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날 겨울, 난 죽었었다-1065화 (1,065/1,410)

〈 1065화 〉 서재에서 발견했어.

* * *

"아버지가 정말 담배를 피우셨던 가요? 어머니가 담배 냄새를 싫어하는 것을 모를 리가 없잖아요? 그래서.. 저택 내부에는 그 누구도 담배를 태우지 못하게 했잖아요? 저도 한 번도 못 봤어요. 아버지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요. 그런데 피우고 있었던 건가요? 정말 아버지가... 피우는 게 맞아요? 아니면 설마.. 공급처인가요?"

혹시나 싶어 되물었다. 대답이 돌아오기 전까지 심장이 미친 듯이 요동쳤다. 만에 하나 아버지가 마약 공급처라면, 그 사실이 제국 내에 퍼지는 순간 당연히 슈리엘 가문은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애초에 마약을 접하고 해오고 있다는 것 자체가 황실의 귀에 닿는 순간 쉽게 끝나지 않을 일인 건 분명했다.

자칫 공작의 자리마저 위태로운 순간이었다. 그만큼 제국에서 아니 제국을 넘어 전 대륙이 마약에 관해서는 조금의 자비도 주지 않았다. 아주 오래전 마약의 위험성을 모르고 즐기던 나라가 있었다.

갈라도 이후의 왕국이었으며 마도시대 전 여러 갈래로 나뉜 중소 왕국으로 역사서에 스쳐 지나갈 정도로 수많은 왕국이 생겼다가 사라지던 시기였다. 그러한 시기에 한 나라가 마약 때문에 망한 일이 있었다. 어느 곳보다 군사적으로 나아가 경제적으로도 뛰어난 도시로서 이름은 바할란이라는 왕국이었다. 그러나 그 왕국이 고작 일주일 만에 망했다. 그것은 타국의 밀정이 첩자가 되어 마약을 왕국에 풀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마약에 중독된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중독되었고 이윽고 그들은 타국의 침략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전해졌다. 일말의 저항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전쟁이되 피조차 흘리지 않은 전쟁이었다. 오직 마약에 몽롱하게 풀린 왕의 목을 자를 때 흘린 피가 전부인 전쟁에 바할란은 일주일 만에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고 멸망했다.

그러나 타국이 그들을 점령하고 난 뒤에도 문제였다. 비밀리에 마약은 계속해서 유통되기 시작했고 결국, 마약의 뿌리를 뽑지 못한 나라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대지 위에 수많은 이름이 깃발을 세우다가 쓰러지길 반복했다고 전했다. 이윽고 마도시대에 이르러 새롭게 대륙을 합병한 이가 마약에 대한 처벌 법을 강력하게 세우며 모든 마약의 뿌리를 뽑았다고 전했다.

관련법이 여전히 제국을 넘어 대륙 전체에 퍼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마약은 국가적으로 반드시 규탄해야 하는 중죄였다. 한편 머뭇거리던 그녀가 한숨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유진은 안도했다. 그러나 두려움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적어도 공급처는 아닌 것 같더구나. 나도 확실한 것은 알지 못한단다. 너도 알고 있지? 다이크가 새로운 여인을 곁에 두고 있다는 것을 말이야. 그렇지 않아도 중앙 귀족 회에서도 은연히 소문이 날 정도란다. 지니 알렉산드로.. 아마 너와 비슷한 또래에 영애가 다이크의 새로운 연인이 되었던 것 같구나. 아무튼,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다이크가 더는 내 눈치를 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란다. 그와 관계가 소원해진 뒤, 정확히는 그에게 새로운 여인이 생긴 뒤부터 우리는 각방을 사용하고 있었단다.서로 별다른 왕래가 없었지."

그녀는 목이 타는지 이미 식어버린 차를 쭉 들이켰다. 유진은 다급히 찻주전자를 들어 그녀의 찻잔에 새롭게 타주었다. 그러는 중에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때부터 다이크 슈리엘은 변했단다. 내게 신경질적으로 대하기 시작했어... 더는 배려가 없어졌다고 할까? 마치 버림받은 기분이더구나.. 그렇다고 나를 동정하거나 연민의 눈빛으로 바라보지 않아도 된단다. 상관하지 않으니까. 이미 언제고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어. 애초에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흔한 과정이지 않더냐?"

어머니가 애써 웃어 보였으나 그 웃음이 너무나 서글프게 느껴졌다. 유진은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 씁쓸함을 느끼며 별다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녀 역시 말마따나 동정이나 연민은 필요 없어 보였다. 하물며 아버지에게 새로운 첩이 생기는 것 역시 별다른 걱정은 없어 보였다. 그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것처럼 당연한 수순이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 유진 역시 이렇게 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다. 오래전 처음으로 어머니와 금단의 관계를 나누었던 그때부터였다. 본디 그래선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한 번의 충동이자 그릇된 충동으로 빚어진 결말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러한 대가가 이렇게나 잔혹한 대가라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여태껏 해오지 않았던가? 심지어 소아렌에서도 몰래 나누지 않았던가? 하물며 이제는 프리실라까지 그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불현듯 난처하다는 눈초리로 괜스레 주변을 슬쩍 훑어보던 유진이 나지막이 되물었다.

"설마 아버지도... 알고 있을까요? 그.. 어머니랑 저의.. 그..."

여전히 부끄러움이 남았고 죄책감이 남아 차마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힘들어 뒷말을 얼버무리며 묻자 그녀가 씁쓸하게 웃고서는 아랑곳하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이며 차를 홀짝였다. 유진은 불안함에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알고 있을 수도.. 아닐 수도.. 상관하지 않을 거란다. 어차피 그이에게는 나보다는 더 젊은 여인이 곁에 있으니까. 어쨌든 그러한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었어."

미소와 함께 담담한 목소리에는 전혀 후회란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판단하고 결론을 내린 뒤의 행동으로 다가온 대가에 굳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했다. 그녀는 이미 예전부터 부부 관계가 이리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서로에 소홀해지고, 잠자리를 피하던 그날, 술에 취한 상태로 부담스럽다고 말로 상처를 주었던 그날 그리고 그 후, 무리슈엘라 역시 다이크 슈리엘을 향한 정열적으로 타오르던 사랑이 완벽하게 식어버렸음을 인정했다. 그 충격은 가히 어마어마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만에 하나 유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충동에 저택에 모든 남자와 잠을 잤을지도 몰랐다. 그녀 역시 엄연히 북부의 여인이었다. 강인한 여인이었다. 더욱이 남자에게 버림받았다 한들 슬픔에 사무쳐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약한 여인이 아니었다. 북부의 칼바람을 이겨오고 제국의 답답함에 적응한 여인이었다. 고작 아들과 잠자리를 갖는 것에 후회할만한 여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당당한 미소로 걱정하지 말라는 단호한 모습을 내비쳐 안도감을 주었다. 이윽고 본래의 주제로 돌아왔다.

"다이크가 마치 내가 싫어할만한 행동을 하고 있어. 마치 저항하는 것처럼 나를 더욱 밀치려는 것처럼 그러다 보니 어느덧 담배까지 피우고 있더구나 그러나 그 담배가 하필 그것이었어. 내가 직접 보았고 조금 전보다 더 강렬한 냄새도 맡았단다. 맡는 순간부터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그렇기에 비밀리에 확인해보려 했지만, 알다시피 나 역시 제대로 세력을 갖고 있지 않아서 말이야.. 어찌 되었든 다이크 슈리엘은 공급처라는 생각은 들지 않더구나 대신 저택의 예산 중에 그가 그 담뱃잎을 구매하는 것에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단다."

"반드시 막아야 해요."

단호가게 대답했으나 근본적인 문제에 봉착했다. 아무리 후계자라 할지라도 여전히 슈리엘 가문의 가주는 아버지였다. 다이크 슈리엘이 모든 전권을 가지고 있었다. 즉, 지금 그가 저택의 예산을 어디에 사용한다고 하든, 아무것도 위임받지 않은 유진이 무어라 막을 방법이 없었다. 하물며 어머니 역시 가주가 하는 일에 참견하는 것은 월권에 해당하는 일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가 사실 마약의 공급책을 담당하고 있다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지금 의심으로 확신할 수 없는 시기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어머니가 지금 괜히 나선다면 마치 북부의 셀리엘 가문처럼, 특히 사라 드 셀리엘과 페르난도 사이와 같은 불명예를 얻게 되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여인이 가주이며 남편이 데릴사위가 아닌 이상, 아무리 정실이라 할지라도 여인이 가주의 일에 참견하는 것은 불명예 적인 일이었고 그러할 권한도 없었다.즉 그가 무엇을 하듯 실질적으로 막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었다.

무리슈엘라 역시 그러한 점을 알고서는 딱히 막을 방법이 없어 속으로 끙끙 앓고 있었던 듯했다. 그리고 그녀의 근본적인 걱정이었던 것 같다. 유진의 시선도 여전히 불길함이 맴도는 주머니에 닿았다. 그러며 이어진 적막 속에 마침 유진의 뇌리에 스쳐 지나가는 인물이 있었다.

짧게 탄성을 질러 언성을 높였다.

"같은 상인이라면.. 그것도 대상인이라면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몰라요."

"상인 중에 아는 이가 있니?"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며 주머니를 움켜쥐며 말했다.

"적어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될 거예요. 물론 제가 아는 믿을 수 있는 정보 길드도 있고요. 편지를 보내보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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