비등한 부족이었다. 주로 저주에 관련한 마녀가 부족을 이끌고 있다고 전해졌다. 이어 다섯 번째는 백곰의 발 부족 여섯 번째는 백호의 발 부족 마지막 일곱 번째는 눈을 달리는 말 부족이 있었으나 그들은 사라 드 셀리엘의 흥미를 끌어내지는 못했다.
사라 드 셀리엘의 시선은 네 번째 마지막 족장이었던 카라카의 성을 가진 까마귀 그림자의 부족에 흥미를 느끼며 눈을 빛냈다. 네 번째 부족은 오직 여성만이 그들의 주술사가 될 수 있다며 역사서에 적혀 있었으며 그들이 자주 사용하는 주술을 간략하게 나와 있기도 했다. 더욱이 여섯 부족이 마침내 첫 번째 부족의 힘 앞에 굴복하고 무릎을 꿇어 강제적 합병을 당하고 난 뒤에도 끝까지 홀로 저항하며 맞서 싸운 까마귀 그림자의 부족에 대해서도 가장 많은 역사적 자료가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첫 번째 부족이었던 달과 별 그리고 밤의 부족과 까마귀 그림자 부족 역시 원수지간이라 할 수 있었다.
이렇듯 북부의 역사는 대부분 피로 이루어진 역사로서 수많은 피가 흘렀고 약탈이 당연시되었던 미개한 야만인들의 땅이었다. 그러므로 수많은 부족이 무너지고 태어나길 반복했으나 그럼에도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진 별과 달 그리고 밤의 부족과 까마귀 그림자의 부족이었으니 가장 역사적 자료가 많은 건 어찌 보면 당연했고 당연히 서로 원수지간이 되는 것도 하늘의 운명일지도 몰랐다.
그만큼 북부라는 혹한의 지역이과 동시에 한정된 자원을 얻기 위해서는 서로 싸워야만 얻을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렇게 결국, 까마귀 그림자 부족 역시 강제적 합병을 달성한 별과 달 그리고 밤의 부족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약탈당하며 끝끝내 합병당했다. 피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었으나 여러 역사서는 말했다. 그들의 고집을 잘 알기에 얼은 여전히 남아 있으리라는 얘기가 있다. 언제고 또는 어딘가에서 오랜 세월 차곡차곡 쌓인 복수의 칼날은 세대가 변한다 할지라도 여지없이 갈고 있으리라고 그만큼 그들은 고집스럽고 자긍심 높은 전사들이었으니 말이다.
근성이자 고집, 자신의 얼을 지키기 위해 목숨까지 마다치 않은 그들의 기개는 위대한 전사라 불려도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그러한 점을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시대에 맞추지 못한 폐쇄적 성향,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고집과 굽힐 줄 모르는 무모함이 북부에서도 강력했던 세력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비판적인 내용이었다. 그렇기에 합병하는 과정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본 곳 역시 까마귀 그림자 부족이었고 많은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끝끝내 가장 빠르게 도태된 부족이기도 했다.
이러한 역사서 속에 사라 드 셀리엘은 그들의 주술을 좇고 있었으며 지금 알리센이 미쳐 버리고 색욕을 밝히는 것이 어쩌면 누군가의 주술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여러 세대를 걸쳐 마침내 힘을 되찾은 까마귀 그림자 부족의 주술사가 마침내 복수의 칼을 빼 들어 북부를 몰락으로 내모는 것이 아닌가 하며...
마침 역사서에서도 그림자와 까마귀 부족의 주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그림자를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때론 그림자를 통해 누군가를 보고 듣고 할 수 있다는 주술이 소개돼 있었으며 그러한 주술로 타 부족을 염탐하며 미리 정보전에 선두를 가져가고 했다고 한다. 더욱이 까마귀 역시 그들의 눈과 귀가 되고는 했으니 모든 부족을 통합했던 별과 달 그리고 밤의 부족 역시 그들을 집어삼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된 계기라 했다.
사라 드 셀리엘은 짧게 콧소리를 내며 한참 책의 내용을 흥미롭게 읽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녀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었다. 그러더니 아무도 없는 곳으로 시선을 틀었다.
"숨어 있지 말고 나와."
공허한 도서관에 그녀의 목소리가 텅 빈 건물을 울렸을 때였다. 갑작스레 천장에 달린 전등이 이리저리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빛 아래에 드리워진 그림자가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동시에 전등 빛의 세기가 조금씩 잦아들며 기괴하게 꿈틀거리는 그림자 사이로 잿빛이 샘솟아 사라 드 셀리엘의 발치 앞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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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속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하나의 섬뜩한 인형이었다. 아니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고는 하지만, 도통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때 어디선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한 마리가 아니었다. 수십 마리가 동시에 울어대는 것처럼 귀를 쩌렁쩌렁 울리며 일대에 혼란을 일게 하려는 듯했다. 섬뜩한 울음소리와 함께 점점 주변에 퍼져 나가는 기괴한 그림자가 보인다.
그림자는 빛을 삼키며 길어지며 곧 건물 전체를 휘감아 지배력을 행사하려 했다. 빛이 한둘씩 사라진다. 마치 색을 잃어 주변이 온통 흑백으로 변하는 듯하다. 그러며 내비치는 섬뜩한 공포는 차츰 사라 드 셀리엘을 향해 쏘아지고는 했다.
마침 사라 드 셀리엘 발치 앞에 드리워진 그림자 중 유난히 짙고 이질적인 그림자가 하나 더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첫 시작은 자그마한 수포처럼 보글보글 거품이 일었으며 지독한 악취와 역겨운 연기가 새 나오고는 했다. 마치 역류하는 하수도처럼 느껴진다. 그러며 점점 커지는 수포는 점액질처럼 변했고 그 점액질 내부에는 사람의 형체가 보이기도 했다.
형상은 분명 인간의 것을 닮아 있었다. 그 순간, 그림자가 불쑥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점점 더 비대해지는 점액질을 뚫고 모습을 드러낸 것처럼 기괴하고도 기묘한 모습을 그리고 있었고 혐오스러운 모습을 담기도 했다.
마침내 그림자의 점액질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한 사내였다. 온통 칠흑으로 물든 사내는 제법 풍채가 크다. 강건한 골격을 갖추고 있는 것을 보아 여성이 아닌 남성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으나 이상하리만큼 서늘한 감각 사이로 숨을 토해낼 때마다 찬기가 휘몰아치는 듯해 도통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 더욱이 얼굴 부분은 로브의 후드 부분이 푹 눌러 쓰고 있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자칫 어둠에 삼켜진 듯한 모습으로 제대로 형태가 뚜렷하지 못했다.
사라 드 셀리엘은 그런 기괴한 사내의 모습에 태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어떠한 동요도 없이 그녀가 덕목으로 여기던 귀족의 품위와 기품을 잃지 않았다. 마침 서늘한 숨결 사이 썩는 듯한 악취를 뿜어내는 사내가 코앞에 이르렀을 때에 사라 드 셀리엘의 눈가에 살짝 주름이 그어지고는 했다. 더욱이 귓가에 수많은 까마귀 떼의 울음이 그녀의 머릿속을 헤집어놓는 듯하나 초인적인 인내심 때문인지 아니면 그녀에게 그깟 울음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아랑곳하지 않았다.
불쾌하고도 혐오스러움이 만연한 표정 속에 그녀는 짧게 조소를 내비치며 말했다.
"역사서에서 그림자와 까마귀의 부족 주술사는 오직 여성만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틀렸던 건가? 아니면 그러한 골격을 갖추고도 여성이라는 소린가? 무엇보다 애초에 넌 살아있는 존재인가? 참으로 천박한 주술이 아닐 수 없구나?"
호기심과 혐오가 뒤죽박죽 섞인 목소리로 묻자 그림자 속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 기울이다가 끝내 끌끌 웃기 시작했다. 소리는 직접 목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었다. 마치 내부를 쩌렁쩌렁 울리게 하는 듯한 기괴한 웃음은 형언할 수 없는 섬뜩함을 자아내고 있었다.
도통 인간이라 할 수 없는 그는 인외(人外)의 존재로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존재라 느껴졌다. 사라 드 셀리엘은 이질적인 사내를 보며 점점 더 호기심이 동하기 시작함을 느꼈다. 여전히 냉소적인 모습으로 팔짱을 낀 채 그를 마주했을 때, 한참을 낄낄 웃어대던 사내가 천천히 고개를 쳐들었고 이내 얼굴을 깊이 싸맨 후드를 거뒀다. 그러며 보이는 것은 기기묘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존재였다.
인간도, 그렇다고 악마도 아닌 존재, 그것은 깊은 심연 속 혼돈으로 빚어진 괴물에 더 가까웠다. 사라 드 셀리엘의 눈가에 더욱 짙은 혐오감이 맴돌았고 그것을 경멸했다. 특히 텅 빈 두 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온통 어둠이 가득했고 푸른 입술은 시체의 것처럼 푸르스름했다. 얼굴은 창백했고 광대뼈가 유독 돌출돼 기괴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혐오로 빚어진 모습에는 사내가 도통 살아있는 존재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더욱이 그가 숨결을 토해낼 때마다 다가오는 서늘한 숨결에는 죽은 이의 숨결과 같았고 썩는 듯한 냄새는 시체가 썩는 냄새였다. 마침 그의 턱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하며 기괴하게 달싹이기 시작했다. 마치 복화술에 사용하는 목각 인형처럼...
"당신을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사라 드 셀리엘. 첫 번째 상원 귀족이시어.."
섬뜩한 목소리 속에 담긴 정중한 예의와 함께 이름이 실리자 그녀는 꺼림칙함을 견디지 못해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가에는 혐오가 맺혔다. 여전히 삐딱한 시선으로 그를 마주하며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그가 한 차례 더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웃을 때마다 그가 만들어낸 형이상학적 그림자가 기괴하게 꿈틀꿈틀 움직이며 몇 번이고 사라 드 셀리엘의 그림자에 침범하려 했다. 그녀는 그러한 것 하나하나 놓치지 않으며 주술사를 마주했다.
"너무 놀라 말을 잊었습니까?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라 드 셀리엘, 전 당신의 친구가 되고 싶어서 찾아왔답니다."
친구라는 단어를 되뇌며 짧게 조소를 내비친 그녀가 물었다.
"친구가 되고 싶어서 왔다? 난 신분이 불분명한 존재와는 친구가 하지 않았다. 그것도 인외의 존재는 더더욱 친구를 맺지 않아. 특히 그림자 속에 진실을 숨긴 놈과는 더더욱... 그러니 나와 정식으로 친구가 되고 싶다면 그림자나 더러운 시체 뒤에 숨지 말고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게 좋을 거야."
"호오..."
사내가 짧게 탄식을 질렀다. 그러며 다시금 낄낄 웃어댔다. 그러한 웃음은 이빨 빠진 노인의 힘겨운 웃음과 같았다. 더욱이 웃음 사이로 들려오는 쇳소리는 폐병 환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사라 드 셀리엘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사내는 가짜라는 것을 즉, 진정한 모습을 숨기고 있으며 네크로맨서처럼 시체를 이용해 자신을 숨기고 있음을 말이다.
두 눈이 없는 것, 뼈마디에 가죽만 덜렁덜렁 붙어 있는 모습이며 폐병 환자처럼 느껴지는 숨소리, 나아가 서늘한 숨결까지 그러므로 확신했다. 지금의 사내는 시체라는 것을 말이다.
"역시.. 프레이야의 첫 번째 가문이라는 것일까요?.. 늙은 왕조차 깨닫지 못했는데... 하긴 아무런 힘도 없이 늙고 노쇠한 왕은 이미 저문 존재이지요. 더는 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을 추악한 욕심에 산물이자 아집으로 가득 찬 추레한 노인에 불과하지요. 그렇기에 제가 있는 겁니다. 하물며 당신이 필요하기에 온 것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당신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당신의 능력 그리고 기품, 고귀함을.... 교단을 위해 사용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삐걱거리는 듯한 입술 사이로 나오는 교단이라는 단어에 사라 드 셀리엘의 입가에 조소가 어스름하게 맺혔다. 그러며 여전히 여유를 담은 그녀의 시선은 다시금 사내를 넘어 주변에 일렬로 늘어진 책장을 향했다. 그녀의 걸음은 여전히 가벼웠다. 그러며 책장과 책장 사이를 오가며 다시금 여러 책을 고르고 있었고 그런 그녀의 뒤를 사내가 조심스럽게 쫓고 있었다.
사내가 걸을 때마다 주변의 촛불이며 전등 빛이 꺼졌으나 그럼에도 사라 드 셀리엘은 능숙하게 책장과 책장 사이를 오가며 원하는 책들을 뽑아들었다. 그러는 중에 사라 드 셀리엘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내가 교단과 손을 잡으면 얻는 게 뭐지?"
"무엇이든... 무엇이든 얻을 수 있습니다. 당신이 바라는 것, 무엇이든, 원한다면 북부를 전부 가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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