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55화 〉 휴센의 정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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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머리가 희끗희끗한 하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에일린은 여전히 굳이 시선을 돌리지 않고 들어오라는 말을 했다.
늙은 하녀가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고개를 조아리며 다가왔다. 그러나 에일린의 시선인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 그녀를 따라 당당한 걸음으로 다가온 여인을 보았다. 하늘하늘한 사막의 복장을 착용한 여인이었다. 불편한 드레스보다는 통이 큰 비단 바지를 입었고 강렬한 태양광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검은색 천으로 몸을 가린 하녀였다.
마침 비슷한 복장의 다른 여인이 그녀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앞선 늙은 하녀가 공손한 자세로 고개를 조아리며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내었다. 문득 자신의 직속 하녀이자 하녀 장이었던 세라스가 보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세라스가 어디에 있는지 묻고 싶었으나 묻지 않기로 했다.
아무래도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을지도 몰랐다. 마침 늙은 하녀가 고개 숙여 말했다.
"만나 뵙고 싶었다던 정령사 입니다. 그녀는 왕께서 직접 직위를 주었으나 아직 배움이 부족합니다. 실수하더라도 아량을 베풀어주십시오."
"그래요. 돌아가도 좋아요 아난타."
아난타라 불린 하녀가 고개를 조아리며 소리가 나지 않게 걸음을 물려 돌아갔다. 그러며 다시금 이어진 침묵 속에 창밖을 바라보던 에일린이 그녀를 마주하자 마침 그녀가 쓰고 있었던 펑퍼짐한 후드를 뒤로 넘겼다. 그 순간 에일린의 눈동자가 오랜만에 당황스럽게 물들었다.
굳어진 표정에 입술을 달싹이다 말기를 반복했을 때, 여인이 고개를 조아리고 한쪽 무릎을 꿇어 공주를 향한 예를 보이며 말했다.
"사막과 바다 그리고 태양의 은혜를 입어 궁전의 정령사가 되었던 아를란 샤흐타르 페이가 인사드립니다."
"페이?"
"그렇습니다. 공주님, 고대어로 요정을 칭하는 단어라고 들었습니다. 페이라는 성은 궁전 정령사가 되면서 위대하신 전하께 하사받은 성입니다. 이어 사막과 바다의 물을 받아낼 권한을 받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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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센에서는 정령을 다룰 줄 안다면 많은 혜택이 주어진다.
물론 궁전에 등록되었을 때 이야기지만, 궁전 정령사가 된다면 그들은 집을 갖게 되고, 직위를 갖게 된다. 무엇보다 평민은 성을 가질 수 있다. 그것은 곧 귀족과 동등한 위치가 된다는 점이다.
휴센에서 귀족의 존재는 제국과 유사하다. 준 남작부터 시작해 남작, 백작, 후작의 위치가 있었다. 제국처럼 공작의 직위도 있었으나 공작의 직위는 오랜 시간 공석의 위치였다. 이유는 왕가의 핏줄과 이어진 사내는 데릴사위만이 공작의 작위를 얻고는 했다. 제국과 다르게 오직 왕가 쪽 사람에게만 공작의 직위를 주었기 때문이었다.
휴센의 현 왕자는 직위를 갖기에 나이가 충분치 않았고 배움마저 충분하지 않았으며 아직 왕의 후계자가 나오지 못했다. 공주 역시 성혼하지 않았고 데릴사위 역시 없었다. 더욱이 전대 공작 역시 나이가 지긋해 끝내 직위를 놓은 상태로 유유자적 신선놀음처럼 지내고 있었기에 공작의 작위는 여전히 공석이었고 아직도 그 작위에 어울릴만한 이는 없었다.
이러한 계급제는 제국과 같았으나 어쩔 수 없었다. 휴센의 근본은 본디 제국에서 파생되었다.
오래전 휴센은 제국이 만들어지는 해에 그들의 사람들이 제국의 사상에 맞지 않아 길을 떠나 휴센을 건국했다고 들었다. 어찌 보면 그 뿌리가 제국과 비슷했고 비슷한 문화가 있었다. 계급제 역시 제국과 비슷하지만 조금은 다르게 돌아가고는 했다. 뿌리는 비슷할지라도 시간이 지날수록 휴센은 그들 만의 근본을 찾아 하나하나 만들어낸 상황이었다.
초기 휴센의 시조는 불모지나 다를 바 없는 사막에서 생존했으며 아무도 이용하지 못했던 미지의 공간이었던 바다를 이용하며 마침내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시조의 3대손이 새로운 사막의 지도자가 되었을 때에 왕국으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바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처음 제국은 휴센의 건국을 반대했다. 하이란이 황제로서 제국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전부터 휴센은 그들의 눈엣가시로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제국은 휴센을 아버지의 국가로서 모시라는 말과 함께 제국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물론 휴센 역시 처음에는 반박했지만, 불모지와 같은 곳을 개간하면서 제국의 견제까지 받아야 하는 상황은 견딜 수 없었다.
자칫 힘겹게 세운 휴센이라는 나라가 무너질 위기였고 결국,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휴센은 하이란의 제국의 칭호를 인정했고 어머니의 나라로써 고개를 조아려야 했다.
치욕과 굴욕의 시간은 꽤 길었다. 그러나 조금씩 휴센이 지형을 이용하며 국방력을 키웠다. 조금씩 사막을 이해하고 받아들였고 사막의 여러 부족을 통합시켰다. 북부처럼 피로 쓰이지 않았다. 그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그러며 한데 융압했고 마침내 휴센을 강대하게 건국했다. 그러며 생겨난 힘에 조금씩 하이란과의 주종 관계를 넘어 동등한 관계가 되기 위한 발판이 되었다.
무엇보다 휴센은 하이란에 공물을 바치면서도 여전히 사막과 바다를 공략하는 것에 중요함을 피력했다. 무엇보다 미지의 공간이었던 바다는 자원의 보고였다. 새로운 특산물인 해산물을 위해 조선 발전에 힘을 실었다. 물론 모든 교역로를 가지고 있는 제국과는 차이가 나지만, 바다의 교역로를 통해 남쪽 무쥬엘라와 조금은 멀리 돌아가더라도 엘리시움까지 빙빙 돌아 특산물을 팔 수 있었다.
그렇게 다시 2대손이 더 지났을 무렵, 휴센은 대륙 근방의 해협을 장악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발전한 조선업을 따를 자가 없었고 해군력을 감당할 수 있을 도시가 없었다. 그러한 해군 덕분에 현재에도 해협을 다스리고 있는 나라는 휴센이었다. 그런 그의 뒤를 이어 무쥬엘라가 남해 엘리시움 역시 서해 쪽으로 진출하고는 했지만, 휴센 만큼 조선업으로 발전한 나라는 없었다.
이렇듯 바다가 마르지 않는 한 휴센의 자원이 고갈할 일이 없을 정도로 무한한 자원의 보고였다. 사시사철 새로운 해산물이 즐비하며 그들의 돈이 되었다. 그렇게 휴센은 계속해서 자원을 축적했고 그러한 자원을 토대로 빠른 속도로 발전했으며 어느덧 부자의 땅이 되기도 했다.
사막이라는 저주의 땅을 건너야 하지만, 북부와 제국의 교역로가 있었고 바다를 통해 시간이 걸린다만 엘리시움과 남쪽 무쥬엘라와 거래할 수 있는 물꼬를 트였다. 더욱이 바다가 무한정 토해내는 자원은 분명 금이었다. 식자재 중에서도 해산물 그리고 소금이 대표적인 예였으며 대륙 해산물의 90 퍼센트는 휴센에서 심지어 소금까지 비싼 값에 휴센으로부터 생산되었다.
제국이 그런 휴센의 자원을 노리려 했지만, 어느샌가 사막을 자유자재로 이용하는 휴센의 전사들을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더욱이 제국은 오래전부터 북부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계속된 분쟁이 계속해서 이어지는 상황에 휴센을 견제할 만한 수단과 자원의 보급이 부족했을뿐더러 굳이 위험을 떠앉을 필요가 없었던 그들이었다. 자칫 북쪽과 동쪽의 공격을 받아야 할지도 모른 하이란은 결국, 휴센과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휴센을 견제하기보다는 동맹국으로써, 마침내 동등한 위치에 새로운 조약을 발표해야만 했다. 그러한 조약이자 동맹국으로서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 휴센이며 휴센은 해협을 장악해 계속해서 자원을 축적하며 군사력을 증강했고 더욱 조선업에 힘을 싣고서는 마르지 않은 부로 발전을 이룩했다.
휴센은 마치 옛 갈라도가 부활한 것처럼 황금의 땅이라는 부유한 강대국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 간략하게 축약한 휴센의 역사였다. 계급제는 결국, 제국에서 이어받아 지금까지 이어져 있었으나 다른 점은 귀족의 직위를 돈을 주고 살 수 없다는 점이 제국보다는 조금 더 고지식한 면모가 있었다. 대신 유일하게 평민이 귀족이 될 방법이 있었다. 그것은 마법사가 되어 휴센의 마탑에서 인정받아야 했으며 이윽고 궁전 마법사가 되어야 귀족의 직위를 얻었다.
실력이 중급 마법사가 되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정령을 다룰 줄 안다면 귀족이 될 수 있었다.
휴센은 오래전부터 인재에 허덕였다. 무엇보다 강대국인 제국을 맞서기 위해 전사는 스스로 배양했지만, 그러기 힘든 마법사와 정령사를 얻기 위해서는 여러 방면에서 초빙해야만 했다. 불모지에서 키우고 싶다고 마법사와 정령사가 태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오래전부터 취한 특별법이었고 그러한 법은 지금까지 잘 이어져 온 상태였다.
무엇보다 마법사와 정령사는 조선업에서도 많은 연구 결과를 낳았고 바다라는 미지의 세상에 마법사들이 호기심을 일게 했다. 그러므로 모여드는 마법사를 붙잡기 위해 휴센은 직접 창고를 열어 그들을 환영했고 이윽고 탑을 세웠다. 그렇게 휴센은 마법 대국이 되었으며 수많은 마법적 물품이 휴센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정령사 역시 그러했다. 정령은 날씨를 읽을 줄 안다. 그리고 날씨를 읽을 줄 안다면 사막과 바다에서 성녀보다 더 중요한 존재가 된다. 그러힉에 정령사는 휴센에서도 마법사와 동급 혹은 그 이상의 대우를 받고는 했다. 그렇기에 지금 소아렌에서 한낱 평민이었던 여인이, 귀족이 아니라는 것에 괴롭힘을 당했던 여인이 놀랍게도 귀족이 되었다. 그것도 보기 힘들 정도로 세 명의 정령을 다루며 들어오자마자 왕가의 혼란을 잠재운 영웅으로서 말이다.
에일린은 놀란 얼굴로 아를란을 보았다. 아를란은 여전히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일어나요. 아, 아를.. 아니 정령사 페이."
"말을 편히 하셔도 좋습니다. 그리고 아를란이라 부르셔도 좋고요."
그녀가 자리에 일어서며 말하자 에일린이 멋쩍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방안에 놓인 탁상에 이르려다가 이내 테라스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달빛 아래가 좋았던 그녀였다. 아를란 역시 그녀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더욱이 그림자조차 밟지 않게 조심했다. 그녀는 완연히 궁전의 정령사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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