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1044화 (1,044/1,410)

〈 1044화 〉 황후는 테라스에..

* * *

"내게서 벗어날 수 없어..."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봄바람에 실려 아스라이 사라진다. 섬뜩한 목소리에는 서슬 퍼런 집착이 맴돌았다. 이윽고 그녀는 움켜쥔 옷가지를 들어 테라스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추접스럽게 입맛을 다셨다. 이미 번들거릴 정도로 촉촉하고도 붉은 입술에 분홍빛 혀가 스쳐 지나가며 그 촉촉함을 가중했다. 마른침을 꿀컥 삼키며 천천히 옷가지를 콧가에 깊게 묻었다. '흐읍...' 서서히 숨을 들이켰다. 그러고는 한껏 음미하고는 내뱉는다. '후...'

부르르 몸이 떨렸다. 마치 그의 향이 느껴지고는 한다. 몹시 짜릿하고도 끊임없는 염원의 불길에 장작을 집어넣듯 그의 체취가 내면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고압 전류가 전신에 퍼진 것 마냥 쾌감을 느끼게 했다.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체취가 사라지듯 옅어졌으나 아직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남아 있다.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체취에 몸이 슬슬 식어가던 몸이 반응했다.

사타구니 사이를 오싹오싹 떨리게 하는 체취였다. 착용한 가면을 벗어 던지고, 추악한 본모습을 드러내게 하는 이의 체취가 온몸의 성감대를 자극했다.

'아아.. 그의 나체는 어떠할까? 그의 성기는 어떠할까? 그는 쾌락에 허덕이는 자신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처음 소아렌에서 보았을 때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그가 남기고 간 체취가 고스란히 살갗에 나아가 내면 깊은 곳에 낙인처럼 영혼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오래전 사랑했던 이를 똑 닮은 모습, 체취마저 같았다. 마치 그가 환생한 것처럼...

그의 체취는 하찮은 여인을 유혹하고 타락으로 물들게 하는 악마의 페로몬이었다. 감히 견딜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는 체취이자 모습, 그를 처음 본 순간부터 헤어나올 수 없는 뜨거운 열망, 염원, 그리고 운명, 그것은 필연적인 만남이었고 차곡차곡 쌓이고 쌓인 성적 욕망의 연쇄적 폭발이었다.

음유시인이 있다면 첫눈에 반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짙고 음흉하고 더 음탕한 감각의 들끓음이었다. 순수한 사랑으로 표현할 수 없는 끈적끈적한 운명적 만남이라 하면 가장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었다.

'하아..' 깊게 숨을 들이켜고 토해냈다. 어서 그가 자신을 희롱해주었으면 한다. 붉은 입술을 혀로 축였다. 다시금 그의 체취를 한껏 들이켰다. 다시금 뜨겁게 달궈지는 몸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입술 바깥으로 나오는 혀가 옷가지를 쭉 훑기도 했다. 마치 그의 살결을 탐하듯, 한껏 농익어 과즙이 잔뜩 새 나오는 과육을 맛보듯.....

'유진 슈리엘....'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르짖는다. 자신의 욕망을 채워 줄 사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며 자신을 유혹한다.

굳게 다짐했다. 그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점 찍었다. 그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의 거부는 허용하지 않을 것이며 저항한다면 찍어 눌러 가질 것이다. 무의미한 발버둥을 비웃을 것이다. 그가 벗어날 길은 없다. 용솟음치는 욕망이 차갑게 식지 않는 이상 그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다시금 숨을 들이켜 그의 모든 것을 가져야만 충족되는 작금의 집착을 더욱 자극했다. 당당하고도 고집스럽게 그 아이를 염원했다. 딱히 특별한 이유는 필요 없다. 그저 그를 갖고 싶다는 충동이자 욕망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또 모른다. 지금의 욕망이 그저 충동에 의한 욕망일지도, 그를 얻은 뒤, 변덕스러운 갈대 마냥 언제 그를 원했느냐는 것 마냥 식어버릴지도 모르나 지금은 반드시 가져야만 한다. 그렇기에 그를 점 찍었다. 그에게 집착했다. 그를 원하고 체취를 맡고서 부르짖으며 서슴없이 자위를 이어갔다.

잠시 제국의 황후이자 국모(國?)로서의 가면을 벗어던지고 후련할 정도의 민낯을 본래의 얼굴을 내비쳤다.

'반드시 널 가지겠어.' 오래전 자신이 반드시 선배를 점 찍은 것처럼, 부와 명예를 위해 밤일이 시원치 않은 황제 할리온을 얻은 것처럼 이번에 들끓는 욕망은 슈리엘 가문의 후계자를 점 찍어 그를 바라며 민감해진 몸을 희롱했다.

아쉽게도 한 번은 실패했다. 하지만 다음 실패는 없을 것이다. 물론 자잘한 것까지 합치면 성공 횟수가 비약적으로 늘어가겠지만 아무렴! 아리아는 진정으로 원했던 두 번의 욕망이자 집착이 한 번은 실패했고 한 번은 성공했음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 그때와 같은 집착이 생겼고 반드시 얻으리라 다짐했다. 그리고 확신했다.

'적어도 그가 살아있다면 말이지... 아니 살아 있다는 것을 안다.' 처음 그를 마주한 순간부터 알 수 있었다. 그는 쉽게 죽을 사내가 아니었다. 단명할 운명이 아니었다.

천수를 누릴 정도로 오래 살 운명으로 보였다. 수많은 역경과 고난이 그의 얼굴에 스쳐 지나갔으나 단명할 운명은 아니었다.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엘리시움에서 사제 생활을 했을 때와 마녀의 주술을 배운 지금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가 어떠한 운명을 가졌는지..

엘리시움의 성녀처럼 신의 축복이자 신의 대리인이 되어 미래를 읽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행방불명이라는 소식은 애초에 믿지 않았다. 그는 분명 살아있었다. 주술을 피해 갈 수 없다. 그리고 그는 이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음을 알아냈다. 즉, 제국 어딘가에 있다는 뜻이며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알 수 있었다. 느낄 수 있었다. 집착은 주술의 촉매가 되었다. 이윽고 그와 연결된 하나의 선처럼 이어졌다. 쉽게 꺾을 수 없고 자를 수 없는 선이었다. 그의 존재가 점점 더 가깝게 느껴질수록 아리아는 그가 자신의 욕구를 채워줄 유일무이한 존재가 되리란 확신이 뚜렷해졌다.

하찮은 촉이자 흔한 바람이자 염원이 아니었다. 그것보다 더 확실함에 가까운 육감이었고 주술처럼 음흉하고도 확실함을 담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 내게 올 거야.' 얼마 지나지 않아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올 것이다. '마침내 자신에게 다가와 무릎을 꿇고 축축하게 젖은 내 사타구니를 핥으러 오리라..'

짜릿한 전율이 등줄기를 꿰뚫어 오싹한 감각에 휩싸인다.

그는 무언가를 원하고 있었고 자신은 그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대가로 그 아이는 이제 자신의 것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간 차곡차곡 쌓인 짜릿한 욕망을 마음껏 터트릴 수 있으리라 여겼다. 기다리기 힘들 정도다.

'어서.. 어서.. 어서.. 기다리기 지쳐가고 있어..'

한 차례 더 깊게 숨을 들이켜 그의 체취를 한껏 내면 깊은 곳에 차곡차곡 담아 집착의 불씨를 키웠다. 계속해서 그를 떠올렸고 히죽히죽 반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웃었다. 눈가는 마치 마약에 취한 듯 몽롱하게 풀렸다.

유진 드왈즈 슈리엘 그리고 아리아 시엘르 하이란..

그녀는 몇 번이고 그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을 되새기며 끈적끈적하고 질긴 인연의 끈을 느꼈다. 더욱 견고하게 했다. '이번에도 실수하지 않겠어!'

오래전 자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스스로 파멸이라는 선택을 한 사내와는 비슷하지만 다른 느낌이다. 그는 끝내 파멸에 길을 택했다면 그는 그와 다르리라 확신했다.

무언가 강인한 인연의 끈과 함께 다가온 기대감은 견딜 수 없다. 훔쳐온 그의 옷가지에 체취를 한 차례 더 삼켰다. 마약을 흡입하는 것 마냥 연거푸 전율이 콧잔등을 타고 뇌를 마비시켰다. 한껏 달아오른 전신에 고압 전류를 흘려보냈다. 등골이 오싹하며 쾌감에 날뛰었다. 음부의 난폭하게 벌룩거렸다. 축축하게 젖은 음부 사이로 애액이 떨어졌고 안쪽 허벅지에 기다랗게 애액의 자국이 그려지는 것이 몹시 자극적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곤두선 유두가 찌릿찌릿 울어댔다.

마침 아리아는 손가락을 튕겼다. 놀랍게도 저만치 멀리 떨어진 음악상자가 홀로 태엽이 감기기 시작하더니 다시금 시작되었다. 강렬하고 요란한 음악이 들려왔다. 아리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계속해서 유진의 옷가지에 얼굴을 묻어 숨을 들이켰다.

이윽고 참을 수 없는 충동에 천천히 가랑이 사이를 벌리며 급히 손가락을 들이밀었다. 그러는 사이 가운의 끈이 풀렸고 흐릿하게 보이던 그녀의 하얀 나체가 이제는 고스란히 보였다. 더욱이 도드라져 보이는 하얀 가슴이 그녀의 손길에 따라 조금씩 경박하게 흔들거렸다.

축축하고 뜨겁다. 애액으로 성긴 음모에 애액이 방울져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혹여라도 누군가 본다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볼 테면 보던가!' 황제의 정실, 하이란 제국의 국모(國?)가 사실 이렇게 추잡스러운 여인이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리는 것 역시 짜릿한 쾌감으로 될 것이다. 추잡한 모습에 일그러지는 할리온을 떠올리자니 짜릿하기만 하다. 목구멍까지 용솟음치는 성욕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황후는 테라스에 앉아 더욱 추잡스럽게 다리를 벌렸다. 정말 누구든 봐도 좋다는 것처럼... 거칠게 벌룩대는 보짓살을 자극했다. 방안에 누군가 들어오리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차피 조루 황제 할리온은 오늘 밤 여인이 무서워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더욱이 황자는 잠들었다. 그녀는 자유를 느꼈다. 후련함을 느꼈다. 황후의 가면, 어머니라는 가면을 벗어 드러난 민낯에는 황홀한 자유가 맴돌았다.

마침내 격렬한 쾌락의 자유가 쏟아져 내렸다.

"하아....하아.. 하아... 하읏!"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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